늦은 노래
고은 지음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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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하면 나이와 세월에 관계없이 늘 우리에게 끊이지 않는 시창작과 현실 참여로 그야말로 예비역을 모르는 현역시인으로 떠오른다. 갇힌 자아에, 화석화된 과거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는 '절벽'이라는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늑한 방을 뛰쳐 나왔다' '그 절벽으로 달려 갔다'에서 이제 그 나이쯤이면 편히 쉬며 인생을 흐르는 대로 살 수도 있으련만....'부동자세 거기에 온몸 부숴버려야겠다' '보라 내 늙은 안식 사악하여라'에서처럼 늘 자신을 부정하며 새롭게 만들어가는 자신에게서 우리는 나이에 아랑곳없이 새로운 도전과 지적 탐색으로 생명력 넘치는 한 시인을 접하게 된다.

'일인칭은 슬프다' '매향리' '미국' 등의 작품에서 그의 청청하고 부릅 뜬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 '모방' '절벽' 등의 시에서는 자아성찰과 존재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큰 이야기' '저녁'에서는 이 모든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의 시는 깊은 역사의식과 현실 참여가 하나의 씨줄이 되고 종교의식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날줄이 되어 그의 삶이라는 몸에 맞는 옷감이 된다. 그것은 또한 다채로운 시가 된다. 여기 그의 시 한 편을 옮긴다.

저녁 -진실은 저녁에 온다누구에게는 빈 가슴이고누구에게는 어둠의 시작이다그것은 너무 늦게 와서 하나하나 이야기가 된다벌써 술집 불빛들 서둘러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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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 - 이젠 그를 만나고 싶다
신경림 외 지음 / 책만드는집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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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이 고른 이 시들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에는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고 비련도 있으며 절망도 있다. 사랑에는 기쁨도 있고 찬란함도 있으며 희열도 있고 열정도 있다. 사랑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랑은 사물이 비어있음을 아는 깨우침이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많은 시인들의 정의는 사랑에 담겨 있는 많은 의미와 교훈들을 우리가 알 수 있게 한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는 이문재 님의 시처럼
사랑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많은 시련과 상처를 껴안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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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한 편의 悲歌
김춘수 지음 / 현대문학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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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내면과의 갈등상태를 김춘수 시인은 인간존재의 비극성이라 불렀다. 그 비극성을 쉰한 편의 시로 압축해서 자신의 생에 있어 마지막 시집이라고 자처하는 시집을 내었다. 바로 '쉰한 편의 비가'가 그것이다.

그의 시에는 젊은 시절의 방황과 열정 중년기의 모색과 탐구 그리고 노년기의 평화로움과 안식이라고 하는 인생단계의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80이 넘은 그의 노년기에 그가 보여주는 것은 생생한 힘의 시이다. 물론 그가 인생을 덜 살아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그에게 있어 존재의 비극성과 현실의 삶과의 괴리는 또 하나의 비극성이다. 이 비극성 속에 그의 시는 현실의 삶속에서 춤추는 무희와도 같다.

뭐라할까? 그의 시 하나하나에 깃들인 비극성이라는 것 이면에 인생의 깨우침이라고 하는 또 다른 희망과 기쁨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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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시집 창비시선 218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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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지하의 '화개'와 더불어 시단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시집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한국 시단에서 그를 빼고서 시를 이야기하기엔 뭔가 허전한 신경림 시인의 이 시집은 그의 나이 60대 중반이후에 와서 조금은 더 자연스러워진 그의 언어미학을 접할 수 있는 동시에 그가 가진 삶의 무게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80년대의 사회운동의 분위기가 저물어가면서 90년대 들어와서 가볍고도 기술적인 시들이 난잡하게 쓰여지면서 그는 우리 시가 더욱 기교적이고 부자연스럽게 그리고 너무나 가볍게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역사성이나 현실성의 무게에 짓눌려 시답지 않은 시가 선동적 목적으로 쓰여진 것도 문제라고 한다면 그런 삶의 무게로부터 완전히 무관심해진, 그래서 대중의 저질적 욕구에 추종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시들에 대해서도 경계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체코의 작가이자 시인인 밀란쿤데라의 시 중 '시인이 된다는 것'이란 시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것은 시가 가진 삶의 신중함과 무게를 인식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요즘 시들은 너무나도 가벼우면서 가식적인 기교가 섞인 글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지 시집을 손에 대는 일이 뜸해졌던 것 같다.

시적 언어란 것이 그 언어를 다루는 자의 삶을 투명하게 비추는 것이 아닐때 그 시는 대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 비록 우리의 표면의식은 그 언어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진실하지 못하다면 우리 속의 참된 존재는 그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시는 나무와 같아서 그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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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41
김지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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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지하의 5-6년간의 시적 작업의 중단과 국토 대순례를 통해 여러 명산대찰을 찾아 여행길에 오른 후에 나온 작품이다. 어느듯 60이 훌쩍 넘어버린 그의 오랜 공백기간 후에 내보인 이 시집은 그가 드디어 깨닫게 된 인생의 의미들이 글이란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아내에게'라는 외로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외로움이 아닌 외로움의 의미를 깨우친 것이라고 말한다. '나그네'에서는 '길 너머 저편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여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외로움과 그로 인한 허무함을 말하는 듯 들린다. 하지만 '내 고향은 길 끝없는 하얀길'에서 이미 아무것도 없었던 인생의 길 그 자체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며 이는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무'라는 것이 존재가 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 무엇이 되고 있는 듯하다. '길가에 한 송이 씀바귀 피었다'에서는 이러한 것이 더욱 확연해져서 저편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결국엔 씀바귀가 피었다로써 결국엔 존재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무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그의 아무것도 없다는 꽃이 피다라는 말의 花開로서 무가 새로운 것이 있음이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의 생명사상이 이젠 보다 인생의 의미에 다가가고 있고 따라서 더욱 깊은 성찰의 내용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시집에 담긴 몇몇의 글들은 읽고 또 읽어도 의미가 새롭고 더욱 그 내용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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