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비록 -하
산케이신문특별취재반 / 문학사상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문화대혁명이 가진 성격과 그 본질에 대한 얘기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사실들이 20여년간 비밀의 장막 속에 묻혀 있음으로서 그동안 문화대혁명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모택동에 대한 평가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벗겨진 장막은 문화대혁명과 모택동의 정책에 대해 역사적으로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런 점에서 산케이 신문 특별취재반의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문화대혁명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50년대의 대약진운동과 그 실패 속에서 모택동의 정책 노선은 맑스주의에 대한 해석에서 생산력에 대한 부분이 결여된 정책상의 오류를 나타내었으며 그것은 자신의 무장혁명의 개인주의적 경험을 절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문의 무시와 정치적 혁명화가 전시 아닌 평시에도 유효할 수 없었으며 그것은 생산력 침체와 경제적 낙후를 가져와 사회주의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게 하였다.

4인방과 임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모택동은 자신의 혁명적 사상에 대한 맹신으로 당내 생산력발전에 중점을 두고자 했던 유소기 국가 주석과 등소평을 타켓으로 문혁을 발동하고 그것이 자신이 의도하지 못한 규모의 폭동과 학살로 치닫게 되었어도 정치노선의 맹신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 4인방과 임표는 기회주의적으로 자신의 정치세력의 확장을 꿈꾸고 그것은 모택동 사상의 오류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문혁과정에서 보여준 모택동과 그의 사상에 대한 인민의 무조건적인 절대화는 모택동을 사람에서 신으로 지위를 부상시키게 되고 그것은 인류역사에서 모든 인간의 신격화가 낳은 부조리를 낳게 되었다. 인민과 당의 의견과 유리되어 신의 권리로 그들을 평가하고 탄압한 문혁은 결국 중국 사회주의를 깊은 생산력 정체와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따라서 신격화된 모택동에 의해 지도된 문화대혁명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모택동과 그의 사상을 다시 인간으로 제자리매김하는 과정이었으며 중국의 낙후된 경제력을 끌어올리고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첫걸음이 되었던 것이다.

모택동비록은 단지 그것이 역사의 숨겨진 비화가 아니라 모택동 사상을 바르게 재평가함으로써 그것이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역사적 오류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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