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추리 소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약세인 이유중의 하나가 셜록 홈즈로 대표되는 명탐정의 캐랙터가 부재 때문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국내에도 그러 명탐정이 없던것은 아닙니다.다만 잊혀졌을 뿐이죠.30~40년대 국내 추리 소설계를 이끈 김래성작가의 유불란 탐정이 있고 이제는 이름조차 완전히 잊혀진 방인근작가의 탐정 장비호도 있지요. 인터넷을 보다보니 방인근 선생에 대한 글이 있기에 올립니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mulim1672&folder=29&list_id=10879867
http://media.joins.com/sites/youngworld/article.asp?total_id=3868973
명탐정 장비호의 추억
그해 겨울 땅거미가 어슬어슬 물들어 오는 저녁 무렵. 종로 4가 설렁탕으로 이름난 감미옥. 구석에 혼자 앉은 한 노인이 낯익었다. 춘해 방인근이었다. 다가가 덥석 인사를 하자 그는 반갑다고 웃으며 자리를 권한다. 소주잔을 든 그의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그는 수척한 얼굴을 들어 힘없는 눈길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칠순의 이 노인이, 당대 미남으로 장안 지식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국민적 사랑을 받은 춘해 선생이란 말인가. “건강은 어떠십니까?” “견딜 만해요. 밤마다 이 궁리 저 궁리 잠이 안 와. 지난날이 후회만 되고 마음이 괴로워….” “선생님은 온 재산 열정 바쳐 춘원과 함께 ‘조선문단’을 창간, 한국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죠. 그 공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30, 40, 50년대 이 나라 방방곡곡 선생님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춘해 선생님, 이제 필생의 대작을 쓰셔야 할 때가 아닙니까.” “마음은 그런데,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고 뭐 그래요. 도통 붓이 나가지를 않아. 눈뜨면 생활에 쪼들려 하루가 막막하고, 친구들은 모두 먼저들 가버렸지. 월탄하구 나만 남았어.” 자괴의 말 끝에 춘해는 눈시울을 붉힌다. 전매청 옆 성당에서 아련하게 울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남기며 버스는 그를 싣고 창경원 쪽 눈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해 1974년 겨울 저녁이었다. 춘해는 1932년 동아일보·조선일보에 ‘마도의 향불’ ‘방랑의 가인’ 등을 연재, 전국적 대호평을 받는다. 춘향전·장한몽 등 딱지본만 읽어 온 독자들에게 현대소설 베스트셀러 작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때까지 독서 습관이 없던 대중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줘 국민의 지적 수준 향상에 큰 역할을 한다. 1948년, 당장 살길이 막막한 춘해는 이북(李北) 옛 중앙일보 사장을 찾아간다. “여보, 잘 팔릴 탐정소설이나 하나 써 보구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춘해는 원고료가 필요했다. 그는 영국의 코넌 도일, 프랑스의 르블랑, 일본의 에도가와 란포 등의 탐정소설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을 더듬으며 플롯을 구상했다. 호구지책으로 열어 놓은 구멍가게 뒷방에서 개다리밥상을 놓고 공책에다 연필로 첫 탐정소설을 써 나갔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홈즈와 루팡이라 할 명탐정 장비호를 탄생시킨다. 춘해의 한국판 탐정소설 ‘국보와 괴적(怪賊)’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열광했다. 6·25 전란이 일어나자 인민군에게 끌려가 문초를 받는다. “동무가 그 유명한 소설쟁이 방인근이오? 탐정소설 ‘국보와 괴적’ 말이야. 국보는 국방군이고 괴적은 인민군이란 말이지?” 춘해는 며칠간 곤욕을 치르며 잡혀 있다가 자술서 몇 십 장 쓰고 가까스로 풀려난다. 그 시절, ‘장비호 탐정’ 하면 방인근이요, ‘유불란 탐정’ 하면 김내성이었다. 그는 잇따라 걸작 탐정소설 ‘대도와 보물’ ‘방화살인사건’을 써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때 12살짜리 나 또한 장비호 탐정에 밤새워 열광하는 애독자였다. 춘해는 초등학생에서 대학생, 일반인, 가정주부들까지 애독한 그야말로 국민적 작가였다. 일본 주오대학 독문과 출신의 한국 신문학 개척자 춘해 방인근. 그러나 오늘날 그를 아는 이 찾기 어려우니 인생의 무상함이런가.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당대의 문인이셨던 방인근 선생은 국내 문학 발전을 위해 가산을 쓰신후 참 쓸쓸히 만년을 보내시다가 돌아가셨네요.
앞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개해 보았지요.생각보다 많은 책이 있더군요.아무튼 성인용으로 완역된 책은 65년도에 나온 정음사판 5권이 처음인 것 같은데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69년도에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8권짜리 책입니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세로 읽기로 동서 문화사 창간 15주년 기념으로 나온 책이라고 하는군요.띠지에는 호화원색 무삭제 비장본이란 글이 당당히 박혀 있고 당대의 문학가인 김동리,박목월,이어령,최정희씨등이 추천사를 쓰고 있습니다. <전 8권입니다> <호화원색 무삭제 비장본이라고 쓰여있네요^^> <ㅎㅎ 표지 그림이 좀 야하군요> <뒷면은 공통> <당시 유명 문인의 추천사가 있군요> <세로 읽기에 흑백 삽화가 종종 있읍니다> <컬러 삽화는 1권에 3~4장 정도> <1969년 11월에 발간된 초판본이군요> 1965년도에 발행한 정음사본에 비해 약 4년 뒤져 나온 책입니다만 백과사전크기의 정음사본보다는 국배판이라 읽기가 훨씬 수월합니다.그리고 정음사본에 비해 책 중간 중간에 좀 야한 삽화가 들어가 있는것도 특징입니다. by caspi
아라비안 나이트 흔히 천일 야화라고 하는 작품은 보통 리처드 버트판이 정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는 리차드 버턴판 <아라비안 나이트>를 존재하게 한 작품으로, 버턴판보다 180여 년 앞서 유럽인에게 동방의 설화와 민담을 소개하였다고 하는군요. 놀라운 마법과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지는 가운데, 아랍의 문화와 관습은 물론 아랍인들의 세계관과 기질을 재미있게 전하는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가 국내 최초로 열린 책들에서 완역 출간되었는데 신비하고 풍성한 이야기와 더불어 19세기의 아름다운 삽화 2백여 점을 함께 수록하였다고 하니 관심이 가게 됩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천일야화> 국내에서도 리처드 버트판의 천일 야화는 많이 소개되었지만 주로 아동용이 많았고 성인용으로 완역되어 번역된 것은 별로 많지 않더군요.아는바대로 하나씩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57년도에 나온 학원사 아라비안 나이트-아도용> 제가 기억하는 아라비안 나이트중 제일 오래된 것은 백과서전 크기의 세로 읽기로 된 5권(1965년/정음사)짜리인데 이거 예전에는 헌책방에서 가끔씩 보였는데 이제는 전혀 볼수가 없네요. 그 다음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동서문화사 아라비안 나이트(1969년)입니다. 그외도 좀 야한 삽화를 그려놓은 성인 애장본 아라비안 나이트(민중서원 1995)란 8권짜리 책이 있는데 이건 헌책방에서도 가끔은 볼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명문당에서 나온 아라비안 나이트(1995)도 있읍니다. 그리고 절판됬는지 전혀 사진이 없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하일지 아라비안 나이트도 있군요. 현재 완역된 아라비안 나이트는 열린책들(2010),범우사(1992),시대의 창(2006),인화(2005)등이 있습니다.그중 제일 잘 알려진 것이 범우사 판본이네요. ㅎㅎ 생각보단 많이 번역되진 않았군요.아마도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서 그랬을거라고 생각됩니다.대신 축약된 아동용 책은 무척 많네요. 다들 아라비안 나이트 옛 생각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읽어들 보세요. by caspi
일전에 이벤트로 받은 테트 창 싸인본입니다. 책이 양장본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반 양장본이군요.행책의 작가시리즈는 모두 3권인데 특징이 초판은 양장,재판은 반 양장이라 서가에 진열하기 참 애매합니다. 저기 파란 포스트 잇 보이시지요.싸인 자리라고 친절하게 표시한 부분입니다. 오우~ 테드창 싸인이 보입니다.근데 싸인이 넘 작지요.저는 보통 싸인하면 큼직하게 하는줄 알았는데 이거 너무 작아 자칫하며 노치고 지나갈수도 있군요. 테드 창의 사인은, 개인적으로 사인 받은 분들은 같이 써달라고 요청한 문구와 함께 날짜와 사인을 같이 적어주었지만, 이벤트용으로 미리 받은 사인본은 특별히 적을 문구가 없어서 그냥 친필 사인만 조그맣게 들어갔고 안 그래도 사인이 너무 작아 찾기 어려우실 듯하여 일일이 포스트잇 붙여서 보내드렸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더군요. 작가의 친필 싸인이라 ㅎㅎ 아무튼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by caspi
아아 오전 1시 30분 알라딘 만우절 이벤트 정말 골때린다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