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이후로 여기에 글을 한 자도 못 올렸음을...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물론 들어와서 책구경도 하고 다른 분들 서재도 보고 했었는데..내가 내 얘기를 올릴 여유는 없었나 보다...보다?

 

그동안 뭐 했지? 되짚어보니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일도 없는데 그저 바빴다. 회사일이 좀 바빴고 저녁마다 오지랖넓은 인생 뒤처리 하느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대느라 바빴다. 그런데 딱히 뭘 했다 라고 말하기는 뭣한 세월이었나보다. 머릿 속이 텅텅 빈 느낌? 에궁.

 

책도 많이 못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있다가 밤에 들어와 책 펴놓고 그대로 잠든 게 여러 날이었던 것 같다. 일어나보니 새벽이고 전깃불도 켜진 채고 나의 책은 구겨져서 내 팔 밑에 놓여 있다거나 뭐 그런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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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 중의 압권은 이거다. 제목도 재미나다. <먹고, 쏘고, 튄다>. 린 트러스의 말하자면, 문장부호에 대한 책이다. 문장부호? 그러니까 우리가 영어에서 흔히 쓰는 쉼표(comma), 어포스트라피, 마침표(period), 세미콜론(semicolon), 콜론(colon) 등에 대한 책이다. 이런 책도 있었어? 라고 말하면 무지하게 섭섭하다. 이 책은 영국에서 완전 베스트셀러였으니까. 도대체가 문장부호에 대한 책이,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문법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이해불가이겠지만, 일단 읽어보면 아하!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우선 번역, 훌륭하다. 서울대 영문학과 장경렬교수의 번역과 주석은 압권이다. 그리고 내용도 영국 사람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번뜩인다. 문장부호계의 닉혼비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제목에 대한 우화도 훌륭하다. 팬더 한 마리가 카페에 들어와, 샌드위치를 시켜 먹고 나서는 총을 꺼내 허공에다 대고 두 방을 쏘고 나가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웨이터가 말했다.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팬더가 야생동물 안내책자를 품에서 짠~ 꺼내어 던지면서 말했다. 나는 팬더인데, 책자에 뭐라고 설명되어 있는 지 보시오.

 

"팬더, 검은색과 흰색의 털로 덮인 곰같이 생긴 거대한 몸집의 포유동물. 중국이 원산지. 먹고, 쏘고, 튄다 (Eats, shoots and leaves)"

 

웨이터는 금새 이유를 알게 되었다. 쉼표가 잘못 들어간 거다. Eats shoots and leaves (죽순과 잎을 먹는다)에서 쉼표를 넣는 바람에 팬더가 그런 생쑈를 하게 되었더라는 거지.

 

이 얘기가 어찌나 웃기던지. 이런 류의 내용이 책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다. 반 정도 읽었는데 추천이다. 문장부호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재미있게 그러나 담을 내용 다 담아서 펴낸 책이 몇 권이나 될라나 싶다. 아니 이거 하나 유일무이하다고 본다. 우리가,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장부호를 아무데나 찍거나 아무렇게나 생략하는 건 영어권이든 한국어권이든 비슷한 모양이다. 글을 이해하기 쉬우라고 찍는 문장부호로 인해 오히려 오독을 유도하는 이 다양한 사례라니.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더더욱 감칠맛을 느끼며 보고 있다.

함께 보고 있는 책은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이다. 이희수 교수의 이름을 굳이 넣은 이유는, 이 책이 다른 사람이 아닌 전문가 이희수 교수의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다. 우리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무례한 과소평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인류 문명의 대부분에서 번성했으며 지금도 그 영향력이 확고한 이슬람권의 문화를, 우리는 듣는 순간 9.11 테러부터 떠올리도록 세뇌당해있으니까. 이슬람 문화를 연구한 저자로서는 애석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그래서인지 어떻게든 'fact'를 전달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글 곳곳에서 절렬하게 배여나고 있다. 그래도 지루하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책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 하기 위해서 고른 책이고 특히나 미국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적대감을 가지게 되는 나라들, 혹은 문화에 대해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주말이던가. 너무 지쳐서 드러누워 보겠다고 고른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마이클 코넬리의 책은 하루 정도면 다 본다. 그것은 나의 독서력이 왕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해리 보슈와 테리 메개일랩이 동시에 등장하는 맛이 있다. 그러니까 마이클 코넬리가 만들어낸 두 인물이 같이 나와서 이야기를 꾸려간다는 것이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마지막 몇 장은 아찔할 정도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더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이 쯤에서 스톱. 살인사건은 한번만 일어나고 대부분이 법정 장면이라는 것도 다른 해리 보슈 시리즈와는 다른 류의 느낌이다.

 

마이클 코넬리는,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작가 중의 하나이다. 도대체가 어떤 뇌구조를 가졌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인지. 작품 하나하나가 실망감을 주는 적이 없음에 심히 놀라와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시리즈물들은 뒤로 갈수록 그 힘이 빠지기 일쑤고 중간 정도에서는 권태기도 보이게 마련인데. 현재까지는 대부분이 좋은 감정으로 마지막장을 덮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자꾸자꾸 번역되어 나오세요..라는 생각만을 가지게 한다. 이 시리즈는 그래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중간에 그만두겠다는 이야기가 안 나오는 걸 보면.

 

그에 반해 우리의 메그레 시리즈.

 

여기까지 나오시고 그 이후 작품들은 선별해서 내겠다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라있다니. 급좌절 모드다. 아껴서 조금씩 읽겠다고 했으나 이제 3권 정도 만 더 읽으면 다 읽게 되니 말이다. 역시나 시리즈로 승부를 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메그레 시리즈처럼 약간은 일상적이고 약간은 담담한 소설 시리즈라면 더더욱.

 

그러나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메그레 시리즈의 책들을 잡고 커피 한잔 혹은 맥주 한캔 들이키는 (와인은 그러고보니 한번도 먹은 적이 없구나. 곧 시도해봐야겠다) 그 평온하면서도 즐거우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그런 것은 아무 책이나 붙잡고 앉아서 뭘 먹어댄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제발, 출판사에서 가급적 많은 책들을 선별해서 연도순으로 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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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기는 많지만 여기까지. 주말 내내 쏘다니느라 쉬지를 못했더니 내일 회사로 나가는 길이 지옥행처럼 끔찍하게 여겨지는 일요일 밤이니 말이다. 좀 드러누워 쉬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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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27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고 쏘고 튄다, 저도 재밌게 읽었는데, 저 책은 가질고 있을만 해도 가지고 있긴 한데,,참 사람이 한번 읽은 책은 왜 이리 다시 안 보게 되는지 말입니다.

메그레 시리즈,두 권 전자책으로 다운 받아 읽고 그 다음부터는 이제 되었다, 라고 마침표 찍었는데,,저는 매그레란 인물에게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구요.

비연 2012-02-27 09:4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는 생각이..
메그레 시리즈. 별로셨나봐요. 저는 꽤 좋아하는데..ㅎㅎㅎㅎ
어쨌든 시리즈물을 처음 기획할 때는 대부분 야심찬데,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아서 참 안타까와요..

마녀고양이 2012-02-2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어쩌지...
첫줄의 책부터 딱 걸려서, 그냥 넘어가질 못 하잖아요, 버럭! ^^
먹고 쏘고 튄다, 튄다라는 제목에서 픽 웃어버렸어요... 맘에 들어요.
그리고 이슬람 관련 책도 계속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구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넬리나 할런 코벤 등의 영미권 작가에게 질렸다는 거 또는
매력을 그다지 못 느끼겠다는거..... 아니면 네권 몽땅 장바구니에 들어갈뻔한거잖아요.

비연 2012-02-27 15:51   좋아요 0 | URL
ㅋㅋ 제목 귀엽죠?^^
저는 할런 코벤은 첨부터 별로였는데 코넬리는 잘 안 질려요..ㅎ
네 권 모두...장바구니..으으. 알라딘서재에 들어오면 저도 늘 장바구니나 보관함만 빵빵해진다니까요..ㅜㅜ

꼬마요정 2012-02-2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희수 교수님의 명성에 이끌려 이슬람을 샀더랬죠... 조만간 읽어 줄 예정이구요~~^^
먹고,쏘고,튄다... 너무 귀엽고 재밌는 표현이에요~~ㅋㅋㅋㅋ
그 팬더 너무 귀여워요~~~~!!!^^
으으.. 일단 보관함에 넣었어요.. 아... 사고 싶은 책들이 자꾸 쌓여요..ㅠㅠㅠㅠ

비연 2012-02-27 15:52   좋아요 0 | URL
이슬람..읽고 있는데 재밌어요. 강의도 들어볼 생각이구요. ㅎㅎ
먹고, 쏘고, 튄다..제목만큼이나 유쾌한 책이에요. 추천!!!!!

종이달 2021-08-25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오늘 온종일 다시한번 일요일의 휴식을 맘껏 누리며 지냈다. 아 벌써 9시가 넘었는가. 일요일의 시계는 왜 이리 빨리 도는가. 요즘은 주말에도 책 진도가 슥슥 나가주질 않는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 먹고 엄마랑 수다떨다가 보면 11시쯤. 방에 들어와 커피 한잔에 책 펼쳐들고 조네마네 하다 보면 점심. 점심 먹고 다시 커피 한잔에 책 펼쳐들고 자네마네 하다 보면 저녁...흠.

 

사실 조는 시간 자는 시간이 길어져서 책을 어떻게 읽는 지도 모르게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토요일엔 뭐를 하고 뭐를 하고 일요일엔 뭐를 하고 뭐를 하고 그래 보지만, 일요일 저녁에 돌이켜보면 그저 잔 기억 밖엔 없는 걸 보면..내가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걸까 너무 느슨하게 사는 걸까.

 

오늘 다 읽어낸 책은 <Born to run> 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달리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보니 이건 진화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왜 마라톤을 하는 지 압니까?" 그는 브램블에게 질문했다. 달리기는 인류의 집단적 상상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우리의 상상력은 달리기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예술, 과학, 우주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혈관 내 수술 등 모든 것은 인간의 달리는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달리기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초능력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이 초능력이 있다.

 

사람의 몸은 '걷기' 보다는 '달리기'에 맞게 진화해왔다는 관점. 그리고 그 달리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인류가 '운동화'라는 걸 신고나서부터라고 한다. 사람의 발은 인체공학적으로 아치형을 이루고 따라서 가장 압력에 잘 견디게 되어 있는데 푹신한 신발을 신으면서부터 부상도 잦아지고 탈도 많아졌다는 논리이다. (나이키가 지대한 영향을 했다고 한다)

 

서구의 십대 사망 원인인 심장병, 중풍, 당뇨병, 우울증, 고혈압, 각종 암 들이 조상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도 없었다. 하지만 마법의 탄환이 한 개 있었다. 아니, 브램블의 손가락을 볼 때 두 개일 수도 있다.

"이 한 개로는 우리를 쫓아오는 전염병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는 평화의 표시로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든 다음 천천히 아래쪽으로 돌려서 허공을 가위질했다. 달리는 사람이었다.

"간단합니다. 그냥 다리를 움직이는 겁니다. 자신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걷는 것도 싫어하는 나에게 이 얘기는 청천벽력이다. 달리기가 인간의 DNA에 깊숙이 박힌 내재적인 본성이라니. 아...맨발로 달려줘야 하는가. 발바닥 아플 것 같은데..OTL.

 

그리고 멕시코 코퍼 캐니언에 사는 신비로운 타라우마라족과 미국 최고의 울트라러너들이 코퍼 캐니언의 오지 중의 오지에서 경주를 벌이는 긴 장정을 묘사하고 있다. 타라우마라족이 엄청난 거리를 너끈히 달리는 이유는 달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인데, 우리가 문명세계 속에서 많은 다른 것들을 좇다 보니 잊어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BORN TO RUN!). 이 속에서 일면 보면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많은 개성만점의 미국인들이 나온다. 맨발의 테드, 젠과 빌리, 스콧 등등등. 이들은 타라우마라족과 함께 달리면서 다시한번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함께 하는 달리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살아오는 내내 알고 있었다. 우리가 경주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스콧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타라우마라족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달리기를 즐기면서 할 때 그 고된 여정이 하나도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음을 체험한다. 아주아주 옛날의 우리 조상들처럼.

 

그 미소는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젠이 완전히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구상에 이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으며 애팔래치아 황무지 한가운데 트레일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마라톤보다 8킬로미터가량 더 달려왔는데도 발은 가볍고 경쾌했으며 눈은 반짝거렸다.

 

어쩌면, 모든 일이 그럴 지도 모른다. 즐기면서 할 때 모든 고통은 고통이 아닐 수 있는 지도. 우리가 사는 모습 자체가 그런 지도. 그래서 이들은 더욱 달리게 되는 지도 모른다.

 

 

 

 

 

 

 

 

 

웃긴 건, 나처럼 걷는 거 달리는 거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애가 달리기에 대한 책은 여러권 읽었다는 거다. 푸히히. 하루키가 마라톤 광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 (하루키는 도대체 없는 취미가 뭐란 말이냐. 야구도 좋아하고 와인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좋아하고. 부러워 미칠 지경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인지라, 그닥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책이 (이 책이 아마존 문화부문인가에서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 소중한 휴일 내내 내 손에 달려 있을 수 있었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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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12-02-0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실제로 달리기는 싫어하니까 책으로 달리신거지요?^^

비연 2012-02-06 23:02   좋아요 0 | URL
헉. 들켜버렸다..^^;;;;
그나저나, 진/우맘님의 정말정말 오랜만의 댓글을 보니..
감격해서 눈물이 찔끔~ (정말!) 자주자주 봐요~
 

 

힘든 하루였다. 출장을 갔었고 다시 회사로 들어와 늦은 시간까지 회의하고 집에 들어오니 11시 가까이 된 시간. 그럼에도 내가 뭐 하는 짓인가 라는 자괴감을 떨치지 못해 더 심란한 하루였다.

 

뭔가 정체된 느낌이 들때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곤 한다. 요즘 시도하고 있는 것은 영어 writing 이다. 말하는 것도 어렵고 듣는 것도 어렵고 읽는 것도 어렵겠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쓰기라는 생각을 한다. 하물며 외국어로 글을 쓰는 것은 산넘어 산이다. 그래서 좀 잘 써봤으면 하는 마음에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배우고 있는데..오호. 괜챦다.

 

그냥 영어 써내라고 하고 줄줄 고쳐주기나 했다면 실망했을 거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글을 쓴다는 것의 작동법이고 그에 의거하여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사고의 전환이었다. 선생님은 글쓰기의 역사와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어를 원어로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글쓰기를 진화시켜왔는가에 대해서 얘기한다. 4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강의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내가 몰랐던 (정말 무식했던) 이야기들을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줄줄줄 이야기해주시니 신기할 뿐이다. 아직 writing의 w도 시작하지 않고 있지만, 진정한 writing 강의라는 생각이 든다.

 

강의시간에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셨다. 추천받자마자 품절된 거 빼고는 냉큼 다 집어넣는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것.

 

 

월터 옹의 이 책은 진중권이 가장 참고로 한다는 책이다. 말로 이야기하고 전파하던 것에서 어떻게 문자를 이용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가. 말과 글은 무엇이 다른가. 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일부의 내용을 소개해주셨는데, 아하~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지금 내 머리맡 위에서 읽어주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ㅎ

 

 

 

 

 

 

 

 

 

 

 

 

 

 

 

 

 

 

 

 

 

 

 

 

 

 

 

 

 

 

 

 

 

 

 

 

 

번역이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다. '사회과학자의 글쓰기'는 원본을 샀는데..지금 다시 망설이고 있다. 받아놓고 보니 글자가 워낙 촘촘하고 편집구성이 옛날식이라 견디고 읽을 수 있을까 싶다. 'STYLE'은 지금 주문해놓은 상태. 이건 번역이 되어나오지 않았다. 전세계 50개국인가 15개국인가가 번역되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번역판이 없다는..ㅎㅎ;;; '논증의 탄생'은 그냥 한글로 살 생각이다. 보니까 번역이 괜챦게 된 듯 해서.

 

흠.. 지쳐서 더는 못 쓰겠으나..암튼 요즘 내 생활의 낙 중 하나가 이 강의를 듣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말이다. 뭔가 내가 지적으로 풍요로와지는 느낌을 하게 하는 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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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1-3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일은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182219 이런 책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 사이에 원서는 개정판이 나와(10판. 번역은 9판) 조금 식어 버리긴 했네요.

비연 2012-01-31 12:28   좋아요 0 | URL
와우. 번역이 있군요! 몰랐네요..감사^^
원서는 8판과 9판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카스피 2012-02-0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영어로 글쓰기까지 하신다니 넘 부럽습니당.전 영어 원서 읽기가 안된 원하는 책이 번역되길 기다리는데 국내에선 번역안되는 책이 넘 많더군요ㅜ.ㅜ

비연 2012-02-01 14:02   좋아요 0 | URL
헐...영어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거죠..ㅎㅎㅎ;;;;;;
정말 번역되는 책은 새발의 피인 듯. 다 원서로 읽기도 그렇고..
 


주말은 왜 이리 일찍 지나가는 건지. 지금이 토요일 저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헛생각 잠깐. 

어제는 학원(이 나이에까지 학원이라니...쩝쩝) 갔다가 서점 갔다가 친구 만나서 놀다가..하느라 하루를 보냈고 오늘은 오랜만에(!) 편하게 누워 책보고 자고를 하며 지냈다. 나름 알찬 주말이긴 햇군..근데 남는 건 왜 이리 씁쓸하고 허망한 느낌인지. 




오늘의 책. 주말엔 한 권 정도씩 스릴러 비스므레한 책을 읽기로 정해놓고 있다. 주중엔 바쁘기도 하고 스릴러니 추리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쟝르소설을 때마다 읽다보면 맨날 그것만 읽게 되는 것 같아서 나름의 자구책으로 정해놓은 규칙이다. 그러니까 주중엔 다른 책들 읽고 일요일 하루만 스릴러 류에 투자하자. 뭐 이런 ㅎ 


존 하트의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많이 망설이다가 고른 책이다. 완벽한 스릴러라고는 할 수 없는 책일 것이라는 느낌 때문에. 그리고 보나마나 가슴 한 쪽에 묵지근한 느낌을 주는 책이리라는 생각 때문에. 그냥 일요일엔 가볍고 즐겁고 뭐 이런 책을 보는 게 좋지 않겠어..라는 마음 한 구석의 달콤한 속삭임을 제끼고 고른 건 왠지 읽어야 할 책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이런 책은 한번 읽을 때 내리 읽고 끝내야지 자꾸 들척이면 마음만 더 쓰라리다는 경험들 때문이었다.


역시나...좋은 책이었다. 존 하트. 기억해둘만한 작가이다. 어쩌면 흔한 스토리일 지 모르겠다. 예쁜 여자아이의 실종. 그 가정의 붕괴. 아빠는 떠나고 엄마는 남아 그 짐에 허덕이며 약과 술에 의존하고 쌍둥이 오빠는 그런 인생의 무게를 혼자 꿋꿋이 버티며 여동생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 가정을 연민 비슷한 복잡한 감정으로 늘 지키고 있는 형사 헌트가 있고 그 주변에 몇 몇 다양한 캐릭터의 형사들이 존재한다. 예쁜 여자아이. 이 부분에서는 늘 소아성애자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수밖에 없고 이에 맞춰 조사를 진행하던 사람들이 부닥친 것은...


어쩌면 이 책은 용서와 화해를 얘기하고자 했는 지도 모른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파헤쳐지는 인간들 저변에 깔린 심리. 그리고 얽히고 섥히는 감정들. 인간의 추한 면들. 그 속에서 엇갈리는 의심과 회의.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우정과 사랑과 이해. 그래서 해피엔딩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이 소설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 그래도 더러운 감정보다는 잘해보아야겠다라는 작디 작은 의지의 흔적을 보여주는 지도 모르겠다. 


길고 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책을 선듯 들 수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대체로 어린아이의 죽음과 그 주변의 인간군상들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다른 책에 손이 안 가게 되곤 한다. 정말 마음이 찝찝하고 세상이 지저분해보이고... 그래서 자거나 다른 일을 하면 했지 글자를 읽고 싶은 동기는 안 생기는데... 유독 희망을 말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책. 역시 불행하고 힘들고 처절하고 쓰라린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타고난 재 속에서 작은 불씨는 발견하게 해주는 책인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선물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을 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관심사에서 많이 비껴 있는 책이다. 근데 한장 한장 읽다보니 관심이 많이 간다. 


신비의 원시부족 타라우마라족. 지구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행복한 종족일 뿐만 아니라, 가장 강인한 종족. 범죄도 없고 도둑도 없고 전쟁도 없으며 부패, 비만, 약물중독, 탐욕, 가정폭력, 아동학대, 심장병, 고혈압, 매연도 없는 사람들. 당뇨병이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며 늙지도 않아서 80세 노인도 산중턱에서 마라톤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종족. 밤새도록 파티를 즐기고도 이틀 내내 달리는 경주를 하는, 베일에 싸인 종족. 위협과 두려움을 피해 지구상의 바닥으로 깊게 들어가 사는 종족. 가장 강하면서 가장 온화하고, 혹사당한 다리는 최고의 탄력을 자랑하며, 더할 수 없이 건강하지만, 가장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무식하게 달리지만 결과는 가장 현명하며, 가장 힘들게 일하면서도 가장 재미나게 사는 사람들. 


이들이 이렇게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나가는 필자의 노정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 기대된다. 같은 다리를 가지고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은 무엇인지.... 형편없는 인간들과 그 절망을 읽고 나서인지 이 책 <본 투 런>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지난 설날에 정선 갔을 때 본 눈산이다... 정상에 곤돌라 타고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은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다왔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리고 그 위에 저렇게 하얀 덮개가 덮여져 있으면 세상은 참으로 티없이 맑은데. 내려가서 가까이 다가가 한꺼풀 아래를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추하고 힘들기도 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래서, 늘 이해하기 힘든 곳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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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설날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으흐흐. 역시나 '연휴' 라는 말의 어감이 주는 그 기쁨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 그저 일 안하고 놀기만 좋아라 하는 비연...이라고 욕먹어도 할 수 없지만, 직장 다니는 사람들 중에 휴가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걸? (끄덕끄덕) 휴가라는 걸 엄청나게 싫어라 하는 우리네 직장에서 유일하게 맘 편히 쉬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연휴'가 설날과 추석. 민족의 명절이라는데. 그날 좀 부모님도 만나고 친척들도 만나고 맛난 것도 먹고 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없는 것이지.

 

나의 경우는...이게 다 '노는' 날이니까. 그저 계획 세우기에 바쁘고.. ㅎㅎ 이번 연휴에는 물론..부모님과 동생네 가족에게 붙잡혀 강원도 여행(정선을 거쳐 춘천까지)이라는 중책을 해결해야 하지만..ㅜ (세상에. 세상에!) 그래도 저녁에는 아마도 시간이 날 것이고 따라서 난 책을 바리바리 싸갈 생각에 벌써부터 들뜨고 있다. 3박 4일. 오호홋. 뭘 볼까나.

 

 

일단 조르주 심농의 책 한권은 반드시 챙겨야지. 지금 글쎄 4권이나 밀려있지 뭔가. 적어도 한 권 정도는 읽어버리리라. 설날 즈음에 눈과 비가 온다니 (아.. 운전하기 힘들겠어 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분위기와 아주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느낌!

 

 

 

 

 

 

 

 

 


 

분위기..하니까 이 책도 고르고 싶어진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역시나 이 인간적이면서 냉정하고 열정적이면서 무미건조하고 지적이면서도 하드보일드하신 독특한 해리 보슈 형사와 함께 한다면 여행도 즐거워지리라. 이 쯤에서 누가 운전을 대신해준다면 책 읽을 시간이 더 늘어날텐데..라는 상상을 해본다..(꿈깨!) 암튼 이것도 여행가방에 홀랑 넣자.

 

 

 

 


 

 

 

책과 관련한 책들은 다 모으고 있는데 시간을 내어서 읽지를 못하고 있다. 그런 심정 있지 않은가. 이런 책들은 좀 느긋한 마음으로 읽고 싶다 뭐 이런 거. 이번에 가능할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넣어볼까 싶다. 나도 이런 책공간에 꼭 한번 쭈욱 둘러봐야지. 특히 유럽 이곳들. 리스트업해서 꼭 한번 다녀보리라. 불끈. 암튼 이 책은 이렇게 돌아다닌 결과로 실제 서점을 하고 있는 부부들의 이야기라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다.

 

 

 

 

 

 

세권이면 충분할라나. 조카가 놀아달라고 매달리고 부모님이 차 한잔 하자고 요청하고..동생 부부가 맥주라도 한 캔 하자고 하고..이렇게 있다보면 세권도 무리일라나.

 

 

 

 

 

 


 

 

 

이런 책들도 마구마구 눈에 들어오는 걸 억지로 떼놓고 있는 중이다. 다 들고 가면 엄마의 째림을 받을테고 따라서 이 중에 힘겹게 서너권 정도를 골라 가도록...하자..ㅜㅜ

 

그나저나 연휴 오기 전에 하던 일이나 잘 마무리하고 가야할텐데. 걱정이 슬며시.....되면서도 문득, 다른 분들은 연휴에 어떤 책을 읽으려고 계획하시나 궁금해지는구만...ㅎㅎ;;;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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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1-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연휴에 책 읽을 엄두는 도저히 못 해요... 잉잉

비연 2012-01-18 14:51   좋아요 0 | URL
흑흑. 시댁과 친정에 가셔야 하는 모양에요...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실 수 있기를..

다락방 2012-01-1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이 와중에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엄청 궁금해지네요. 저도 연휴가 오면 어떤 책을 읽을까 막 설레이는데, 아마도 동생네 부부랑 하룻밤을 꼬박 술을 마실것 같고, 조카랑 낮에 내내 놀아줄 것같고..그러다보면 저 역시도 책을 한권도 읽지 못하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예감이.. 후...

비연 2012-01-18 23:19   좋아요 0 | URL
흠...다락방님...저랑 비슷한 연휴를 보내실 듯..;;;;
우리 짬을 내어...책 읽을 여유를 어떻게든지 내보아요..ㅎㅎ;;

마녀고양이 2012-01-1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니까
평일에 제가 한가한 시간을 가끔 보내는 대신,
비연님은 설 연휴에 한가한 시간을 보내시니 쌤쌤이다, 당연하다 해야 하는데,
이거야 원......... 막 부러워져 버리는, 저... 조선인님에 이어 잉잉2.

비연 2012-01-18 23:19   좋아요 0 | URL
마고님..이 한가한 시간이라는 게 제 지극한 희망사항인지라..
넘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우리 마고님도 한가로운 연휴셨으면~

라로 2012-01-1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페이퍼 괜히 봤어요,,,,가뜩이나,,,아시죠???저도 부러워 죽겠어욥!!ㅠㅠㅠㅠㅠ
도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이냐고요???ㅠㅠㅠㅠㅠ

비연 2012-01-19 08:54   좋아요 0 | URL
흠...이 페이퍼가 갑자기 자랑질 페이퍼가 되어버린 느낌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