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온종일 다시한번 일요일의 휴식을 맘껏 누리며 지냈다. 아 벌써 9시가 넘었는가. 일요일의 시계는 왜 이리 빨리 도는가. 요즘은 주말에도 책 진도가 슥슥 나가주질 않는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 먹고 엄마랑 수다떨다가 보면 11시쯤. 방에 들어와 커피 한잔에 책 펼쳐들고 조네마네 하다 보면 점심. 점심 먹고 다시 커피 한잔에 책 펼쳐들고 자네마네 하다 보면 저녁...흠.

 

사실 조는 시간 자는 시간이 길어져서 책을 어떻게 읽는 지도 모르게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토요일엔 뭐를 하고 뭐를 하고 일요일엔 뭐를 하고 뭐를 하고 그래 보지만, 일요일 저녁에 돌이켜보면 그저 잔 기억 밖엔 없는 걸 보면..내가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걸까 너무 느슨하게 사는 걸까.

 

오늘 다 읽어낸 책은 <Born to run> 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달리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보니 이건 진화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왜 마라톤을 하는 지 압니까?" 그는 브램블에게 질문했다. 달리기는 인류의 집단적 상상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우리의 상상력은 달리기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예술, 과학, 우주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혈관 내 수술 등 모든 것은 인간의 달리는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달리기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초능력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이 초능력이 있다.

 

사람의 몸은 '걷기' 보다는 '달리기'에 맞게 진화해왔다는 관점. 그리고 그 달리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인류가 '운동화'라는 걸 신고나서부터라고 한다. 사람의 발은 인체공학적으로 아치형을 이루고 따라서 가장 압력에 잘 견디게 되어 있는데 푹신한 신발을 신으면서부터 부상도 잦아지고 탈도 많아졌다는 논리이다. (나이키가 지대한 영향을 했다고 한다)

 

서구의 십대 사망 원인인 심장병, 중풍, 당뇨병, 우울증, 고혈압, 각종 암 들이 조상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도 없었다. 하지만 마법의 탄환이 한 개 있었다. 아니, 브램블의 손가락을 볼 때 두 개일 수도 있다.

"이 한 개로는 우리를 쫓아오는 전염병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는 평화의 표시로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든 다음 천천히 아래쪽으로 돌려서 허공을 가위질했다. 달리는 사람이었다.

"간단합니다. 그냥 다리를 움직이는 겁니다. 자신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걷는 것도 싫어하는 나에게 이 얘기는 청천벽력이다. 달리기가 인간의 DNA에 깊숙이 박힌 내재적인 본성이라니. 아...맨발로 달려줘야 하는가. 발바닥 아플 것 같은데..OTL.

 

그리고 멕시코 코퍼 캐니언에 사는 신비로운 타라우마라족과 미국 최고의 울트라러너들이 코퍼 캐니언의 오지 중의 오지에서 경주를 벌이는 긴 장정을 묘사하고 있다. 타라우마라족이 엄청난 거리를 너끈히 달리는 이유는 달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인데, 우리가 문명세계 속에서 많은 다른 것들을 좇다 보니 잊어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BORN TO RUN!). 이 속에서 일면 보면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많은 개성만점의 미국인들이 나온다. 맨발의 테드, 젠과 빌리, 스콧 등등등. 이들은 타라우마라족과 함께 달리면서 다시한번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함께 하는 달리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살아오는 내내 알고 있었다. 우리가 경주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스콧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타라우마라족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달리기를 즐기면서 할 때 그 고된 여정이 하나도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음을 체험한다. 아주아주 옛날의 우리 조상들처럼.

 

그 미소는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젠이 완전히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구상에 이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으며 애팔래치아 황무지 한가운데 트레일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마라톤보다 8킬로미터가량 더 달려왔는데도 발은 가볍고 경쾌했으며 눈은 반짝거렸다.

 

어쩌면, 모든 일이 그럴 지도 모른다. 즐기면서 할 때 모든 고통은 고통이 아닐 수 있는 지도. 우리가 사는 모습 자체가 그런 지도. 그래서 이들은 더욱 달리게 되는 지도 모른다.

 

 

 

 

 

 

 

 

 

웃긴 건, 나처럼 걷는 거 달리는 거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애가 달리기에 대한 책은 여러권 읽었다는 거다. 푸히히. 하루키가 마라톤 광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 (하루키는 도대체 없는 취미가 뭐란 말이냐. 야구도 좋아하고 와인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좋아하고. 부러워 미칠 지경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인지라, 그닥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책이 (이 책이 아마존 문화부문인가에서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 소중한 휴일 내내 내 손에 달려 있을 수 있었는 지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우맘 2012-02-0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실제로 달리기는 싫어하니까 책으로 달리신거지요?^^

비연 2012-02-06 23:02   좋아요 0 | URL
헉. 들켜버렸다..^^;;;;
그나저나, 진/우맘님의 정말정말 오랜만의 댓글을 보니..
감격해서 눈물이 찔끔~ (정말!) 자주자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