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이후로 여기에 글을 한 자도 못 올렸음을...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물론 들어와서 책구경도 하고 다른 분들 서재도 보고 했었는데..내가 내 얘기를 올릴 여유는 없었나 보다...보다?
그동안 뭐 했지? 되짚어보니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일도 없는데 그저 바빴다. 회사일이 좀 바빴고 저녁마다 오지랖넓은 인생 뒤처리 하느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대느라 바빴다. 그런데 딱히 뭘 했다 라고 말하기는 뭣한 세월이었나보다. 머릿 속이 텅텅 빈 느낌? 에궁.
책도 많이 못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있다가 밤에 들어와 책 펴놓고 그대로 잠든 게 여러 날이었던 것 같다. 일어나보니 새벽이고 전깃불도 켜진 채고 나의 책은 구겨져서 내 팔 밑에 놓여 있다거나 뭐 그런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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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 중의 압권은 이거다. 제목도 재미나다. <먹고, 쏘고, 튄다>. 린 트러스의 말하자면, 문장부호에 대한 책이다. 문장부호? 그러니까 우리가 영어에서 흔히 쓰는 쉼표(comma), 어포스트라피, 마침표(period), 세미콜론(semicolon), 콜론(colon) 등에 대한 책이다. 이런 책도 있었어? 라고 말하면 무지하게 섭섭하다. 이 책은 영국에서 완전 베스트셀러였으니까. 도대체가 문장부호에 대한 책이,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문법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이해불가이겠지만, 일단 읽어보면 아하!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우선 번역, 훌륭하다. 서울대 영문학과 장경렬교수의 번역과 주석은 압권이다. 그리고 내용도 영국 사람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번뜩인다. 문장부호계의 닉혼비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제목에 대한 우화도 훌륭하다. 팬더 한 마리가 카페에 들어와, 샌드위치를 시켜 먹고 나서는 총을 꺼내 허공에다 대고 두 방을 쏘고 나가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웨이터가 말했다.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팬더가 야생동물 안내책자를 품에서 짠~ 꺼내어 던지면서 말했다. 나는 팬더인데, 책자에 뭐라고 설명되어 있는 지 보시오.
"팬더, 검은색과 흰색의 털로 덮인 곰같이 생긴 거대한 몸집의 포유동물. 중국이 원산지. 먹고, 쏘고, 튄다 (Eats, shoots and leaves)"
웨이터는 금새 이유를 알게 되었다. 쉼표가 잘못 들어간 거다. Eats shoots and leaves (죽순과 잎을 먹는다)에서 쉼표를 넣는 바람에 팬더가 그런 생쑈를 하게 되었더라는 거지.
이 얘기가 어찌나 웃기던지. 이런 류의 내용이 책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다. 반 정도 읽었는데 추천이다. 문장부호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재미있게 그러나 담을 내용 다 담아서 펴낸 책이 몇 권이나 될라나 싶다. 아니 이거 하나 유일무이하다고 본다. 우리가,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장부호를 아무데나 찍거나 아무렇게나 생략하는 건 영어권이든 한국어권이든 비슷한 모양이다. 글을 이해하기 쉬우라고 찍는 문장부호로 인해 오히려 오독을 유도하는 이 다양한 사례라니.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더더욱 감칠맛을 느끼며 보고 있다.
함께 보고 있는 책은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이다. 이희수 교수의 이름을 굳이 넣은 이유는, 이 책이 다른 사람이 아닌 전문가 이희수 교수의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다. 우리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무례한 과소평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인류 문명의 대부분에서 번성했으며 지금도 그 영향력이 확고한 이슬람권의 문화를, 우리는 듣는 순간 9.11 테러부터 떠올리도록 세뇌당해있으니까. 이슬람 문화를 연구한 저자로서는 애석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그래서인지 어떻게든 'fact'를 전달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글 곳곳에서 절렬하게 배여나고 있다. 그래도 지루하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책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 하기 위해서 고른 책이고 특히나 미국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적대감을 가지게 되는 나라들, 혹은 문화에 대해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주말이던가. 너무 지쳐서 드러누워 보겠다고 고른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마이클 코넬리의 책은 하루 정도면 다 본다. 그것은 나의 독서력이 왕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해리 보슈와 테리 메개일랩이 동시에 등장하는 맛이 있다. 그러니까 마이클 코넬리가 만들어낸 두 인물이 같이 나와서 이야기를 꾸려간다는 것이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마지막 몇 장은 아찔할 정도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더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이 쯤에서 스톱. 살인사건은 한번만 일어나고 대부분이 법정 장면이라는 것도 다른 해리 보슈 시리즈와는 다른 류의 느낌이다.
마이클 코넬리는,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작가 중의 하나이다. 도대체가 어떤 뇌구조를 가졌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인지. 작품 하나하나가 실망감을 주는 적이 없음에 심히 놀라와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시리즈물들은 뒤로 갈수록 그 힘이 빠지기 일쑤고 중간 정도에서는 권태기도 보이게 마련인데. 현재까지는 대부분이 좋은 감정으로 마지막장을 덮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자꾸자꾸 번역되어 나오세요..라는 생각만을 가지게 한다. 이 시리즈는 그래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중간에 그만두겠다는 이야기가 안 나오는 걸 보면.
그에 반해 우리의 메그레 시리즈.
여기까지 나오시고 그 이후 작품들은 선별해서 내겠다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라있다니. 급좌절 모드다. 아껴서 조금씩 읽겠다고 했으나 이제 3권 정도 만 더 읽으면 다 읽게 되니 말이다. 역시나 시리즈로 승부를 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메그레 시리즈처럼 약간은 일상적이고 약간은 담담한 소설 시리즈라면 더더욱.
그러나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메그레 시리즈의 책들을 잡고 커피 한잔 혹은 맥주 한캔 들이키는 (와인은 그러고보니 한번도 먹은 적이 없구나. 곧 시도해봐야겠다) 그 평온하면서도 즐거우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그런 것은 아무 책이나 붙잡고 앉아서 뭘 먹어댄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제발, 출판사에서 가급적 많은 책들을 선별해서 연도순으로 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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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기는 많지만 여기까지. 주말 내내 쏘다니느라 쉬지를 못했더니 내일 회사로 나가는 길이 지옥행처럼 끔찍하게 여겨지는 일요일 밤이니 말이다. 좀 드러누워 쉬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