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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개정판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8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꽤 오래 전에 한 매거진에서 초파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작디 작은 초파리의 영향력이 꽤나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그 때 나는 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20세기의 생물학과 유전학의 상징은 초파리이며, 초파리를 빼놓고 생물학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초파리가 어떻게 생물학의 역사를 대변하는지 이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 마틴 브룩스는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비평가로서 수많은 대중 과학서를 집필하였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8년간 초파리를 연구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손에 잡히는 유전학Get a Grip on Genetics》과 《무엇이 위대한 아이디어일까?-유전학What’ the Big Idea?-Genetics》 《극단적 조치-프랜시스 골턴의 빛과 그림자Extreme Measures-The Dark Visions and Bright Ideas of Francis Galton》 등이 있다.
유전학의 새로운 역사 -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운 만남
모건은 자신도 그 논쟁에 끼어들까 생각하다가 마개가 느슨한 병이 눈에 띄자, 손을 뻗어 그 병을 집어 들었다.
마개를 단단히 막고 나서 병을 불빛 아래롤 가져가 소인국 같은 그 안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초파리들은 일상적인 일에 열중해 있었다. 어떤 놈은 다른 놈 위에 올라타려 애쓰고 있었고, 어떤 놈들은 이미 뒤꽁무니가 서로 붙어 있었다. 모두가 몰두한 짝짓기 게임에서 벗어나 가장자리에 홀로 머무는 녀석들도 몇 마리 있었다.
모건은 초파리들이 자신들의 일상의식에 몰입한 채 어쩌면 저렇게 바깥 세상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는 병을 도로 내려놓고, 다음에 발표할 중요한 논문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오는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를 생물학계의 총아로 만든 사람이며 1910년부터 1915년까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자신의 연구팀과 함께 초파리를 수십억 마리나 번식시켰었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광란 그 자체였을지 몰라도 6년이란 기간동안 모건과 그의 연구팀은 온갖 노력 끝에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운 것이었다.
모건과 초파리의 만남은 곧 두 기회주의자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험과학에 광적으로 열중한 키가 크고 긴 턱수염을 가진 남자, 실험적인 짝짓기에 광적으로 열중한 작은 몸에 온몸이 털로 뒤덮인 동물 - 목적은 달라도 열정적이었던 이 둘의 결합은 결국 실험실에서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
역사적으로 알아야 할 부분이 있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미국 생물학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 바로 남북 전쟁이다.
남북 전쟁 이전까지의 생물학은 신학을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쟁 후에 독일의 생물학을 모범 삼아 새로운 생물학을 도입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박물학이 이전의 생물학, 즉, 신이 만든 작품들에서 에서 패턴을 찾으려는 것을 포기하려고 하자 새로운 학문으로 변하게 된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의 무대를 박물관에서 대학의 새로운 학과와 연구소로 옮기게 된 것이다.
존스홉킨스, 하버드, 시카고, 코넬 대학교와 같은 혁신적인 대학들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게 되면서 실험생물학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지만,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새로운 생물학의 발견으로 생물학에서 실험 연구가 실용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886년, 스무 살의 모건은 존스홉킨스대학교에 들어가 전통적인 박물학을 선택하였고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바다거미의 분류를 택하게 된다.
그의 연구는 무미건조하고 기술적이어도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광범위한 생물학적 견해를 가진 이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만남으로 인해 모건은 실험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박사학위를 마친 모건은 브린모어대학교의 생물학 부교수로 발령받게 되고 여기서 자크 로브와 한 팀이 되어 일하게 된다.
(자크 로브는 독일 출신의 생리학자로, 실험생물학에 탄탄한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로브의 적극적인 권유로 모건은 유럽으로 가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데 특히 해양생물학 연구소이자 전 세계 생물학자들의 메카인 동물학연구소를 방문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나폴리 동물학연구소는 모건의 실험생물학의 거대한 잠재력을 깨닫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그의 연구 경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폴리 동물학연구소에서는 온갖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스위스, 미국에서 연구자, 교수, 객원 강사, 조수, 학생 등 생각과 교육 배경이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마치 만화경이 돌아가듯이 달이 바뀔 때마다 장면이 바뀌었다. 그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생각들과 비판적 견해들의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든 깊은 영향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특히나 시간을 들여 연구한 주제는 바로 '재생'이다.
지렁이를 가지고 실험을 계속했지만 결국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다.
그렇게 1904년 여름, 그는 대학원생 제자였던 릴리언 샘프슨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여름동안 스탠퍼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를 하면서 이색적인 허니문을 보내게 된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브린모어대학교를 떠나 컬럼비아대학교로 옮겨 가기로 결정하게 된다.
학생 시절에 몰두했던 기술적인 방법을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이제는 실험과학을 열렬하게 옹호하며 자신의 연구에 헌신적이다.
무엇보다 38세 무렵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험생물학자로 인정받았으니 안 떠날 이유가 없었다.
드디어, 초파리를 만날 때가 된 것이다.
모건은 초파리 실험에 비교적 늦게 참여한 셈이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실험실에서 데뷔한 지 7년이 지난 1907년에 처음 만났으니깐.
초파리는 크게 주목받는 대상은 아니지만 꽤 믿을 만한 실험동물이었다.
당시 새 대학원생을 받는 시기어서 퍼낸더스 페인이 들어오게 되었다.
페인은 모건에게 동굴에 사는 물고기가 실명하는 쪽으로 진화하는지 조사하고 싶다고 의견을 내놓았었다.
19세기 초, 프랑스 생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는 생물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진화한다고 주장했었다.
즉, 환경변화는 눈의 필요를 없앨 수 있으니 페인이 모건에게 제안한 실험은 라마르크식 진화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될 수 있었다.
실험적으로 검증할 만한 가치는 있지만 시간과 비용의 제약으로 인해 동굴물고기를 대상으로 하는 게 마음에 걸렸던 이들은 그 대상을 초파리로 결정하게 된다.
페인은 빛은 차단시켜 49세대에 이르는 초파리를 번식시켰지만 큰 변화를 발견할 순 없었다.
그러나 모건은 실험 결과보다 방법을 훨씬 중요하게 여겨 초파리를 자신의 연구실에서 정식 실험동물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른다.
초파리는 과학계의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파리와 관련된 실험을 통해 이룬 과정과 성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 지도의 작성은 거대한 한 걸음이었다.
스터티번트, 브리지스, 멀러 그리고 모건!
모건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초파리는 멘델의 유전 이론을 염색체설과 결합하여 유전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제시했으며 초파리 번식을 유전자 지도 작성 기술로 발전시켰다.
그들 모두 새로운 유전학 분야의 개척자였다.
진화유전학의 탄생 - 초파리 실험
이전까지 보조 역할에 불과했지만 1970년대는 초파리의 전성기였다.
독일의 한 대학교 작은 분자생물학 연구실, 발생생물학자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와 에릭 위샤우스가 초파리 연구를 재개했었다.
그런데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1만 km 이상 떨어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진행하였던 행동의 유전학적 연구에서도 초파리가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이를 이끈 인물이 바로 과학자 시모어 벤저였다.
1970년대, 초파리의 대중적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인물이 바로 시모어 벤저였다.
초파리가 짝짓기에 탐닉하는 동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짝짓기에만 몰두하는 뇌가 없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초파리의 지적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훈련만 적절히 시키면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한 것이었다.
그의 실험 과정에 따르면 초파리의 기억은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된다고 한다.
세 시간 뒤에 시험을 반복하면 일부 초파리는 기억을 잃은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렇다고 장기 기억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초파리가 기억을 오래 간직하게 하려면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초파리의 기억은 신기하게도 사람의 기억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여졌다고 한다.
특히 중간에 적당한 휴식 간격을 두고 반복 훈련을 할 때 기억을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었다. 휴식 시간이 매우 중요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휴식없이 훈련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 기억은 오래 남지 않는다.
짝짓기를 둘러싼 진화 게임
초파리 생물학자 트레이시 채프먼의 초대로 기묘한 실험을 보게 되었다.
특히나 트레이시는 초파리의 성생활 연구 중 정액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과학자이다.
강한 조명이 비치는 투명한 샌드위치 포장 상자 안을 지켜보는 트레이시를 보며 그 앞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덩달아 살펴보게 된다.
상자 안, 수백 마리의 초파리가 줄지어 기어다니며 대부분의 초파리는 이미 짝을 지었는데 암컷이 앞서 가면 수컷은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
수컷의 시선은 알이 들어 불룩한 암컷의 크림색 배에 고정돼 있었다.
수컷들은 얼른 교미를 하고 싶어 안ㄷ날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암컷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질 않는 것을 보니 짝짓기를 둘러싼 양성 간의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있는 광경도 목격하게 된다.
한 수컷이 한 암컷 뒤를 따라 상자 안을 돌아다니다가 반대 방향에서 다른 암컷이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자 잠시 멈춰 선 수컷은 어느 쪽을 택할지 생각하게 된다.
마음을 정하고 방향을 바꾸려는 그 순간, 이미 두 암컷은 무리 속으로 사라지고 수컷은 텅 빈 플라스틱 조각 위에 홀로 남는다.
트레이시의 이 모든 실험은 초파리 성생활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정액의 이미지가 크게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단순히 정자를 운반하는 무해한 매개 물질이 아닌 초파리의 정액은 끝없는 짝짓기 전쟁에서 사악한 화학 무기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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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며 한낱 작은 생물일지라도 그들도 마찬가지로 다 계획이 있음을 깨우칠 수 있었다.
흘리듯이 봤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초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한 매거진에서 본 기억이 있다.
해외잡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타이틀 위주로만 스윽 보고선 제대로 본문을 읽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책을 보고 나니 초파리가 생물학과 깊은 연관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던 부분인지라, 과학이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고 자세히 보지 않았던 한때의 무지했던 나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지나가고 날아다니는 벌레에도 온몸에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무서워하지만 쏙쏙 파헤치며 이야기 하나하나 읽다보면 참 신비롭게 느껴지니 아이러니하다.
크게 어려울 것 없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생물학에 관심있어 하는 학생들에게도 꼭 추천해주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