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 - 서른둘, 나의 빌어먹을 유방암 이야기 삶과 이야기 3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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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과연 침착함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을까?


주기적으로 대학병원에 갈 때면 참 아픈 사람들을 많이 본다.

병원에 들어가는 정문이 응급실과 붙어있어서 한번씩은 구급차에 실려온 사람들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종종 본다.

언제 한번은 사고가 크게 났는지 급하게 두 명의 환자들이 CPR을 받으며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그런 장면들을 볼 때면 괜스레 마음이 좋질 않다.

병원에 들어갈 때면 병원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가 있다.

단순하게 치료받고 수술하러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에 암, 백혈병 등을 선고받고 눌러앉은 사람들도 있다.


『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는 저자의 유방암 투병일지를 기록한 책이다.

유방암은 여성암 1위이기도 하는데 그 원인이 다양해 젊은 여성들도 노출될 수 있다.

저자 또한 피하지 못하였다. 서른 두살의 나이에 암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으려고 했던 저자가 아니었고 평소 그녀가 가진 용기와 노력들, 긍정적인 가치관이 있었기에 이를 잘 극복해냈으며 그 기운을 전달하고자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 니콜 슈타우딩거는 독일의 한 출판사에서 남부럽잖은 연봉을 받으며 오래 일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당차게 사표를 던졌다.

이후, 자신의 장기를 살려 커뮤니케이션 강사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고 청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성공 가도의 초입에 서게 된다.

그렇게 인생의 제 2막이 오른 순간 찾아온 것이 유방암이었다. 그녀의 나이 고작 서른둘이었다.




아, 네…… 암이네요


날이 어떻게 저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막스와 함께 큰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고, 그날 밤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게 다 악몽이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결코 꿈이 아니었다. 난 암에 걸렸다. 왜 하필 나지?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가?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진료실에 들어선 저자, 의사는 그런 그녀를 보며 검사 결과 예쁜 암이라며 그녀의 손을 잡아 천장을 향해 높이 들어올리며 치료 잘 받으면 기대수명이 여기에 있을 것이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친절한 간호사의 말은 그녀의 작은 희망의 불꽃을 타오르게 했다.

"암은 저희가 치료할 수 있어요. 하지만 환자분의 마음은 어떻게 해드릴 수 없답니다. 환자분은 열심히 하세요. 암은 저희가 없애드리겠습니다. 아셨죠?"



엄마가 아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더더욱 살고 싶어진다.

저자에게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아이, 막스가 있었다. 여섯 살이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는 아니었다.

막스의 유치원에도 숨길 수는 없기에 저자는 선생님께 가서 얘기하게 된다

그 때, 유치원 원장 선생님은 그녀에게 충고한다, 막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엄마가 울 때, 눈에 뭐 들어갔다는 거짓말이 아닌  아이에게 왜 엄마가 우는지에 대해 정확히 말해야 한다고.

이후, 막스는 매일같이 엄마에게 달려와 가슴이 어떤지 물었다고 한다.



쇼트커트


화학 요법을 시작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머리가 빠진다고 한다.

2년 동안 투자했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 머리는 이제 잘라야 한다.

"왕창 잘라주세요."

미용사는 자신의 엄마 또한 유방암 진단을 받아 양쪽 가슴을 다 절제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나았다며 그녀를 위로했다.



'전이'라는 두려움


"전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99퍼센트입니다."

이미 걸린 암이면 완치만을 목표로 달려 나가면 된다.

암 환자들이 극도로 두려워하고 자신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전이'와 '재발'이다.

저자 또한 병을 앓고 있으면서 전이가 될까싶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한다.

검사 결과, 다행히 전이된 것 없이 이전 진단 그대로이기에 10키로 무게의 짐을 부린 듯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주 수술까지 푹 쉴 것을 다짐한다.




지금까지 짤막하게 써낸 줄거리는 그녀가 암 선고 받았을 때부터의 초반 심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후 그녀가 투병 생활을 하며 겪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여느 암 환자들의 일상을 볼 수 있어 그들의 아픔을 다 헤아릴 순 없어도 그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문득, 이 책을 읽고나니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 중 【풀빵엄마】 편이 자연스레 생각났다.

언제나 엄마를 위하는 마음이 깊은, 똑부러지고 예쁜 은서와 그저 해맑고, 웃음이 참 예쁜 홍연이.

소아마비로 인해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위해 엄마 최정미씨는 언제나처럼 힘을 내어 풀빵을 팔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런 그녀에게 위암 2기라는 판정이 내려지고 그 투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마음 아프게도 돌아가셨다.

그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단편적인 부분만 방송에 나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몸에 혹이 생겼다해도, 그 혹이 암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간단하게 수술로만 제거했으면 좋겠는데, 일부는 수술도 받고 항암치료도 힘겹게 받아야 하니 참 마음이 좋질 않다.

몇 년전, 엄마의 유방암 검사를 따라갔다가 암 가능성을 두고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봐서 모시고 다녔었다.

물론, 다행히 암은 아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고 그 때부터 미리미리 예방차원에서 암에 좋다는 건 찾아보게 되었다.

이후, 정기검진이 다가올 때면 미리 시간을 빼 항상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오는데 그 때마다 암 병동 센터에 들르게 된다.

마음이 아파 망설여지는데 작년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검사를 끝내고 엄마와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언니일 수도 있겠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분이 진료실에서 나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일순간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절로 고개가 푹 숙여졌었다.

남편으로 보이시는 분이 다가오니 여성분께서 '나 어떡해...'라는 말과 함께 눈물만 흘리셨는데 이후 엄마 차례가 와 진료실로 들어갔었다.

진료를 끝내고 나와보니 이미 가고 안 계셨는데 울먹거리는, 떨리는 그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서 맴돌았다.


이후, 책에서 볼 수 있지만 저자는 암세포에게 '카를'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모든 것을 재미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말의 무게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듯, 제목 그대로 저자는 자신에게 있어서 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행복하고 긍정적이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육체적은 물론 정신적으로까지의 아픔을 솔직하고 따뜻하게 고백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순탄하게 흘러가지도 않는 것이 인생이고 언제라도 예기치 않은 일들이 닥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미리미리 마음 곳곳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잘 다져놓는 연습을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의 나'가 '오늘의 나'를 만들 듯,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들을 되새기며 오늘 그리고 내일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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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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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날마다 짓눌리더라도 날마다 나아가고 싶다."

나를 잃지 않고 나의 삶을 살고 싶다.

한 번 미루면, 쉼없이 미루게 되고 결국 기회는 희박해진다.

저자는 이 책을 여성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언급했는데 책을 덮고나면 무슨 말인지 퍼뜩 이해가 갈 것이다.


저자, 제시 버튼은 영국의 작가 겸 배우이다. 1982년 런던에서 태어나 왕립 중앙연극원과 옥스퍼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낮에는 개인비서로 일하고 저녁에는 배우로 무대에서는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4년 첫 소설 《미니어처리스트》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다.

전세계 38개국에 수출된 이 작품은 영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이 팔리며 밀리언셀러에 등극하였다. 나아가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컨페션》은 출간 즉시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제시 버튼의 인기와 필력을 다시 한 번 단단히 증명했다.

1980년과 2017년의 런던을 오가며 홀연히 사라진 어머니의 흔적을 뒤쫓는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로 존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삶을 치열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내 더욱 주목받았다.

어린이책, 논픽션 등 다양한 영역으로 글쓰기를 확장중인 제시 버튼은 현재 런던에 살면서 네 번째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1980년 그리고 2017년


1980년 엘리스와 2017년의 로즈, 그녀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고 있는 것은 바로 코니다.



1980년, 엘리스


여러 사람 울릴 거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엘리스는 미인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엘리스는 그에 대해 말도, 행동도 한 적이 없었는데 스스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햄프스테드 히스의 계피나무 옆에서 콘스턴스 홀든을 바라보게 된다.

남성용 셔츠, 청바지와 롱코트를 입은 삼십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 여자의 진짜 이름은 코니였다.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이었다.

"난 보통 이런 거 안 해요. 당신은요?"

"뭘 안 해요?"

"이거요.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거. 길에서."

"나도 보통은 이러지 않아요."

스무 살의 엘리스와 서른 여섯살의 코니, 그녀들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끌리고 있었다.




2017년, 로즈


항상 어머니를 기다렸다.

어딘가에 있을 어머니가 언젠가는 나타나기만을 바랐지만 열네 살이 되던 해에 마음 속에서 어머니를 죽였다.

아버지는 말한다.

"네 엄마는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 동물로 변한 거야."

다리가 짧았고 너와 머리색이 같았고 긍정적이지만 까다로운 사람이었다는 것, 이것이 아버지에게서 들은 어머니의 전부였다.

하지만 로즈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움에 대해서도, 궁금증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뿐이다. 가진 적 없는 건 그리워할 수도 없어!

로즈는 남자친구 조와 함께 프랑스에서 여름 마지막 주를 보냈다.

프랑스에는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현재 아버지에게는 부인 클레어가 옆에 있었고 작은 시골에서 여생을 보낼거라 했다.

로즈는 아버지와 문자 메시지로만 연락을 취했었기에 이번 여행은 중요하다고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가 로즈에게 페이퍼백 두 권을 내려놓는다. 《밀랍 심장》 그리고 《초록 토끼》였다.

그리곤 주먹을 쥐며 말을 꺼냈다.

"네 엄마와 콘스턴스…… 둘은 사귀는 사이였어."

"엄마가요?"

"엄마가 이 여자랑 사귀었다고요?"

"그래."

"엄마가 레즈비언이었어요?"

"글쎄다, 로지. 그럴 수도 있고. 한동안 둘은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널 낳았으니 내가…… 장담할 수는 없구나."

"그럼 양성애자였어요?"

"그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로즈는 엄마인 엘리스를 유일하게 아는 여자인 코니를 찾으러 간다.

만나겠다는 일념 하에 신분을 위자하면서까지 그의 타이피스트로 일하게 된 로즈는 어느새 엘리스와 꼭 닮아 있었다.




엘리스는 코니의 전부가 되고 싶었다.

코니가 미국으로 가느 순간에도 엘리스는 동행했다.

하지만 엘리스는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채워주지 못하는 코니에게 점점 멀어져 갔다.

(결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지만) 그리움은 해소되지 못했고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확실히 느꼈던 것은, 로즈는 엘리스의 딸이 맞다, 맞았다.

스스로 내린 결정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에서 느낀 새로움과 여러 감정들을 볼 때 말이다.

만나지 못했지만 연결되어 있었고, 전부는 아니지만 결국은 일부였다.


여자는 여기에 침착하게 대처해야 하며, 계속 일하고 먹고 자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엘리스에겐 이 상황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세상이 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엘리스에게 알려주는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다산하는 여자를 원하는데, 하늘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내려서 방해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진통제도, 소독 장갑도, 부드러운 베개도, 멍하니 볼 텔레비전도 없이) 앞서 살았던 여자들을 생각했다.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자신이 겪는 일을 그 여자들도 겪었을 텐데, 사회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누군들 이상해지지 않았을까.


여자가 시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어리석다는 말을 종종 한다. 여자의 몸은 다른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자녀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좋은 때란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나쁜 때가 있을 수 있다는 말로 받아치겠다. 자기 몸도 자기 삶도 아닐 때 사람들은 쉽게 일반화한다.


결혼 그리고 출산, 육아를 통해 얻는 것도 있지만 분명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여자 뿐만 아니라 남자도 마찬가지다.

(책에서는 여자에게 초점이 맞춰졌기에 여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큰 변화 중 하나이다.

임신을 통해 몸의 변화도 겪어야 하며 출산의 고통도 홀로 감내해야 한다.

출산의 고통도 잠시, 병원에서 퇴원해 아이를 집에 데려오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수유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며 쉽사리 잠들지 않는 아이일 경우에는 어르고 달래야 하니 푹 자는 건 절대 꿈꿀 수도 없다.

새벽에 문득 깨어 있는 아이를 어르고 달랠 때, 몇 날 몇 일 잠도 제대로 자질 못하니 대부분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품기도 한다.

OO의 엄마(아빠)로 살다보면, 나의 삶이 '나'가 중심이 아닌 자식을 위해 사는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다시 태어나면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아줘야지 하지만 그래도 부모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결국, 이 말은 결국 이것 또한 자식을 위해 사는 삶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삶이기도 한 것이다. 

선택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선택한 삶이니 이 또한 나의 삶인 것이다. 책에서 엘리스, 로지 모두 마찬가지다.

선택에 따른 책임감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분명 있지만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덧붙여, 내 삶의 중심은 온전히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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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거지 부부 - 국적 초월, 나이 초월, 상식 초월, 9살 연상연하 커플의 무일푼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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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삶, 당신은 감히 꿈꿀 수 있는가!

계획되지 않은, 준비되지 않은 여행에는 굉장한 용기와 대범함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저 부부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저자, 박건우는 20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 해 모은 돈으로 노약자용 세발자전거를 끌고 노숙 여행을 했고 26살에는 태국에서 만난 일본 여인의 비듬에 반해 두 번째 만남에서 청혼, 이듬해 전 재산 27만 원을 가지고 무거운 가장이 되었다.

결혼 후, 퇴근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정직한 직장인으로 살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일을 관두고 와이프와 여행을 떠난 에피소드가 쌓여 지금은 책을 쓰고 있다.




110V와 220V의 만남


무심코 미키의 어깨를 보자 한눈에도 출처가 분명한 비듬이 도넛 위에 뿌려진 설탕 가루마냥 데커레이션 되어 있었고 그녀의 모든 손가락엔 장기간 퇴적된 듯한 검은 때가 손톱의 여백을 메우고 있었다. 보통 '이성과 약속이 잡히면 평소보다 거울 한 번 더 보는 것이 여자'라는 고정관념을 멍키 스패너로 내려찍는 이 여자. 나는 살면서 이런 장르의 여자는 처음 본 나머지 이때부터 기이한 끌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연이 운명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이들 부부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태국의 오래된 게스트 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저자와 미키(저자의 와이프)는 처음 마주쳤을 때 찌릿함은 없었지만 둘에게서 어색함은 없어보였다.

태국을 10년 가까이 왔다갔다한 미키에게 일일 가이드를 부탁하게 되었고 그렇게 둘의 첫 데이트 장소는 시체박물관이었다.

저자는 이미 첫 만남부터 미키에게 마음을 빼앗겼었고 점점 '운명의 짝'임을 직감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미키, 한국 비자 원해?

응! 파쿠, 너는 일본 비자 원해?

응! 그럼…… 결혼할까?

응!!!

장난스러운 대화 속, 그들은 서로를 이미 배우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깐.




결혼 통보는 공공장소에서


부모님께 선뜻 결혼한다는 소리를 못했던 저자는 결국 결혼을 허락이 아닌 통보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아빠와 누나를 롯데월드 지하 식당으로 불러 사진 한 장을 올려놓고 결혼한다고 통보하게 된다!

인정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지 혹은 남남이 될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는 저자에게 아버지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는다.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

미키가 한국에 도착해 3개월 만에 만난 상봉의 기쁨도 잠시 미키와 저자의 아버지의 첫 만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감과 적막감이 도는 첫 만남에서 저자의 아버지는 미키에게 물었다.

"장래에 나를 모시고 살 수 있겠느냐?

"싫은데요."

"......"

"둘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당차게 자기 의견을 피력한 미키는 이내 분위깅 부담을 느꼈던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순간 흠칫했겠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은 아버지께서 미키를 자식보다 더 살뜰히 챙기며 고마워한다고 한다.




말 한 마디에 되찾은 자아


배낭여행,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 여행, 서바이벌, 카우치 서핑 등.


저자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 중 하나는 분명 하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한 단어로 인해 자아를 되찾게 된다.

"우리…… 여행 갈까?"

"무슨 여행? 신혼여행?"

"어……? 그래! 그거! 신혼여행! 우리 신혼여행 가자!"

미키의 일도 계약 기간이 끝나가고 저자 또한 어학원 학기와 번역 할당량 모두 끝나가고 있었기에 마침 타이밍도 좋았다.

여행 경비 충당 목적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취득하고 호주 외에 적은 돈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나라를 알아보다 대만,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호주, 인도네시아 티켓을 한꺼번에 예약하면서 신혼여행은 이내 배낭여행이 되어버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뜨는 순간, 나는 잠시나마 속해 있던 일본의 모습이 위성 지도마냥 작아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와 함께 구름 위에 떠 있는 미키를 보며 비행기만치 들뜬 마음으로 결혼 후 첫 여정의 설렘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스리랑카, 호주, 인도네시아 등 곳곳을 누비게 된다.


우리는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예언가도 아니라서 막연한 미래를 예측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린 앞으로도 머릿속의 '번뜩임과 끌림'을 생생히 안은 채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거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저자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도전적이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말그대로, 여기저기 부딪혀 보는 배낭여행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는데 대략 틀을 잡고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마 도전할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래서 배낭 하나 탁 들고 떠나는 사람들 보면 그 용기가 부럽고 감탄스럽다.

앞서 말했듯이, 굉장한 용기와 대범함이 전제적으로 깔려 있어야 이들 부부가 택했던 여행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들 부부의 합이 잘 맞았기에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성격 면에서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했던 부부였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은 당분간 꿈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시아인 혐오 범죄도 여기에 한몫 더해 아마도 코로나가 잠식된 이후에도 당분간은 이전처럼 여행가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책이 있지 않은가!

파리에서, 런던에서 볼 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 곳곳을 책을 통해 구경할 수 있다. 덤으로 공부도 되고 말이다.

어디든 갈 수 있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영국이든, 크로아티아든!

세계 곳곳을 오로지 책 한 권을 통해 마음껏 누빌 수 있으니, 지금은 직접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잠시 접고 이렇게 책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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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계, 여름을 노래하다 당시 사계
삼호고전연구회 옮김 / 수류화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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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지난 번 봄에 이어 여름을 읽었다.


오늘은 덜 내리쬐었지만 어제는 쩅쨍 내려쬐는 햇빛이 금세 세상을 달구는 통에 꼭 봄이 아니라 여름인 줄 알았다.

봄과 가을은 항상 짧아 아쉽기만 한데 어째 가면 갈수록 더 짧아지는 것만 같다.

지난 가을에 트렌치코트도 거의 입지도 못하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었으니깐.

이번 봄에도 얇은 자켓을 마음껏 입기도 전에 여름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다.


저자, 강민우, 권민균, 김자림, 서진희, 차영익은 삼호고전연구회로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졸업생이 주축이 되어 2010년부터 중국 고전을 현대인의 독법에 맞게 번역하고 그 의미를 공부하는 모임이다.




석어호에서 취해 노래하다 石魚湖上醉歌 _원결 元結


석어호는

마치 동정호에

여름물이 불어 군산이 푸른 것 같네

골짜기는 술잔 삼고

호수물은 술연못 삼으니

많은 술꾼들 모래섬에 둘러앉았네

사나운 바람 몇 날 이어지고 큰 물결 일어나도

술배를 막을 수 없네

내 긴 술잔 들고 파구산에 앉아

주위 객들에게 술을 따라 근심을 씻게 하네


石魚湖, 似洞庭, 夏水欲滿君山青. 山為樽, 水為沼, 酒徒歷歷坐洲島.

長風連日作大浪, 不能廢人運酒舫. 我持長瓢坐巴丘, 酌飲四座以散愁.



낙양 사람인 원결은 천보 12년에 진사과에 급제하고 안사의 난 때 강남으로 피난을 갔다.

이 때, 사사명의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였으며 정치현실과 백성들의 고통을 반영한 시가 많다.


石魚湖(석어호), 似洞庭(사동정), 夏水欲滿君山青(하수욕만군산청). 山為樽(산위준), 水為沼(수위소), 酒徒歷歷坐洲島(주도력력좌주도).

長風連日作大浪(장풍련일작대랑), 不能廢人運酒舫(불능폐인운주방). 我持長瓢坐巴丘(아지장표좌파구), 酌飲四座以散愁(작음사좌이산수).


만년에 도주자사로 있을 때 지은 시로, 원결은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문을 많이 지었다고 알려진다.

원결의 특징 중 하나가 근체시를 거의 쓰지 않고 주로 오언고시를 쓰며 질박하고 필력이 굳세다는 점인데 여기서 근체시는 한시의 일종으로 외형률이 엄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를 보면 과장법과 상상력을 동원했음을 알 수 있는데, 몇 자 밖에 되지 않는 연못을 광대한 동정호로 바꾼 점 그리고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을 풍류주객으로 표현한 점에서 엿볼 수 있다.

그의 표현력을 보면 단순히 범상한 자연을 아름다운 인문자연으로 바꾸어놓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여름밤의 노래 夏夜歎 _두보 杜甫


길고 긴 한낮 해 질 줄 모르고

찌는 듯한 더위 내 마음까지 태우네.

어떻게 만리 부는 바람을 얻어

내 옷 시원하게 펄럭이게 할까

아득한 하늘에 밝은 달이 뜨고

우거진 숲 속으로 희미한 달빛 비치네

한여름 밤 짧기도 하여

창을 열어 바깥 바람 들이네

밝은 달빛 한 가닥 비추니

밤벌레들 날개 펴고 날아다니네

세상 만물은 크건 작건

편안하려고 하는 것이 본 모습이라네

생각건대, 긴 창을 맨 병사들

한해 다가도록 변경을 지킨다네

어찌하면 한번 더위를 식힐 수 있을까

무더위에 괴로워하면서도 서로 바라보기만 한다네

밤 새워 순라 돌며 조두 두드리니

시끄러운 소리 사방으로 퍼지네

청색 자색 관복을 몸에 걸치더라도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감만 못하리

성 북쪽에 구슬픈 호가 소리 들리니

두루미는 소리치며 날개 펴고 빙빙 도네

게다가 또 더위에 지쳤으니

간절히 태평 시절 바라네


永日不可暮, 炎蒸毒我腸.

安得萬里風, 飄颻吹我裳.

昊天出華月, 茂林延疎光.

仲夏苦夜短, 開軒納微涼.

虛明見纖毫, 羽蟲亦飛揚.

物情無巨細, 自適固其常.

念彼荷戈士, 窮年守邊疆.

何由一洗濯, 執熱互相望.

竟夕擊刁斗, 喧聲連萬方.

靑紫雖被體, 不如早還鄕.

北城悲笳發, 鸛鶴號且翔.

況復煩促倦, 激烈思時康.



현대의 신유학자 마일부는 이렇게 평한다.

"두시 <여름 밤의 노래>의 뛰어난 점은 '밝은 달빛 한 가닥 비추니 밤벌레들 날개 펴고 날아다니네. 세상 만물은 크건 작건 편안하려고 하는 것이 본 모습이라네.' 네 구절에 있다. 사물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다. 아래 부분은 긴 창을 둘러멘 병사들의 노고를 흥기시켰으니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세하게 읽어보면 곱고 낭랑한 음조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당시와 송시의 차이점이다."


永日不可暮(영일부가모), 炎蒸毒我腸(염증독아장).

安得萬里風(안득만리풍), 飄颻吹我裳(표요취아상).

昊天出華月(호천출화월), 茂林延疎光(무림연소광).

仲夏苦夜短(중하고야단), 開軒納微涼(개헌납미량).

虛明見纖毫(허명견섬호), 羽蟲亦飛揚(우충역비양).

物情無巨細(물정무거세), 自適固其常(자적고기상)

念彼荷戈士(념피하과사), 窮年守邊疆(궁년수변강).

何由一洗濯(하유일세탁), 執熱互相望(집열호상망).

竟夕擊刁斗(경석격조두), 喧聲連萬方(훤성련만방).

靑紫雖被體(청자수피체), 不如早還鄕(부여조환향).

北城悲笳發(배성비가발), 鸛鶴號且翔(관학호차상).

況復煩促倦(황복번촉권), 激烈思時康(격렬사시강).


夏夜歎, 글자 그대로 여름 밤의 탄식이다.

푹 푹 찌는 듯한 여름을 잘 표현한 시로, 더위에 대한 느낌을 병사에게 확장시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대부분 관심이 없지 않는 이상 고전시는 학창시절에 접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나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들의 시집만 자주 접할 뿐 따로 중국 한시는 접한 기억이 거의 없다.

당시는 말그대로 중국 당나라의 시를 의미한다. 당나라는 시의 나라로 불렸고 그 당시 시인들은 시를 통해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다섯 글자, 일곱 글자를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

당시를 읽다보면 자연과 매순간 함께 한 그들이기에 계절 또한 그들의 감정에 섬세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구나를 느꼈다.


어제는 오랜만에 남동생과 데이트 겸 산책을 했는데 이렇게 날씨가 쨍쨍한 줄 전혀 몰랐다.

동생은 근래 들어 푹 푹 찌는 날씨라며 커피와 에이드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벌써 반팔 입고도 더워하는 사람들 보니 봄을 만끽할 새도 없이 금방 여름이 오겠구나 싶었다.

푹 푹 찌는 날씨는 둘째치고 개인적으로 여름 날씨는 습해서 싫다. 꿉꿉함과 습함 자체를 싫어하는데 이번 여름은 또 얼마나 습할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장마는 심하지 않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오늘, 쨍쨍한 날씨와 달리 눈물 나는 하루였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조언도, 위로도 받으며 몽땅 흡수했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어서,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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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계, 봄을 노래하다 당시 사계
삼호고전연구회 옮김 / 수류화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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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약한 빗줄기가 내리고 쌀쌀하면서도 볕은 따뜻하다.

특히, 황사가 하늘을 덮은 것 보니 분명 봄이다.

꽃을 만질 때 라넌큘러스를 많이 들여올 때면 이미 봄이 왔음을 느끼는데, 이제 라넌큘러스가 가고 작약의 시기가 온 것을 보니 여름도 성큼 다가오겠구나 싶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렇게 한 계절이 찾아오면 그 시기에 맞는 시들이 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번 봄에 새롭게 읽은 시는 바로 '당시'이다.


저자, 강민우, 권민균, 김자림, 서진희, 차영익은 삼호고전연구회로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졸업생이 주축이 되어 2010년부터 중국 고전을 현대인의 독법에 맞게 번역하고 그 의미를 공부하는 모임이다.




絕句 절구 _두보 杜甫


길어진 해에 강과 산은 아름답고

봄바람에 꽃과 풀은 향기롭네.

언 땅 녹으니 제비 날아 다니고

따스한 모래밭에 원앙 잠들었네.


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

泥融飛燕子,  沙煖睡鴛鴦.



처음부터 모르는 시가 나왔으면 분명 어려움도 없지않아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첫 시에서 아는 시가 나와 순간적인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마 한시를 접해봤다면 두보의 절구는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 불리는 두보는 '시성'이라고 불린다.

사회성을 반영한 그의 시는 뛰어난 문장력을 뽐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시를 잘 지었지만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해 방랑하며 지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의 시에서 사회 현실에 관련된 감정, 인간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묻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遲日江山麗 (지일강산려), 春風花草香 (춘풍화초향).

泥融飛燕子 (니융비연자), 沙煖睡鴛鴦,(사난수원앙).


절구는 당시 두보가 온갖 곤경을 겪고서 완화계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지은 5언 절구 두 수 가운데 첫 번째 수이다.

이 때, 심리적 안정감을 찾은 두보이기에 그가 보는 자연사물에 대해 느끼는 희열감도 남다르다.

전체 시는 대구와 경물묘사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했지만 조탁한 흔적이 없어 독특한 풍격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를 읽을 때는 각각의 경물을 통해 행간에 녹아있는 작자의 감정을 읽어낸다면 읽는 맛이 두배가 될 것이라 저자는 덧붙인다.



春思 그리움 _이백 李白


연 땅 풀은 아직 연푸른데

진 땅 뽕나무는 이미 녹색가지 드리웠네.

그대 돌아올 날 생각하는 날은

첩의 애간장 끊어지는 때.

봄바람은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비단 휘장으로 불어오나?


燕草如碧絲, 秦桑低綠枝

當君懷歸日, 是妾斷腸時.

春風不相識, 何事入羅幃.



이백은 당나라의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으로 시선이라 불리며 두보와 함께 '이두'라고 병칭된다.

앞서 소개했듯이, 두보의 시는 세상에 집착한 유교적 현실주의시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에 반해 이백은 술을 통해 세상을 초월하는 신선의 경지를 노래했다고 한다.

또한, 두보는 수정의 수정을 거듭해 정밀한 시를 썼다고 하는데 이백은 그에 비해 자유롭게 시를 썼다고 한다.


燕草如碧絲 (연초여벽사), 秦桑低綠枝 (진상저록지).

當君懷歸日 (당군회귀일), 是妾斷腸時(시첩단장시).

春風不相識 (춘풍부상식), 何事入羅幃 (하사입나위).


이백이 악부 형식으로 지은 고시이다.

그에게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의 심리를 묘사한 시가 꽤 많은데 이 시도 그 중 하나이다.

봄바람 부는 어느 날, 마음 다독이며 살고 있는 여인의 가슴을 흔들어놓는다.

소식 없는 낭군 소식에 여인은 그리운 마음에 낭군이 계신 연 땅을 상상한다.

하지만 지금 있는 땅은 무성한 뽕나무 잎에 가지가 눌려 낮게 드리울 정도로 봄이 무르익었다.

그만큼 생각도 깊어지는 나날인데 봄바람은 쉼 없이 불어오니 몹쓸 봄바람이라고 할 수밖에.



아마 대부분 관심이 없지 않는 이상 고전시는 학창시절에 접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나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들의 시집만 자주 접할 뿐 따로 중국 한시는 접한 기억이 거의 없다.

당시는 말그대로 중국 당나라의 시를 의미한다. 당나라는 시의 나라로 불렸고 그 당시 시인들은 시를 통해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다섯 글자, 일곱 글자를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

당시를 읽다보면 자연과 매순간 함께 한 그들이기에 계절 또한 그들의 감정에 섬세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구나를 느꼈다.

봄만을 모은 당시를 쭉 읽다보면 참 신기하게 '봄'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특히나 이 책은 읽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되어 있어 읽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내면의 봄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은 꼭 접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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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18 0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역쉬 꽃구경은 하나님 서재방에서 ! 작약 좋아하는 1人 매년 6월이면 간송 미술관 상반기 전시전 회화전 갔었는데 ㅎㅎ 코로나가 끝이 안보이네요 하나님 건강 잘 챙기세요 하나님은 북플계 플로리스트 이쉼 ^@@^

하나의책장 2021-04-19 00:46   좋아요 2 | URL
코로나는 언제쯤 끝이 날까요? 요새 마스크 안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보는데 얼른 끝나길 바랄 뿐이에요ㅠ 정말! 글에서 만난 scott님의 이미지가 작약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제 작약 들여올 때면 scott님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04-18 0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춘사 좋아하는 시예요
너무 애절해서 가슴이 저며오죠.
당시 삼백수를 꺼내보게 되네요
이밤에 잠못들듯 ^^

하나의책장 2021-04-19 00:49   좋아요 1 | URL
우와, 저도요^^ 그레이스님도 한시 좋아하시나봐요ㅎ 주말이 순식간에 흘러갔네요. 이번 한 주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