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의 열일곱 번째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초가 타들어가고 있다.

작은 불꽃이 서두르라고 나를 향해 손짓한다. 나는 싸늘한 철제 서랍 안에 누운 블랙 아이드 수잔을 생각한다. 문지르고 또 문지르지만 아무리 샤워를 해도 그 냄새는 씻겨나가지 않는다.

행복하렴.

소원을 빌어봐.

나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집중한다.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다시 집에서 안정을 찾길 바란다.

예전의 테시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제발 기억나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눈을 감고 촛불을 불어 끈다.


저자, 줄리아 히벌린은 비평적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이다.

심리 스릴러를 다룬 두 권의 책은 15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포트워스 스타-텔레그램, 디트로이트 뉴스, 댈러스모닝 뉴스에서 일하며 언론상을 수상한 기자이기도 하다.



추리와 스릴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블랙 아이드 수잔』.

블랙 아이드 수잔은 꽃의 이름으로 한 여자에게 붙은 별칭이었다.

열 여섯살의 테사는 신원미상의 유골들과 함께 묻힌 채 발견된다.

그녀는 생각나질 않았다. 언제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왜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말이다.

테사가 발견된 공동묘지에 있던 온통 '블랙 아이드 수잔 꽃'이 있었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블랙 아이드 수잔 네 명 중 운이 좋았던 단 한 명이 바로 테사였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희생자만 존재하는, 범인 없는 미제 사건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당시 테사의 증언으로 살인범을 사형수로 체포할 수 있었다.

십칠년 후, 그녀는 십대 딸을 둔 한 주부가 되었다.

완벽하게 잊을 순 없는, 끔찍한 사건이었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바로 십칠 년전 자신의 증언으로 텍사스 사형수 감옥에 무고한 사람이 갇혀 있다는 사실.

그렇다. 그녀의 증언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집 밖에 누군가 블랙 아이드 수잔을 심어놓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십칠 년전, 희생자들과 발견되었던 그 공동묘지에 심어져 있던 그 꽃이.

테사는 법과학자, 사형수 전문 변호사와 함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기꺼이 돕고 싶지만, 어느 정도만.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일깨웠다. 내게는 보호해야 할 십 대 아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과거의 나 자신, 하나는 그 보라색 방에서 잠자는 아이.


1995년 그 날과 현재를 넘나들며 내용은 빠르게 전개된다.

읽으면서도 CSI, SVU와 같은 범죄수사물들의 에피소들이 자연스레 연상되어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까지 잡을 수 있었다.

(사실 범인을 언급하면 완벽하게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말할 순 없지만) 앞서 말했듯이 읽다보면 후반부쯤 가서는 대략 범인이 누군지 확신이 든다.

물론 소설이긴 하지만 여기에서의 핵심은 살해당한 피해자들과 살아남은 피해자인 테사 그리고 잘못된 증언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된 테렐에게 맞추면 될 것 같다.

잘못된 증언으로 인해 테렐은 졸지에 사형수가 되었는데 이와 관련해 자연스레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떠올랐다.

경찰들의 강압적인 수사로 인해 거짓자백을 하게 된 윤성여님도 피해자들 중 한 분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사실 범인은 이춘재라는 것을 진즉 알 수 있었던 부분인데, 그마저도 부정하려고 했던 당시 경, 검을 보면 참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다리가 불편했던 윤성여님이 담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이 이미 말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더 화나게 만든 것은 실종된 김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것을 숨겼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맡았던 이들은 모두 하늘의 벌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이 할 짓인가? 그들도 결국은 이춘재와 다를 바 없는 더러운 족속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성범죄, 폭행 나아가 살인까지 이러한 범죄에 연루된 피해자들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았다 해도 그 기억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것이기에 언제나 자신을 옥죄어올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주인공도 읽다보면 날카로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이는 자기방어의 일환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법은 누구나 혀를 찰 정도로 범죄자에게 매우 약하다.

죄를 지었으면 그 죄에 맞게 응당 벌을 받는 것이 사실인데 말같지도 않은 '심신미약' 등의 이유를 거론하며 수위가 약해지거나 아예 받지 않는 모습을 보면 이는 일부러 범죄를 키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는데 그리고 인권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인데 사실상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에게 인권을 부여하면서까지 감싸안는 이들 또한 제정신이 아니지 않나 싶다.

오히려 법을 비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감싸안는 대한민국이 과연 살기 좋은 나라일까?

음주운전과 관련하여 사망사고가 잦은 요즘,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한마디에 심신미약으로 규정짓고 그들을 감싸안는 법이 과연 옳은 것일까?

더이상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는 법이 더 탄탄해야 한다. 가해자를 감싸안는 법이 아닌 피해자는 감싸안는 법이 되어야 한다.

특히, 근래 N번방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질렀으면 관련된 이들 모두를 단상에라도 앉혀놓고 스크린을 통해 이 사람이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려야 하며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그에 맞는 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 또한 읽은 지 꽤 되었고 서평도 진즉 썼는데 이제야 올려본다.

우리나라의 법은 할말하않이다. 워낙 부실하고 가해자에게도 인권을 부여하면서까지 보호하기 때문에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를 때가 많다.

특히, N번방 사건만 봐도 그렇다. 누가 봐도 미국으로 송환시키는 것이 맞는데 그것은 고사하고 풀어주기까지 했으니.

이쯤되면 일부 판사들도 음흉하고 어두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0-12-25 1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고 계신가요.
성탄의 기쁨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메리크리스마스,
즐거운 크리스마스 연휴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0-12-27 00:0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민지 지음, 임현성 그림 / 뜰book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용기를 내본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한 번 이상의 용기를 낸 적이 무조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작건 크건 간에 말이다.


작가, 민지는 오랜 기간 편집자 생활을 하며, 동화와 동시, 글을 써왔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경계성 성격장애로 인해 말 못할 아픈 기억들을 담아 두고 있었지만, 이번을 기회로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을 펼치게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정신질환 환자들이 마음속에 응어리 졌던 말들을 풀어내며 조금 더 당당히 세상과 마주보게 되길 바라고 있다.



우울증, 불안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 과거와는 달리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신적으로 큰 피로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여 생긴 지금 사람들의 병인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 또한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의 저자는 친구와 함께 스무 살이 된 선배들과 함께 어울려 놀다가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이니 어린 나이에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 모든 시간이 송두리째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야 꺼내보는 이야기라고 덧붙이며 아마 저자와 친구를 범했던 당시 스무 살이었던 선배들의 시간은 잘 흐르고 있을 것이라며 덧붙인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지만 저자의 손목은 줄 그은 흔적들이 선명하다고 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자가 어느정도 단단해짐이 느껴져서 조금은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담담히 써내려져간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 저자의 마음을 전부 혹은 일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용기'라는 한 면만 보고 말해보면, 이러한 고백이 저자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용기에 대해 잠깐 언급했었다.

사실, 나는 '아프다, 힘들다.'라는 말을 내뱉는 게 너무나 싫다.

나 자신이 약해보이고 약점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어렸을 때는 아프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참는 게 유일하다고 생각해 참고 참았다.

어느선가부터 아픔으로 인해 못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겨나면서 그 때 용기를 내 말했었다.

아프다고, 정말 아프다고.

어렸을 때부터 참는 게 단련이 되었는지 보통 사람들이 아프다고,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수준이면 나는 절대 아프다고 말하진 않는다.

내가 아프다고 말한다면 쓰러질 것 같은, 그 이상으로 아플 때만 내뱉는다.

가끔씩 만나는 친구들, 지인들을 아픈 시기에 볼 때면 매번 아프다고 말하는 것 같아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혹은 핑계처러머 들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쓰러질 것 같이 정말 아플 때만 아프다고 내뱉는다. 나만의 규칙이랄까.

사실, 고백하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용기가 나질 않아 털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기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며 작고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나 우울증인가봐.', '나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라는 생각 혹은 말을 하며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것이다.

사실 누구나 우울감과 불안감은 느끼며 살고 있지만 그 정도의 우울증은 '휴식' 혹은 '즐거움'을 통해 치유할 수 있지만 약까지 복용해야 할 정도에 이르면 그것이야말로 (의학적으로) '우울증', '불안증'을 겪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정신병원은 우리에게 있어서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정신질환자들을 가둬놓고 강제로 약을 복용시키며 치료하는 곳이라 생각되기에 어느 순간 치유할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허나 단순히 휴식 혹은 즐거움에 치유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정도라면 스스로 '정신의학과'에 가보는 것이 맞다.

정신의학과, 지금의 명칭이다. 요새는 꼭 약으로만 처방해주는 것이 아닌 상담 위주로도 치유해주는 곳이기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경영이 아닌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심리학으로 학사편입을 준비해 대학원까지 끝낼까도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파서 잠시 '보류'해두었지만 '하나의 책장'이 책 리뷰만 가득한 곳이 아닌 쉼터 나아가 약국같은 곳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 꼭 이뤄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이 글 또한 이미 작성한 서평인데 다시금 읽어보니 크게 수정할 것도 없거니와 당시 책을 읽고나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그대로 올려본다.

두 눈을 통해 보는 것, 두 귀를 통해 듣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해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중년도 아니고,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우스워보일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해 조금의 감사함이라도 가지며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잃고나면 그 소중함에 대해 얼마나 절절하게 생각하게 되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두 귀로 듣고, 푸른 하늘과 몽글몽글한 구름을 두 눈으로 바라볼 때, 가끔씩 나는 기본적인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심리학과 관련된 전공책부터 국내/외 에세이들을 나름 꽤 많이 접해봤는데 여러 특징 중 한 가지만 살짝 꼽자면 '조금의 감사함'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일 뿐더러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별 거 아닌 오늘의 일상에 감사함을 단 하나라도 되새겨보는 것을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랜더스의 개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13
위더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며칠 전, SNS에 올라온 한 게시물로 인해 연일 기사가 터져나오고 있다.

안내견을 훈련중이었던 퍼피워커가 롯데마트에 가게 되었고 롯데마트 직원이 장애인도 아니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어떡하냐고 고성을 지르며 문전박대했다는 것이다.

퍼피워커였던 아주머니께서는 결국 눈물을 보이셨고 훈련받고 있던 강아지는 꼬리를 쭉 내리며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당시, 현장이 어땠는지 알 순 없지만 사진 한 장으로 그 상황이 어땠는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출입을 승인하고 거부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인간의 인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강아지는 물론이고 아주머니도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으면 눈물을 다 보이셨을까?

본디 가지고 있는 인성이 얼마나 밑바닥인지 안 봐도 뻔했다.

자, 이제 출입을 승인하고 거부하는 것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이는 법적으로 승인되는 부분이다. 오히려 입장을 거부할 시에 과태료를 묻게 된다.

선천적으로 시력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후천적으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매몰차게 외면했던 그 날이 언제든지 본인에게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도 안내견을 무시한 적도, 거부한 적도 없다.

몇 년 전, 안내견과 함께 동행하고 있던 한 여자분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이전에 안내견과 관련된 다큐도 본 적이 있었고 책도 접했었던 지라 안내견에게는 손을 대지 않고 그분에게 팔짱을 끼게 한 뒤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이 안내견이 그 여자분의 발걸음에 맞춰 같이 호흡하고 있음을 그 때 처음 느껴보았다.

마지막에 인사나눌 때는 여자분께서 쓰다듬어줘도 된다고 하셔서 살짝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 감정은 뭐라 표현이 되질 않는다.

함께 걷고 호흡하는, 그들은 단짝이었다. 그저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아지길 바랄 뿐이다.


저자, 위다는 필명으로 본명은 마리아 루이스 드 라 라메다.

프랑스인 교사인 아버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독서를 좋아하고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며 자랐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잡지 등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아마 두 번 이상은 읽어봤을 정도로 이 동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치원 때, 엄마께서 사주신 애니메이션 동화전집에서 몇 번이고 읽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읽게된 것 같다.

멀리 살던 딸이 죽고 어린 손자를 데리고 오게 된 할아버지는 아이를 정성껏 키운다.

풍족함은 느껴보지도 못하고 초라하고 누추한 집에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들은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레를 끌며 고된 나날을 보내던 한 개가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넬로는 파트라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할아버지와 함께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따뜻한 보살핌으로 회복한 파트라슈는 이제 힘없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넬로와 함께 우유를 실은 수레를 끌며 생계를 이어간다.

가진 것 없는 넬로지만 그림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고 언젠가 대성당에 걸려져 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꼭 볼 것이라 다짐해본다.

그렇게 생계만 이어가는 삶을 살았던 넬로인데 마을 대지주의 딸이었던 알루아가 넬로, 파트라슈와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게 되었고 그 겨울 가난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다 알루아의 아버지인 코제씨가 돈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이 벌어졌고 그 범인은 어느새 넬로가 되어버렸다.

코제씨, 본인의 부주의로 인해 잃어버린 돈이었지만 파트라슈가 떨어뜨린 돈을 찾게 되었고 넬로는 파트라슈를 알루아에게 맡기고선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넬로는 대성당으로 향하게 된다.

쓰러져 있던 넬로에게 알루아의 집에서 뛰쳐나온 파트라슈가 다가갔다.

"여기 누워서 함께 죽자. 사람들한테는 우리가 필요 없어. 우리는 외톨이야."

울먹이며 말하는 넬로에게 파트라슈는 다가가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넬로와 파트라슈는 살아 있을 때도 함께였지만, 죽어서도 함께였다. 둘이 발견되었을 때 넬로의 팔이 파트라슈를 꽉 끌어안고 있어서 억지로 힘을 쓰지 않으면 떼어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하나의 무덤을 만들어 둘을 나란히 눕혔다. 영원히 함께 쉴 수 있도록!


앞서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지만 강아지나 고양이의 학대 사건과 관련된 기사들을 접할 때면 말문이 턱 막힌다.

방송을 보진 못했지만 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동물농장에 나온 한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심한 구타와 학대로 인해 한쪽 눈을 잃게 되고 턱이 빠지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차마 사진을 볼 용기가 없었다.

기사글 몇 줄 읽었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는데도 치료받고선 사람의 손길을 아직도 좋아한다는 글까지 읽으니 내가 다 미안할 정도였다.

도대체 그 강아지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죽도록 구타했던 것일까? 그는 인간이길 포기한 건가?

넬로와 파트라슈가 영혼의 단짝이었듯, 소설이라 해도 현실에서도 반려견은 주인만을 바라보고 산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있어도 반려견은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동화책이지만, 여전히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질 못하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0-12-06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리가 반짝거려서 참 예뻐요. 하나의책장님, 좋은주말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0-12-06 21: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0-12-07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랜다스의 개, 만화로 나올 때 좋아했어요. 감동적인 부분이 많았죠.

하나의책장 2020-12-12 14:48   좋아요 0 | URL
오오, 저도요! 책으로 다시금 읽었는데도 눈물이 나더라고요ㅠ

서니데이 2020-12-10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의책장 2020-12-12 14: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항상 행복한 날들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의사의 생각 - 이 세상 가장 솔직한 의사 이야기
양성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의사도 사람인데, 가끔씩은 그들의 심리도 궁금했다.

환자를 마주하기 전, 마주했을 때, 마주하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할까?


저자, 양성관은 사람들이 '대머리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의사로 브런치 조회수 100만의 작가이기도 하다.

배가 아파서 온 고3 학생에게 '인생에 찾아오는 다섯 번의 기회'에 대해 강연을 하고, 감기로 온 운동부 고등학생에게 운동선수의 인생을 말아먹는 '도핑'과 '승부 조작'의 위험성에 대해서 특별 강의를 늘어놓는 꼰대 겸 멘토이기도 하다.

꿈이 있다면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하루에 환자 열다섯 명을, 한 명당 30분씩 보는 것이라고 한다.



의사로서 환자와의 만남이 꼭 셜록 홈스와 왓슨의 만남과 같다는 저자는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셜록 홈스가 된다고 한다.

직업상 사람을 마주하는 직업이기에, 의사로서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다고 한다.

실제 응급실에 몇 번 가게 되면서 경험했던 일을 살짝 풀어보자면, 옆 침상에 한 아이가 실려왔었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울부짖어서 다음 날 병원가기에는 늦을 것 같아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데려왔다고 의사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그렇게 검사를 받고나서 의사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아이 엄마를 불렀다.

그리곤 빠르게 수술을 해야 하며 심지어 목숨까지도 위험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옆 침상에서 듣는 나도 순간 긴장이 바짝 될 정도였는데 아이 엄마는 하염없이 울었었다.

무슨 병인지는 못 들었었는데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 보니 장기 파열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아파서 잠들어 있고 아이 아빠한테 꺽꺽대며 울면서 전화하는 아이 엄마를 보니 참 안쓰러웠다.

결국 의사가 아이엄마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대신 설명하는 것까지 봤었다.

또 하나의 일이 있었는데 실제 응급실에서 주취자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남자 한 분이 넘어졌는지 얼굴과 팔에서 피가 흘렀는데 술 냄새가 심했었다. 따라온 남자도 마찬가지로.

아마 둘이서 술 먹고 가는 길에 넘어진 것 같았는데, 의사가 이마가 꽤 많이 찢어져 꿰매야 한다고 말하자 갑자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을 위협하는 탓에 두 명의 보안요원이 왔고 이 때부터는 간호사가 커튼을 쳐서 보지는 못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보안요원이 제압하고선 이후 보호자가 온 뒤에야 치료를 받고 집으로 귀가했다.

참,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의사 또한 굉장히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을 마주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주할 것이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했다.

의사도 사람인데 환자를 마주하기 전, 마주했을 때, 마주하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視, 보다


환자를 마주하기 전 처음 보는 것은 바로 '차트'이다.

이 때, 의사들은 차트를 보며 진료 볼 환자에 대해 파악하는데 기록이 없는 하얀 차트는 저자의 미간을 살짝 찡긋거리게 만든다고 한다.

즉, 긴장한다는 뜻이다.

사실 많은 환자를 마주하다 보면 비슷한 환자들이 많아 경력이 쌓이면 긴장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그렇게 환자를 마주하면 환자가 꺼내는 '첫마디'가 그들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꼬치꼬치 증상을 나열하는 환자부터 있는가하면 먼저 결론부터 내리고 병명을 물어보는 환자까지,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그 외 환자를 마주했던 눈으로, 코로 그리고 같이 온 보호자를 보는 의사의 심리가 펼쳐지는데, 역시 의사도 사람이구나를 다시금 느꼈다.



聽, 듣다


"Everybody lies"

불면증을 원인으로 자연스레 병원에 들러 졸피뎀만 처방받는 환자들도 많다고 한다.

그럴 때면, 저자는 불면증의 원인을 다양하게 보고선 우울한 일이 있었는지 등 잠 못 드는 원인에 대해 물어본다고 한다.

대학교 때까지는 당연히 학업과 아르바이트 때문에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꼭 그게 아니더라도 잠을 자지 못했었다.

수면제 같은 경우는 그 종류가 다양한데 특히 졸피뎀 같은 경우는 한 번 복용하게 되면 어느 순간 없어서는 안 될 약이 되어버린다.

사실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전, 이미 그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몸도 아파 잠을 못 자니 단기간만 처방받은 적도 있었다.

그 때는 불가피하게 단기간만 복용했는데 정말 먹고나면 신기하게도 곧장 잠이 든다.

(낫기 위해 병원은 다니지만 약 먹는 것도 싫고 주사맞는 것도 싫다.)

이후, 먹기 싫은 것도 이유지만 졸피뎀이 안 좋은 것을 알기에 스스로 안 먹으려 했고 다른 약으로 처방받았지만 이래서 밤낮 바뀌어 일하시는 분들이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더 의지하는구나 싶었다.

환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선 실제 거짓말을 걸러내기도 한다고 한다.

아파서 온 환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외적으로 약만 받으려고 아픈 척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의사가 어떻게 보면 귀 기울이는, 듣는 직업이기에 이 또한 잘 걸러내는 능력이 길러지겠구나 싶었다.



打 ,두드리다


대개 병원을 가면 당연한 절차처럼 '검사'를 권한다.

아무말 없이 잘 따르는 환자들이 있는가하면, 그 검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환자들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당연히 필요한 검사만 진행할 것을 알기에 전자에 속하는 편이다. (다만, 채혈은 언제 해도 무섭다.)

아무튼 그에 대한 의사의 생각이 항상 궁금했는데 의사가 검사를 권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 자세히 적혀있어 꽤 흥미로웠다.



觸, 만지다


의사로서 겪었던 경험담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저자의 어머니로서의 마음도 이해가 갔지만) 저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는 참 마음이 그랬다.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병원을 자주 가는 편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여기저기 고장이 났고 주에 한 번씩은 다니고 있는 것이 병원이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자제한 탓도 있지만 가족들 다음으로 많이 마주하는 사람이 의사선생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병원 외에 대학병원에도 다니기 때문에 다양한 의사선생님들을 마주하고 있지만 의사선생님들 중에서도 환자를 다루는 타입이 매우 다양하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병원의 선생님은 나를 아직도 어린 아이로 생각하신다. 오래 봐왔기에 어디가 아픈지 잘 헤아려 주시는 편인데, 혹여나 내가 하나씩 빠뜨리고 말이라도 안 할까싶어 꼬치꼬치 캐물으신다.

꽤 오래 봐온 대학병원 교수님도 평소 생활에 대해 묻는 등 불편한 곳이 있는지, 아픈 곳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주신다.

다니는 병원 선생님들마다 딸처럼, 손녀처럼 안쓰러워하고 걱정해주시는 게 그대로 느껴져 병원가는 게 꺼려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며 의사들의 관점과 생각에 대해 엿볼 수 있었는데, 저자 또한 환자에 대해 진심어린 생각을 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이구나를 느꼈다.

이번 법안으로 인해 의대생들의 국시거부 사태로 의사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특히, 신뢰도 면에서 많이 떨어져 심지어 의사들이 환자의 입장에서 치료하지 않는다는, 그저 돈으로만 본다는 이야기까지 나와 참 씁쓸했다.

물론, 소수는 돈으로만 보기도 하겠지만 저자와 같이 환자들의 입장에서 진료하려는, 치료하려는 의사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고요한 지음 / &(앤드)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범상치 않은 제목에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리면서도 책 속으로 빠져들면 순간 저자가 외국인이었었나 싶을 정도이다.

그만큼 신기하고 기이한 제목만큼 내용 또한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잘 미끄러지는 듯하다.

여덟 개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는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제목과 맞춰) 여덟 개의 단편 중 하나인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에 대해 간략하게 풀어볼까 한다.



처음은, 아이였다.

오로지 원한 건 아이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은, 아이가 아닌 남자였다.



"…… 스테이크 좋아하세요?"

"스테이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반대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은 '제임스'란 남자를 직접 만나게 된다.

스펙에 따라 정자는 A급에서 C급으로 나뉘는데, 제임스는 자신이 A급이라 자부했다. 여태껏 이 일을 여섯 번이나 했는데 다 성공했다며 세 번 안에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란 말과 덧붙이며.

남편은 아내의 배란일에 맞춰 집으로 방문하라는 내용을 포함한 계약서를 작성하여 이후 한 장씩 나눠 갖게 된다.

아이 하나 낳겠다고 생판 모르는 남자와 잠자리를 하라니, 그것도 세번이나.

이해할 수 없었고 납득할 수 없었지만 결국 일요일 밤 제임스는 방문 판매원 행세를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골목을 삼십 분 넘게 서성이다 집에 들어가니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제임스와 마주쳤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나갔다.

그가 탄 외제차가 아파트 너머로 사라지니 남편은 오백만 원을 입금했다.

첫 번째 관계, 임신이 되질 않았다.

두 번째 관계, 임신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관계, 임신이 되질 않았다.

임신이 안 되면 어떻게 하냐며 초조해했던 아내는 세 번째 관계에 이르렀을 때는 그 초조함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후두둑 비가 오던 어느 날, 네 번째 관계를 맺는 날이었다. 오르가즘이 임신이 더 잘 된다는 말에 십분을 더 있으라했다.

건넌방에서 깜빡 잠이 든 남편이 눈을 떠보니 어느새 자정을 가리켰다. 곧장 안방으로 갔는데, 갔는데. 개구리처럼 널부러진 제임스가 아내의 배 위에서 자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남편은 이에 격분하며 제임스를 내쫓다시피 했다.

두 달 후, 고양이가 죽은 날 아내는 임신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임신으로 인해 좀처럼 먹질 못하던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스테이크? 당신은 스테이크 좋아하지 않잖아?"

그랬다. 제임스가 핏물이 뚝뚝 떨어진 스테이크를 좋아했으니까. 뱃 속의 아이는 제임스의 아이니까.

남편은 쉽사리 변할 수 없는 식성을 고치기 위해 접시에 고인 핏물까지 긁어 먹으며 스테이크를 덩달아 맛나게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에 갔다. 그 레스토랑은 제임스와 처음 만난 장소였다.

그리고 나타나선 안 될, 반갑지 않은 한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왔으니 바로 제임스였다.

레스토랑을 방문하고서부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아내에게 아이를 지우자는 무책임한 말도 내뱉었다. 결국 아내는 작은 방에서, 남편은 안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매일 밤, 오랫동안 아내와 통화하는 이가 궁금해도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출산일이 임박한 어느 때였다.

아내가 신음소리를 내며 힘겨워하는 동시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바로 제임스였다.


처음은, 아이였다.

오로지 원한 건 아이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은, 아이가 아닌 남자였다.

지금 아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그'와 '뱃속에 품고 있는 그의 아이'였다.


책을 읽고 나니, 대상 및 내용의 차이는 분명 있지만 여러 영화와 미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솔직히 한국영화가 이 소재로 쓰인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드를 보면 대리모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꽤 많다.

대리모와 남편이 사랑에 빠진 이야기부터 부부의 아이를 품고 있는 대리모가 사고로 인해 의식불명 상태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산모를 구하게 되면 아이를 잃을 수 있는 위험도가 있어 대리모나 아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부부의 이야기까지.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불러 일으키며 비뚤어진, 커진 욕망은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까지 이어진다. 이는 예상된 수순이다.

(소설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아무리 아이를 원한다고 한들, 낯선 남자를 돈 주고 사서 아내와의 잠자리를 갖게 하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명심해야 한다. 비뚤어진 간절함은 결국 집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스킨십, 몸을 겹치고 겹치면서도 아내는 싫은 기색이 여전했고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초조함에 발을 동동거렸지만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불안함은 사라지고 점점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듯, 몸으로 관계를 맺고 맺음으로써 그들은 결국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후자는 잘 모르겠지만 전자는 맞다고 할 수 있겠다.

서로 좋아했지만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서 만나는 횟수도, 전화하는 횟수도 줄어들다 희미해지니 자연스레 '헤어짐'을 택하게 되었다.

이후, 우연히 길에서 만났지만 다시 만남 대신 미소와 안녕을 택했다.

짧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여덟 개의 단편을 읽으며 스토리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