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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거지 부부 - 국적 초월, 나이 초월, 상식 초월, 9살 연상연하 커플의 무일푼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삶, 당신은 감히 꿈꿀 수 있는가!
계획되지 않은, 준비되지 않은 여행에는 굉장한 용기와 대범함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저 부부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저자, 박건우는 20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 해 모은 돈으로 노약자용 세발자전거를 끌고 노숙 여행을 했고 26살에는 태국에서 만난 일본 여인의 비듬에 반해 두 번째 만남에서 청혼, 이듬해 전 재산 27만 원을 가지고 무거운 가장이 되었다.
결혼 후, 퇴근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정직한 직장인으로 살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일을 관두고 와이프와 여행을 떠난 에피소드가 쌓여 지금은 책을 쓰고 있다.
110V와 220V의 만남
무심코 미키의 어깨를 보자 한눈에도 출처가 분명한 비듬이 도넛 위에 뿌려진 설탕 가루마냥 데커레이션 되어 있었고 그녀의 모든 손가락엔 장기간 퇴적된 듯한 검은 때가 손톱의 여백을 메우고 있었다. 보통 '이성과 약속이 잡히면 평소보다 거울 한 번 더 보는 것이 여자'라는 고정관념을 멍키 스패너로 내려찍는 이 여자. 나는 살면서 이런 장르의 여자는 처음 본 나머지 이때부터 기이한 끌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연이 운명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이들 부부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태국의 오래된 게스트 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저자와 미키(저자의 와이프)는 처음 마주쳤을 때 찌릿함은 없었지만 둘에게서 어색함은 없어보였다.
태국을 10년 가까이 왔다갔다한 미키에게 일일 가이드를 부탁하게 되었고 그렇게 둘의 첫 데이트 장소는 시체박물관이었다.
저자는 이미 첫 만남부터 미키에게 마음을 빼앗겼었고 점점 '운명의 짝'임을 직감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미키, 한국 비자 원해?
응! 파쿠, 너는 일본 비자 원해?
응! 그럼…… 결혼할까?
응!!!
장난스러운 대화 속, 그들은 서로를 이미 배우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깐.
결혼 통보는 공공장소에서
부모님께 선뜻 결혼한다는 소리를 못했던 저자는 결국 결혼을 허락이 아닌 통보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아빠와 누나를 롯데월드 지하 식당으로 불러 사진 한 장을 올려놓고 결혼한다고 통보하게 된다!
인정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지 혹은 남남이 될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는 저자에게 아버지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는다.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
미키가 한국에 도착해 3개월 만에 만난 상봉의 기쁨도 잠시 미키와 저자의 아버지의 첫 만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감과 적막감이 도는 첫 만남에서 저자의 아버지는 미키에게 물었다.
"장래에 나를 모시고 살 수 있겠느냐?
"싫은데요."
"......"
"둘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당차게 자기 의견을 피력한 미키는 이내 분위깅 부담을 느꼈던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순간 흠칫했겠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은 아버지께서 미키를 자식보다 더 살뜰히 챙기며 고마워한다고 한다.
말 한 마디에 되찾은 자아
배낭여행,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 여행, 서바이벌, 카우치 서핑 등.
저자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 중 하나는 분명 하고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한 단어로 인해 자아를 되찾게 된다.
"우리…… 여행 갈까?"
"무슨 여행? 신혼여행?"
"어……? 그래! 그거! 신혼여행! 우리 신혼여행 가자!"
미키의 일도 계약 기간이 끝나가고 저자 또한 어학원 학기와 번역 할당량 모두 끝나가고 있었기에 마침 타이밍도 좋았다.
여행 경비 충당 목적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취득하고 호주 외에 적은 돈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나라를 알아보다 대만,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호주, 인도네시아 티켓을 한꺼번에 예약하면서 신혼여행은 이내 배낭여행이 되어버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뜨는 순간, 나는 잠시나마 속해 있던 일본의 모습이 위성 지도마냥 작아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와 함께 구름 위에 떠 있는 미키를 보며 비행기만치 들뜬 마음으로 결혼 후 첫 여정의 설렘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스리랑카, 호주, 인도네시아 등 곳곳을 누비게 된다.
우리는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예언가도 아니라서 막연한 미래를 예측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린 앞으로도 머릿속의 '번뜩임과 끌림'을 생생히 안은 채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거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 저자는 '자유로운 영혼'이자 '도전적이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말그대로, 여기저기 부딪혀 보는 배낭여행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는데 대략 틀을 잡고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마 도전할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래서 배낭 하나 탁 들고 떠나는 사람들 보면 그 용기가 부럽고 감탄스럽다.
앞서 말했듯이, 굉장한 용기와 대범함이 전제적으로 깔려 있어야 이들 부부가 택했던 여행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들 부부의 합이 잘 맞았기에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성격 면에서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했던 부부였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은 당분간 꿈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시아인 혐오 범죄도 여기에 한몫 더해 아마도 코로나가 잠식된 이후에도 당분간은 이전처럼 여행가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책이 있지 않은가!
파리에서, 런던에서 볼 수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 곳곳을 책을 통해 구경할 수 있다. 덤으로 공부도 되고 말이다.
어디든 갈 수 있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영국이든, 크로아티아든!
세계 곳곳을 오로지 책 한 권을 통해 마음껏 누빌 수 있으니, 지금은 직접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잠시 접고 이렇게 책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