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깨끗하네요.

떨어질듯 말듯 꽃과 헤어지지 않으려 하는 이슬들.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야 땅에 떨어지지 않는 숙명.

이슬이 서로 하나가 되면 꽃과 헤어지겠죠?

헤어지지 않기 위해 헤어져 있어야 하는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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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구스 크루 사계절 1318 문고 41
신여랑 지음 / 사계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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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고등학생 1학년인 몽구와 2학년인 형 진구를 중심으로 서로 갈등하다 화해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형만을 사랑하는 어머니, 무관심한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형제가 비보잉으로 하나가 된다는, 어찌보면 너무나 뻔한 줄거리다. 성장소설이라는 것이 주는 장점은 또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소설의 결말은 너무나 눈에 보이는 것이라 단점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갖는 매력은 정열의 밑바탕에 깔린 인간의 원초적인 시기, 질투, 열등감에 대한 적나라한 심리묘사다.

몽구는 인문계 고등학생이며 소위 모범생 부류다. 형 진구는 지진아에 가깝고, 사고뭉치다. 그런데 어느날 춤에 빠진 후 일각연을 이뤄 남들로부터 최고라고 인정을 받는다. 어머니는 형 진구가 안타까워 그가 하는 일에 적극 지원을 한다. 몽구는 처음 형을 따라 춤을 배운 후 춤과 공부 사이에서 엉거주춤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그 양다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형에 대한 질투와 시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신이 모든 걸 스스로 잘 하기때문에 몽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 형만 사랑한다고 오해한다.

형 진구의 화려한 춤을 보면서 항상 자신보다 못했다고 생각한 형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자 일면 열등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 열등감이 그에게 춤으로의 세계로 빠지게 만든다. 몽구스 크루라는 팀의 해체 위기에서 그는 형 진구가 얼마나 춤을 사랑하고 춤을 춤으로써 자아를 찾아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열등감과 시기에서 시작한 춤을 자신도 사랑하게 됐음을 알아챈다. 진정한 열정의 꽃이 피어난 것이다. 그 열정은 형을 이해하는 힘이 된다.

살아가면서 확신을 가지고 자신감 속에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또 자신이 좋아한다고 느끼는 일을 찾을 수는 있을까? 내 모든 정열을 바칠 수 있는 일이란 정말 무엇일까? 때론 시기와 질투, 열등감이 증폭이 돼 자신의 길을 열어주는 경우도 있다. 그 앞길이 어떨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마음 속 저 밑바닥에 꿈틀대는 그 심리가 자신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한편으론 난, 잘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과 남들의 인사성 이야기에 깜빡 속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무엇에 빠질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게다. 그것이 어떤 계기로 내 앞에 나타났든지. 정열을 한번 태워보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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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라 너만 슬프냐
안효숙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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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터만을 돌아다니며 화장품을 파는 아주머니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장터를 지키는 장사꾼과 이들을 찾는 단골들, 비워진 자리는 어김없이 채워지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울고 웃는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꿈을 잃지않고 생계를 꾸려가며 살아가는 가장의 어깨가 웃음으로 때로는 울음으로 들썩인다. 못된 사람들에게 분노하다가도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는 천사같은 사람들을 통해 희망을 찾고,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는 시장 사람들로 말미암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 남의 슬픔보다 내 아픔에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있나 보다(184쪽)

며 맨 처음 장에 나섰을 때의 막막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지금 조금은 자신이 모질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책을 조금만 읽어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구질구질하다고 생각도 했다. 소위 밑바닥이라고 하는 인생살이가 얼마나 화려하며, 즐거울 수 있겠는가? 햇빛나는 삶이 아니라 먹구름 속에서 살아가며 언젠가 볕들날 있기를 바라는 모습을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실은 고개를 돌리고픈 광경일지 모른다. 솔직히 책을 덮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저잣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이들이 바로 천사임을 깨달으며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장터에 자리잡기 까지의 어려움, 또 자리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 물건을 조금이라도 많이 팔면 나타나는 함박웃음과 아무것도 팔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 날씨에 따라 희노애락이 교차하고, 꽃이 피면 나들이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마음, 떠나고픈 심정을 꽉 붙들어매고 장터를 지키고 앉아야 하지만 그래도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행복해하는 소탈함. 자신의 처지도 어려운데 옆에 자리를 펴고 앉은 아이나 아낙들을 위해 물건을 팔아주기도 하는 심정, 비와 눈이 쏟아지는 날 집에 있는 것이 나은 줄 알면서도 나섰다가 몰골만 추레해지기도 하는 주인공의 현실과 감추어진 속내를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지금 나의 처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인간이라는 것이 우스워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꼭 잣대를 들이대며 혼자서 판단해버린다. 고백하건대 내가 겪었던 무엇인가 조금은 억울하고 불편하고 괴로웠던 경험들을 과대포장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로 채색해,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나를 바라보며 안도하는 것이다. 우습게도 말이다. 그러자고 책을 읽은 것이 아닌데도. 그 따뜻한 마음을 종이를 통해 가슴으로 전달받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엉뚱한 심정이 드는 것이다.

울지마라, 너만 슬프냐.를 통해 울일 조차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꼴이니, 나는 정말 "남의 슬픔보다 내 아픔에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있나 보다"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여, 한번쯤 책장을 펼쳐 볼 일이다. 세상이 꽃밭일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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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화초를 키운 적은 별로 없다. 방에다 가져놓기만 하면 죄다 죽어버려 자신이 없어서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대하면 잘 자란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군다나 정말 그네들이 나의 애정을 먹고 자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나는 애정이 없거나, 남을 살리는 관심이 아니라 죽이는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고 해석해야 하니, 그 이론을 어찌 믿겠는가?

그런데, 하하하. 처음으로 내가 키우던 난에서 꽃이 폈다. (어스름때 찍었더니 영 핀트가 안 맞는것 같네요) 공짜로 얻은 난이라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그만 화분에 빽빽히 들어차 자라던 것이 반은 말라 죽었다. 그래서 과감히 화분에서 그것을 덜어내고 나머지를 그냥 키웠는데, 그게 이렇게 보답을 해 줄 줄이야.

단순히 화분에서 자라는 난 하나가 꽃을 피웠을 뿐인데, 나의 마음은 왜 이리 흥분되고 기쁜 것일까?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번 물을 준 것 말고, 두어달에 한번 잎에 묻은 먼지를 닦아준 것 말고, 평상시 관심도 없던 놈이 이렇게 밝은 꽃을 피워주다니... 믿기지 않았다. 무엇을 키운다는 것이 이런 행복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운 난이 기특해보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아주 가끔씩이라도 지켜보는 사람이 혹 있다면(물론 부모님이야 평생을 그렇게 지켜보신 분들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 화려하고 풍성하진 않더라도 나만의 꽃을 피우는 것 그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물론 나 자신도 나의 꽃을 피워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욱 행복할 테고. 묵묵히 생명을 키워가는 난처럼, 절망하지 말고 꿈을 키워갈 것을 난꽃으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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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난에 더 매료되는 건 왜 일까요? 뜬금없이 드는 생각입니다.
-난초와 같은 파란여우-뻥쟁이!

하루살이 2006-08-0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드러운 곡선? 갸날픈 몸매? ㅎㅎ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말로센 시리즈 1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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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백화점 품질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말로센을 주인공으로 한다. 어느날 백화점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망자가 생긴다. 첫번째는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똑같이 되풀이된다면 뭔가 법칙이나 필연적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번째 폭탄, 세번째 폭탄이 터지는데 하필 그 앞에 꼭 말로센이 있다. 직접 폭탄으로 인해 죽지는 않지만 그가 가는 곳에서 터지는 폭탄들. 형사와 경찰은 그를 의심하고, 네번째 다섯번째 폭탄이 터질 때 동료들도 그를 의심하게 된다. 여섯번째 폭탄이 터질 때까지 과연 누가 진짜 범인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항상 그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왔지 결코 범인이 아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건이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보면 소설은 완벽한 추리 소설물로 보이는데 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주인공 말로센의 입을 통해 자신의 피 다른 동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환상을 넘나들고, 동생들 또한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어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듯하다. 이성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추리물에 상상이 침투함으로써 초반 책을 읽을 때는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 상상의 세계는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을 이끄는 힘은 말로센의 역할 그 자체다. 말로센이 백화점에서 맡고 있는 품질관리라는 것은 그냥 직책일뿐 실제로 그가 행하는 일은 희생양이다. 자본주의 상품이 갖고 있는 폐해로부터 손해를 입은 고객들이 말로센의 눈물을 보고 그냥 돌아간다. 이 일때문에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거짓 눈물에 속아 고객들은 다 털어버리고 돌아서는 것이다. 욕을 먹는게 일인 직책. 그것은 마치 신령스러운 일을 하는 천사처럼 보인다. 그의 직책이 알려지고 나서 수많은 곳에서 그를 찾는다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의 설정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듯 하여 웃는 얼굴 표정 밑으로 다소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정작 폭탄사고와 그 처리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보다도 더 강렬한 희생양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사회. 희생양을 만드는 사회. 주위를 둘러보라. 혹 누군가가 억울하게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또는 그녀가 희생양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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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8-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보관함에 있는 책인데 강렬한 제목에 비해 희생양의 이야기라니
조금 의외로군요.^^

하루살이 2006-08-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생양이라는 이미지는 제가 소설을 읽고나서 느낀 것이구요, 로드무비님께선 또 다르게 볼 수도 있으니... 초반 조금 갈피를 못잡다가 중반부터 내리 읽게 됐습니다.

파란여우 2006-08-0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합니다. 강렬한 제목에 하루살이님의 절제리뷰에 동합니다.^^

하루살이 2006-08-0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에게도 재미있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