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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ㅣ 말로센 시리즈 1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은 백화점 품질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말로센을 주인공으로 한다. 어느날 백화점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망자가 생긴다. 첫번째는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똑같이 되풀이된다면 뭔가 법칙이나 필연적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번째 폭탄, 세번째 폭탄이 터지는데 하필 그 앞에 꼭 말로센이 있다. 직접 폭탄으로 인해 죽지는 않지만 그가 가는 곳에서 터지는 폭탄들. 형사와 경찰은 그를 의심하고, 네번째 다섯번째 폭탄이 터질 때 동료들도 그를 의심하게 된다. 여섯번째 폭탄이 터질 때까지 과연 누가 진짜 범인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항상 그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왔지 결코 범인이 아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건이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보면 소설은 완벽한 추리 소설물로 보이는데 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주인공 말로센의 입을 통해 자신의 피 다른 동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환상을 넘나들고, 동생들 또한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어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듯하다. 이성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추리물에 상상이 침투함으로써 초반 책을 읽을 때는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 상상의 세계는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을 이끄는 힘은 말로센의 역할 그 자체다. 말로센이 백화점에서 맡고 있는 품질관리라는 것은 그냥 직책일뿐 실제로 그가 행하는 일은 희생양이다. 자본주의 상품이 갖고 있는 폐해로부터 손해를 입은 고객들이 말로센의 눈물을 보고 그냥 돌아간다. 이 일때문에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거짓 눈물에 속아 고객들은 다 털어버리고 돌아서는 것이다. 욕을 먹는게 일인 직책. 그것은 마치 신령스러운 일을 하는 천사처럼 보인다. 그의 직책이 알려지고 나서 수많은 곳에서 그를 찾는다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의 설정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듯 하여 웃는 얼굴 표정 밑으로 다소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정작 폭탄사고와 그 처리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보다도 더 강렬한 희생양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사회. 희생양을 만드는 사회. 주위를 둘러보라. 혹 누군가가 억울하게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또는 그녀가 희생양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