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의 약속 - 2005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
심산 지음 / 이레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에서 과연 조난자를 구하지 않는 것이 비난받을 짓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의족을 한 뉴질랜드인 마크 잉글리스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나서 내려오는 길에 조난자를 발견했지만 그냥 내려왔다는 인터뷰 이후, 많은 산악인들 또한 비슷한 경우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반대로 25일 호주 산악인 홀이 탈진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을 미국인 댄 마지르가 등정을 포기하고 구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훈훈한 인간애를 전해왔다. 그렇다고해서 조난자를 구조하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악조건 속에서 남을 구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섣불리 덤볐다가는 또다른 조난이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작년 초모랑마 휴먼원정대를 꾸렸던 엄홍길의 산행은 특별하다. 죽어버린 산친구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 험난한 산행을 계획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진한 감동이다. 이 책은 휴먼원정대가 꾸려진 사연부터 시작해 시신수습의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등산전문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정대원들 하나하나의 감정들을 그대로 실어내고 있다.

초모랑마에서 목숨을 잃은 3명의 이야기와 남겨진 가족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특히 죽음을 알면서도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던 미련곰탱이 백준호의 모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끔 만든다.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과감히 저버릴 수 있는 그 힘이 바로 사람다움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엄홍길을 비롯한 휴먼 원정대의 사투 또한 울음샘을 자극한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쫓아온 사람들부터 시작해 이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한줄 알면서도 떠나는 사람들,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 아들을 집어삼킨 산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분노보다는 오히려 미안함과 격려, 애정을 쏟는 유가족들. 세상이 너무 따뜻하게 보인다. 그 추운 에베레스트의 심술을 녹일 정도로 말이다.

휴먼원정대의 결과가 성공이라고 해야할지 실패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산에서 목숨을 잃은 3명중 박무택의 시신만을 데리고 내려와 돌무덤을 만들어주었지만 이들의 소원은 분명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리고 먼저간 3명은 아마도 이들의 사랑을 알고서 초모랑마를 더이상 배회하지 않고 영혼의 안식처로 떠났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약속. 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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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30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 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꾸욱~

하루살이 2006-05-3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나서도 미련곰탱이 백준호가 계속 떠오르는 거 있죠!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
죽음이 눈 앞에 보이는데 걸어들어갈 수 있다는 것...
 


참대술

 

금강산 호텔의 하늘라운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참대술. 숯으로 3번 걸렀다합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한 소주병 아닌가요? 혹시 누가 장난한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삼일포 단풍관에서 또 발견.


짝퉁일까요? 아니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일까요?

맛도 한번 봤어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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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05-2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대술..귀엽네요

하루살이 2006-05-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생각해냈을까요? 대단해요~
위쪽으로 보이는건 바로 뱀술. 뱀과 대나무. 어쩐지 잘 들어맞는것 같기도 하고...^^

파란여우 2006-06-0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병이 왜 옆으로 보이는 걸까요?
1)하루살이님이 술에 취해서 사진을 찍어서
2)파란여우의 눈이 세로로 생겨서
3)카메라의 뷰파인더 기능이 원래 그렇기에
4)쓰러진 술병이 멋있어 보일까봐
5)하루살이님의 취향이 독특해서
6)말할 수 없는 서재 주인장의 비밀사연
7)더 이상 문항을 만들면 욕을 먹으므로 이상!^^

하루살이 2006-06-06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크, 주인장이 무식해서가 정답^^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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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인으로 통하는 소설가 이외수의 자전적 에세이집. 1998년에 출간되었다 다시 나옴.

사실 이외수의 소설을 읽어본 경험은 <꿈꾸는 식물> <들개> <벽오금학도> 였던가 확신이 안설만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 <베스트 극장>이었던가 텔레비젼에서 <칼>을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만 선명하다. <칼>은 道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그래서 항상 이외수는 기인을 넘어 도인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계속해서 접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청소년 시절 강한 충격을 주었던 소설가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매력때문에 접한 이 책은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파장을 일으켰다. 치기를 넘어 무모하기까지 보여지는 그의 행동들 뒤로 그가 깨달은 것들이 온 몸으로 다가온다. 특히 <칼>을 쓰게 된 계기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집을 장만해주기 위해 빚을 진 상태에서의 절박함으로부터 나왔다는 에피소드는 처절함까지 스며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변에 흐르는 것은 삶에 대한 따스함이다. 굶주림의 아픔, 창작의 고통 뒤에 숨겨진,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곳곳에 비친다는 점에서 이외수의 선입견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더군다나 댐의 방류 탓에 죽을 상황에서 벗어난 후, 재판장에서 든든하게 자신을 돌보아준 아내의 사랑은, 군더더기 없는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태도가 현재의 나를 질타한다. 특히 의형제를 맺은 이남이의 모습은 그저 콧수염에 '울고싶어라'만 노래하던 그저 그런 가수라는 편견을 철저하게 깨뜨린다. "저는 스스로 자신의 즐거움이 부럽습니다" 라는 말을 뱉어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 왜 나는 스스로 자신의 즐거움을 찾지 않는가? 라는 후회를 마구마구 일으킨다. 고통이나 시련 뒤에 찾아오는 것들 너머의 즐거움. 왠지모를 타성에 젖어 금욕(?)적 생활에 쳇바퀴 돌듯 살아가던 나에게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장이 커져 쓰나미가 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내 자신이 부러워할만큼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이외수의 젊은 시절이 가져다준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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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대결, 천사와 악마의 대결은 선과 악으로 대변돼 그 내용 전개나 결말 또한 뻔한 경우가 태반이다. 빛과 어둠의 중간에 버티고 서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주인공이 등장해 갈등을 보여주는 것도 흔해 왠만한 갈등구조를 드러내지 않는한 흥미를 끄는데 한계가 있을 테다. 빛과 어둠은 세상에 공존해야 한다는 결말을 이끌어내는 경우라도 그것이 이성적, 감성적으로 설득력을 지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판타지 영화 <나이트워치>는 어둠이 세상을 지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인간의 사악한 생각 그 자체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매트릭스의 현란한 액션과  블레이드와 같은 혼종의 출현을 적절히 짜깁기 한 영화는 너무나 명확한 결말을 드러내 등을 돌리게 되고 만다. 세상을 지배하게 될 어둠의 자식은 바로 나쁜 생각이라니... 얼마나 숨 막힌가? 별의별 상상을 다하는 청소년기를 제외하더라도, 지금 우리 머리 속에는 얼마나 나쁜 생각들이 가득차 있는가? 그런데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겠다하니, 숨통을 조여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착한 생각에 착한 행동으로 일관해야지만 맞이할 수 있는 빛의 세계라는 것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선한 의지가 악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세상이다. 모두가 따뜻한 생각을 가진다면 물론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뜨거워 화상을 입힐 수도 있다. 선한 생각이 선한 세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상으로라도 발칙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보다 나은 세상의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발칙함 속에는 현재의 아픔을 이해하는, 또는 자신을 가로막는 실재를 파악하는 힘이 숨어있다. 때로는 현재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생각을 옥죄지  말자. 세상은 빛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이 존재하기에 구원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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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서생의 한 포인트는 지식인들의 허세라고 보여진다.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선비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따로 있음을 알고, 질투심에 불타 야설을 쓰기 시작한다. 가문의 위기에는 오히려 눈을 감고, 공명정대함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겁많음을 숨기려들던 인물이 위험을 무릎쓰고 말이다.  점차 인기를 얻어가자, 색안경을 쓰며 작가인채 폼을 잡고, 자신을 꼬드기던 상인과 똑같은 수법으로 화가를 유혹한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갈망은 사랑까지도 판다. 그러나 자신이 팔아넘긴  사랑이 진실이었다며 왕비에게 말하는 장면은 이것이 위선인지 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허세로 가득 차 있던 주인공이 끝까지 의리를 지키겠다며 침묵을 지키는 장면에선 한 캐릭터의 양분된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다. 지식인들의 허세를 조롱하는듯 하던 영화는 이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머리가 지시하는대로 따라가야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는 내시의 말. 그것은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다. 생존을 위해선 머리를 써라.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머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추월색의 유배도 내시의 죽음도 모두 마음이 지시한 길을 따르다 일어난 일이다. 정말로 어리석게 보이는 한편으로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것이 현대인의 죽어가는 마음의 길을 살며시 보여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마음은 아닌데'라는 후회마저 사라져가는 요즘, 음란서생은 전혀 음란하지 않게 마음을 살짝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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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2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살이님, 저도 이 영화를 본 여운이 생각나네요^^

하루살이 2006-05-2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얼마나 야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였다가,,, 뜻하지 않은 스토리에 당황^^;

하루살이 2006-05-2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뜨끔뜨끔 침을 맞는 기분이어서^^;
게다가 요즘 너무 삭막해진 마음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어서, 동감이 가더라구요. 물론 저도 아무 생각없이 야한 이야기나 들어볼까 하는 심정으로(캔디 캔디를 보시는 님의 동심과는 정 반대로 음란한 생각을 품고서) 봤다가 뜻하지 않은 전개에 다소 즐겁게 당황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