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누군가가 당신에게 알약을 주며 선택하란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곳,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이곳과 진짜로 진짜로 너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를.

나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곳이 보다 살만한 세상임을 확신할 수 있다면 선택에 대한 갈등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질지 전혀 알 수 없는 암흑에 쌓여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곳이 진정 현재보다 나은 곳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선택의 순간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네오마냥 선택되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온다. 현실에 대한 한치의 의혹도 가져보지 않은 사람에겐 선택이란 우스운 상황일 뿐이다. 아마 그들에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가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니. 이렇게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살고 있는데...

자, 난 그래도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다. 갈등이란 그래서 좋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행할 기회가 1%라도 있는 상태가 갈등이라는 상활일 수 있다. 알약을 집는다. 삼킨다. 내가 삼킨 알약의 색깔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엄습해 온다. 몸에 전율이 돋는다. 고통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 고통이 끝나면 난 현재라는 발판에 서 있을것인가? 현재를 망각할 것인가?

참, 그 알약은 누가 만들어서 준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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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인생이 연극이라면 지금 나는 2막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의 1막은 잘 짜여진, 또는 정해진 각본대로 충실하게 따른 정통연기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첫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2막은 그 첫장을 즉흥연기로 시작한다. 아무런 각본도 없이 극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는 즉흥연기 말이다. 아마 나의 인생 후반기는 지금 이 즉흥연기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대로 흘러만 간다면 더할 나위업겠지만 지금의 나의 심정은 그야말로 두려움 뿐이다.

망망대해 정말 보이는 모든 곳이 바다뿐인 곳에서 홀로 나룻배를 타고 있는 기분. 지금 내 앞에는 이정표라고는 없다. 물론 나침반도 갖고 있지 않다. 이 배가 어디로 흘러 갈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노를 젓고 있는 이 순간만큼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록 나의 나룻배가 그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겁난다. 두렵다. 그러나 2막은 펼쳐질 것이다. 각본대로 사는 삶은 더 이상 싫다. 안온한 삶이 주는 마약과 같은 쾌락에서 벗어나 내 몸이 진짜로 몸부림칠 그런 기쁨을 위해 노를 저을 것이다.

부디 나에게 용기를 주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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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come-lately 2004-06-2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piano避我路 2004-06-2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에 관계없이 하루살이님의 용기 있는 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이제 인생의 2막을 준비해야 하는데... 실루엣 조차도 느낄 수 없는 제 모습... 두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것이겠죠.
제가 가끔씩 되뇌이는 말입니다.
"부채가 자산인 것 처럼, 실패도 자산이다." 용기 내세요.

하루살이 2004-06-2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용기 충천. 님들의 글로 힘을 얻습니다. 백수로 한 2년 살아야 할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기회에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하면서 수행자의 모습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아무래도 전 생활비를 아껴야 하겠기에 ㅋㅋㅋ) 2년후엔 또 얼마나 많은 풍랑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만이라도 즐겁게 살 수 있었으면 그리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님들도 힘내세요.

icaru 2004-06-2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뱃머리를 바꾸셨나 보네요~~!! 잘은 모르지만... 멋지십니다...대단한 용기가 따라줘야 했었을듯 헌데...말이죠!!!
 
베지테리안, 세상을 들다
쯔루다 시즈카 지음, 손성애 옮김 / 모색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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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은 고추가 맵다며 나폴레옹 징키스칸을 예로 들던 시기가 있었다. 혈액형이 AB형인 사람이 천재가 많다며 또 과거 잘 나가던 그리고 지금도 유명한 사람들을 거론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군가 탁월한 사람이 자신과 닮은 또는 자신과 같은 어떤 부류에 속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속한 그 부류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이 책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간디까지 역사 속의 수많은 베지테리안들을 거론한다. 물론 혈액형이나 신장같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적 특징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글의 저의가 이런 과거 인물을 들춰내는 것으로부터 이미 드러나있는 것과 같다. 베지테리안들이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또는 당대의 진보적 사상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가 가긴 하지만 필요에 따라 선택되어진 사람들과 인용구는 그다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더군다나 최근 일련의 유기농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의 홍수속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싼 농산품을 구입한다. 그러니 아무리 육식의 위험성을 주장해도, 광우병이나 전염병이 번져도 사람들은 고기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들에게 지구를 살리는 길, 환경을 살리는 길을 주장한다고 해서 과연 행봉의 변화, 즉 식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물론 과학적 논거나 실증적 자료들을 들이대는 환경서적보다야 우리 귀에 익숙한 과거의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다 친근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여파는 너무나 미약할듯 하다.

당장 자신의 입맛을 돋구는 쾌락 대신 선택해야 할 그 무엇이 보다 더 큰 즐거움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세상을 들 베지테리안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받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즐겁다고 하지만 정녕 사람들은 베풀기를 마다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가짜 쾌락에서 벗어나 진짜 즐거움을 누릴 지혜를 지닐 수 있기만을 기도만 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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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6-2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 쾌락에서 벗어나 진짜 즐거움을 누릴 지혜라.....음....너무 쉽고도 어려운 길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그런데......하루살이 님 또한 채식주의자 아니신지?? ^>^;;

하루살이 2004-06-2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분류하자면 페스코 베지테리안이랍니다. 유제품 육식은 하지 않지만 생선은 먹는 채식주의자지요. 생선도 마저 끊으려고 생각하는데 혼자서 채식만으로 균형잡힌 식단을 꾸린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아서. 역시 지행합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는 모양입니다.
 

기억에 대한 영화는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공각기동대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기억의 집합이라는 것. 그래서 기억이 바뀐다면, 또는 조작되어진다면 나 또한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찾아오는 혼돈. 토탈리콜에서도 기억은 나를 구성하는 중심요소다. 이것 뿐이랴. 최근의 영화 메멘토 등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기억에 매달리는 내용의 영화들은 자주 등장한다. 특히 필립 K 딕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나의 기억을 갖고 있는다는 것이 소중한 것 만큼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 또한 소중하지 않을까? 기계들, 특히 첨단의 기계 사이보그들 또한 그들만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비록 그것이 조작되었을지라도 기억을 통째로 지니고 있다면 그와 나 사이에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나 임을 뛰어넘어 내가 사람일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블레이드 러너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나라는 자아, 그 거친 울타리를 뛰어넘어, 사회나 제도 등이 만들어 놓은 높은 담을 뛰어넘어 내가 사람임을 또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행동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는 것. 이 세상을 떠나버리거나 또는 변혁을 꿈꾸는 등의 행동을 취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기억을 가지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바로 살아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사이보그라 할지라도 말이다.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그리고 인생이라는 궤도에서 만들어지는 추억만을 씹으며 사는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사람이라고 여길지라도 그는 로봇과 다름없는 기억덩어리의 유기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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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가면 특별한 식단이 있다
정세채 지음 / 모색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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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가면 특별한 식단이 있다.

무슨 특별한 식단이 있을까? 그리고 왜 산사라는 곳을 택했는가?

아마도 우리는 산사속의 고승을 떠올리며 그들이 건강하게 장수를 누린 사람들, 마치 신선들마냥 여기고 그들이 뭘 먹었기에 그렇게 산속을 나는듯이 걷고 맑은 정신을 갖게 됐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펼치고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분명 이 책은 고승들의 이야기를 전설마냥 신화마냥 신비스럽게 풀어헤치고 있어 그런 이미지에 어느정도 부합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의 식단이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주변의 살아숨쉬는 생명력을 이용한 단순한 먹거리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먹거리들을 찾아서 많이 먹는다기 보다는 일일일식과 같이 소식한다는 사실이다. 즉 좋은 것을 찾아 기어코 많이 먹어치우겠다는 생각은 그 생각자체만으로 이미 특별함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다만 헬렌 니어링과 같은 소박한 밥상인듯 보이지만 산사의 최고식으로 여긴 죽이라는 것이 엄청난 시간의 공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소박하지 않은 소박함으로 여겨진다. 즉 특별한 음식이란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을 기본 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 속에 나왔던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에 조금 참담해진다. 소식의 삶을 살았던 고승들의 참뜻을 저버리고 건강이라는 또 하나의 욕에 휘말려 앞뒤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찾다니... 특별함은 결코 특별하지 않음을 그리고 그 특별함은 오로지 이 세상이 너무 뒤틀려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특별함임을 깨우치며 공기속의 밥을 한숟갈 덜어낸다. 내 마음의 욕도 한숟갈 같이 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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