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10 - 자반고등어 만들기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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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정성이다. 누구나 다 안다. 손맛도 정성의 다른 표현이다. 식객 10권 또한 이런 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내식당 요리사의 사랑과, 콩나물을 기르는 아가씨의 첫 데이트, 치매에 걸린 교장선생님 남편과 아내의 애정 등등이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음식의 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지 이것뿐이라면 식객의 10권은 시리즈 중의 한 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어리찜의 재료가 정어리인지, 멸치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취재하는 모습 속에서 만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완성되는지를 알게된다. 요리뿐만 아니라 이 요리만화까지도 정성이 가득함으로써 그 맛이 한층 뛰어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0권이 주는 기쁨은 客처럼 살아가는 부부의 에피소드가 숨은 진주처럼 반짝이고 있다는데 있다. 여수로 정어리찜을 먹으로 가는 이들 부부는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다. 제 철, 계절에 어울리는 맛을 찾아 떠도는 삶은 유유자적하다. 집을 갖고 싶다거나, 땅을 가지거나, 재산이라는 물욕으로부터 벗어나, 필요하면 막노동과 밭일을 해가면서 맛따라 떠도는 삶.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이 세상의 客으로 와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흥이 날듯 싶다.

식객을 통해 生客을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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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5-2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허영만씨가 정말 대단해 보이고, 만화라는 장르가 좀더 수준 높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많이 권했답니다.

하루살이 2006-05-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엄청난 자료조사에 감탄하게 됩니다.
 

# 한국전 이야기 품은 광덕고개

-처음이구나, 반갑다, 광덕산아. 그런데 널 만나러 오는 길이 왜 이리 구불구불하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란 말이 꼭 이걸 두고 하는 말 같얘.

-그렇지, 아마 아찔했을 거야. 한국전 때도 이 길이 워낙 위험해 사령관의 특별 명령이 있었대. 한 굽이 돌때마다 운전병에게 캐러멜을 줘 졸음을 막으라고 말이야. 그래서 캐러멜 고개로도 불린단다.

-그러고 보니, 넌(광덕산) 분단이라는 현실을 온 몸으로 느껴온 거구나.

-맞아. 광덕고개서 조금 내려와 민박, 식당이 모여 있는 곳 왼쪽에 광덕식당이 있지. 여기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 길을 따라 2km 죽 올라가면 상해봉 갈림길까지 갈 수 있어. 실은 이 길도 군사도로란다. 내 몸에 난 생채기가 갈라져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찢긴 가슴같아 마음이 아파.

-난, 너의 황톳빛 속살위에 중간중간 덧칠해 놓은 시멘트가 너의 숨을 막는것 같아 너무 미안해.

# 바다를 꿈꾸는 상해봉

- 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상해봉 갈림길이네. 상해봉까진 400m 남았군.

-어서와, 상해봉을 지나치지 않고 들려줘 고마워. 힘들었지.

-그래, 90도 가까운 바위라니. 그나마 로프가 있으니 다행이야. 그래도 조심하지 않으면 큰 일 나겠더라. 물론 그만큼 스릴도 있지만.

- 그렇게 생각해주니 다행이다. 1000m가 넘으니 전망이 참 좋지.

- 정말. 북동쪽으론 대성산에서 내려온 한북정맥이 복계산-복주산-회목봉을 거쳐 광덕산으로, 남쪽으로 다시 백운산-국망봉-운악산으로 뻗은 정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네. 서쪽으론 각흘산, 명성산,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고.

- 자, 이젠 잠깐 전망을 잊고 눈을 한번 감아봐, 어떤 느낌이니

-글쎄, 음 뭐랄까. 어~ 바람소리가 파도소리 같애. 파도에 실려 몸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 그럴거야. 실은 이곳이 예전엔 망망대해에 떠 있던 암초였을지도 몰라.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조각배를 매워뒀다고도 해. 참 이상하지. 왜 이 깊은 첩첩산중에서 하필 바다를 꿈꾸었던걸까? 이별의 눈물마냥 말라붙은 소금기마저도 남겨놓지 않았으면서...

# 우쭐대지 않는 정상

- 자, 기운을 내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보자. 20분 거리 광덕산기상레이더관측소까진 여전히 군사도로. 거기서부턴 오솔길을 10분만 더 걸으면 바로 정상이구나. 

-그런데 정상이라고 해봤자, 실은 별로 보여줄 게 없어서 미안해. 나무로 만든 조그만 하얀 표지판이 없다면 어디가 정상인지도 잘 모를거야, 그치.

-괜찮아. 꼭 정상이 어디라고 알 필욘없어. 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서운해 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노래가사처럼 지금 오른 이곳이 그저 고갯마루였을뿐이라도 괜찮아. 사람들 요즘 한 방에 모든 게 바뀌길 바라지만, 넌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주잖아. 한발 한발 땀흘려 걸어야지만 진정한 너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내려가야지? 정상에서 바로 왼쪽으로 가면 처음 올라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 오른쪽으로 가면 큰 골과 박달골로 가지. 박달골 쪽으로 가면 백운계곡으로 가게돼.

- 40여분 내려가면 너와 작별을 해야 하구나, 마지막 이별 선물은 없니?

-20분만 내려가면 광덕고개와 국망봉, 운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바위를 만알 수 있을거야. 거기서 5분만 발품을 팔면 소나무 사이로도 멋진 풍경을 맛볼 수 있지.

- 고마워. 거기서 잠깐 쉬었다 갈게. 너무 아름답구나. 이러다 내려가는걸 잊어버리겠다. 아름답다는 건 이렇게 마음을 뺏기는 것,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인가 봐. 이대로 돌아가야 하는 길이 아쉽지만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봄이라지만 아직 차가운 겨울같은 너의 몸뚱아리, 하지만 봄보다 더 따뜻한 너의 마음을 간직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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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휴대폰 보상판매니 어쩌니 하면서 말들이 많다. 그 덕에 나같은 사람이 나팔불었다. 휴대폰 기기를 공짜로 바꾸게 됐으니 말이다. 궂이 바꿀 필요까진 없었으나, 3년 이상 쓰면 자판이 말이 안듣는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설명에 넘어가고 말았다. 게다가 카메라도 되고 MP3도 된다니, 이게 왠 떡이냐 했다.

하지만 참...  MP3 다운 받는다고 돈 들어가고, 게다가 그것도 컴퓨터가 에러가 나면서 제대로 받지도 못해, 도움을 요청해야하는 신세가 됐으니. 또 카메라 폰은 왠지 장식품이 되어버린듯하다. 남들은 구경났다 싶으면 휴대폰을 꺼내들고 카메라 찍는 태세를 취하는데, 난 활짝 핀 개나리꽃을 찍어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길거리에서 이나이에' 라는 생각으로 머뭇거린다. 뭐가 그리 부끄럽다는 것인지 내 속내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럼 도대체 왜 휴대폰을 바꾼게야? 라는 자조를 넘어선 자책까지 인다. 낭비를 한 것은 아닌지라는 후회말이다. 순환되지 못하는 물품에 대한 소비욕구말이다.

어쨌든 손에 들고 있으니 최대한 활용하는 것만이 남는 것.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왠지 모를 겉치장을 한번 찢어보자. 새 휴대폰을 계기로 말이다. 참 내, 기기 하나 바꿨다고 이렇게 자그만 것에 흔들리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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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6-03-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근데 근심 걱정도 하루만에 뚝딱 사라져야 하는데...
 
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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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빨간책이라고 혹시 본 기억이 있을련지 모르겠다. 장정일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영화화 되었을때 길거리에서 팔던 성과 관련된 책들이 묘한 커버를 하고 진열되던 장면을 얼핏 떠올려도 될 것이다. 이 책은 마치 빨간책을 읽는 듯한 흥분을 제공한다. 표지를 한번 보아라. 마침 불그스름하지 않는가? (묘하게도)

32살의 프리랜서 남자 기자 스기야마 히로시, 명문대 출신이지만 대인공포증을 지니고 있다. 말이 프리랜서지 입에 풀칠도 겨우 하는 뚱뚱하고 못난 사람이다. 삶의 유일한 낙이라면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의 위층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성관계 소리. 보다 더 잘듣기 위해 생계비를 걱정해야 할 판에 도청기를 사버린다.

여자를 등쳐먹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23살의 남자 건달 구리노 겐지, 카바레 클럽 스카우트 맨이다. 지나가는 여자를 설득해 카바레 또는 안마사, 나중엔 에로 비디오 주인공으로 스카우트해 커미션을 챙기며 살아간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자들을 설득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서는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미끼를 쉽게 문다. 어느날 수동적인 여자를 만나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에로 비디오까지 출연시키게 되지만, 그저 상품으로 여겨야 할 그녀에게 애정이 생겼음을 알게된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탈출해 에로 배우로 거듭난 43살의 아줌마 사토 요시에. 평범한 주부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남편과도 딸과도 대화를 나눈지 오래고, 매일매일이 무료하다. 어느날 에로배우에 스카우트 된 이후 성에 눈을 뜨게 된다. 오직 성적 쾌락만을 누리고 싶어하며, 다른 일엔 작은 관심조차 없다. 집은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차 있지만, 남편도 딸도 그리고 자신도 무신경이다.

남의 말을 절대로 거절 못하는 소심남 26세의 아오야나기 고이치. 노래방 아르바이트 생이다. 원룸 옆방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젼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 항의 한번 못하고, 집에 찾아오는 방문 판매객의 험한 얼굴에 찍소리 한번 못하고 물품을 구입한다. 맞은 편집에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 서 있던 어느날 이름없는 협박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분노를 터뜨릴 곳을 찾지 못하던 그는 개짖는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마음 먹는다.

한때는 순수한 문학청년이었던 대머리 52살 아저씨 사이고지 게이지로. 관능소설가다.  젊었을적 유명한 신인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3류 출판사에 3류 관능소설을 쓰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아무 걱정없지만, 자괴감이 크다. 그러는 한편으론 소설을 쓴다는 핑계로 원조교제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도망쳐 노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노숙자 신세가 마음 편하다고 느끼며 잘 적응한다.

폭탄이라 불리는 못생긴 뚱땡이 28살 여자 다마키 사유리. 테이프 리라이터다. 관능소설을 녹음한 것을 타이핑해서 글자로 옮겨적는 일을 한다. 하지만 수입원은 다른데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일에 자신감을 느끼며, 삶의 희망을 품는다. 그 다른 일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인지라 밝힐 수는 없다. 어찌보면 반전일 수도 있겠다.

소설은 이 6명의 주인공을 각각 한 章으로 해서 그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펼쳐간다. 6명은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있거나 관계되어져 있는데, 소위 끼리끼리 논다라는 표현을 써도 괜찮을듯 싶다. 인생의 패배자 또는 3류 떨거지들의 축제인 이 소설은 책 표지의 "인생 뭐 있어?"라는 말을 되뇌이게 만든다. 관음증 환자마냥, 욕망을 좇는 부나비마냥, 한판 멋들어지게 놀고 마음가는대로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물론 폼나지도, 부럽지도 않은 삶이지만, 그게 대수는 아니다. 그렇게 욕망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보면 삶은 어느새 끝자락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른다. 밑바닥이든 구름 위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욕망을 충족시키다 보면, 또는 욕망을 좇다보면 어느새 인생을 지나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들 행복한걸까? 반대로 욕망을 벗어버린 관세음보살의 미소는 행복한 미소일까? 쾌락과 충족, 그런 후 다가오는 게 허무함만이 아니라면 미래를 계산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미래에 저당잡힌 현대인들에게 현실의 욕망에 충실한 밑바닥 인생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욕망의 유보냐, 충족이냐로만 따진다면 당장의 충족이 좋을테이고, 유보를 통해 그 욕망의 크기가 훨씬 커진다면 지금 당장에 만족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욕망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는 인생들에겐 그때그때 황홀감을 느끼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든 미래든 그 욕망이라는 것을 벗어버린다면, 아니 욕망이 아니라 나라는 자아를 벗어던진다면, 과연 어떨까? 소설을 읽으며, 한편으론 밑바닥 인생도 없고 구름 위 인생도 없는 깨달음의 관음상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개인적으론 이래저래, 다 쉽지 않으니, 제자리 걸음만 하는 것 같다. 욕망에 충실하지도, 그렇다고 미래를 담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를 깨뜨리는 깨우침도 얻지 못하니, 이게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일까? 치여 사느니 즐겨보겠다는 것도 성격이 되야 가능하다. 그래도 소설 속 인물들은 구질구질하지만 그 욕망에 충실하다. 때론 자신들의 분노를 드러내지 못하는 억압상태에 있거나, 스스로 이성적이라면서 행동을 자제하기도 하면서도 자신이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꿈꾼다. 하지만 그 이면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라는 타인에 대한 깔봄이 감추어져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을성 싶다. 욕망의 충족은 힘의 우위를 전제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소설 속에 감추어진 또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떡하나, 힘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 나는 차라리 관음상의 미소를 배워야만 하겠지.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러한 욕망아닌 욕망이라도 꿈꾸어야 할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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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게끔 쓰셨습니다.

하루살이 2006-03-1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서의 3류와 1류, 또는 야설과 순수의 경계선은 어디일지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풍수잡설
최창조 지음 / 모멘토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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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년 전쯤일까. 최창조 교수의 강의를 청강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들었던 강연중 기억에 또렷이 남는 것은 한국의 자생풍수는 비보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무덤을 잘 써서, 후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음택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조상들의 지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양택(?) 위주의 접근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스개 소리로 "우리나라 명당은 군부대와 절간이다"라고 말하며 돌아다닌 시절이 있었는데, 그 명당이란 개념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체험이었으니 오죽하겠는가? 바람이 유독 강한 깊은 산속에서 산불이 났을 경우, 진화를 하기 위해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절은 산불을 감시하고, 진화시 노동력을 긴급하게 투입할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는 주장은, 경치좋은 곳에 '떡'하니 자리 잡은 절간이라는 기존 관념과 맞부딪히게 된 것이다.

최창조 교수의 강연으로부터 받은 인상은 상당히 강렬해 그의 책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책들은 전문적 내용이 많아 접근하는 것이 쉽지않았다. 흐지부지 세월은 흘러가고, 풍수에 대한 막연한 동경 또는 공부좀 해봐야되겠다는 의무감이 어깨를 다시 누르고 있는 요즘, 문득 그의 에세이를 접할 수 있게됐다.

이 책은 풍수에 대한 전문적 내용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자생풍수를 공부하면서 겪게 된 인생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대학이라는 조직의 속성과 부딪혀야 했던 이야기며, 숨은 의도 없이 이야기했던 천도불가론 등으로 인한 세간의 관심과 질책이라는 고뇌 등등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풍수를 좋아하게 된 어렸을 적 추억이라거나, 행방불명된 형에 대한 기억, 대학을 떠나야 했던 사연 등등이 그의 다 타버린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절절하다.

최창조 씨의 기본적인 풍수에 대한 생각은, 터라는 것은 그저 인생의 무대일 뿐이며, 그것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의 여부는 순전히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달려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즉, 아무리 좋은 무대라 하더라도 배우가 형편없으면 그 연극은 실패하는 것이 되고 말지만, 싸구려 무대 위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들이 있다면 그 연극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십분 동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땅에 대한 생각을 결코 잊고 싶지 않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산도 여러 가지 말을 해 준다. 그것을 들을 수 있어야 풍수를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봉천동 산동네의 산들은 그 괴로움을 다소곳이 토로하고 있다. 고층 건물을 허리가 부러지게 지고 있는 남산은 거의 사경이 되어 신음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깊은 애처로움을 지니고 산을 바라보면 그런 것을 다 들을 수 있다. 그저 지나치는 관심 정도로는 산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측은지심은 사람에게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산에 대하여서도 심성의 단초가 된다. 진정한 정만이 산과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그런데 서울생활은 그런 심성의 단초까지 마비되게 해 버린 것이다. (46~47쪽)

마치 샤머니즘이나 물신주의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 속에 비쳐지는 술 좋아하는, 또는 술에 취해 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행적을 알고 있다면 결코 위의 글이 신비주의적이라거나, 호언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산과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을 나눈다는 것. 물론 산뿐만이 아니라 숨은 속내를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이 필요하다. 신음소리,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리네는 비정하다. 산은 또는 땅은 그런 비정한 사람들에게 무정한 재앙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재앙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고,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이 땅과 산에게 대화를 건네고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퍼도 퍼도 한 없는 정을 나누어 줘보자. (제발 울지마거라 새만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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