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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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리뷰를 쓰려고 보니 앞에 쓰신 분들이 왠만한 이야기는 이미 다 써버렸네요. 영화 '록, 스타, 앤 투 스모킹 배럴스' 의 얼개와 비슷하다는 거나, 센다이 역 주변과 늙은 개, 메모장을 든 미녀, 전망대라는 똑같은 배경을 두고 벌어지는 서로 관련없는 사람들의 연쇄반응 등등.

그래도 기어코 읽은 느낌을 써봅니다. 그만큼 흥미진진했으니까요.

소설은 크게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화상 도다와 그와 계약을 맺은 시나코라는 인물,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프로도둑 구로사와와 그 동료들, 신의 경지에 오른 예언자 다카하시와 그를 추종하는 츠카모토, 그리고 다카하시의 인품에 반한 가와라자키의 그룹, 심리상담가 교코와 그와 밀애중인 축구선수 아오야마, 정리해고를 당한 후 우연히 수중에 총을 얻게 된 도요타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고, 개별적 사건에 얽매여 있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면서 이들은 토막살인사건과 복권 당첨, 우체국 강도라는 큰 사건에 서로 얽매여져 있게 된다.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며, 그저 일련의 사태가 서로 얽히고 설켜 어떤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간다. 게다가 소설속 시간이 뒤죽박죽처럼 느껴져 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이런 구성의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면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가 화엄의 세계임을 눈치챈다. 현상세계는 상호 교섭 ·활동하여 무한한 연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사무애(礙)의 법계연기(). 만물이 서로 인연이 되고 있으며 상호 의존하고 있다고 하여, 전우주의 조화와 통일을 설한다.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 생사와 열반() 등이 서로 대립되는 현상이 아니라 원융무애()한 것이며, 한 사물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대로 전우주[, ]가 된다.(네이버 백과사전 중에서)

무슨 소리냐고?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화엄이란 '그물'을 뜻한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벼리'라는 것으로 이해할 뿐이다. 소설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부자 화상과 해고 노동자의 만남이 바로 이것을 설명해준다. 소중한 것 또한 개별적이며, 내 자신이 its all right 할 수 있다면 그만일 뿐이다. 똑같이 아마추어이며 첫 행보인 인생에 있어 프로가 어디있단 말인가?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나마 상상의 힘을 빌어 타인과 소통하고, 나를 추스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항로의 거대한 모험이며, 화엄의 세상을 주유하며 깨달음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괜찮을거야' 자신에게 속삭이며 길을 떠나볼 일이다. 그러면 삶은 정말 괜찮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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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3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가 생각나네요. 괜찮아, 잘될꺼야~^^

하루살이 2006-05-3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노랠 흥얼거리게 됐다니까요...
 
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구판절판


상냥하다는 글자는 사람 인변에 슬픔이 붙어. 그래서 사람의 슬픔을 안다는 뜻일거야. 분명히 그래. 상냥함이란 그런 거지. 다시 말해서.
이매진. 상상력이지.-79쪽

인간의 상상이란 나쁜 쪽으로만 나래를 펴는 법이거든. 참 재밌지 않아? 아내에게 물어도 기억이 없어. 멍청한 녀석이야. 난 그걸 즐겼을 뿐이지. 타ㅏ인의 상상력을 가지고 노는 건 꽤 즐겁거든.-163쪽

원시적인 동물조차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지겹다는 거지.

인간은 더더욱 그래. 몇십 년이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똑같은 일을 계속하며 살아. 원시동물도 질려버리는 그런 반복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알아? 인생이란 다 그런 거지, 뭐라고. 그렇게 받아들여. 이상하지.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단정하고 받아들이는지 난 모두 이해가 안가.-272쪽

러시는 술주정뱅이라는 뜻인데, 술꾼의 자포자기 인생쯤 되겠지. 자네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그런 새로운 삶의 방식일지도 모르겠어.

인생에 프로가 있을 리 없어. 가끔 자기가 무슨 인생의 프로라도 되는 양 잘난 척 하는 놈도 있더라만. 실제로는 모두가 아마추어고 신인이야.-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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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76쪽..아마추어, 신인, 그 마음 그 정신으로 살아야할 것 같아요. 며칠 전 모 신인상을 받고 무척이나 어깨가 무거워지는 저로선 늘 신인으로만 머물 수 없음이네요..

하루살이 2006-05-31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아마추어 정신으로, 하지만 직업은 프로정신으로??? 이런 생각도 드네요.
모두가 아마추어인데 자신을 갖고 흠흠. 자! 가자!
님도 저도 '힘내라 힘'
 
엄홍길의 약속 - 2005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
심산 지음 / 이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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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에서 과연 조난자를 구하지 않는 것이 비난받을 짓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의족을 한 뉴질랜드인 마크 잉글리스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나서 내려오는 길에 조난자를 발견했지만 그냥 내려왔다는 인터뷰 이후, 많은 산악인들 또한 비슷한 경우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반대로 25일 호주 산악인 홀이 탈진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을 미국인 댄 마지르가 등정을 포기하고 구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훈훈한 인간애를 전해왔다. 그렇다고해서 조난자를 구조하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악조건 속에서 남을 구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섣불리 덤볐다가는 또다른 조난이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작년 초모랑마 휴먼원정대를 꾸렸던 엄홍길의 산행은 특별하다. 죽어버린 산친구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 험난한 산행을 계획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진한 감동이다. 이 책은 휴먼원정대가 꾸려진 사연부터 시작해 시신수습의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등산전문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정대원들 하나하나의 감정들을 그대로 실어내고 있다.

초모랑마에서 목숨을 잃은 3명의 이야기와 남겨진 가족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특히 죽음을 알면서도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던 미련곰탱이 백준호의 모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끔 만든다.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과감히 저버릴 수 있는 그 힘이 바로 사람다움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엄홍길을 비롯한 휴먼 원정대의 사투 또한 울음샘을 자극한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쫓아온 사람들부터 시작해 이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한줄 알면서도 떠나는 사람들,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 아들을 집어삼킨 산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분노보다는 오히려 미안함과 격려, 애정을 쏟는 유가족들. 세상이 너무 따뜻하게 보인다. 그 추운 에베레스트의 심술을 녹일 정도로 말이다.

휴먼원정대의 결과가 성공이라고 해야할지 실패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산에서 목숨을 잃은 3명중 박무택의 시신만을 데리고 내려와 돌무덤을 만들어주었지만 이들의 소원은 분명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리고 먼저간 3명은 아마도 이들의 사랑을 알고서 초모랑마를 더이상 배회하지 않고 영혼의 안식처로 떠났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약속. 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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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30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 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꾸욱~

하루살이 2006-05-3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나서도 미련곰탱이 백준호가 계속 떠오르는 거 있죠!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
죽음이 눈 앞에 보이는데 걸어들어갈 수 있다는 것...
 


참대술

 

금강산 호텔의 하늘라운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참대술. 숯으로 3번 걸렀다합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한 소주병 아닌가요? 혹시 누가 장난한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삼일포 단풍관에서 또 발견.


짝퉁일까요? 아니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일까요?

맛도 한번 봤어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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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05-2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대술..귀엽네요

하루살이 2006-05-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생각해냈을까요? 대단해요~
위쪽으로 보이는건 바로 뱀술. 뱀과 대나무. 어쩐지 잘 들어맞는것 같기도 하고...^^

파란여우 2006-06-0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병이 왜 옆으로 보이는 걸까요?
1)하루살이님이 술에 취해서 사진을 찍어서
2)파란여우의 눈이 세로로 생겨서
3)카메라의 뷰파인더 기능이 원래 그렇기에
4)쓰러진 술병이 멋있어 보일까봐
5)하루살이님의 취향이 독특해서
6)말할 수 없는 서재 주인장의 비밀사연
7)더 이상 문항을 만들면 욕을 먹으므로 이상!^^

하루살이 2006-06-06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크, 주인장이 무식해서가 정답^^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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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으로 통하는 소설가 이외수의 자전적 에세이집. 1998년에 출간되었다 다시 나옴.

사실 이외수의 소설을 읽어본 경험은 <꿈꾸는 식물> <들개> <벽오금학도> 였던가 확신이 안설만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 <베스트 극장>이었던가 텔레비젼에서 <칼>을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만 선명하다. <칼>은 道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그래서 항상 이외수는 기인을 넘어 도인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계속해서 접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청소년 시절 강한 충격을 주었던 소설가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매력때문에 접한 이 책은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파장을 일으켰다. 치기를 넘어 무모하기까지 보여지는 그의 행동들 뒤로 그가 깨달은 것들이 온 몸으로 다가온다. 특히 <칼>을 쓰게 된 계기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집을 장만해주기 위해 빚을 진 상태에서의 절박함으로부터 나왔다는 에피소드는 처절함까지 스며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변에 흐르는 것은 삶에 대한 따스함이다. 굶주림의 아픔, 창작의 고통 뒤에 숨겨진,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곳곳에 비친다는 점에서 이외수의 선입견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더군다나 댐의 방류 탓에 죽을 상황에서 벗어난 후, 재판장에서 든든하게 자신을 돌보아준 아내의 사랑은, 군더더기 없는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태도가 현재의 나를 질타한다. 특히 의형제를 맺은 이남이의 모습은 그저 콧수염에 '울고싶어라'만 노래하던 그저 그런 가수라는 편견을 철저하게 깨뜨린다. "저는 스스로 자신의 즐거움이 부럽습니다" 라는 말을 뱉어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 왜 나는 스스로 자신의 즐거움을 찾지 않는가? 라는 후회를 마구마구 일으킨다. 고통이나 시련 뒤에 찾아오는 것들 너머의 즐거움. 왠지모를 타성에 젖어 금욕(?)적 생활에 쳇바퀴 돌듯 살아가던 나에게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장이 커져 쓰나미가 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내 자신이 부러워할만큼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이외수의 젊은 시절이 가져다준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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