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외 - 2006년 제7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아 외 지음 / 해토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내가 깊은 산골 외딴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텔레비젼도 모르고 인터넷도 모르고, 그렇다고 책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곳. 그저 삶의 방법을 먼저 태어난 사람들로부터 배우며 살아가는 곳. 해가 떨어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곳. 그곳이라면 나는 행복할까? 사람들과 치어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 때면 막연한 상상을 해봤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정지아의 풍경은 이런 나의 상상을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활자로 보여준다. 5명의 누나와 3명의 형을 두고 태어난 주인공. 누나들은 시집가고 위의 두 형은 6.25때 빨치산으로 가고, 막내형은 도시로 떠나 그 행방을 알 수 없게됐다. 오직 막내 주인공만이 남아 어머니를 모시고 마을로부터서도 한참 떨어진 숲 속에서 살아간다. 80이 넘어 치매에 걸린 어머니. 60이 넘게 마을 밖 생활을 알지도 못하고 그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집에서 막걸리 한잔 걸쳐봤던 젊은 시절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남자. 여자에 대한 기억은 어렸을 적 누나를 보며 수음하던것. 그리고 이내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사로잡히고, 이후로 줄곧 혼자였던 삶. 그에게 삶은 어떤 의미일까? 더군다나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당신을 모시고 있는 막내를 제일 먼저 기억 속에서 없애버렸다. 죽음을 예감하는 어머니의 친구도 마지막 방문을 마쳤으니 더 이상 이곳엔 사람의 그림자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머니가 지워가는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꺼내든다. 계곡에서 형제들과 깨벗고 놀던 기억들은 아직도 그를 행복감에 젖게 만든다.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선물은 먹고 사는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그의 삶을 이야기하라면 한줄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쳇바퀴 같은 삶. 하지만 만약 내가 그를 만난다면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알아챌 것이다. "그래 내새끼, 한세상 재미났는가" 물어보는 어머니의 상상 속 물음에 "네 어머니 흥겨웠습니다" 라고 답하는 그의 대답이 들릴듯 하다.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닐까? 잔잔한 호수와 같아, 밀고 당기는 격랑과 같은 생계라는 바다에서도, 조용하게 살며시 바라다보면 이윽고 행복의 얼굴을 볼  수 있지않을까. 무덤덤하고 지루한듯 보이는 주인공의 삶을 문명의 속도와 이기에 익숙해져버린 도시인으로서의 내가 살아갈 수 있을지 지금은 자신이 없다.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오지에서의 삶, 도시로부터의 탈출로만 여겨진 삶의 소묘를 소설을 통해 알아버린 지금, 그래도 난 그곳을 꿈꿀 수 있을까.

그래. 내 새끼. 지금 살고 있는 그 세상 후회없이 재미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