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의 비밀 - 동물에게 배우는 최상의 건강관리 비법
프레드 프로벤자 지음, 안종설 옮김 / 브론스테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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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약을 받을 때, 만약 나와 누군가가 똑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면 처방된 약도 똑같을 확률이 100%에 가깝다. 병원에서는 아픈 사람들의 증상을 토대로 병명을 규정하고, 이 병명에 맞추어 증상을 호전시칼 약을 지정하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같은 증상이라 하더라도 환자에 따라 약이 달라진다. 소위 '체질'을 따지고, 이에 맞추어 약을 짓기 때문이다. 같은 병적 증상을 보이더라도 체질에 따라 그 원인과 대처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체질은 사상체질을 비롯해서 한방의 학파에 따라 팔체질, 십육, 삼십이.... 등 수없이 갈라질 수 있다.


이런 사람간의 차이를 극대화하면 체질은 70억 가지로 나뉠 수도 있다. 다만 이렇게 개개인의 특성을 세분화하려면 개인 각각의 신체가 보내는 신호를 모두 데이터화하고, 이것에 맞춘 대응책도 경험을 통해 차곡차곡 정보를 쌓아서 의미있는 치료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작업은 옛날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웠을테지만, 컴퓨터의 놀라운 발전과 유전학의 발전에 힘입어 점차 개인 맞춤형 건강유지는 공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즉 70억가지 체질 분류가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개인 각각의 고유한 차이,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영향력 등을 감안한 맞춤형 건강법이 미래의 건강법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동물적 특성, 포유류적 특성, 그리고 영장류적 특성이라고 할 만한 공통적 사항은 추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통적 사항을 근거로 인간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영양학적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책 [영양의 비밀]은 왜 현대인은 과식을 비롯한 잘못된 식습관을 통해 각종 대사성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는지를 따져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농업의 발전, 생태학, 유기화학을 비롯해 양자물리학까지 동원해 고민하고 있다. 


먼저 현대인이 과식을 하게 된 배경으로는 음식의 질이 저하된 것이 하나의 요인이라고 밝힌다. 음식의 질이란 암 발생을 억제하는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피토케미컬의 양에 좌우된다고 본다. 각종 음식의 피토케미컬이 줄어든 요인은 재배하는 농민이 질보다는 양을 우선시함으로써 종자 자체가 변한 것, 관개시설과 비료의 충분한 공급으로 피토케미컬 형성 조건이 줄어든 것, 완전히 익지 않은 설익은 상태로 유통되는 것, 대기 속의 이산화탄소가 증가함으로 인해 작물의 단백질 농도와 목초의 아연, 철분 등이 감소된 것 등을 꼽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대인의 식량 소비의 약 90%가 15종의 식물이라는 단일화의 문제도 더해진다.

 

따라서 인간은 피토케미컬을 충분히 취하기 위해 예전보다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생산적 측면에서는 피토케미컬이 충분하도록 작물을 키우는 유기농 방식과 케이지 사육과 같은 공장식 축사에서 벗어난 방목형 축산방식도 하나의 방법이다. 소비적 측면에서는 여러가지 이차화합물을 얻어 음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음식을 취하고, 에너지 과잉을 억제하기 위한 소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생산적, 소비적 측면의 변화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책 [영양의 비밀] 저자는 시스템이 낳은 결과에 대해 모든 구성원이 생태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을 공유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우리는 세상의 관찰자가 아니라 <얽힌> 참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기에 참여함으로써 경기장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음식을 소비하느냐가 생산의 방식을, 유통의 방식을,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 그러니 우리는 시장에 내놓은 여러가지 음식을 수동적으로 소비해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생산자와 유통자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산되어서 내 식탁 앞에 놓인 것인지, 도대체가 어떤 음식인지부터 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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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파이더맨과 슈퍼맨을 합친듯한 액션. 하지만 파괴력은 떨어진다. 이야기는 거대하지만, 개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고들진 못한다. 볼거리  생각거리  


2.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 원더우먼은 1984년 냉전시대에 고고학자로서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몰래 구해주면서. 그러던중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사회가 혼돈에 빠진다.

 

1980년대는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성장해가는 풍요의 시기다. 욕망은 자본주의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이 자본주의를 달리도록 만든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우리를 위기로 빠뜨릴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자각하고 있다. '지금 알고 있던 것을 그때도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욕망의 적절한 제어가 필요하다. '소원 보석'은 소원을 들어주데, 그 사람의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를 뺏어간다. 사람들의 욕망은 충돌할 수밖에 없고, 냉전국가간의 충돌은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고나서야 탐욕의 위험을 깨우친다. 원더우먼은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각자의 소원을 철회할 것을 바란다. 영화 속 사람들처럼 1984년에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욕망의 유혹 속에서 절제라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자본주의의 욕망-소원을 들어주는 보석의 힘-은 막강하다. 



3. 원더우먼의 액션은 스파이더맨과 무척 닮아있다. 여기에 슈퍼맨의 비행을 더하면 새로운 원더우먼의 액션이 탄생한다. 그러다보니 원더우먼의 액션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고, 스케일이나 화려함도 떨어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황금 슈트 골든 아머일테지만, 방패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한다. 

원더우먼의 적, 빌런으론 맥스 로드와 치타가 등장한다. 맥스 로드는 실체가 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존재이지만,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그를 구해낸다. 치타는 반대로 자신에게 없는 것을 욕망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원더우먼 1984]는 치타의 빌런으로서의 매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액션도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한다. 

반면 원더우먼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지극히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더우먼의 액션은 철저히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적 매력을 드러내도록 하는데에 치중해보인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액션의 동작과 표정은 성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다보니 여러 히어로물 속 주인공과 다른 원더우먼만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 의문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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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전염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으로 세상이 멈춰버림으로써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런 전염이 가져오는 공포는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꼭 전염병만이 아니다. 좀비와 같은 크리처물을 통해 전염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기도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크리처물이지만 좀비와 같은 전염의 성격을 지니진 않는다. 하지만 전염보다도 더 막강한 욕망이 크리처를 낳는다는 설정으로 공포감을 더한다. 그야말로 한국형 크리처물의 새로운 탄생이라 할 만하다. 모두가 똑같이 뛰고 물어뜯는 좀비가 아니라 각자의 욕망에 따라 다른 형태의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스위트홈]의 재미는 이런 다양한 괴물과, 이들과 맞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인간 등등이 등장했다 퇴장하면서 그 크기를 키워간다.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시즌2가 빨리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2. 크리처물은 대부분 이들과 맞서는 인간들 중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나머지 조연급들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존재다. 그런 차원에서 조연들은 괴물들과 싸우다 죽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너무 쉬우면서도 허무하게, 때로는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말이다. 

[스위트홈]은 조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주연을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연급 한 명 한 명에 대한 사연을 소개해줌으로써 애정을 갖게 만든다. 괴물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이 왜 서로 다른지에 대한 설명도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다.또한 이런 각각의 개성이 소규모 집단을 형성하면서 때로는 갈등을 때로는 결합을 가져오는 다양한 양상을 띤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런 <관계>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동양적 사고방식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런 특색이 [스위트홈]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보여진다. 


3. [스위트홈]이 바라보고 있는 유전에 대한 관점도 흥미롭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낮과 밤]은 현 인류를 뛰어넘는 새로운 종을 만들기 위한 실험도구로쓰여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위트홈] 또한 비슷하게도 사람에서 괴물로 넘어가버린 존재가 아닌, 사람이지만 괴물의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새로운 종이 탄생됐음을 알린다. 주인공 차현수 또한 괴물에게 먹히지 않은 불멸에 가까운 존재로 변신했다. 이런 차현수에게 현 인류를 경쟁상대로 보고 죽여도 무방한 존재로 여기는 정의명이라는 괴물이 나타난다. 

[낮과 밤]에서도 [스위트홈]에서도 그렇지만 이들은 마치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현 인류의 조상이 된 호모사피엔스처럼, 호모사피엔스를 없애고 새로운 승자의 종으로 지구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반대로 현수와 함께하고 있는 아파트 사람들은 처음엔 사람과 다른 종으로 배척하는 관점으로 현수를 바라보다 점차 현수의 희생정신과 인내심에 마음을 바꾸어 그를 받아들이려 한다. 

[스위트홈]에서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은 존재들의 반란을 다루는 영화 [엑스맨]의 시선도 조금 느낄 수 있다.      


4. [스위트홈]이라는 시리즈의 핵심은 괴물의 등장이다. 그리고 그 괴물은 다름아닌 욕망의 실체이다. 욕망은 절대 채워질 수 없는 것, 또는 금기시됨으로써 억압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욕망은 항상 배고픈 상태이며, 갈구하는 상태이다. 그런 허기와 갈구가 결국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욕망이 인간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괴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괴물로 표현된 욕망이 뒤덮힌 세상, 과연 [스위트홈]의 주인공들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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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0-12-30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자체만 놓고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웹툰을 본 입장에서는 비록 10회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 하더라도 몇몇 캐릭터의 욕망 발현이라든지, 차현수의 욕망 제어 과정 등에 대한 내용은 좀 아쉽게 처리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하루살이 2020-12-31 14:42   좋아요 0 | URL
웹툰 원본을 보지 못해서 뭐라 말하긴 어렵네요.^^;
웹툰과 영상이라는 매체의 차이와 시간적 제약 등에 따라 분명 다른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잉크냄새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욕망의 발현과 제어 과정이 보다 섬세하게 표현되어졌다면 더 좋았을지도...
그럼에도 시즌 2가 얼른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
 


1. 실화를 모티브로 결말은 판타지로. 부정한 힘에 맞서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찬가. 최근 영화 [다크워터스]와 비슷한 소재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지극히 사실적인 [다크워터스]와 달리 코믹과 추리를 넣은 경쾌한 방식.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올해 영화 중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듯. 


2. 대부분의 밥벌이는 힘들다. 주어진 일에 매달려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아니 이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떻게든 하루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일이 최소한 부끄럽지 않고 나아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라면 어떨까. 비록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이것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면 일에 끄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을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물론 어림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림 좀 잡아보자. 세상의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값어치를 지니고 일을 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의 고졸여사원들이 회사의 부정을 눈감지 않고 바로 고치려 한 것처럼 말이다. 


3.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의 주인공 자영은 잔심부름을 하러 간 공장에서 폐수가 유출되는 것을 목격한다. 회사에 보고하고 사건은 일단락 된듯 했지만, 이 폐수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된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자영은 유나, 보람과 함께 폐수 유출을 무마하려한 회사의 비리를 캐기 시작한다. 과연 회사와 맞짱뜨려는 이들은 잘못을 바로잡고, 자랑스러운 회사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을까.


4. 페놀 유출 사건은 불과 20여 년 전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낙동강에 흘러간 페놀로 대구 지역 시민들이 피해를 보았고, 사회적 문제가 됐었다. 최근 드라마 중에도 이런 대기업들의 독성 폐기물 무단 방류를 소재로 한 것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를 감추기 위한 권력기관과의 부정한 결탁은 물론이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을 소재로 한 [다크워터스]라는 영화가 있다. 듀폰이라는 회사가 독성폐기물질을 버림으로써 벌어진 사태를 다룬 것으로, 지금도 현재진행중인 재판 과정을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반면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은 힘없는 회사원들의 연대를 통해 회사의 부정을 폭로하고 대항하는 판타지적(?) 결말로 끝난다.


5.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의 주인공은 고졸사원 3인방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최동수 대리에게 눈이 간다. 이 영화의 힘도 아마 조연급 캐릭터들이 이야기의 도구로만 쓰이지 않고 나름의 개성을 갖춤으로써 나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최동수 대리는 회사의 지시대로 페놀 유출과 관련된 자료를 감추는 일에 동참하다, 결국 자영 3인방과 합류하게 된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힘은 흐름에 반하는 주장을 펴는 1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1인을 지지하는 2인의 등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영은 일종의 내부고발자가 된 셈인데, 자영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이 일은 자영에게 상처만 주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 속 내부고발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판타지마냥 회사의 동료들이 모두 힘을 합쳐 자영의 행동에 동조한다. 잘못됐다고 느껴지는 것을 바로잡는 것은 자영의 자발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잘못을 깨닫고 자영에 힘을 보태는 최동수 대리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나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눈을 뜨고 지켜봐야 한다. 일개 사원이기에 그저 명령과 지시에만 따른다는 생각이 잘못된 회사의 길을 탄탄하게 다져주는 콘크리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자영은 될 수 없을지라도 최 대리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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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테넷] 1회차 관람평. 내 마음대로 주제는 파악했다. 할아버지의 역설처럼 과거와 미래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는 것까진 알겠다. 하지만 엔트로피 증가를 역으로 이용한 인버전이라는 시간작동법은 이해가 어렵다. 지적 자극을 불러오는 영화. 시간을 거스르는 액션장면은 압권. 그리고 액션의 상대가 밝혀지는 부분은 그야말로 반전에 가까운 놀라움. 주제도 딱 마음에 든다. n차 관람은 필수일듯.


2.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 주인공 주도자. 그의 적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 기술로 무장한 사토르. 그를 막기 위한 주도자 또한 인버전 기술로 과거로 돌아간다. 미래를 알고 있는 자의 현재를 막음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 시작됐다.


3. 인버전 기술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영화의 대사처럼 그냥 느껴보자. 인버전 기술로 탄생한 액션장면과 적과의 만남은 감탄을 불러온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앞으로 가는 사람들과 뒤로 가는 사람들의 만남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과거로 가서 할아버지를 죽인 손자는 할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없고, 손자가 태어나지 않았기에 할아버지는 죽임을 당하지 않아 결국 손자를 낳고, 이 손자는 다시 할아버지를 죽이는 할아버지의 역설. 상반된 상태로 과거와 미래가 얽혀지게 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간 미래의 시점에서 우린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인가. 그래서 필요한 것은 평행세계?


4. 과학적 설명은 차치하고 세상을 멸망시킬 제3차 대전은 왜 일으키려 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생각해본 영화의 주제 의식은 왜? 라는 질문에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우리 문명은 기후변화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의 뭇생명은 인간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위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미래의 세대들에게 위험을 떠맡기는 행태다. 즉 우리는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만들어 우리의 후손들의 손에 쥐어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테넷]은 시한폭탄 만들기를 그만두라고 외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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