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50보 100보의 차이

 

■ 깡패와 양아치의 차이?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가끔씩 나오는 이야기 하나. 깡패와 양아치의 차이는? 아이들을 폭력과 이익의 대상으로 삼느냐. 마약을 거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야말로 50보 100보다. 그럼에도 50보와 100보에는 차이가 있다. 돈벌이에 있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같지만 그 대상을 한정하느냐의 여부가 이 둘을 가른다.

 

■ 마피아의 신구 세력 다툼

영화 <배신자>는 이탈리아 마피아 이야기를 다룬다. 1980년대 마피아 신구 세력간의 다툼에서 벗어나 브라질로 떠난 토마소 부세타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토마소는 브라질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이탈리아로 송환되고, 재판 과정 중에 마피아 세력의 중심인물들과 그들의 범죄행위를 폭로하게 된다. 실제 이탈리아에서 벌여졌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는 토마소의 시선으로 즉 내부자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 명예로운 자의 길

토마소는 스스로를 '명예로운 자'로 여긴다. '명예로운 자'는 새로운 마피아 세력 이전의 구 마피아 집단을 말하기도 한다. 토마소에게 새 마피아 세력은 헤로인을 취급하기에 명예롭지 않다고 여긴다.-하지만 실제 기록되어진 사실은 토마소가 두목급 마약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 그런 생각으로 그는 거침없이 내부고발자의 길을 걷는다. 그의 폭로로 범죄사실과 증거가 드러나면서 수많은 마피아 간부급 인물들이 체포되고, 정치세력과의 연계가 밝혀진다. 죽음을 무릅쓰고 폭로의 길, 즉 배신자의 길을 택한 그는 자신이 결코 배신자가 아님을 주장한다. 자신은 명예로운 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헤로인을 취급하는 당신들이야 말로 명예를 내팽개친 배신자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마피아 가입 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수십년이 지나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재판 과정 중에도 결코 실행해내는 모습을 통해 은연중 보여주고 있다. 자칫 토마소가 정말 '명예로운 자'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면이라 생각된다. 반대로 마피아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범죄집단이라는 증명서로 여겨질 수도 있다.

 

■ 평온한 죽음이 소원

토마소의 소원은 '침대에서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평범한 이들에게 정말 소박한 꿈일 수 있겠지만, 마피아의 길을 걷고 있는 그로서는 원대한(?) 꿈이다. 과연 그는 이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마피아의 뒷면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토마소의 불안한 영혼을 통해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신을 끝내 명예로운 자로 여기는 모습 속에서 이들의 이중성을 파악한다. 다만 이 과정이 언뜻 토마소를 변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해진다. 어찌됐든 영화적 재미는 생각보다 많다. 지루할 것 처럼 보이는 재판과정도 꽤나 흥미진진하다. 영화 <대부>와는 다르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추천해본다. 

 

오늘도 평온하게 잠을 청하는 일상과 이렇게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영화를 통해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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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대체 무슨 제목이 이 따위야? 무슨 말이지 알 수가 없네.

[나타지마동강세]라는 영화제목을 보고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뜯어보니 '나타라는 어린 마귀가 세상에 내려왔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말도 안되는 환상으로 영화적 재미가 다소 떨어진다 생각한 그렇고 그런 중국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7월 개봉한 이 만화영화는 상영 100일 만에 총 수입 1조원을 넘겼고, 개봉 19일 만에 관객 수 1억을 돌파했다고 한다.

 

 

눈으로 이런 인기의 실체를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열 살 딸내미와 함께 보았는데, 아빠도 딸도 모두 엄지 척!이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이제 함부로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 시각적 측면은 물론이거니와 스토리 또한 아이와 어른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풍부한 중국 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잘 각색해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가 탁월하다.

 

 

[나타지마동강세]의 스토리는 이렇다. 선과 악을 대표하는 구슬의 혼 중 선의 혼을 받아 태어날 아이였던 나타가 악의 혼을 받고 태어난다. 이는 신선이 되고자 했던 한 제자(신공표)의 술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나타는 3년 뒤 벼락을 맞아 죽게 될 운명이다. 그런데 나타는 태어나면서 발동한 악의 기운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어느 정도 억누르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악의 기운이 뻗쳐 악동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나타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의 길을 걷는다.

 

 

오래된 신화 속 주인공을 재해석한 나타라는 캐릭터의 모습은 물론 중간 중간 터져나오는 유머코드는 꽤나 현대적이다. 감동과 웃음이 절묘하게 버무러져 있다. 게다가 운명을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운명의 길을 걷게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비극적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나타는 과감하게 운명과 싸워서 이겨낸다. 내 운명은 '하늘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다'는 나타의 목소리는 큰 울림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만화영화가 주는 가장 큰 재미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나타지마동강세]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은 바로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이기 때문이다. 신공표가 아이의 운명을 바꾸는 장난을 친 것도 신선의 편견 탓이다. 신공표는 사람이 아닌 표범이다. 신선의 제자로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을 연마했음에도 오직 사람이 아닌 표범이라는 이유로 신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타가 악동의 길로 접어든 것도 마을 사람들이 나타는 요괴라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서다. 만화 속에서도 '마음 속 편견은 큰 산이고, 이 산은 뒤집기 어렵다'는 대사가 나온다.

 

 

편견과 선입견은 진화론적으로 보면 뇌의 활동에너지를 줄여주는 정신작동체계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ㅇㅇ는 ㅇㅇ다'가 일반적인 현상일 때, 그것을 하나 하나 다시 검증할 필요없이 곧바로 판단하게 되면 뇌는 판단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편견과 선입견이 주는 부작용이 있다. [나타지마동강세]가 바로 이 부작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까지. 중국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강세]가 한국에서 개봉되기를 희망해본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놀랄만한 현재 수준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만화영화가 말해주듯 중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또한 여지없이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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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감독 곽경택, 김태훈
출연 김명민, 최민호, 김성철, 김인권, 곽시양
개봉 2019. 09. 25.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은 남북전쟁 당시 실제 있었던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에 실행된 이 전투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제목에 나왔듯 잊혀진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드러내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명확하면서도 즉각적인 것은 바로 다큐멘터리이다. 그런데 이처럼 영화로 다룬다는 것은 이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다루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그리고 15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상업영화이니만큼 많은 관객(370만명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모아야 할 극적 요소도 담아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영화 실미도(2003년, 1100만 관객)를 롤모델로 삼았을지 모르겠다. 감춰진 진실 또는 잊혀져간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시대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감추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억압과 폭력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그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 테니까. 바로 그 의지의 크기만큼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은 잊혀진 사실 속에 감추어진 어떤 추악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장사리 전투는 한마디로 손자병법 36계중 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라 할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교란 작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도록 만드느냐에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작전에 미군은 제외된다. 자신들의 전쟁도 아닌데다 이미 미군의 피해가 많은 탓도 크다. 아마 이 작전으로 사상자가 더 늘어난다면 자국내 여론도 결코 우호적이진 않으리라는 판단도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남한은 어떤가. 영화속에서는 당시 지휘관이 이 작전에 참여하는 군인들을 총알받이로만 생각했다고 표현된다. 그래서 겨우 2주 정도밖에 훈련받지 않은 학도병을 주력부대로 내세우고, 이들의 귀환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항상 희생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발생한다. 북쪽도 마찬가지다. 남침을 해오며 점령한 곳에서 학생들을 강제로 징발해 총알받이로 사용한다. 전쟁이란 원래 참혹한 일이지만, 그 피해는 가장 약한 곳에서 가장 크게 발생한다는 것이 더욱 비극적이다.

 

 

이 장사리 작전을 현장에서 전투지휘했던 대대장 이명준 대위는 실제로 귀환 후 작전 실패(실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으니 결코 실패한 작전이라 할 수 없음에도)를 이유로 사형을 구형받지만 이후 진실이 밝혀지면서 명예를 회복한다. 이 사형 구형 또한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에 벌어진 슬픈 일이다. 영화에서는 끝부분 실제 사진을 보여주며 나레이션으로 요약한다.

 

 

잊혀져서는 안될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고 우리가 기억하도록 만드는데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이 어느 정도의 소임을 다한것 같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만을 따진다면 글쎄... 이제 정말 웬만한 전투장면으로는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뛰어넘는 연출은 영화가 제작된 1998년 이후 20년이 지났건만 찾기가 쉽지않다. 드라마적 요소는? 사촌동생과 남북으로 갈려 총부리를 겨누는 극적 장면이 연출되지만, 이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비하면 약한 느낌이 든다. 영화의 재미로만 따진다면 그냥 무난한 정도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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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는 멕시코에서 '죽은 자들의 날' 명절기간이다. 우리가 제사음식을 마련해 조상을 맞이하듯, 멕시코에서도 1년에 딱 하루,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찾아와 함께 노래하고 음식을 먹는다고 여긴다.

 

 

미국에서는 10월 31일을 핼러윈데이라고 하는데, 켈트인의 사윈 축제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축제 또한 음식을 마련해서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한편으론 악령을 쫓았다.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랜다는 것은 이들을 기억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명절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코코]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산 자들이 자신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면 그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도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영화는 "기억해 줘"라며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애틋하고 따듯한 일인지를 이 애니메이션은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지나가고 사라진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 잊혀진 자리에 새로운 인연이 들어선다. 모든 것이 잊혀지지 않은채 남아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혀졌다 여겨진 것들이 가끔 새록새록 떠오를 때가 있다. 죽은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솟아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골에서 백발의 할머니를 볼 때면 가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나의 손을 잡아주던 그 거칠고 투박한 손길이 느껴진다. 주름잡힌 얼굴이 떠오른다. 틀니를 컵 속에 집어넣고 잠을 청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기억해 줘"라고 부탁하고 당부하지 않아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내 가슴 속에 여럿 살아 숨쉬기를 바라본다. 핼러윈 데이 즈음에 망자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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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서 멀어져 버린 것들이다. LP판, 필름카메라, 삐삐와 같은 물건들 뿐만 아니라 문화나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런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다. 판소리는 특별한 날에나 듣는 음악이 되어버렸고, 복싱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행사가 치러지지 않는다면 볼 기회마저 찾기 어렵다. 그러니 시대의 흐름에서 멀어져 간 이 둘을 하나로 뭉쳐 영화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거의 미친 짓이 아닐까. 도대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나 할 수 있을련지....

 

 

영화 [판소리 복서]는 한 번의 실수로 도핑에 걸려 선수직을 박탈당한데다 펀치드렁크로 기억을 잃어가는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 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흘러간 추억에 불쌍한 처지의 주인공 이야기라니! 이거, 영화가 느릿느릿하고 무거울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중간중간 휘몰이 장단마냥 가볍고 경쾌한 웃음을 준다. 화면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거스를정도는 아니다. 인물들의 주저주저하는 심리가 담겨져 있는듯하다.

 

 

판소리와 복싱을 다룬다고 해서 영화가 추억팔이를 하고 있지는 않다.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병구를 통해 새롭게 일어서보고자 한다. 복싱은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정신 아니던가. 잊혀져가던 복싱이 병구를 통해 판소리 복싱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탄생되고, 사람들은 이 복싱에 열광한다. 옛것과 옛것이 만나 새로움을 만든 것이다.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를 통해서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매끄러운 전개와 화려한 영상미, 통쾌한 복수나 기승전결을 원하는 이라면 이 영화를 비추. 하지만 추억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티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면, 피식피식 짧은 웃음을 짓고 싶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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