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맥클린  주연 마이클 페스벤더, 코디 스밋 맥피

 

살아남다와 살아가다(스포일러 있음)

 

느닷없는 슬픔은 슬프기보다 충격에 가깝다. 이 영화 <슬로우 웨스트>는 충격적 슬픔을 전한다. 그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다. 삶이란 주인공 제이가 말하듯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슬픔 아닌 충격은 죽음 뒤에 남겨진 자와 누군지를 알지 못한 채 죽여야 하는 그 상황 때문이다.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16살 소년 제이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로즈를 찾아 미국 콜로라도로 가는 여정을 그린다. 이 여정에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가 동행한다. 때는 19세기 서부개척시대. 제이와 로즈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 사건으로 헤어지게 된다. 제이는 오직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녀를 찾아 위험한 미국 서부를 찾았다. 하지만 로즈는 현상금이 걸려있다. 그가 로즈를 찾아가는 것은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그녀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이 상황이 결국 비극을 가져온다.

제이가 로즈를 다시 만나기까지 과정 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가히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지상과제인 듯하다. 남기 위해 사는 것. 우리가 구차하게 변명하며 사는 그 이유인지 모른다. 하지만 제이는 가기 위해 산다. 여인을 찾아가기 위해. 꿈을 찾아 가기 위해. 그게 살아가기이다.

죽고 죽이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세상 속에서도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이는 그들의 노래를 듣기위해 가던 발걸음을 멈춘다. 아름다운 그 순간을 만끽하며 사는 것. 그것이 살아가기이다. 로즈는 달걀(?)요리에 실패하고 실패해도 계속 요리를 시도한다. 그것이 그녀의 살아가는 방법일지 모른다. 

그저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것. 그것이 삶이요 살아가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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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 이준익 감독, 송강호, 유아인

 

자식이 웬수?

 

사도세자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는 것, 그것도 뒤주에 가두어 고통 속에 죽였다는 점 때문에 잊혀질려야 잊혀지기가 힘들다. 그런데 왜 영조는 사도를 죽였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해답이 여러 작품으로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번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정치적 역학 관계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려 하고 있다.

■ 권력의 그늘 - 영조의 입장에서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자 했던 것은 영조 만의 일이었을까.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라는 제우스에게도 자식을 잡아먹는 아버지가 있었다. 바로 크로노스다. 제우스는 아버지에게 잡아먹히는 운명을 벗어나 오히려 아버지를 왕 위에서 쫓아내고 제왕의 자리에 오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을 남긴 오이디푸스는 어떤가. 그의 아버지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인 오이디푸스가 크면 자신의 생명과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아들을 양치기에게 맡기고 죽이라 명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또한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죽음에서 벗어나 오히려 신탁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왕 위에 오른다. 이들이 영조와 다른 것은 아들을 죽이는 것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식을 죽이고자 했던 이면에는 권력에 대한 집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영화 속에서 영조는 사도에게 묻는다. 왕가에서는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고. 그 답은 ‘원수’다. 원수처럼 대해야 한다고. 그 본마음은 사가의 아비와 똑같이 사랑이지 않겠느냐는 사도의 말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왕권을 지키려는 마음이 부정보다 더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조는 직접 말하지 않고 그저 왕이 되고나면 알 것이라 말한다. 왕의 자리 또한 생사를 건 자리였기 때문이리라 추측할 뿐이다.

■ 육아의 어려움 - 사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꾸어 영화 속에서 절절히 느껴진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현재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사도가 너무 가여웠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현대의 육아서가 말하는 몇 가지 피해야 할 행동을 영조가 서슴없이 행하는 모습에서 육아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먼저 영조의 첫 번째 잘못은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사도의 스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는 장면이 있다. 웃고 화를 내는 것이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해 그 기분을 맞출 수 없다며 사도에게 보다 살갑게 대해 줄 것을 간청한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나의 몸 상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아이들의 똑같은 행동도 귀엽게 느껴질 때도 성가시게 느껴질 때도 있기 마련인지라 항상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자식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영조가 사도의 대리청정으로 나섰을 때 자신의 업적과 상관없이 사도를 끝까지 믿고 힘을 보태줬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자식의 모습을 보고도 그 믿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 번째로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행위의 결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대한 칭찬, 마음이나 의지에 대한 칭찬이 중요하다. 영조는 어렸을 적 사도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특함 덕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과만을 보고 사도를 헤아리다보니 칭찬은 줄어들고 호통만 늘어났다. 무엇을 칭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자라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 영조의 슬픔은 그리고 사도의 슬픔은 행복한 순간을 함께 만들어가지 못함에 있었을 것이다. 사도를 키우지 않기 위해 부모는 애를 써야 한다. 사도의 눈물이 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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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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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유전자의 놀이터라고? 생명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 그러나 놀라우리만치 세상 곳곳에 들어맞는 해석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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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1 (양장) - 제1부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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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두가지 사건이 결국 하나로 만났을 때, 이보다 더 충격적인 반전은 없었다. 개미 이후 이것은 유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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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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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와 신과학, 흥미진진한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 충돌하지 않고 접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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