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서 멀어져 버린 것들이다. LP판, 필름카메라, 삐삐와 같은 물건들 뿐만 아니라 문화나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런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다. 판소리는 특별한 날에나 듣는 음악이 되어버렸고, 복싱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행사가 치러지지 않는다면 볼 기회마저 찾기 어렵다. 그러니 시대의 흐름에서 멀어져 간 이 둘을 하나로 뭉쳐 영화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거의 미친 짓이 아닐까. 도대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나 할 수 있을련지....

 

 

영화 [판소리 복서]는 한 번의 실수로 도핑에 걸려 선수직을 박탈당한데다 펀치드렁크로 기억을 잃어가는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 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흘러간 추억에 불쌍한 처지의 주인공 이야기라니! 이거, 영화가 느릿느릿하고 무거울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중간중간 휘몰이 장단마냥 가볍고 경쾌한 웃음을 준다. 화면이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거스를정도는 아니다. 인물들의 주저주저하는 심리가 담겨져 있는듯하다.

 

 

판소리와 복싱을 다룬다고 해서 영화가 추억팔이를 하고 있지는 않다.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병구를 통해 새롭게 일어서보고자 한다. 복싱은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정신 아니던가. 잊혀져가던 복싱이 병구를 통해 판소리 복싱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탄생되고, 사람들은 이 복싱에 열광한다. 옛것과 옛것이 만나 새로움을 만든 것이다.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를 통해서 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매끄러운 전개와 화려한 영상미, 통쾌한 복수나 기승전결을 원하는 이라면 이 영화를 비추. 하지만 추억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티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면, 피식피식 짧은 웃음을 짓고 싶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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