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가 갔다. 푸바오를 낳아준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 자식처럼 푸바오를 돌봐준 사육사님들을 두고 갔다. 푸바오의 원래 소유권자인 중국으로 돌아갔다. 판다 마케팅이 이처럼 거대한 산업인지 나는 몰랐다. 우리나라가 유난한 게 아니라, 전 세계 판다 사랑이 유난한 거 같다.

 




푸바오가 떠나는 날에는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푸바오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푸바오가 타게 될 특수차량 앞을 서성였다. 유튜브를 열었더니 그날 푸바오가 떠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방송이 6개였다. 내 화면에서는 그랬다. 가히 전 국민적 관심사였다. 푸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푸바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고, 푸바오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날 그곳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넘어 슬픔과 억울함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했다.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가 그랬다. 나는 그 소리가 조금 불편했는데,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가려진 채로 푸바오가 나오고, 그리고 푸바오를 태운 케이지가 특수 차량에 실렸다. 중국까지 푸바오와 동행하는 강바오(강사육사님의 애칭)가 차량 앞쪽에 승차하고, 그리고 그 찰나. 송바오(송사육사님의 애칭), 우산도 쓰고 있지 않던 송바오가 몸을 돌려 차량에 기대어 한 손으로 차량 면을 쓰다듬다가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 송바오에게는 이 자리가 푸바오와의 마지막 순간이고, 그렇게 송바오는 푸바오와 이별을 한다. 감정이 요동친 건 그 순간이었다. 푸바오의 차량을 쓰다듬는 송바오를 본 그 2-3, 마음이 널을 뛰고,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맺혔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푸바오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고, 푸바오 동영상을 제일 많이 본 사람이지만, 사실 나는 푸바오를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푸바오와 아이바오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푸바오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 푸바오가 탄 차량을 송바오가 쓰다듬을 때, 내 마음이 움직였던 건 송바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내내 사랑으로 키웠던 자식을 멀리 보내는 마음.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애인과 영영 헤어지는 마음. 내 마음을 주었던 애인에게 이제 더는 내 마음을 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릴 때의 마음.

 


아이바오는 그날 푸바오가 떠나는 걸 알지 못한다. 독립 훈련의 힘든 시간을 보낸 후, 이제 아이바오와 푸바오는 떨어져 생활한다. 둘 다 그 생활에 익숙해졌다. 아이바오는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적잖이 피곤하고, 푸바오는 푸바오대로 새로운 판생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바오에게 이입하지 않는다. 아이바오는 모를 것이다. 아이바오는 푸바오를 낳았고 키워주고 사랑해 주었지만, 이제 푸바오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바오는 푸바오와의 영영한 이별을 알지 못한다. 내가 이입하는 건, 송바오이고, 그의 마음이고, 그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나는 송바오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 강신주의 문장처럼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는 타자로 하여금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그에게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혹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지요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망각과 자유), 21)

 



사랑할 때 나는 내 마음이 그에게 가 닿기를 바랐다. 그를 원하는 내 마음이 그에게 닿기를 바랐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인가. 그게 전부인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마음이 그에게 닿고, 그가 같은 마음으로 내게 응답해 주는 것이다. 그도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다. 그도, 내가 그를 아끼는 그 마음으로, 나를 아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의 맹세는 시간의 흐름 속에 퇴색해지고, 열정은 권태로 쉽게 변색되어 버린다.

 


내가 그를 더 사랑했던 게 무슨 소용인가. 나는, 내 사랑을 거두어들였다. 그가 나를 더 사랑했던 게 무슨 소용인가. 그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끝난다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 오직 완성된 사랑만이, 해피엔딩만이 중요한 걸까.

 

 


열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내 마음을 알지 못한 채 그가 떠나도,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내게 그대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본인 스스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이성애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했던 임경선은 정희진쌤의 오디오 매거진에서 말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고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거죠.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각자, 상대를 사랑하는 거죠.”

 


송바오의 마음이 푸바오에게 가 닿을까. 어쩌면 잠깐 푸바오는 송바오를, 강바오를, 아이바오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서 없어져 버린, 내 앞에서 사라진 그 사람들을/엄마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푸바오는 푸바오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영한 이별 앞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귀엽게 꾸려 나갈 것이다.

 

 


남은 건,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다. 가질 수 없었던, 혹은 영영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아쉬움이 내게 남는다. 그리움이 남는다. 내가 가진 건 이것뿐이다. 그를 사랑했던 내 마음.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그것, 오직 그것뿐이다. 내 마음, 그를 사랑했던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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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4-04-12 13: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기.... 아... 전 사실 어느 시점부터 에버랜드랑 사육사한테 정이 좀 떨어졌어요. 애기가 대나무 서리 좀 했다고 3주를 외출을 안시키질 않나, 애기 가기 전에 검역해야 하는 거 애기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검역 공간을 따로 만들어두지 않고 빛도 안 들어오는 실내에 한 달을 가둬놓질 않나. 사육사들이 푸바오를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육사도 에버랜드에서 월급받는 직원이구나, 동물을 전시용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은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애기들 밥 먹고 있는데 잡아서 관람객들 쪽으로 돌리는 행위, 자고 있는데 자꾸 들어서 잘 보이는 데로 옮기고 사진 찍고 그러는 거. 에버랜드 지침이겠지만 이런 거 보고 나니까 그냥 애기가 우리랑 멀어지더라도 좀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근황 보니까 그래도 밥도 잘 먹고 표정이 괜찮더라고요. 판다중에서도 푸바오는 워낙 다정하고 똑똑하고 순한 애기라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한국은 잊고 행복하게 지내거라 아가!!

단발머리 2024-04-12 13:37   좋아요 3 | URL
세상에.... 대나무 서리 좀 했다고 3주 외출을 안 시키다니요. 그건 진짜 화나네요. 그리고 검역 공간도요...... 사육사님들도 푸바오 아끼고 사랑하셨겠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의 범위 안에 있겠지요. 관람객들 눈치 볼 수 밖에 없을 테구요. 모두 다 돈이었다 ㅠㅠㅠ
저도 푸바오 간다고 해서 처음에는 아쉽기도 했는데 거기가 환경이 좋다고, 그리고 넓다고 소개하더라구요.
은오님 바램대로 울 애기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잘 살아갈 거 같아요. 아직도 푸바오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고, 그래서 중국에서도 신경쓰는 거 같더라구요.
한국은 잊는다면 좀 서운하지만.... 행복한 판생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푸바오, 잘 먹고, 잘 놀고, 행복해!

공쟝쟝 2024-04-12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좋은 글에........ 마지막 짤 때문에 웃겨서... (모에화 심하다) ㅠㅠㅠㅠ 단발님 나는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만.... 글과 내용을 합치면... 푸바오는 모른다 아닙니까? 쟈닌해... 쟈닌하다....!! -짝사랑 전문가 올림-

단발머리 2024-04-16 19:12   좋아요 0 | URL
푸바오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이바오도 모른다. 러바오는 당근 더 모르고요.
가장 잘 아는, 가장 이 고통에 가까운 사람은 강바오일테고, 송바오일테지요.
짝사랑 전문가시라고요? 짝사랑을 아시나요? 그 절절함을, 그 애닮픔을, 아신다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19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존재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좀 빨리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그걸 학습하지 못하면 범죄로 이어지는... (푸바오 페이퍼에 스토커 댓글 달아 죄송합니다)
밑줄 그으신 문장에서 제가 또 밑줄을 그었는데요, 아이들 그림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어요. <꼬마 너구리 요요> 인데요, 혹시 읽어보셨나요?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도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꼬마 너구리가 나옵니다. 흑흑 ㅠㅠ 물론 그건 아픕니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아픈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받아들여야지요. (먼 산)

단발머리 2024-04-26 12:08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랑과 집착, 그리고 스토킹이 그 미묘한 선 언저리에서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게 무섭기도 하고요.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넘어서, 내 마음만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게 스토킹이죠. 거기에서 ‘right to sex‘로 가는 거고요. 사랑의 제일 큰 힘이, 내가 상대 앞에서 ‘무력하다‘는 걸 배우는 건데요. 아... 나, 갑자기 영어 생각나네요.
vulnerable......... 전 사랑하면 이렇게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받아들여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쪽으로 가면 당연히............. 위험한 사랑. 안 되는 사랑. 나쁜 사랑...

즐거운 하루 되세요! 여기에다 편지 쓰는 내 마음^^ 달리기에 참 좋은 날씨입니다!!
 

















사전투표는 토요일 오후에 했다. 아침부터 나가자 나가자 실랑이를 하다가, 늦게 준비하는 1인과 토요일에도 학교에 간 1인의 동선을 고려해 투표 후 노상에서 치킨을 먹기로 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리를 뛰어갔다. 이번 투표를 앞두고 큰애랑 여러 번 싸워서 아예 투표를 안 한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투표소에 들어갈 때는 다정하게 들어섰다. 기표를 하고 나와서 기다리는데 큰애가 나오지를 않는 거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했더니, 호호 불고 세로로 반 접고 또 반으로 접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엄마 같은 (거대 정당 찍는) 사람들은 몰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한 표,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내 한 표도 소중하단다, 아가야.

 

 



반유대주의가 유대인 절멸로까지 이어지는 그 지난한 순간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이어진다. 내가 꼽은 문장은 여기다.

 


인종주의자들의 유대인 증오는 신이 선택한 민족,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에서 나왔다. 거기에는 결국 모든 외양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에서 마지막 승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증을 받았다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민족에 대한 의지박약한 분노가 있었던 것이다. (451쪽)

 


역사라기보다는 신화로 여겨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대탈출 때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훈련 받은 군인 집단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노인에 이르는 가족 공동체, 유목 민족이라 부르기에도 세가 부족한 이스라엘 부족의 대이동이 펼쳐질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공포로 흔들렸다. 그들, 이스라엘인들은 특별하다는 믿음, 그들의 신은 특별하다는 믿음이 선주민이었던 가나안 여러 부족들의 마음을 온통 지배했다. 이스라엘이 계속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자기 계발서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모토가 할 수 있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할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당연히 할 수 있다쪽이 우세하다. 상황의 변화는 태도에 달려있고, 태도는 마음에, 마음은 생각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은 항상 할 수 있다쪽이었고, 자신들이 선민,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는, 이스라엘인들만, 유대인들만 그렇게 믿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던 인종주의자들도 유대인의 말을 믿었다는 거다. 그 말을 믿게 된, 진심으로 믿게 된 인종주의자들의 의심과 분노는 유대인 증오라는 결과로 산출되었다.

 



 


공산 전체주의 비판하는 세력의 몰락을 기대하며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는다. 자랑하기 참 좋은데 <전체주의의 기원>은 너무 두꺼워서 외출 때에는 다른 한나를 모시고 다닌다. 한나 풍년. 한나 대잔치다.

 



깝치는 마음 1도 없이 겸손하게, 저녁에는 치킨을 먹기로 했다. 파티 분위기 절대 아니다. 1년 만의 건강검진에서 평생 처음으로 빈혈판정이 나왔기에 그렇다. 단백질 보충이 필요하단다. 한나 풍년. 치킨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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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0 1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삼겹살 먹을 겁니다. 혹시 따님이 저랑 같은 정당을 찍은 건 아닐지.. 생각합니다. 흠흠..

단발머리 2024-04-10 15:26   좋아요 1 | URL
저희집 딸롱이가 다락방님과 같은 정당을 찍었을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일단 저랑은 다릅니다. 흠흠...
저도 냉동실에 삼겹살 있기는 한데.... 🤗

서곡 2024-04-10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닭강정 사왔습니다 ㅋㅋㅋ 사진 속 말차파이(?)도 맛있어보이는군요!!

단발머리 2024-04-10 16:45   좋아요 1 | URL
하.... 닭강정도 매우 좋은 선택입니다. 말차파이 정말 맛있었어요. 딱딱하지 않지만 꾸덕한 느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시지요? 포크에 힘을 주고 퐉!! 세워야 합니다 ㅋㅋㅋㅋㅋ 아, 또 먹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04-10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케잌, 맛있겠어요.
거기다 책까지요.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유대인 또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어요?
구약 성서의 내용과 달라 궁금해졌어요~~

단발머리 2024-04-10 16:55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제가 명확하게 표현을 못 했나 봐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민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할 수 있다’ 쪽이었고, 자신들이 선민,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는, 이스라엘이, 유대인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게 아니다. 유대인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던 인종주의자들이 유대인의 그 말을 믿었다는 거다. 그 말을 믿게 된, 진심으로 믿게 된 인종주의자들의 의심과 분노는 유대인 증오라는 결과로 산출되었다.


위의 저의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 볼게요.

이스라엘은 항상 ‘할 수 있다’ 쪽이었고, 자신들이 선민,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는, 이스라엘인들만, 유대인들만 그렇게 믿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던 인종주의자들도 유대인의 말을 믿었다는 거다. 그 말을 믿게 된, 진심으로 믿게 된 인종주의자들의 의심과 분노는 유대인 증오라는 결과로 산출되었다.


요렇게 바꾸어 보았습니다. 선민이라는 유대인의 주장을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들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네요. 위의 문장도 이렇게 바꾸어 놓을게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04-10 17:02   좋아요 3 | URL
네,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너무 확고하게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것을 믿었고, 받아들였고, 강조했다고 생각해요.
그 믿음에서 오는 후폭풍이 다양했고 억울했고 고통스러웠던 거죠.
제가 절대 인종차별주의자를 이해하고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 번씩 유대인의 선민 의식이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따님과 데이트 잘 하시고
휴일 오후 잘 보내시기 바래요
저도 방금 투표하고 왔어요^^

단발머리 2024-04-10 17:30   좋아요 2 | URL
네, 페넬로페님~~

무슨 말씀인지 알 거 같아요.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워낙 유난하고 유별나지요. 그런 정서가 없었다면 영토 없이 2000년을 떠돌던 소수 민족은 진작에 공중분해 되었을 거 같고요.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그 탄생, 즉 아브라함이 여호와라는 신을 만나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거라 민족의 핵심 정서로 자리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나만 특별하다는 그 생각은 타인에 대한 무시와 모멸로 쉽게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가자 지구의 비극도 따로 떼어서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마음 준비하면서 개표방송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30분 정도 남았네요. 편안한 휴일 저녁 되시기를 바래요!

서곡 2024-04-10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표방송 보고 계시죠? ㅎㅎㅎ 저는 유투브 이채널저채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닭강정은 벌써 다먹 ㄷㄷㄷ 라지로 사올것을 어흑

단발머리 2024-04-10 19:04   좋아요 1 | URL
네, 저희집도 노트북 다 나왔습니다ㅋㅋㅋㅋㅋㅋ저희는 치킨이랑 떡볶이 시켜가지고 아직 먹을 게 쪼금 남았습니다. M으로 시키셨군요.
아까비……

서곡 2024-04-10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포테토칩 꺼내고 한 캔 더 땄습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04-10 23:12   좋아요 1 | URL
벌써 꺼내시면 어째욬ㅋㅋㅋㅋ 경합 지역 많아서 한 시 넘어서까지 보셔야할텐데욬ㅋㅋㅋ 저희집 의석수 맞히기 내기 했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맞힌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곡 2024-04-10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십니다 ㅎㅎㅎ 실방 댓글 보는 재미도 쏠쏠 ㅋㅋㅋ

단발머리 2024-04-10 19:33   좋아요 1 | URL
결과를 맞혀서 기쁘고 내기에 이겨서 기쁘고ㅋㅋㅋㅋㅋ 즐거운 밤입니닼ㅋㅋ서곡님도 편안한 밤 되시길요! 🤗
 




 












겁 없이 덤볐다가 모르는 이야기 한참 읽었다. 나는 레비 스트로스의 현장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예술과 오브제, 회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부제를 다시 보니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인터뷰>. ,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이야기구나. 깝친 나를 또 반성한다. 나는 왜 나대는가. 나는 왜 까부는가. 부제에 뻔히 쓰여 있는 것을. 그것도 안 보고 왜 이 책을 읽겠다 덤볐단 말인가. 내가 읽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다. 57쪽과 77.

 


문명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격차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격차는 노예제, 이어 농노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양산과 함께 생겼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57)

 


어떤 사회적 현상에 문자 출현이 늘 그리고 도처에서 발생했다는 것에는 우리가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요. 나는 문자 표기와 동시에 일어나는 사회 현실이 바로 카스트 혹은 계급 체제와 부합하는 분열 · 분리의 출현이라고 봅니다. 이미 말했지만 문자는 그것의 초기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화하는 수단이었어요. 물건을 사유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77)

 


계급화를 설명할 때, 잉여 물자의 축적으로 인한 계급의 발생이 아니라, 문자의 출현으로 인간이 인간을 노예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보는 이런 해석이, 이런 문장이 내게는 두껍게 진하게 읽혔다.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슬픈 열대>는 너무 두껍고, 이렇게 두 권을 골라봤다.

 
















주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다.

 


게다가 다른 모든 종류의 오브제로 이행이 가능하지요. 저도 당신 생각에 동의합니다. 두 운동이 있는 거예요. 자연에서 문화로의 열망, 즉 오브제에서 기호로, 언어로의 열망이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운동은, 언어학적 표현을 쓰면 오브제에 감춰진 속성을 발견하고 알아보는 것으로, 인간 정신의 구조와 그 기능 양식과 공통성을 갖는 게 이 속성이지요. (154)

 

대부분 이런 이야기다. 자연 예술과 문화 예술, 추상화, 인상주의 그리고 오브제. 언어에 대한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주의해서 읽었는데도 전혀 쉽지 않았다. 사실은, 많이 어려웠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알라딘 이웃님이 오디오 매거진의 <조용한 생활>을 선물해 주셨다. 운전할 때, 다림질할 때, 혼자 산책할 때, 얼마나 야무지게 잘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좋은 친구는 이렇게 항상 함께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글/오디오를 읽거나 들을 때, 그 배합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나는 정희진 선생님과 김혜리 작가 편이 별로 좋지 않았고, 차라리 정희진 선생님과 임경선 작가 편이 더 좋았는데, 김혜리 작가와 홍기빈 작가 편은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이런 종류의 글 중에 기억에 남는 건 필립 로스와 프레모 레비의 인터뷰였다. <왜 쓰는가>는 필립 로스의 글을 모은 거였는데, 그 파트에서는 질문자가 로스이고 답하는 사람이 레비였다. 이 세상 최강의 까칠함을 선보이며 그렇게나 질문자를 괴롭히던 로스가 레비 앞에서는 얼마나 온순한 사람이던지. 적잖이 웃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배려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글책으로는 예전에 읽은 강신주-지승호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 기억에 남는다. 강신주의 책을 모두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의 핵심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 지승호의 잘 준비된 질문이 강신주의 예리함과 만났을 때, 말 그대로 좋은 책이 탄생하는 장면이 이렇구나 싶었다.

 



이 책의 질문자 샤르보니에는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니 말은 그게 아니다를 시전하시는지, 뒷부분에서는 약간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 책이 잘 읽히지 않고, 불필요한 긴장감이 느껴진다면, 그 잘못은 샤르보니에게 있다. 전적으로.


 

<말 시리즈>의 전체 랭킹으로 봤을 때 이 책은 약간 뒤로 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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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4-09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는 대학 시절 문화인류학 수업 때 읽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네요.

어떤 사람들이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역효과가 생기기도 하지요. 그래서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거이 중요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4-04-10 15:19   좋아요 0 | URL
대학 시절 문화인류학 수업 듣고 그러셨단 말이에요? @@ 너무 근사한대요. 그 때, 저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감은빛님 말씀처럼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해요. 그리고 가끔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게 더 먼저 필요할 거 같기도 하고요.

잠자냥 2024-04-11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문자가 싸움 거는 거 같아서 피로감 느껴졌다는 말씀에 104% 공감합니다. ㅋㅋㅋㅋ 어제 엠비씨 개표방송의 김진인가 뭔가 그 사람 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4-11 19:04   좋아요 0 | URL
104% 공감 감사해요. 잠자냥님의 3별을 완벽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자를 미워하는 것만큼 예술에 대한 저의 이해 부족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엠비씨 개표방송 그 분은 ㅋㅋㅋㅋㅋㅋ 카하하하하
 

















식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책을 읽지 못한다. 방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읽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읽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다림질을 끝내니 밤 11. 딱 한쪽만 읽을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친다.

 


자연은 다양성 그 자체로 있는데, 인간은 다양성을 다양성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분류하고 통합하여 파악한다. 상징화한다. 약호화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실체들을 '자유 연상 조합association libre'으로 지각하고 그 안에 있는 내재적 상동성을 포착하고 여과하여 자신 안에 강렬하게 수용하는 동안 스스로 매혹된다. 강렬한 시선/바라보기 regard또는 관찰/주시 observation는 사랑하고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육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폭로하는 과잉 행동이다. 이미 예감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왜 뒤돌아보았는가? (9)

 



강렬한 시선, 바라보기, 관찰과 주시.

 















희대의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Twilight>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새로 전학 온 벨라에게 관심 있는 마이크는 미스테리한 컬렌 집안의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눈독을 들이는 걸 눈치챈다. 끼리끼리 커플인 컬렌 집안의 유일한 싱글. 여자애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최강 미모 에드워드가 벨라를 쳐다본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마이크가 이런 말을 한다.

 

”에드워드 걔, 기분 나빠. (벨라) 쳐다볼 때 먹는 거 보는 것처럼 쳐다본단 말이야.

 


이건 은유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적이다. 마이크의 감은 옳다.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에게 인간 벨라는 ‘먹을’ 음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의식을 가진 존재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벨라의 생각이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벨라는 에드워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눈맞춤.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는 것. 그를 내 눈에 넣을 듯 쳐다보는 것. 혹은 그를 그렇게 내 눈 속에 넣어버리는 것.

 


강신주는 우정과 사랑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정과 사랑은 함께 있을 때 기쁨을 준다. 함께할 때 행복하다. 차이는 헤어져 있을 때 확실해진다. 우정은 떨어져 있는 시간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만나면 즐겁지만 헤어져 있어도 괜찮다.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만날 때 행복하고, 헤어져 있을 때 힘들다. 떨어져 있는 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만나지 못할 때 괴롭다. 보지 못할 때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연인이 연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절절한 고백은 ‘사랑해!’나 ‘좋아해!’가 아니라, ‘보고 싶어!’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어. 너를 보고 싶어. 너를 내 눈에 넣고 싶어. 너를, 너를 내 눈동자에 가두어 놓고 싶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걸을 때 나는 자주 뒤에 선다. 뒤에 서서 걸어가는 가족을, 친구를, 내 소중한 사람을 바라본다. 모두 집으로 돌아간 어느 날 늦은 오후, 한 쪽 다리를 삐끗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 오후가 반복된다. 내가 뒤에 있음을, 내가 그를 보고 있음을 그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나는 뒤에 서서 그를 본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그를 본다. 내 시야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본다. 나는 눈맞춤을 바라지 않는다. 영원히. 영원히 그는, 그에 대한 내 사랑을 모를 것이다. 나는 뒤에 있으니까. 나는 주시한다. 바라본다. 그를 내 눈에 넣는다.

 

 


두 쪽 읽고 너무 말이 많았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좀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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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0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04-08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음...
강신주의 말을 읽어보니,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만약 강신주의 말대로라면,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연인도 만났을 때 기쁘지만 헤어지고나서 별로 불편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이게 제가 스스로를 연애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네요. 크-

아무튼 에드워드와 벨라를 제가 참 좋아했었습니다. 지금 에드워드는 애아빠가 되었고 벨라는 성소수자의 대표가 되었지요. 크-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단발머리 2024-04-10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강신주의 저 말 듣고/읽고 다락방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더랍니다. 사랑이라는 건, 같이 있지 못할 때 괴롭다고 하는 거에요.
아, 괴롭다. 보지 못 해, 괴롭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강신주의 정의니까,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에드워드와 벨라는 요즘 아주 잘 지내더라구요. 각자 ㅋㅋㅋㅋㅋㅋ에드워드가 차은우를 만났어요. 어디 패션쇼던가 그런 자리에서요. 차은우가 더 예뻐요. 더 멋지고 ㅋㅋㅋㅋㅋㅋㅋ 세월의 무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조금 늦게 합류한 편이었는데, 그러니까 친구들이 아렌트!”, “아렌트!”할 때도 내게 아렌트는 그냥 아렌트에 가까웠다. 아렌트가 조금 다르게 보였던 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난 후였다.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그런 경험이 불러오는 억울함, 자괴감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학자적 엄밀성을 가지고 사안에 대해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인 것에 나는 적잖이 감동받았다. 그다음으로는 이 책, <한나 아렌트 평전>을 읽은 후, 나도 친구들과 함께 아렌트!”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중립주의혹은 극중주의가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명한 민주당 지지자나 확신에 찬 국민의힘 지지자 보다, 내게는 그 가운데 위치한 중도가 더 아슬아슬해보인다. 자신의 입장이 없다는 건, 지배 담론의 영향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생각은 보수적이기 쉽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종편만 보는 사람은 언제나 사시사철 보수정권만 칭찬할 뿐이고, 네이버 뉴스만 읽어서는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KBS땡윤 뉴스가 되어 버렸다. 매스 미디어는 이미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혹은 갖다 버렸다. 15년 이상 구독하던 한겨레 신문, 한겨레 21을 끊은 지 이제 5년이 넘어간다.



대통령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여권 비대위원장은 빨간 니트를 입고 투표를 할 수 있지만,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가면 제지를 당한다. 선관위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항의하는 정치 행위를 할 경우 다른 선거인에게 심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비밀 투표 원칙도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파 소지를 제한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니까, ‘정치적 행위라서 안 된다는 설명인데, 사안을 해석하는 정치적 안목’, ‘정치적 판단은 어쩌란 말인가. 대파 들고 온 사람이 윤석열 정권에 화났다는 점을, 선관위는 알고 있다는 뜻인가. 다만 그 분노를 표현하지는 말라는 뜻인가. 집에 대파 없이 양파만 있는 사람은 걱정이 크다. 사 둔 지 며칠 안 됐는데, 양파에 싹이 났다. (내겐 흔한 일) 싹 난 양파 들고 가는 건 괜찮나. 그것도 정치적 판단의 영역인가.

 





한나 아렌트는,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모순이라고 생각했다(278). 이게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결론적으로 한나 아렌트는 정체성의 정치를 비판했는데, ‘정체성만으로 규정되어온 역사적 존재가 바로 여성유대인이고, 한나 아렌트는 이 두 가지 요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이다. 한나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 책에는 여러 번, 한나가 여성으로서의 특별 대우’(여성 최초의 ***대 교수)를 거절한 장면이 나온다. 그에 더해 유대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넘어선 사람만이 서술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가 바로 한나인 점은, 한나가 여성으로혹은 유대인으로사고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나는 단독자로 존재했고, 오직 사유로 자신의 이해를 증명했다.



12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책 출간 이후 미국 학계의 반응과 그에 대한 아렌트의 답이 될 것이다. ‘전체주의의 역사를 쓴 게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 전체주의를 분석했다’(194)라는 한나 아렌트의 대답. 한나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또 한 장면은 이 사진. 1950년대 한나와 남편 블뤼허의 사진이다






두 사람 간의 사정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한나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 편안함이다. 내 예상이 맞을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챕터 12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남편보다 유명한 아내. 남편의 수업 자료 같이 읽는 아내. 혹은 읽어 봐주는 아내.



블뤼허가 공통 과정을 진행한 첫해, 한나도 집에서 블뤼허의 수업 자료를 읽고 있었다. (203)

 


<전체주의의 기원>을 완독하는 것이 전 우주적인 바램이 되어 버린 지금, <한나 아렌트 평전>을 다시 읽으며 아렌트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맹세해야 할 시간이 돌아온 것 같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가 아니라면 이 책을 다 읽을 수가 없….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준비했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단발머리 아렌트 컬렉션. 많이 부족하지만, 아무튼 아렌트 컬렉션.






아렌트는 김치 냉장고 위에서도 현명하고 단단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우시며

대파 없이도 정치적 의사는 표명될 수 있다.


가자. 나가자.

씻고, 옷을 입고 대파 없이.

가자.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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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4-06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녀왔습니다 ☺️

단발머리 2024-04-06 11:30   좋아요 2 | URL
어맛! 이 부지런하신 분! 👍🏼👍🏼👍🏼
저 아직도 안 씻어서…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투표권 가지고 있으나 저랑 다른 맘인 저 어린이 아닌 어린이 데리고 가야 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06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곧 사전투표하러 나가요!

단발머리 2024-04-06 11:26   좋아요 1 | URL
잘 다녀오세요~ 방금 다녀온 사람 왈, 아직은 원활하다고 합니다!!

공쟝쟝 2024-04-06 12:07   좋아요 2 | URL
제가 사랑하는 비비언 고닉이 이렇게 씁니다.
“아렌트는 그 말이 맞다고 대답했다. 그에겐 유대 민족을 향한 사랑이 없었다. 그는 ˝독일 민족이든 프랑스 민족이든 미국인이든, 노동계급이든, 그 어떤 집단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말했다. 그는 친구들을 사랑했고, 그가 아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을 향한 사랑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점에 대해서 그에게 중요한 한 가지는 -몹시 중요한-그의 인생에서 유대인임은 그저 주어진 것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다른 무언가가되길 바란 적도 없지만, *유대인이었던 덕분에 사람이 다른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존재임을 허락받는 일이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그 모습 그대로임을 기본적으로 감사하게 되는 게 있다. ‘만들어진‘ 것이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는 점을 향한 감사다.˝ 개별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에 관한 이러한 견해를 통해 아렌트는 이전 30년 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가 사랑했던 것은 유대 민족의 ‘경험‘이었고, 이 경험이 일반적인 인간 조건을 고찰해보도록 가르쳐주었다. 아렌트가 이보다 얼마나 더 유대인다워야 한단 말인가?”

저는 한국인이고 ㅋㅋㅋ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아니라 내 경험과 조건을 가지고 사유해서 투표장에 갑니다. 물론!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다지만 ㅋㅋ (응?) 얼마나 한국인 스러운가…! 내 경험 땡큐!

단발머리 2024-04-10 15:31   좋아요 1 | URL
제가 궁금해하는 지점은 그런 거 같아요. 아렌트가 시온주의자들과 오래 일했고 또 본인도 감옥에 갇혔고 수용소에서 탈출했고, 친한 친구가 반유대주의 때문에 죽었는데... 그 경험을 가지고도 어떻게 그 경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그 생각이요. 그녀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걸 발견했을 때처럼 저는 요즘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아렌트는 이렇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었을까.

다락방 2024-04-07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사전투표를 하고 요가를 갔다가 친구를 만났습니다. 대파를 들고 오면 안된다니, 저는 정말이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그런 사고를 하고 그런 제지를 입밖으로 낼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단발머리 2024-04-10 15:2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투표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사실 대파 머리띠 제작하려다가 ㅋㅋㅋㅋㅋ 자중하자, 까불지 말자, 그래서 말았어요. 저 5살만 더 많았으면 진짜 만들었을 거 같고요.

사람들 진짜 열심히들 사는데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