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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ㅣ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평점 :
『사나운 애착』을 읽고 쓴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저거 꾀병이다'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손쉽게 재단하는 사람을 주의 깊게 본다. 고통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깨달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랬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아이 키우는 사람이 이 말을 하는 경우라면 더하다. 내가 보기엔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충분히 거짓말을 하는데 그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쟁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게 잘못이다. 아이들은 금방 탄로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데(학원에 안 갔는데, 다녀왔다고 말하는 경우), 어른들은 더 계획적이고 치밀하다. 어른들은 보통 생략과 강조의 방법을 사용하는데(네, 그래요. 제가 그렇습니다),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다른 부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중요한 사실이 보이지 않게 처리해 버린다. 아이들만큼 어른들도 거짓말을 잘하고, '저건 꾀병이야'라고 쉽게 말해버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매품, 저 사람은 엄살이 심하다.
"저건 꾀병이야"라고 잘 말하지 않는 내가, "엄살이 심하네"라고 잘 말하지 않는 내가, 읽는다. 남편 잃은 아내의 슬픔에 대해 읽는다. 갑작스레 남편을, 내 인생의 사랑이라 확신했던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의 좌절에 대해 읽는다. 그 절박함을 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시련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여성의 단호함에 대해 읽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생각한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 남편이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거, 엄살 아니야?
슬픔을 표출하거나 감당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들 곁에 있은 적이 있다. 잠깐 몇 시간을, 그리고 그 후의 시간을 같이한 경우도 있고, 3일 내내 같이 있었던 경우도 있다. 그중에 누구도 이렇지 않았다. 비비언 고닉의 엄마 같지 않았다.
엄마는 머리를 쥐어뜯고 살갗을 찢고 몇번씩 혼절했다. 누구도 감히 엄마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엄마는 기이한 투명 막 안에 홀로 격리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엄마 주변을 에워쌌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안으로 침범할 수 없었다. 엄마는 마법에 걸렸다. 귀신에 홀려 있었다. (245/829)
귀신에 홀린 것과 같은 상태. 실패와 좌절, 압도적인 절망감 앞에 그녀는 쓰러지고 또 쓰러진다. 그 광경을 지켜본 가까운 사람이 말한다.
물론 한 번씩 지머먼 아줌마가 스토브 앞에서 수프를 저으며 참지 못하고 구시렁거리곤 했다.
"하루 종일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자빠졌네. 나라면 말야. 집에 갔는데 남편이 죽어 있으면 경사났네 하겠어".(264/829)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 않는다. 완벽한 좌절, 완결된 실패 앞에서 아빠 잃은 아이들은 조연이 된다. 동생 혹은 사촌형을 잃은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된다.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고닉의 엄마에게만 비춰진다. '엄살이 심하군.' 이 생각이 다시 떠오르기 직전, 이런 문장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일어나려던 엄마는 마비라도 온듯 다리가 후들거리고 꼬여 다시 주저앉았다. 눈동자가 뒤집어지고, 사지는 흐느적거리고, 발은 땅을 딛기를 거부하면서 단두대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문으로 억지로 끌려갔다.(260/829)
그러니까, 이 '눈동자가 뒤집어지고'에서 내 마음도 같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녀는 '... 하는 척'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동자가 뒤집어지고 발을 제대로 땅에 내딛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그런 상태인 것이다.
남편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서. 가족이 아니라, 온 세계를 잃어서. 그녀는 울고 있다. 울부짖고 머리를 쥐어뜯고 살갗을 찢고 파놓은 무덤 속으로 뛰어든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려서, 다시는 찾을 수가 없어서.
이 책을 읽고 말하고 싶었던 건 당연히, 당연하게도 나의 엄마 이야기였다. 내 엄마가, 나의 엄마가 비비언 고닉의 엄마와 얼마나 다른지 쓰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친구들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다종다양한 엄마들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툭하면, 엄마를 앞에 앉으시라 하고는 쉼 없이 이야기했다. 엄마, 엄마가 제일 착해. 엄마가 엄마들 중에서 제일 착해. 10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20대 후반에 들어선 사촌 동생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엄마(우리 이모) 같은 엄마는 없어요. 이모(우리 엄마) 같은 사람은 없어요. 엄마, 이모 같은 엄마는 없어요.
이미 나는 많이도 놀랐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엄마에서부터 시작해 고닉의 엄마까지. 나는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도 내 딸에게 '그래도 엄마가 착해. 엄마들 중에서 엄마가 착한 편이야.' 이런 말을 듣고 싶지만, 글쎄.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착한 엄마는 아닌 것 같고. 우리 딸도 이리 말해줄것 같지 않아 쿨하게 접는다. '우리 엄마가 제일 착해' 이 말은 아빠에게나 많이 해드려야겠다.
후반부에는 고닉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비로소 『끝나지 않은 일』에서 고닉의 문장들이 이해됐다. 자세히 쓰고 싶은데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의 즐거움을 앗아가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만 쓴다. 참고로 이 책은 1987년에 나왔다.
고닉이 만난 남자들 가운데 니노(개새)와 비슷한 남자가 1명 나온다. 일부다처제에서 살았으면 참 좋았을 그런 남자. 니노 뒤의 괄호는 '페란테 피버'의 <나폴리 4부작>를 읽으신 분들만 동의하실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내게 니노는 그런 사람이라 저 표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실 괄호도 내가 많이 양보한 거다. 오히려 그 특정 동물에게 미안해지려고 한다.
바로 『짝 없는 여자와 도시』를 시작했다. M리의 서재에 있어서 읽기도 간편하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구입하려고 한다.
고닉이 나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