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책을 읽지 못한다. 방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읽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읽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다림질을 끝내니 밤 11. 딱 한쪽만 읽을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친다.

 


자연은 다양성 그 자체로 있는데, 인간은 다양성을 다양성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분류하고 통합하여 파악한다. 상징화한다. 약호화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실체들을 '자유 연상 조합association libre'으로 지각하고 그 안에 있는 내재적 상동성을 포착하고 여과하여 자신 안에 강렬하게 수용하는 동안 스스로 매혹된다. 강렬한 시선/바라보기 regard또는 관찰/주시 observation는 사랑하고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육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폭로하는 과잉 행동이다. 이미 예감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왜 뒤돌아보았는가? (9)

 



강렬한 시선, 바라보기, 관찰과 주시.

 















희대의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Twilight>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새로 전학 온 벨라에게 관심 있는 마이크는 미스테리한 컬렌 집안의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눈독을 들이는 걸 눈치챈다. 끼리끼리 커플인 컬렌 집안의 유일한 싱글. 여자애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최강 미모 에드워드가 벨라를 쳐다본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마이크가 이런 말을 한다.

 

”에드워드 걔, 기분 나빠. (벨라) 쳐다볼 때 먹는 거 보는 것처럼 쳐다본단 말이야.

 


이건 은유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적이다. 마이크의 감은 옳다.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에게 인간 벨라는 ‘먹을’ 음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의식을 가진 존재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벨라의 생각이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벨라는 에드워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눈맞춤.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는 것. 그를 내 눈에 넣을 듯 쳐다보는 것. 혹은 그를 그렇게 내 눈 속에 넣어버리는 것.

 


강신주는 우정과 사랑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정과 사랑은 함께 있을 때 기쁨을 준다. 함께할 때 행복하다. 차이는 헤어져 있을 때 확실해진다. 우정은 떨어져 있는 시간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만나면 즐겁지만 헤어져 있어도 괜찮다.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만날 때 행복하고, 헤어져 있을 때 힘들다. 떨어져 있는 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만나지 못할 때 괴롭다. 보지 못할 때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연인이 연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절절한 고백은 ‘사랑해!’나 ‘좋아해!’가 아니라, ‘보고 싶어!’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어. 너를 보고 싶어. 너를 내 눈에 넣고 싶어. 너를, 너를 내 눈동자에 가두어 놓고 싶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걸을 때 나는 자주 뒤에 선다. 뒤에 서서 걸어가는 가족을, 친구를, 내 소중한 사람을 바라본다. 모두 집으로 돌아간 어느 날 늦은 오후, 한 쪽 다리를 삐끗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 오후가 반복된다. 내가 뒤에 있음을, 내가 그를 보고 있음을 그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나는 뒤에 서서 그를 본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그를 본다. 내 시야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본다. 나는 눈맞춤을 바라지 않는다. 영원히. 영원히 그는, 그에 대한 내 사랑을 모를 것이다. 나는 뒤에 있으니까. 나는 주시한다. 바라본다. 그를 내 눈에 넣는다.

 

 


두 쪽 읽고 너무 말이 많았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좀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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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0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04-08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음...
강신주의 말을 읽어보니,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만약 강신주의 말대로라면,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연인도 만났을 때 기쁘지만 헤어지고나서 별로 불편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이게 제가 스스로를 연애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네요. 크-

아무튼 에드워드와 벨라를 제가 참 좋아했었습니다. 지금 에드워드는 애아빠가 되었고 벨라는 성소수자의 대표가 되었지요. 크-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단발머리 2024-04-10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강신주의 저 말 듣고/읽고 다락방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더랍니다. 사랑이라는 건, 같이 있지 못할 때 괴롭다고 하는 거에요.
아, 괴롭다. 보지 못 해, 괴롭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강신주의 정의니까,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에드워드와 벨라는 요즘 아주 잘 지내더라구요. 각자 ㅋㅋㅋㅋㅋㅋ에드워드가 차은우를 만났어요. 어디 패션쇼던가 그런 자리에서요. 차은우가 더 예뻐요. 더 멋지고 ㅋㅋㅋㅋㅋㅋㅋ 세월의 무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