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조금 늦게 합류한 편이었는데, 그러니까 친구들이 “아렌트!”, “아렌트!”할 때도 내게 아렌트는 ‘그냥 아렌트’에 가까웠다. 아렌트가 조금 다르게 보였던 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난 후였다.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그런 경험이 불러오는 억울함, 자괴감을 완벽하게 차단한 채, 학자적 엄밀성을 가지고 사안에 대해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인 것에 나는 적잖이 감동받았다. 그다음으로는 이 책, <한나 아렌트 평전>을 읽은 후, 나도 친구들과 함께 “아렌트!”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중립주의’ 혹은 ‘극중주의’가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명한 민주당 지지자나 확신에 찬 국민의힘 지지자 보다, 내게는 그 가운데 위치한 ‘중도’가 더 ‘아슬아슬해’ 보인다. 자신의 입장이 없다는 건, 지배 담론의 영향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생각은 ‘보수적’이기 쉽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종편만 보는 사람은 언제나 사시사철 보수정권만 칭찬할 뿐이고, 네이버 뉴스만 읽어서는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KBS는 ‘땡윤 뉴스’가 되어 버렸다. 매스 미디어는 이미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혹은 갖다 버렸다. 15년 이상 구독하던 한겨레 신문, 한겨레 21을 끊은 지 이제 5년이 넘어간다.
대통령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여권 비대위원장은 빨간 니트를 입고 투표를 할 수 있지만,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가면 제지를 당한다. 선관위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항의하는 정치 행위를 할 경우 다른 선거인에게 심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비밀 투표 원칙도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파 소지를 제한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니까, ‘정치적 행위’라서 안 된다는 설명인데, 사안을 해석하는 ‘정치적 안목’, ‘정치적 판단’은 어쩌란 말인가. 대파 들고 온 사람이 윤석열 정권에 화났다는 점을, 선관위는 알고 있다는 뜻인가. 다만 그 분노를 표현하지는 말라는 뜻인가. 집에 대파 없이 양파만 있는 사람은 걱정이 크다. 사 둔 지 며칠 안 됐는데, 양파에 싹이 났다. (내겐 흔한 일) 싹 난 양파 들고 가는 건 괜찮나. 그것도 정치적 판단의 영역인가.
한나 아렌트는,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모순이라고 생각했다(278쪽). 이게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 결론적으로 한나 아렌트는 정체성의 정치를 비판했는데, ‘정체성’만으로 규정되어온 역사적 존재가 바로 ‘여성’과 ‘유대인’이고, 한나 아렌트는 이 두 가지 요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이다. 한나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 책에는 여러 번, 한나가 ‘여성으로서의 특별 대우’(여성 최초의 ***대 교수)를 거절한 장면이 나온다. 그에 더해 유대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넘어선 사람만이 서술할 수 있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가 바로 한나인 점은, 한나가 여성으로’서’ 혹은 유대인으로’서’ 사고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나는 단독자로 존재했고, 오직 사유로 자신의 이해를 증명했다.
12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책 출간 이후 미국 학계의 반응과 그에 대한 아렌트의 답이 될 것이다. ‘전체주의의 역사를 쓴 게 아니라, 역사적 측면에서 전체주의를 분석했다’(194쪽)라는 한나 아렌트의 대답. 한나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또 한 장면은 이 사진. 1950년대 한나와 남편 블뤼허의 사진이다.
두 사람 간의 사정을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한나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 편안함이다. 내 예상이 맞을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챕터 12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남편보다 유명한 아내. 남편의 수업 자료 같이 읽는 아내. 혹은 읽어 봐주는 아내.
블뤼허가 공통 과정을 진행한 첫해, 한나도 집에서 블뤼허의 수업 자료를 읽고 있었다. (203쪽)
<전체주의의 기원>을 완독하는 것이 전 우주적인 바램이 되어 버린 지금, <한나 아렌트 평전>을 다시 읽으며 아렌트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맹세해야 할 시간이 돌아온 것 같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가 아니라면 이 책을 다 읽을 수가 없….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준비했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단발머리 아렌트 컬렉션. 많이 부족하지만, 아무튼 아렌트 컬렉션.
아렌트는 김치 냉장고 위에서도 현명하고 단단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우시며
대파 없이도 정치적 의사는 표명될 수 있다.
가자. 나가자.
씻고, 옷을 입고 대파 없이.
가자.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