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Lie (Paperback)
Anonymous / Poisoned Pen Pres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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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맥파든의 8번째 책이다. 한글책은 원서와 같은 제목 『네버 라이』이고, 소개와 줄거리는 <알라딘 책소개>에 자세히 나와 있다. 줄거리와 그 전개,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이 이야기를 써 보자.

기본 구성은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서술된다. 화자는 트리샤와 에이드리엔, 두 사람이다. 트리샤와 이선이 커플이고, 에이드리엔과 루크가 다른 커플이다.

화자 중 한 명인 에이드리엔은 현직 의사인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깊이 투영된 인물처럼 보인다. 특별히 정신과 상담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이해와 교감, 갈등과 감정의 대립이 대화 속에서 실감 나게 표현된다. 응, 맞아~ 응, 그랬구나~ 정도의 적당한 응대와 이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추적, 그에 대한 판단과 이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수련된 사람이어야겠구나 싶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사람의 슬픔과 절망, 분노와 후회의 감정이 일정 정도 해소될 수 있겠지만, 심각한 성격 장애와 트라우마에 대해서라면 전문적인 치료와 처치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중간 중간 멈춰서 '범인이 누구일까' 생각한다. 나는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무서운 책, 무서운 영화를 '무조건적으로' 꺼리는 사람이다. 범인이 누구일까. 여러 번 멈춰서 생각해 봤지만, 내가 예상한 사람(들)은 범인이 아니었다. 지난 책에서도 범인을 맞추지 못했던 나는 이번에도 예상이 '틀렸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차근히 찾아보려 했다. 추리 능력의 부족함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고정적인 '피해자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에게 잠재적인 가장 큰 위협은 남성이다. (정확히는 '가까운' 남성). 남성에게 잠재적인 가장 큰 위협 역시 남성이다.("강도, 방화, 폭행 등으로 사망한 사건을 제외하고 살인 사건 피해자만 따지면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또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78%에 이른다" - <한겨레 21>, 1393호) 단순한 통계조차 믿지 않는 특정 성별(남성), 특정 연령대(2, 30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테지만, 프리단의 문장은 사실이다. 남자 친구를 갖게 된다는 건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과 동시에 삶의 위협 요소일 수도 있다.

동시에 젠더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만 한다. 젠더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자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젠더는 전부가 아니고, 전부일 수도 없다. 여성을 피해자의 자리에만 위치시킨다면, 지난 3년간 이 나라를 실제적으로 지배했던 김건희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간의 과정에서 김건희가 보여줬던 적극성, 능동성, 그 폭발적인 활동성조차 무능력한 윤석열 때문이라 말해야 하는가. 여성은 항상 피해자인가. 약자는 항상 선한 존재인가. 범인을 맞추지 못한 스릴러 입문자의 머릿속에는 질문이 계속 맴돈다.

여성 집단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압박과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외모에 대한 통제, 출산 강요, 엄마의 역할에 대한 강제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되는 이 불합리함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념'의 실천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성별'의 문제로만 이해하면 그 본위(?)을 벗어난 여성과 남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을 놓쳐버리게 된다. 개별적 존재를 집단의 일부로만 치환하지 않으면서도 개별적 존재의 특별함을 구분하는 섬세함과 정밀함이 필요하다.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도착했다. 에이드리엔의 말이다.


사랑을 생각할 때 내가 자주 떠올리는 지점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무력감'에 대한 부분이다. '사랑에 빠졌다'라거나 '마법 같은 사랑' 혹은 '열병 같은 사랑'이라는 문구가 쉽게 허용되는 이유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밀당'은 '사랑'이라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감정의 변화와 의지의 변환, 행동의 추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본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그 격동의 진폭을 스스로 조정하거나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유일한 구원은, 그녀가, 그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의 사랑에 응답해 주는 것이다. 이건 강제할 수 없다. 강요할 수 없고, 청원할 수 없다. 혹 어떤 사람이 그러한 방식으로 사랑을, 마음을, 열정을 획득했다면 그는 계속해서 그 진실성을 의심할 것이다. 원하는 건, 자발적 사랑이다. 그녀의 선택, 그의 확언. 그것만이 필요하다.

환자들에게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는 에이드리엔에게 루크가 말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울음을 터뜨린 에이드리엔에게 루크가 말한다. 내게 똑같이 말해주지 않아도 돼.

나는 이 장면이 좋았다. 루크가 에이드리엔에게 'I love you.'라고 말해줘서가 아니라, 'You don't have to say it back.'이라고 말해줘서 좋았다. 그녀 앞에 자신이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해서 좋았다. 사랑으로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겠다고 해서 좋았다. 부담 갖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져서 좋았다. 진지한 사랑을 부담감 없이 표현하려고 해서 좋았다. 심장을 내놓고서 내 사랑은 죽을 때까지 너밖에 없어,의 사랑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고, 내 마음이 그래, 그렇게 말해서 좋았다.

어제는 말복이라 시어머니랑 오리 백숙을 먹고, 백화점에 가서 엄마 양산을 사고, 딸롱이가 신청한 왕김말이 어묵과 악어 떡볶이를 샀다. 휴가 가지 않는 여름이 오히려 더 시원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팥빙수를 먹으며 1초간 했다.

(잭 리처, 귀 막아주세요.)

프리다 맥파든이 내겐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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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8-11 0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리다 맥파든의 책을 이렇게 멋지게 분석하여 글을 써주셔 감사하네요. 잠시 출타 중이신 그 분을? 대신하여 제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ㅋㅋㅋ
프리다 책 세 권을 읽고 듣고 했는데요. 그 중 유일하게 범인을 못 맞춘 책이 이 책이었네요.
단발 님의 글을 읽다 보니 저도 너무 젠더에 빠져 있었구나.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범인을 확인한 순간 정말 깜짝놀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프리다 맥파든 이 작가 뭐야?!가 되어가지구선…ㅋㅋㅋ
여름엔 프리다 맥파든을 읽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ㅋㅋㅋ (잭 리처 님 표정.🥺ㅋㅋ)
오리 백숙도 신의 한 수네요.
그리고 악어 떡볶이는 뭘까? 생각하다가…
빙수 사진 보고 헙! 했네요.
속이 시원해집니다.
휴가를 몇 년째 가지 않은 제가 공감 많이 하고 있어요.ㅋㅋㅋ

단발머리 2025-08-11 10:32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감사의 말씀에 심오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책나무님 범인 너무 잘 맞추시는 거 아니에요? 저는 딱 한 권 맞췄단 말입니다! 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진짜 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해볼 예정입니다 ㅋㅋㅋ 오리 백숙은 아이들은 같이 안 먹으려고 해서요. 어른들만 먹게 되네요. 전 커피와 쿠키만으로도 만족하는데 아… 팥빙수는 참을 수가 없네요. 리처한테 미안하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번 여름은 맥파든과 함께! 😍

바람돌이 2025-08-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맥파든 책 중에서도 결이 좀 다른 책인거 같아요. 사건의 전개야 식상할정도로 클리세 투성이인데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완전히 반대로 비틀어버리니까 어 이거 뭐야 이러게 된다죠. 너무 생뚱맞아서 저는 좀 별로였는데 앞으로 프리다 맥파든이 이런 캐릭터도 좀 더 다듬으면 완전 다른 추리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됐어요. 뭐 지금 나오고 있는 소설도 신선하긴 했지만요. ㅎㅎ
원서로 읽는데 속도가 장난 아니신데요. 얼마전에 핸디맨 읽으셨잖아요. 와 이건 한국어 속도랑 비슷한 거 같은데 능력자셨군요. ^^

단발머리 2025-08-11 10:24   좋아요 1 | URL
저는 범인을 잘 못 맞추거든요. <하우스 메이드> 한 번, 그 때 딱 한 번 맞췄습니다. 이번에는 혹시 이 사람, 혹시 저 남자? 이러면서 머리 굴려 봤는데 틀렸구요. 저는 프리다가 너무 과하지 않아서 좋거든요. 많이 폭력적이지도 않구요. 킨들 연장해서 더 읽어볼 용의가 ㅋㅋㅋ용의가 있습니다.

핸디맨은 조금 전에 읽었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린 거라서요. 속도가 빠르지도 않을 뿐더러 전자책이라 휙휙 넘겨버리네요 ㅋㅋㅋ자세한 내용 토크 금지입니다🫣

헬가 2025-08-11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멋져요 집중한 포인트가 콱 들어오네요 인사한번 안드렸지만 님의 글이 올라오면 늘 눈 빤짝이며 읽기시작하는 1인 애독자예요 글 너무 가끔말고 자주 써주셔요~~~~

단발머리 2025-08-11 21:51   좋아요 0 | URL
헬가님! 반갑습니다^^
눈 빤짝이며 읽는다고 해주시니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기특한 결심을 하게 되네요ㅎㅎ 저도 자주 쓸테니 앞으로 자주 뵈어요!

건수하 2025-08-11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다 맥파든이 점점 궁금해지는 중입니다.

얼마 전 제가 재미있게 읽은 <Love Hypothesis> 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더군요.
You don’t owe me anything :)

팥빙수가 맛있어보입니다-

단발머리 2025-08-11 21:58   좋아요 1 | URL
프리다 맥파든이, 제게는 전혀 새로운 세계라 신나게 읽고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는다는게 이런 걸까요? 건수하님? 저 문장은 챕터 17에 나온 문장인데 ㅋㅋㅋㅋㅋㅋㅋ이런 이야기를 건수하님과 나눌 수 있어서 마냥 즐겁구요. 제가 예전에 이 책의 보너스 챕터 이야기 페이퍼로 썼는데 기억나실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 책 사서 읽었을 때는 없었구요, 최근에 발간된 책에는 보너스 챕터가 들어가 있는데, 그건 애덤 버전에서 쓴 에피소드잖아요.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위의 문장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한 번 적어 보겠습니다.

He doesn‘t want anything in return.
She doesn‘t need to fall for him, because he loves her enough for the both of them.

올해 저의 발견과도 같은 폴바셋 팥빙수, 맛있습니다^^

건수하 2025-08-11 23:14   좋아요 1 | URL
앗 제가 읽은 책에는 그 보너스 챕터가 없던데… 궁금해집니다. 한국어 번역본에도 그 보너스 챕터는 없겠죠? 전 보답이 없는 사랑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애덤은 그래서 오래 표현하지 않고도 잘 버틸 수 있었나봐요.

단발머리 2025-08-12 07:39   좋아요 1 | URL
건수하님, 굿모닝! 아, 건수하님과 이 책 토크 계속 하고 싶네요..... 자중하려 했으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오른쪽 분홍색 동그라미 속에 ‘Now with Bonus Chapter‘라고 쓰인 책에 들어 있더라구요. 저도 예전에 산 거라 보너스 챕터가 없습니다. 한국어 번역본도 제가 읽었을 때는 없었고요. 근데 지금쯤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이 책을 반복해서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오디오북이에요. 오더블의 그 성우, 특히 올리브를 맡은 여성분의 목소리와 그 톤이 저는 참 좋더라구요. 운전할 때랑, 수건 접을 때 틀어놓기도 하구요.
제가 요기 이 페이퍼,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6407979 에 자세히 적었는데요. 이 책의 오디오북을 사고 이북을 사고 킨들앱에서 플레이를 누르면, 두 가지가 연동되어서, ‘집중듣기‘ 방식으로 영어 텍스트를 들을 수 있더라구요.
오더블은 예전에 한 달 무료가 있었거든요. 혹 저처럼 애덤을 좋아하신다면 이런 방법으로 애덤을 가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건수하 2025-08-12 08:18   좋아요 1 | URL
전 애덤보다 올리브가 좋더라고요. 집중듣기… 리스닝에 무척 약하지만 올리브 목소리가 좋다니 시도해보고 싶네요 ^^

icaru 2025-08-28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톰 크루즈가 나오는 잭 리처 시리즈 영화들도 단발머리님 페이퍼에서 슬쩍 보고 골랐더랬는데 ㅋㅋ 저 단발머리님 발자국 찾기 하는 중

단발머리 2025-08-28 17:20   좋아요 0 | URL
저 여기 있어요 ㅋㅋㅋ발자국 찾지 마시고 ㅋㅋㅋㅋㅋ어디 가지 마세요 ㅋㅋㅋ
 












프리다 맥파든의 일곱 번째 책이다. 원제는 『The Locked Door』이고, 한글책은 『핸디맨』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제목과 깔마춤으로 원서는 빨간 문이 표지이고, 『핸디맨』은 조금 자극적인 손 모양, 손의 모습을 정중앙에 배치했다.

희대의 살인마 애런 니어링의 딸, 노라 니어링은 이름을 노라 데이비스로 바꾸고 과거를 감추고 살아간다.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가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극도로 경계하며 혼자 살아간다. 단출하고 반복적인 생활에서 노라가 기쁨을 얻는 장소는 퇴근길에 들리는 작은 바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Old Fashined'를 그녀의 취향에 딱 맞게 만들어내는 바텐더가 있는데, 몇 번의 마주침이 있고 나서야 노라는 그가 대학 때 잠깐 사귀었던 브래디라는 걸 알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외톨이로 살아가는 노라. 그녀의 작은 즐거움인 Old Fashined. 그 음료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오가는 길에 그녀의 삶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이 다가온다. 그 위험은 전혀 다른 두 명의 남자로부터 온다.

프리다 소설 속 남자들은 완벽하다. 대다수가 그렇다. '완벽한'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을 밀어내고 밀어내도, 다시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남자, 다정한 남자, 압도적인 외모의 어떤 남자가 다른 여성들의 무수한 플러팅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녀들에게 접근한다. 그녀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노라의 차가 정체를 모르는 사람의 공격으로 타이어가 펑크 난 상황에서 브래디는 자신이 노라를 대신해 차를 수리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정신적으로도 혼란했던 시기에 시간마저 부족했던 노라는 그 일을 브래디에게 부탁한다. 브래디가 노라의 차를 수리한 이후에 그녀를 찾아온다. 바로 이 장면.




나는 브래디가 좋았다.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노라를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나는 브래디가 범인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노라에게 접근한 게 아니기를 바랐다. 복수를 위해 노라를 노린 게 아니기를 바랐다.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했다. 외롭고 쓸쓸한 노라의 삶의 단 하나의 가능성으로서의 그가 부디, 성공하기를 바랐다. 노라가 한 사람을, 그를 이해하는 한 사람을 찾아내길 바랐다.

하지만, 노라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뒤로 한 걸음 아니 두 걸음 물러서는 그의 모습에 나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어깨를 토닥여주는 한 사람이 되어주길 바랐는데. 괜찮을 거야,라는 틀에 박힌 말이라도 그녀의 편에 서서 해주는 사람이길 바랐는데....

반전과 그다음의 반전에 대해서라면 여기에 쓰지 않는 게 좋겠다. 무해한 듯 보이는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악마성과 허울 좋은 웃음이 사실은 진심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이 책에는 있다.


킨들을 구매하니 킨들 언리미티드가 한 달간 무료라고 해서 프리다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다. 책의 물성을 사랑하는 1인으로서 손에 책을 탁! 잡아보는 그 순간이 한없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도 굳이 꾸준히 사진은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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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다의 책 중에서도 이책은 반전의 반전이랄까? 인물에 대한 기대를 여러번 뒤집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우스 메이드가 처음이라 깜놀한 효과가 아니었다면 핸디맨이 제일 좋았을거 같아요. 표지는 영문판이 훨씬 좋네요. 한국어판 약간 싸구려스럽지 않나요? ㅠㅠ
킨들과 쿠키와 커피 사진으로 힐링합니다

단발머리 2025-08-08 19:05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도 여러 권 중에 이 책이 조금 더 좋았던 거 같아요. 그래도 저는 하우스 메이드에 1등을 ㅋㅋㅋㅋㅋ 주고요. 둘이 경합이 심하군요.
저는 한국어판 표지가 언뜻 보아도 자세히 보아도 별로인지라 왜 이렇게 표지를 만들었는지 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시선을 끌었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것 같고요.
쿠키와 커피는 다 먹고, 이제 킨들만 남았습니다. 또 먹고 싶네요^^

망고 2025-08-08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은 모르지만 미드 매드맨에서 주인공이 즐겨 먹는 칵테일이 올드 패션드라 저건 무슨 맛일까 궁금하긴 했어요 분명 쓰겠지만😆
프리다 맥파든 소설을 계속 쭈욱 읽어 나가시는 군요 저는 한권도 읽은게 없어 궁금하긴해요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읽을까 했는데 대출중이더라고요 인기소설이란걸 실감했어요
커피랑 쿠키 사진 따스하고 좋아요

단발머리 2025-08-09 21:30   좋아요 1 | URL
아~~ 그렇다면 올드 패션드라는 건....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만한, 널리 알려진 그런 맛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그 세계는 잘 몰라서 추측할 뿐이지만요.
맥파든 소설은 영어책 같이 읽는 모임에서 <하우스 메이드>로 시작했는데,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스타일이라서 여러 권 읽게 되었어요. 설정이 비슷한 면이 많은데도 작품마다 조금씩 달라서 아직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읽어가고 있습니다.
커피랑 쿠키 사진 찍을 때 협조적인 사람과 비협조적인 사람이 있거든요ㅋㅋㅋㅋㅋㅋ망고님이 좋게 봐주시니 협조적인 사람과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8-10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다 맥파든을 킨들로 읽는 여자!
그리고 멋진 디저트와 함께 카페에서 읽으니 제가 저 군중 속에 있었다면 몰래 훔쳐 보며 하트 뿅뿅을 날렸을 것 같아요.ㅋㅋㅋ
맥파든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떤 작가일까요? 늘 핸섬가이가 등장하고 멋진 여성도 등장시키는 걸 보면 외모 지상주의인가? 싶지만 그 인물들에게 반전을 취하게 만들어 버리니 또 그건 아닌 것 같고…책을 읽을 수록 묘한 느낌을 받아요. 인물들의 심리전은 페이지 훅훅 넘어가구요. 아. 물론 전 번역서를 읽고 있기에..ㅋㅋ
더코워커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는데 지금 후반부 막바지거든요. 근데 낭독 목소리 속도가 넘 느리게 들려 뒷내용들이 궁금해 죽겠는 거에요. 내털리가…돈이…갈수록 헉! 했네요. 뒤에 또 반전이 더 있을까봐 계속 듣는 중입니다.
네버라이는 답답해서 글로 읽는 중이구요.ㅋㅋ
다음엔 핸디맨을 읽던가 듣던가 해야겠습니다.
책 표지를 보구선 건너띄려고 했었는데 그러면 안되겠군요.ㅋㅋㅋ

단발머리 2025-08-11 19:24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의 하트뿅뿅은 거기서 보내셔도 제가 여기에서 샤사삭 잘 받을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날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외모에 대한 묘사가 좋기는 합니다ㅋㅋ 사람에 대한 호감에서 시각적 부분이 차지하는 걸 모른척 할 수 없고요 ㅋㅋㅋㅋ그런 극호감의 외모 뒤에 숨겨진 그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이 제게는 재미있습니다.
<네버 라이> 다 읽으시면 어떠셨는지 페이퍼를 꼬옥~~ 부탁드립니다. 범인 못 맞추는 사람 저 뿐인가 하노라^^
<핸디맨>이 저의 맥파든 랭킹 2위입니다. 1위는 역시나 파란책이구요. 표지를 살포시 감추시고 1독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다락방 2025-08-17 22:53   좋아요 1 | URL
오 핸디맨은 제가 프리다 맥파든의 소설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었는데, 단발머리 님께 그 책이 랭킹 2위란 말입니까? 저는 사실 지금 아주 굵직한 줄거리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아서 하우스메이드 바로 다음이다! 하지는 못하겠거든요. 그러면 다음은 무엇이냐, 하면 그것도 사실 잘... 흠흠.
 




















2층의 아내. 위층의 아내. 2층에 살고 있는. 살고 있는? 혹은 감금된?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제인 에어의 기운. 제인 에어라면 역시나 같이 떠오르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여전히 미쳐 있는 바로 그 여자.

의문의 저택, 날씨에 따라 자주 접근이 거부되는 외딴 저택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the wife를 돌보기 위해 온다. 2층의 wife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그녀의 남편은 프리다의 다른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처럼 완벽한 hot guy이다. 잘생겼고 다정하며 사회적으로도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남자이다. 글 쓰는 사람, 소설가.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화자의 상대 남자는 F와 A이고, the wife upstairs의 상대 남자는 A와 M이다. A는 같은 사람이니깐, 실제로는 남자 3명이 등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몸을 죄어오는 찜찜한 느낌에 더해 하나둘 비밀이 드러날수록 남자 3명 중 어느 한 사람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그녀가 의지하는 사람은 the wife. 위층의 아내, 바로 그 사람뿐이다.



말할 수 없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몸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가눌 수 없는 사람. 진실을 종이에 적어두었던 사람. 진실을 묻는 질문에 답조차 할 수 없는 사람. 화자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질문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다. 말하기를 부정당한 어떤 사람. 말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

말할 수 없는 이 여성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아직 구매 전이기는 한데, 결제하자마자 집에 달려올 것이 확실한 어떤 책이 다가오고 있다. 그 책은 바로 바람돌이님의 고급스러운 리뷰에 등장했던 바로 이 책인 것이며.










7월의 주제는 탈식민주의였고, 7월의 인물은 스피박이었다. 아는 것을 비워가는 것에 대해 나는 곰곰이, 찬찬히, 천천히 많이도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답은, 내 물음은 같은 자리를 반복하고 있다.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비울 수 있는가. 소유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언어가 없는데 어떻게 쓸 수 있는가. 물음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쌓인 물음에 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끝내 물어야 하고, 그리고 답해야 한다.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질문한 사람은 알고 있다, 이미 그 답을.

내가 질문하면 답해줄 수 있는 분이지만, 질문할 수 없는 분이 한국에 오셨다. 집안 분이시다, 나랑 돌림자.

스피박. 가야트리 스피박.







내게 가야트리 스피박은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의 스피박이다. 델리의 거리를 달리는 스피박에게 상류계급 남자들이 다가와 침을 뱉는다.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주 침을 뱉는 40대 후반의 스피박. 내게 스피박은 그런 사람이다. 눈앞의 그녀는 이제 지팡이를 든 83세의 노인이다. 귀에 딱 떨어지는 딕션과 청량한 웃음소리. 오래오래 가르침을 받고픈 스승의 모습이, 눈앞에 있다. 현재를 넘어 미래를, 미래를 다시 상상하라는 명령을 들었다.

질문은 종이에 적었다. 언제 답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질문은 적어 두었다. 질문은 현재의 일이니까.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를 살기 위해. 질문을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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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3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까지 에밀 졸라의 아소무아르 그러니까 그 유명한 목로주점을 읽었어요. 제인에어의 버사가 말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주인공 제르베즈는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의 언어로 사고하고 말하다 결국 자신의 삶을 진창에 처박아버리게 되는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면서 진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가야트리 스피박님 이름만 들어봤는데 단발머리님 글 읽으면서 궁금증이 확 커지네요. 책을 직접 읽을 엄두는 안 나서 생긱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저 책이라도 읽어야겠어요. 사진 속 스피박님 포스가 너무 멋져요. 거기다 단발머리님 집안분이니까 허감이 더 쑥쑥... ^^

단발머리 2025-08-03 22:44   좋아요 1 | URL
그 유명한 목로주점을 읽고 계시는군요. 주인공은 제르베즈이고요. 저도 좋은 날에 에밀 졸라의 책 도전하고 싶어요.

가야트리 스피박의 책은 학계에서도 어렵다고 정평이 났다고 해서 읽는데 부담 갖지 않으셔도 좋을거 같아요. 저는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를 참 좋게 읽어서 그 책으로 스피박 여행을 시작하셔도 좋을 거 같아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준비해 갔는데, 부끄러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같은 돌림자, 집안분인데 말입니다. 하하하!

다락방 2025-08-04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와서 스피박이 온 것도 단발머리 님 덕에 지금 알았고 그 분을 직접 만나고 음성을 듣기 위해 단발머리 님이 가셨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게다가 프리다 맥파든의 윗층 여자 라니요. 저는 읽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읽고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저에게 기쁨입니다. 단발머리 님덕에 오늘 알라딘 들어온 기쁨이 큽니다!

단발머리 2025-08-04 13:55   좋아요 0 | URL
진짜 오랜만에 글을 썼는데 다락방님이 반겨주셔서 너무 좋네요 ㅎㅎ 스피박이 한국에 오셨답니다. 스피박을 안 읽었지만 제가 스피박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큰애가 알려줘서 가게 됐어요.
준비할 거 많으셔서 읽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거라 예상되기는 하는데, 다락방님 안 계시니 많이 적적하네요. 읽고 쓰는 즐거움을 제가 다락방님께 쬐금 드렸다면, 다락방님도 얼른 그 기쁨을 돌려주세요~~ 거대한 군단들이 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5-08-04 20:14   좋아요 1 | URL
스피박을 알려주는 큰 애 라니요. 스피박을 알 수 있는 엄마라니요. 너무 멋진 거 아닙니까!!

단발머리 2025-08-04 21:05   좋아요 0 | URL
이게 다 저희 집안 분이기 때문이구요. 돌림자라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이 멋지다고 해주셔서 해피 포인트 급상승!! 🥳😍😎

독서괭 2025-08-04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스피박 강의를 들으셨군요!! 얘기만 듣고 내용은 모르지만 ㅠㅠ 멋집니다...
그사이 프리다맥파든 책을 또 한권 읽으셨군요. 진정한 맥파든 마니아! 저는 이번달은 다락방님 추천 책 읽으려고 주문해놨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5-08-04 20:14   좋아요 1 | URL
네, 제가 스피박님 실물 영접의 영광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리단 맥파든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제가 킨들 샀다고 자랑했던가요? 킨들 리미티드 한 달 무료라서 많이 읽어야하는데, 생각보다 더디게 그러나 진지하게 ㅋㅋㅋㅋㅋㅋㅋ 맥파든을 읽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5-08-04 20:15   좋아요 2 | URL
제가 짬이 나면 같이읽기 페이퍼를 쓰겠습니다. 제가 알라딘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ㅠㅠ

단발머리 2025-08-04 21:07   좋아요 1 | URL
아.... 100년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잊지 말아주세요~~~~~~
이것저것 챙길 일들이 많아 바쁘신거는 예상하고 있으니까요. 다락방님, 뽜야!!

독서괭 2025-08-05 18:00   좋아요 1 | URL
크흑 다락방님 너무 바쁘시군요 ㅠㅠ 제가 올렸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8-05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라는 문구는 음…제 상상력의 대반전을 이루는 페이퍼가 바로 이것이로군요.
전 진짜 재미나게 놀고 계시는 줄?ㅋㅋㅋ
암튼 각설하고…
스피박. 와 스피박 그 유명하신 분이 집안분이셨군요?ㅋㅋㅋㅋ
집안 사람 다 찾아 보면 어쩌면 우린 정말 어깨 힘 주고 다녀도 될 것 같아요.
와 스피박 님이 내한 하신 것도 놀랍고 생각보다 연세가 많으셔서 놀랐으며 그럼에도 눈이 너무 초롱초롱 똘망하시어 놀랐습니다. 뭔가로 이름을 떨치신 분들은 뭐랄까요?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아요. 스피박 님도 그러시군요.
비록 저 분의 책을 읽지 못해 정확한 활동을 알고 있는 게 없지만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그 책은 제가 읽었었기에 괜한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찾아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
현재를 넘어 미래를 상상하라는 명령도 좋네요.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앞서 지혜롭게 살아가신 분들이 한 마디, 한 마디 일침을 가해주신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알아들어 소화를 잘 해내야 하는 게 큰 숙제이긴 합니다만…요즘 나이 먹어갈수록 이해력이 딸려 조금 위축되어가고 있어서.ㅋㅋㅋ
근데 단발 님께는 똑똑한 따님을 두고 계셔 저런 좋은 시간도 보내시고 참 좋으시겠어요.^^

단발머리 2025-08-05 22:5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걸음이 조금 불편하신지 강의실에 입장하실 때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셨구요. 강의는 서서 하시기는 했는데, 연단에 기대서 하셨어요. 지금 보니깐 위에는 그 사진이 없네요. 안경도 썼다 벗었다 하셨구요. <생각하는 여자는...>으로 친근감을 느끼셨다니 더욱 반갑구요.

큰애가 똑똑하기 보다는 ㅋㅋㅋㅋ 제가 스피박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는데 저도 놀랐어요. 제가 많이 이야기했나봐요. 호호호.
좋은 시간 감사하고, 이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이런 다정한 댓글을 써주시는 분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프리다의 『The Coworker』를 읽었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거북이를 사랑하는 한 여성과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 아름다운 금발 여성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그렇게 끝을 맺는다. 그런데, 아. 여기까지 읽었는데 67퍼센트네? 그럼 뒤에, 그만큼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말인가요?

상대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사람 사이의 역사. 아니, 그 사이에 또 다른 사람의 삶이 엮인 과거의 일들이 차례차례 소환된다. 오랜 시간 준비한 철저한 복수극은 이렇게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아, 근데 잠깐. 이야기가 왜 그리로 가나요? 아니, 왜, 옆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아니, 잠깐만요. 자꾸 그쪽으로 갈 거예요?

바로 이 순간, 윤석열 구속 취소 & 석방의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윤석열 석방은 지귀연의 미친 짓 때문이었지만, 이 석방은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 아, 그럼 당신이 범인이 아니고, 아니 그러면 그 피해자는 또 어디에 있는 거죠? 아니, 그래서 이 이야기, 이거 지금 어디로 가나요?

이렇게 쫓아다니면서, 거의 마지막 부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다가 결국, 마지막 가서야, 비로소 주인공은 진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갈등은 해소되고,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두 사람. 이 작품을 끌고 가는 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진실을, 거짓 속에 감춰진 진실을 알고 있다. 두 사람만 알고 있다. 서로가 알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다. 그 비밀은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영원히 묻혀 있을 것이다.

프리다의 이 작품은 이 소설이 속한 장르가 스릴러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게 만들고, 시체 없는 살인에 대한 괴이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잔인하거나 선정적이지 않고, 폭력적인 장면도 별로 없어서 나처럼 겁 많은 독자가 읽기에 적당한 스릴러인 듯하다.










프리다의 『The Housemaid's secret』에서 나는 '비밀'에 꽂혔더란다. 이 작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상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 혼자 곰곰이.










이상화를 잘 하면 우리는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연인이 평범한 사람이란 걸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짜증 나는 버릇과 기벽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처럼 그에게도 초조함, 걱정, 의구심, 불안감, 우유부단함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과거 때문에 중압감과 갈등에 시달린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하버드 사랑학 수업』, 456쪽)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떤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상화하게 된다. 눈이 하트로 가득 차 있을 때, 그 사람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손색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이는 그 사람의 한 면만을 보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불안해하고 짜증 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 내가 그녀/그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걸 모른다. 그 간단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Caleb believes I'm a better person than I am. He can never know the truth. (<The Coworker>, 353/361)


나는 나를 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심보가 고약한 사람인지, 소심하게 복수하는 사람인지, 이중적인 사람인지에 대해서,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다. 이런 나를, 내가 이상화하는 그 사람이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할 때, 사랑을 고백할 때, 그 이야기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믿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이 나라니. 그 사람이, 괜찮은 바로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니, 당최 믿을 수가 없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뭘까. 그가 '실제'의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 잠깐, 본질과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논할 수 있지만, 이 글은 핑크 무드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생략) 나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그 엄청난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가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짐작해' 버리는 것이다.










『The Love hypothesis』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잦은 인용 송구합니다ㅋㅋ 제가 계속 읽고 있는 책이 이 책입니다)



올리브는 애덤의 베프 홀든 교수를 통해 애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fake relationship의 상황에서 애덤이 예전부터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에 올리브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같은 과에 속한, 애덤이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너(올리브)와 애덤이 사귀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홀든이 말한다. 애덤에 대한 호감이 점점 커져가는 걸 어렴픗이 느끼고 있던 올리브.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서로의 필요를 위해 사귀는 '척' 할 뿐인데, 그가 예전부터 짝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그랬다면 그 사람은 내가 아니야. 홀든이 말했던, 같은 과의 'amazing girl'은 내가 아니야. 내가 될리 없잖아. 그럴 리 없잖아.

이건 자존감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사랑을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을 때, 내가 그를 이상화시키고 있는 그 조건에서,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진지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랑의 일은 다르다.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상화 때문에 그와 나와의 간극은 더 멀어진다. 그는 아름답고 나는 평범하다. 그는 멋져 보이고 나는 초라해 보인다. 그는 완벽해 보이고 나는 실수투성이로 보인다. 그러니 김수희가 노래한 거 아닌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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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7-15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십대 중반에 혼자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같이 근무하는 여자후배가 그 남자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짝사랑 했었어요. 그래서 끙끙 앓다가 고백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몇몇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후배가 나가면서 저한테 그를 밖으로 불러달라고 하더라고요. 다 모인 자리에서 잠깐 나가보라, 후배가 얘기하고 싶은게 있단다, 라고 했거든요. 그 날 후배가 고백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 남자가 거절하면서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대요. 후배가 그 얘기를 전하면서 ‘그거 언니 아니에요?‘ 하는데, 저도 어쩐지 ‘그거 난가?‘ 했어요. 단발머리 님이 쓰신 페이퍼와 완전히 반대되는 사례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는 잘 지내고 있을런지.. 벌써 이십년 전인데 결혼해서 아이가 있을지... 취미로 음악하는 남자였는데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을지.....

단발머리 님이 자주 인용하시는 앨리 헤이즐우드 책이 좀 많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체코와서 알게된 책 중에 하나가 <Not in love>인데 혹시 읽으셨어요? 그거랑 <체크 앤 메이트> 도 있더라고요. 아이참. 얼른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이걸 다 읽어야될텐데 마음이 급합니다.
서점에 앨리헤이즐 우드 책 쫙 나란히 있는거 보고 아니, 이 작가 책이 많네, 했어요. 그런데 국내 번역은 두 권.. 빨리 번역되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5-07-16 09:17   좋아요 0 | URL
저는 제 페이퍼랑 다락방님의 그 에피소드가 사실은 같은 이야기 같아요. 설마 나일리가 있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고? 이거하고 ‘그 사람이 나인가?‘ 이거하고요. 사랑할 때 사람은 취약해지죠. 저는 그런 점이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좋아요. 하지만, 그 느낌 말이에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느낌‘ 역시 넘나 소중한 것이구요. 사실은 더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제게는 정말 ㅋㅋㅋㅋㅋ언제적 이야기인가 싶어요. 취미로 음악하는 남자는 계속 취미로 음악하고 있었으면 좋겠구요....

앨리 헤이즐우드 책이 많지요. 좀 짧은 책들도 있고 별로인 책들도 있습니다. <Not in love>도 읽었네요, 제가 ㅋㅋㅋㅋㅋ <체크 앤 메이트>는 안 읽어봤구요. 빠른 번역 부탁드립니다!

다락방 2025-07-15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십대 중반에 혼자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같이 근무하는 여자후배가 그 남자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짝사랑 했었어요. 그래서 끙끙 앓다가 고백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몇몇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후배가 나가면서 저한테 그를 밖으로 불러달라고 하더라고요. 다 모인 자리에서 잠깐 나가보라, 후배가 얘기하고 싶은게 있단다, 라고 했거든요. 그 날 후배가 고백했는데, 그 자리에서 그 남자가 거절하면서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대요. 후배가 그 얘기를 전하면서 ‘그거 언니 아니에요?‘ 하는데, 저도 어쩐지 ‘그거 난가?‘ 했어요. 단발머리 님이 쓰신 페이퍼와 완전히 반대되는 사례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는 잘 지내고 있을런지.. 벌써 이십년 전인데 결혼해서 아이가 있을지... 취미로 음악하는 남자였는데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을지.....

단발머리 님이 자주 인용하시는 앨리 헤이즐우드 책이 좀 많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체코와서 알게된 책 중에 하나가 <Not in love>인데 혹시 읽으셨어요? 그거랑 <체크 앤 메이트> 도 있더라고요. 아이참. 얼른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이걸 다 읽어야될텐데 마음이 급합니다.
서점에 앨리헤이즐 우드 책 쫙 나란히 있는거 보고 아니, 이 작가 책이 많네, 했어요. 그런데 국내 번역은 두 권.. 빨리 번역되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5-07-16 09:19   좋아요 0 | URL
저는 직장 생활하던 시간이 짧아서 짝사랑 끙끙 이야기를 많이 못 들었구요. 저는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같은 부서의 대리님이랑 과장님이 결혼한다고 ㅋㅋㅋㅋㅋㅋ 내내 아무도 몰랐다고 ㅋㅋㅋㅋㅋㅋ 혹 나만 모른거 아니냐고, 제가 막 따지고 그랬던....
벌써 20여년 전 일이네요.

독서괭 2025-07-25 18:26   좋아요 1 | URL
그래서, 실제로 다락방님이었나요??

다락방 2025-07-29 22:3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 저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습니다. ㅎㅎㅎㅎㅎ

하이드 2025-07-15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도 강의 있으셨군요! 난티나무님 계셔서 반가웠어요! 저 아직 독후감도 못 쓰고 있지만, 전혀 생각지도 않다가 알라디너분들 봐서 넘 반가운 ㅎㅎ 열심히 공부하고, 읽고, 써보려고요. <유럽의 지방화>도 역시 읽으면 좋겠지요?

단발머리 2025-07-16 09:22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아이디 봤는데, 하이드님이셨군요. 반가워요! 난티나무님 계신줄은 몰랐어요 ㅋㅋㅋㅋㅋ
다들 실명으로 들어오시는 거 같아서 저 다음에는 실명으로 해야하나 싶어요.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저 앞부분 읽다가 녹다운 ㅋㅋㅋㅋㅋㅋ 읽으면 좋을 거 같기는 해요? 그죠? ㅋㅋㅋㅋㅋ

하이드 2025-07-16 09:37   좋아요 1 | URL
카페는 실명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줌은 어떻게 바꾸는지 몰라서 걍 닉으로 들어갔고요. ㅎ 저도 난티님이 채팅으로 인사해주셔서 알았어요!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분위기들 다 다른데, 1기부터 다들 잘 아는 분위기에 4기로 들어갔더니, 알라디너 봐서 넘 반가웠지요! 난티님 1기부터 하셨던 것 같아요!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읽고 쓰기 능력을 좀 갖추어 봐야겠다고 생각중입니다. 평소 막쓰기라도 해라. 지만, 목표를 높여봤어요.

단발머리 2025-07-16 10:22   좋아요 0 | URL
저는 카페가 있는줄도, 닉네임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있어서 나중에야 알았어요. 프로필 찾아가서 바꾸기는 했구요. 쓰기 능력 갖출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한데 저는 진지하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흐잉 ㅠㅠㅠㅠㅠㅠ 벌써부터 도망칠 생각에...

2025-07-16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6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5-07-25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핑크무드~~꺄우~~~

단발머리 2025-07-29 07:21   좋아요 1 | URL
까악~~~ 핑크무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요, 핑크하트 3개 추가요 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8-05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코워커> 제가 설거지 하거나 반찬 만들 때 오디오로 틀어 놓고 듣는 오디오북이거든요. 이거랑 요즘 무서워서 난리났다는 책 <긴키지방의 어쩌고 저쩌고>랑 번갈아가며 듣고 있어요. 긴키 일본 소설은 진짜 무섭더라구요. 그래서 무서울라치면 프리다 책으로 돌려버리기도 하는데…프리다 소설들이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듣기만 해서 내용들이 뒤죽박죽이어서 나중에 종이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긴 하지만요.
뭐랄까. 예상가능한 결말을 부러 설정해놓고 작가는 결말엔 전혀 관심 없는 듯 오로지 관계성을 설명하는 것이 소설을 쓰는 목적이었던 듯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좀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작가가 풀어나가는 스토리에 홀린 듯 읽어나가게 된달까요?
잔인하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은데 나름 섬뜩한 스릴러물로 읽히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긴밀하게 얽혀가는지 상상하며 읽다보면 휘리릭!
아. 이래서 프리다 맥파든을 읽는 거구나!
도서관의 프리다 책들이 모두 다 대출 중이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네요.ㅋㅋㅋ
이 글은 예전에 읽었는데 더 코워커 듣고 있는 중이라 부러 연결하여 친한 척 댓글을 쓰고 갑니다.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8-05 23:02   좋아요 1 | URL
오호호~~ 책나무님 <더 코워커> 오디오북 듣고 계시는군요. 무서운 거 듣다가 돌려버리신다니 ㅋㅋㅋㅋㅋㅋ 프리다 책이 책나무님께는 묘한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겠군요.
저도 프리다 읽으면서 좋은 점이 선정적이거나 많이 폭력적이지 않은데 섬뜩한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아주 복잡한 스토리도 아니고, 구성이 복잡한 것도 아니구요. 스토리를 풀어가는 힘이 출중한 거 같아요. 그래서, 여러 히트 작품을 쓰셨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나쁜 점은 그 다음이 많이 궁금해서 읽을 때 너무 휙휙 지나가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다시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 그런 생각도 들어요.
‘친한 척 댓글‘인데 그 댓글이 ‘책나무님 댓글‘이라면 환영 & 대환영입니다!!
 
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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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탁에서 밥 먹고, 식탁에서 책 읽고, 식탁에서 알라딘하고, 식탁에서 유튜브 본다. 큰아이 밥을 차려두고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내용이다. '선의를 가지고 있더라도'가 여러 번 반복된다. 선의를 가진 상태에서의 권고, 충고, 제안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것은 금방 '괴롭힘'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그 핵심이다. 밥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요 며칠 귀가 시간이 너무 늦다고 가볍게 한 마디를 했더니, '가정내 괴롭힘' 아니냐고 묻는다. 엥? 바로 답을 못했더니, 이런 것도 '괴롭힘'이라고, 알아서 잘~ 들어올 테니 걱정 말라고, 먼저 주무시라고 한다. 전열을 가다듬고 나도 한 마디한다. 너도 엄마한테 '버섯돌이'라고 하고, '독버섯'이라고 하는 거, 그거 다 '가정내 괴롭힘'이야. 밥 먹던 아이가 벙쪄서 '버섯 모양' 머리를, 아니 버섯머리를 지긋이 쳐다본다.




무엇을 하라, 혹은 하지 말라의 '금지'와 '강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고, 어린이와 심리적으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의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자유와 쾌락, 즐거움을 위한 행동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자제하겠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유시민이 자유론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부분은 바로 여기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떤 사람의 행동 자유에 개입하는 것은 자기 보호가 목적일 때만 정당하다. 따라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경우가 아닌 한 문명사회의 구성원에게 본인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두 부당하다. 물리적이든 도덕적이든 그 사람 자신의 이익은 정당한 근거일 수 없다.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남들이 현명하고 옳은 일이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이익, 더 많은 행복, 남들이 볼 때 옳은 일은,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인가 강제하거나 불이익을 줄 합당한 이유는 아니다. 남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 분명한 행동이라야 정당하게 제지할 수 있다. 사회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타인과 관련된 행동뿐이다. 오직 본인 자신만 관련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그 사람의 몫이다.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주권은 각자의 것이다. 「자유론」, 33~34쪽, (322쪽)





자기 보호 목적과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에 대한 규제 역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합당한 일이다. 제일 난해한 지점은, 본인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행사되는 지점에 있다.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남들이 현명하고 옳은 일이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둘 다 성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모든 책을 육아책으로 읽고 있는, 자꾸 그렇게 읽고 있는 내게,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이 말은 부모의 말로 들린다. 30년 정도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후회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최선의 코스, 시간 낭비하지 않을 최단의 코스를 지원한다.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이는 모두 '그/그녀'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사랑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보살핌과 지원. 그리고 세트처럼 함께 이루어지는 강요와 금지.

큰아이가 아직 돌이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초보 엄마는 아이의 발달 사항이 모두 책에 적힌 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고, 순간순간 자기도 모르게 '극성'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초보 아빠가 동창 모임에 나갔는데, 한 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데려왔더라고 했다. 그녀 역시 초보 엄마였고, 그 집 아들은 우리 집 큰애와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였다. 밥을 먹고, 커피숍에서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한참 움직일 때였던 아이는 활기차게 바닥을 기어다니고, 카펫이 어떤 물건인지 확인하며, 어른들에게 닿지 않는 1층 세계를 마음껏 활보했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영유아를 돌본 경험이 자신의 딸이 유일했던 초보 아빠는 바닥 생활을 즐기는 아이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주위 동창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나처럼 초보 엄마였으되, 나와는 다르게 아이를 키우던 그 엄마, 초보 아빠의 동창이 말했더란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는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면, 그냥 둬.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둬. 아무 말도 못 하는 아기지만, '안 돼!', '하지 마!' 그런 말들이 쌓이면, 지금은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7살 때 일 수도 있고, 사춘기일 때 일 수도 있고.

자유론의 핵심을 그분은 실천하고 계셨던 건데, 위생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던 얼치기 초보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해와 실천은 다르고, 이론과 실제는 천지차이이다. 아이들은 이제 다 컸고, 더 이상 육아 정보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실천하고 싶은 몇 가지 명제들이 있고, 그 명제들의 근거는 이 문장이다.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자.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해 주자. 믿어주고, 믿고 있다고 말해주자.

그리고 진짜로 믿어주자.


믿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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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5-07-06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다려주기가 너무 어려워요.. 마지막 두 문단 정말 ㅜㅜ 반성하게 하네요

단발머리 2025-07-06 21:56   좋아요 2 | URL
4세에서 10세까지. 그리고 잠깐 착한(?) 어린이였다가 12세부터 14세까지.... 가 저는 제일 실천이 어려웠어요.
물론....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마지막 두 문단은 저의 다짐이오며.
유수님, 폭풍 같은 시기 잘 견뎌내시기를... 쉬는 시간, 그리고 휴식 시간 짬짬히 가지시면서 잘 견뎌내시기를.... 바래요.

유수 2025-07-06 21:59   좋아요 1 | URL
적어주신 바에 따르면 11세뿐인데요. 그 일년 유니콘의 해네요.

단발머리 2025-07-06 22:05   좋아요 1 | URL
그니깐요. 아, 그러네요. 진짜....
‘마음을 읽어주셨나요?‘의 오은영 바람을 넘어 저는 조선미 박사 훈육관도 좋아합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를 설득하지 말라고요. 하기 싫어도 해야할 일이 있어! 라고 말해주라 하더라구요. 저는 교회 다니고 있어서.... 교회에서는 자녀 훈육을 좀 강하게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를테면 매를 아까지 말라... 등등. 저는 성경적 훈육관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걸 가르쳐 주긴 했어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못 해도) 엄마(아빠) 말이면 일단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어! 이렇게요. 이건 12세 이전까지만 사용가능합니다. 머리가 커질수록 반항은 커지오며....

북프리쿠키 2025-07-06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젤 좋아하는 소설 <죄와벌>은 유시민님의 이 책을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개정판을 보니 반갑네요~^^

단발머리 2025-07-09 08:06   좋아요 1 | URL
<죄와 벌>을 제일 좋아하시는군요. 북프리쿠키님!ㅎㅎㅎ
전 유시민님의 이 책 읽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었습니다. 반가운 마음, 이해합니다^^

책읽는나무 2025-07-06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충고, 설득, 권유…그리고 믿음!
아이들이 작은 성인이 되었어도 육아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저는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애들이 정신 연령이 크게 자란 것 같지 않았단 것에 조금 충격이었거든요.ㅋㅋㅋ
그래서 지금 저희 집 아이들은 저의 모든 말들을 잔소리로 받아들이고 있어요…성인이 된 자녀들은 또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건지? 내가 보기엔 녀석들도 행동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이던데 말이죠.
그런데 충고와 설득 그리고 권유로 충분하단 문장이 성인이 된 자녀들의 육아법이라니…
정말 맞는 말 같군요.
휴…부모의 길은 끝이 없군요.
그나저나 동창 모임에 아기와 함께 참석했다는 것은 또 좀 놀랍습니다.
저는 못 보냈을 것 같습니다만.
또 어찌보면 그 자녀의 부모들도 대단해 보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그 자녀가 어떻게 성장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마 좀 대범하게 잘 컸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5-07-09 08:0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모두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거 같아 아무말 안 하려고 하는데 ㅋㅋㅋㅋㅋ 근데 그렇잖아요. 꼭 할말이 있습니다.
또 부모이긴 하지만 저 역시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필요한 거를 말했는데 건성으로 듣는다던지, 부탁한 거를 홀랑 잊어버린다던지.... 그런 일이 ㅋㅋㅋㅋㅋㅋㅋ저는 많습니다.
동창 모임에 아기 데려오신 분은 아이가 어린데 맡길 곳이 없어서 데려오신 것 같았어요. 아니면, 남편을 못 믿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차라리 내가 데리고 가겠다! 그러셨을수도요.

바람돌이 2025-07-0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글 읽으면서 다 키운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요.
단발님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지가 바로 저기예요. 호

단발머리 2025-07-09 08:10   좋아요 1 | URL
다 키운자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래요, 바람돌이님!
저도 고지가 바로 저 앞이라 생각하기는 합니다. 으쌰으쌰!!!

다락방 2025-07-08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지런한 펜통속의 형광펜, 저 맨 위의 것들이요, 부드러워서 저도 참 좋아합니다.
단발머리 님은 책과 함께 늘 간식을 드셔서 참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남들이 현명하고 옳은 일이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

제가 살면서 깨달은게 바로 이것입니다.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는 모두 ‘나‘의 생각이지요. 저는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면서 저한테 남자 사귀라는 친구도 있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굉장히 당황하고 기분 나빴던 기억이 있어요. 전 그 당시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남자 없어서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왜 하는건지.. 그건 자기 기준 아닌지.......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

단발머리 2025-07-09 08:14   좋아요 0 | URL
간식 알아봐주시는 안목에 감사와 칭찬을!!

자기 기준에 맞춰 그런 것도 있을테지만,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그런 것들을 ‘너를 위한다‘는 이유로 말하는 게 얼마나 ‘과한‘ 일인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강요하는게 문제인것 같아요.
남자 없어서 행복하지 않을 거라 말하셨던 그 분, 그 남자 분이랑 행복하신지.... 항상 행복한 건 아닐텐데... 그럼 언제 행복하신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7-09 0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단발머리 님. 이번에 개봉한 쥬라기월드 4편에 ‘조나단 베일리‘가 주연인거 아시나요? ㅋㅋ 저는 봤거든요, 아버지 모시고 가서. 착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단발머리 2025-07-09 08:15   좋아요 0 | URL
세상에!! 저는 개봉 예정인줄로만 알았어요! 벌써 개봉했단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 아, 조나단 좋아했던 거 이제 다 과거인가요? 저도 얼른 가서 봐야겠어요. 다락방님은 아버지랑 보셨군요. 일상이 다 효도 생활이에요! 엄지척!

독서괭 2025-07-11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섯... 너무 귀엽고요 ㅋㅋ
일전에 어느 책에서, 충고하지 말고, 조언하지 말고, 평가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고(충조평판) 하는 걸 읽고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씀에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평가랑 판단은 안 하는 편이 좋겠지만, 충고랑 조언정도는..! 안 할 수가 있습니까..? ㅋㅋ (애들에게)

단발머리 2025-07-16 09:23   좋아요 1 | URL
버섯 귀엽다고 해주시는 스윗한 우리 독서괭님께 감사와 칭찬을!!!
충고랑 조언도 조심조심 하는게 좋은거 같아요. 특히 나이들수록 더요ㅋㅋㅋㅋㅋㅋㅋㅋ 안 할 수가 없습니다!!!!

icaru 2025-08-28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아-- 꼽씹어 읽게 되는 글이네요~~ 그나저나 앞부분 버섯 에피소드 진짜 ㅋㅋ 넘 유머러스하셔

단발머리 2025-08-28 17:28   좋아요 0 | URL
바로 이겁니다ㅋㅋㅋㅋ 우리 icaru님의 진실의 칭찬ㅋㅋㅋㅋ귀한 말씀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