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의 아내. 위층의 아내. 2층에 살고 있는. 살고 있는? 혹은 감금된?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제인 에어의 기운. 제인 에어라면 역시나 같이 떠오르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여전히 미쳐 있는 바로 그 여자.

의문의 저택, 날씨에 따라 자주 접근이 거부되는 외딴 저택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the wife를 돌보기 위해 온다. 2층의 wife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그녀의 남편은 프리다의 다른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처럼 완벽한 hot guy이다. 잘생겼고 다정하며 사회적으로도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남자이다. 글 쓰는 사람, 소설가.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화자의 상대 남자는 F와 A이고, the wife upstairs의 상대 남자는 A와 M이다. A는 같은 사람이니깐, 실제로는 남자 3명이 등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몸을 죄어오는 찜찜한 느낌에 더해 하나둘 비밀이 드러날수록 남자 3명 중 어느 한 사람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그녀가 의지하는 사람은 the wife. 위층의 아내, 바로 그 사람뿐이다.



말할 수 없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몸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가눌 수 없는 사람. 진실을 종이에 적어두었던 사람. 진실을 묻는 질문에 답조차 할 수 없는 사람. 화자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질문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다. 말하기를 부정당한 어떤 사람. 말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

말할 수 없는 이 여성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아직 구매 전이기는 한데, 결제하자마자 집에 달려올 것이 확실한 어떤 책이 다가오고 있다. 그 책은 바로 바람돌이님의 고급스러운 리뷰에 등장했던 바로 이 책인 것이며.










7월의 주제는 탈식민주의였고, 7월의 인물은 스피박이었다. 아는 것을 비워가는 것에 대해 나는 곰곰이, 찬찬히, 천천히 많이도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답은, 내 물음은 같은 자리를 반복하고 있다.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비울 수 있는가. 소유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언어가 없는데 어떻게 쓸 수 있는가. 물음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쌓인 물음에 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끝내 물어야 하고, 그리고 답해야 한다.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질문한 사람은 알고 있다, 이미 그 답을.

내가 질문하면 답해줄 수 있는 분이지만, 질문할 수 없는 분이 한국에 오셨다. 집안 분이시다, 나랑 돌림자.

스피박. 가야트리 스피박.







내게 가야트리 스피박은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의 스피박이다. 델리의 거리를 달리는 스피박에게 상류계급 남자들이 다가와 침을 뱉는다.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주 침을 뱉는 40대 후반의 스피박. 내게 스피박은 그런 사람이다. 눈앞의 그녀는 이제 지팡이를 든 83세의 노인이다. 귀에 딱 떨어지는 딕션과 청량한 웃음소리. 오래오래 가르침을 받고픈 스승의 모습이, 눈앞에 있다. 현재를 넘어 미래를, 미래를 다시 상상하라는 명령을 들었다.

질문은 종이에 적었다. 언제 답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질문은 적어 두었다. 질문은 현재의 일이니까.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를 살기 위해. 질문을 적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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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3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까지 에밀 졸라의 아소무아르 그러니까 그 유명한 목로주점을 읽었어요. 제인에어의 버사가 말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주인공 제르베즈는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의 언어로 사고하고 말하다 결국 자신의 삶을 진창에 처박아버리게 되는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면서 진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가야트리 스피박님 이름만 들어봤는데 단발머리님 글 읽으면서 궁금증이 확 커지네요. 책을 직접 읽을 엄두는 안 나서 생긱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저 책이라도 읽어야겠어요. 사진 속 스피박님 포스가 너무 멋져요. 거기다 단발머리님 집안분이니까 허감이 더 쑥쑥... ^^

단발머리 2025-08-03 22:44   좋아요 1 | URL
그 유명한 목로주점을 읽고 계시는군요. 주인공은 제르베즈이고요. 저도 좋은 날에 에밀 졸라의 책 도전하고 싶어요.

가야트리 스피박의 책은 학계에서도 어렵다고 정평이 났다고 해서 읽는데 부담 갖지 않으셔도 좋을거 같아요. 저는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를 참 좋게 읽어서 그 책으로 스피박 여행을 시작하셔도 좋을 거 같아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을 준비해 갔는데, 부끄러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같은 돌림자, 집안분인데 말입니다. 하하하!

다락방 2025-08-04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와서 스피박이 온 것도 단발머리 님 덕에 지금 알았고 그 분을 직접 만나고 음성을 듣기 위해 단발머리 님이 가셨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게다가 프리다 맥파든의 윗층 여자 라니요. 저는 읽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읽고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저에게 기쁨입니다. 단발머리 님덕에 오늘 알라딘 들어온 기쁨이 큽니다!

단발머리 2025-08-04 13:55   좋아요 0 | URL
진짜 오랜만에 글을 썼는데 다락방님이 반겨주셔서 너무 좋네요 ㅎㅎ 스피박이 한국에 오셨답니다. 스피박을 안 읽었지만 제가 스피박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큰애가 알려줘서 가게 됐어요.
준비할 거 많으셔서 읽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거라 예상되기는 하는데, 다락방님 안 계시니 많이 적적하네요. 읽고 쓰는 즐거움을 제가 다락방님께 쬐금 드렸다면, 다락방님도 얼른 그 기쁨을 돌려주세요~~ 거대한 군단들이 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5-08-04 20:14   좋아요 1 | URL
스피박을 알려주는 큰 애 라니요. 스피박을 알 수 있는 엄마라니요. 너무 멋진 거 아닙니까!!

단발머리 2025-08-04 21:05   좋아요 0 | URL
이게 다 저희 집안 분이기 때문이구요. 돌림자라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이 멋지다고 해주셔서 해피 포인트 급상승!! 🥳😍😎

독서괭 2025-08-04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스피박 강의를 들으셨군요!! 얘기만 듣고 내용은 모르지만 ㅠㅠ 멋집니다...
그사이 프리다맥파든 책을 또 한권 읽으셨군요. 진정한 맥파든 마니아! 저는 이번달은 다락방님 추천 책 읽으려고 주문해놨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5-08-04 20:14   좋아요 1 | URL
네, 제가 스피박님 실물 영접의 영광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리단 맥파든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제가 킨들 샀다고 자랑했던가요? 킨들 리미티드 한 달 무료라서 많이 읽어야하는데, 생각보다 더디게 그러나 진지하게 ㅋㅋㅋㅋㅋㅋㅋ 맥파든을 읽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5-08-04 20:15   좋아요 2 | URL
제가 짬이 나면 같이읽기 페이퍼를 쓰겠습니다. 제가 알라딘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ㅠㅠ

단발머리 2025-08-04 21:07   좋아요 1 | URL
아.... 100년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잊지 말아주세요~~~~~~
이것저것 챙길 일들이 많아 바쁘신거는 예상하고 있으니까요. 다락방님, 뽜야!!

독서괭 2025-08-05 18:00   좋아요 1 | URL
크흑 다락방님 너무 바쁘시군요 ㅠㅠ 제가 올렸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8-05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라는 문구는 음…제 상상력의 대반전을 이루는 페이퍼가 바로 이것이로군요.
전 진짜 재미나게 놀고 계시는 줄?ㅋㅋㅋ
암튼 각설하고…
스피박. 와 스피박 그 유명하신 분이 집안분이셨군요?ㅋㅋㅋㅋ
집안 사람 다 찾아 보면 어쩌면 우린 정말 어깨 힘 주고 다녀도 될 것 같아요.
와 스피박 님이 내한 하신 것도 놀랍고 생각보다 연세가 많으셔서 놀랐으며 그럼에도 눈이 너무 초롱초롱 똘망하시어 놀랐습니다. 뭔가로 이름을 떨치신 분들은 뭐랄까요?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아요. 스피박 님도 그러시군요.
비록 저 분의 책을 읽지 못해 정확한 활동을 알고 있는 게 없지만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그 책은 제가 읽었었기에 괜한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찾아 읽어보고 싶긴 합니다.
현재를 넘어 미래를 상상하라는 명령도 좋네요.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앞서 지혜롭게 살아가신 분들이 한 마디, 한 마디 일침을 가해주신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알아들어 소화를 잘 해내야 하는 게 큰 숙제이긴 합니다만…요즘 나이 먹어갈수록 이해력이 딸려 조금 위축되어가고 있어서.ㅋㅋㅋ
근데 단발 님께는 똑똑한 따님을 두고 계셔 저런 좋은 시간도 보내시고 참 좋으시겠어요.^^

단발머리 2025-08-05 22:5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걸음이 조금 불편하신지 강의실에 입장하실 때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셨구요. 강의는 서서 하시기는 했는데, 연단에 기대서 하셨어요. 지금 보니깐 위에는 그 사진이 없네요. 안경도 썼다 벗었다 하셨구요. <생각하는 여자는...>으로 친근감을 느끼셨다니 더욱 반갑구요.

큰애가 똑똑하기 보다는 ㅋㅋㅋㅋ 제가 스피박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는데 저도 놀랐어요. 제가 많이 이야기했나봐요. 호호호.
좋은 시간 감사하고, 이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이런 다정한 댓글을 써주시는 분이 계셔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