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Lie (Paperback)
Anonymous / Poisoned Pen Pres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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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맥파든의 8번째 책이다. 한글책은 원서와 같은 제목 『네버 라이』이고, 소개와 줄거리는 <알라딘 책소개>에 자세히 나와 있다. 줄거리와 그 전개,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이 이야기를 써 보자.

기본 구성은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서술된다. 화자는 트리샤와 에이드리엔, 두 사람이다. 트리샤와 이선이 커플이고, 에이드리엔과 루크가 다른 커플이다.

화자 중 한 명인 에이드리엔은 현직 의사인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깊이 투영된 인물처럼 보인다. 특별히 정신과 상담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이해와 교감, 갈등과 감정의 대립이 대화 속에서 실감 나게 표현된다. 응, 맞아~ 응, 그랬구나~ 정도의 적당한 응대와 이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추적, 그에 대한 판단과 이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수련된 사람이어야겠구나 싶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사람의 슬픔과 절망, 분노와 후회의 감정이 일정 정도 해소될 수 있겠지만, 심각한 성격 장애와 트라우마에 대해서라면 전문적인 치료와 처치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중간 중간 멈춰서 '범인이 누구일까' 생각한다. 나는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무서운 책, 무서운 영화를 '무조건적으로' 꺼리는 사람이다. 범인이 누구일까. 여러 번 멈춰서 생각해 봤지만, 내가 예상한 사람(들)은 범인이 아니었다. 지난 책에서도 범인을 맞추지 못했던 나는 이번에도 예상이 '틀렸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차근히 찾아보려 했다. 추리 능력의 부족함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고정적인 '피해자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에게 잠재적인 가장 큰 위협은 남성이다. (정확히는 '가까운' 남성). 남성에게 잠재적인 가장 큰 위협 역시 남성이다.("강도, 방화, 폭행 등으로 사망한 사건을 제외하고 살인 사건 피해자만 따지면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또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78%에 이른다" - <한겨레 21>, 1393호) 단순한 통계조차 믿지 않는 특정 성별(남성), 특정 연령대(2, 30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테지만, 프리단의 문장은 사실이다. 남자 친구를 갖게 된다는 건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과 동시에 삶의 위협 요소일 수도 있다.

동시에 젠더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만 한다. 젠더가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자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젠더는 전부가 아니고, 전부일 수도 없다. 여성을 피해자의 자리에만 위치시킨다면, 지난 3년간 이 나라를 실제적으로 지배했던 김건희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간의 과정에서 김건희가 보여줬던 적극성, 능동성, 그 폭발적인 활동성조차 무능력한 윤석열 때문이라 말해야 하는가. 여성은 항상 피해자인가. 약자는 항상 선한 존재인가. 범인을 맞추지 못한 스릴러 입문자의 머릿속에는 질문이 계속 맴돈다.

여성 집단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압박과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외모에 대한 통제, 출산 강요, 엄마의 역할에 대한 강제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되는 이 불합리함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념'의 실천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성별'의 문제로만 이해하면 그 본위(?)을 벗어난 여성과 남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을 놓쳐버리게 된다. 개별적 존재를 집단의 일부로만 치환하지 않으면서도 개별적 존재의 특별함을 구분하는 섬세함과 정밀함이 필요하다.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도착했다. 에이드리엔의 말이다.


사랑을 생각할 때 내가 자주 떠올리는 지점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무력감'에 대한 부분이다. '사랑에 빠졌다'라거나 '마법 같은 사랑' 혹은 '열병 같은 사랑'이라는 문구가 쉽게 허용되는 이유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밀당'은 '사랑'이라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감정의 변화와 의지의 변환, 행동의 추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본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그 격동의 진폭을 스스로 조정하거나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유일한 구원은, 그녀가, 그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의 사랑에 응답해 주는 것이다. 이건 강제할 수 없다. 강요할 수 없고, 청원할 수 없다. 혹 어떤 사람이 그러한 방식으로 사랑을, 마음을, 열정을 획득했다면 그는 계속해서 그 진실성을 의심할 것이다. 원하는 건, 자발적 사랑이다. 그녀의 선택, 그의 확언. 그것만이 필요하다.

환자들에게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는 에이드리엔에게 루크가 말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울음을 터뜨린 에이드리엔에게 루크가 말한다. 내게 똑같이 말해주지 않아도 돼.

나는 이 장면이 좋았다. 루크가 에이드리엔에게 'I love you.'라고 말해줘서가 아니라, 'You don't have to say it back.'이라고 말해줘서 좋았다. 그녀 앞에 자신이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해서 좋았다. 사랑으로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겠다고 해서 좋았다. 부담 갖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져서 좋았다. 진지한 사랑을 부담감 없이 표현하려고 해서 좋았다. 심장을 내놓고서 내 사랑은 죽을 때까지 너밖에 없어,의 사랑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고, 내 마음이 그래, 그렇게 말해서 좋았다.

어제는 말복이라 시어머니랑 오리 백숙을 먹고, 백화점에 가서 엄마 양산을 사고, 딸롱이가 신청한 왕김말이 어묵과 악어 떡볶이를 샀다. 휴가 가지 않는 여름이 오히려 더 시원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팥빙수를 먹으며 1초간 했다.

(잭 리처, 귀 막아주세요.)

프리다 맥파든이 내겐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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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8-11 0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리다 맥파든의 책을 이렇게 멋지게 분석하여 글을 써주셔 감사하네요. 잠시 출타 중이신 그 분을? 대신하여 제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ㅋㅋㅋ
프리다 책 세 권을 읽고 듣고 했는데요. 그 중 유일하게 범인을 못 맞춘 책이 이 책이었네요.
단발 님의 글을 읽다 보니 저도 너무 젠더에 빠져 있었구나.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범인을 확인한 순간 정말 깜짝놀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프리다 맥파든 이 작가 뭐야?!가 되어가지구선…ㅋㅋㅋ
여름엔 프리다 맥파든을 읽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ㅋㅋㅋ (잭 리처 님 표정.🥺ㅋㅋ)
오리 백숙도 신의 한 수네요.
그리고 악어 떡볶이는 뭘까? 생각하다가…
빙수 사진 보고 헙! 했네요.
속이 시원해집니다.
휴가를 몇 년째 가지 않은 제가 공감 많이 하고 있어요.ㅋㅋㅋ

단발머리 2025-08-11 10:32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감사의 말씀에 심오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책나무님 범인 너무 잘 맞추시는 거 아니에요? 저는 딱 한 권 맞췄단 말입니다! 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진짜 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해볼 예정입니다 ㅋㅋㅋ 오리 백숙은 아이들은 같이 안 먹으려고 해서요. 어른들만 먹게 되네요. 전 커피와 쿠키만으로도 만족하는데 아… 팥빙수는 참을 수가 없네요. 리처한테 미안하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번 여름은 맥파든과 함께! 😍

바람돌이 2025-08-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맥파든 책 중에서도 결이 좀 다른 책인거 같아요. 사건의 전개야 식상할정도로 클리세 투성이인데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완전히 반대로 비틀어버리니까 어 이거 뭐야 이러게 된다죠. 너무 생뚱맞아서 저는 좀 별로였는데 앞으로 프리다 맥파든이 이런 캐릭터도 좀 더 다듬으면 완전 다른 추리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됐어요. 뭐 지금 나오고 있는 소설도 신선하긴 했지만요. ㅎㅎ
원서로 읽는데 속도가 장난 아니신데요. 얼마전에 핸디맨 읽으셨잖아요. 와 이건 한국어 속도랑 비슷한 거 같은데 능력자셨군요. ^^

단발머리 2025-08-11 10:24   좋아요 1 | URL
저는 범인을 잘 못 맞추거든요. <하우스 메이드> 한 번, 그 때 딱 한 번 맞췄습니다. 이번에는 혹시 이 사람, 혹시 저 남자? 이러면서 머리 굴려 봤는데 틀렸구요. 저는 프리다가 너무 과하지 않아서 좋거든요. 많이 폭력적이지도 않구요. 킨들 연장해서 더 읽어볼 용의가 ㅋㅋㅋ용의가 있습니다.

핸디맨은 조금 전에 읽었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린 거라서요. 속도가 빠르지도 않을 뿐더러 전자책이라 휙휙 넘겨버리네요 ㅋㅋㅋ자세한 내용 토크 금지입니다🫣

헬가 2025-08-11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멋져요 집중한 포인트가 콱 들어오네요 인사한번 안드렸지만 님의 글이 올라오면 늘 눈 빤짝이며 읽기시작하는 1인 애독자예요 글 너무 가끔말고 자주 써주셔요~~~~

단발머리 2025-08-11 21:51   좋아요 0 | URL
헬가님! 반갑습니다^^
눈 빤짝이며 읽는다고 해주시니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기특한 결심을 하게 되네요ㅎㅎ 저도 자주 쓸테니 앞으로 자주 뵈어요!

건수하 2025-08-11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다 맥파든이 점점 궁금해지는 중입니다.

얼마 전 제가 재미있게 읽은 <Love Hypothesis> 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더군요.
You don’t owe me anything :)

팥빙수가 맛있어보입니다-

단발머리 2025-08-11 21:58   좋아요 1 | URL
프리다 맥파든이, 제게는 전혀 새로운 세계라 신나게 읽고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는다는게 이런 걸까요? 건수하님? 저 문장은 챕터 17에 나온 문장인데 ㅋㅋㅋㅋㅋㅋㅋ이런 이야기를 건수하님과 나눌 수 있어서 마냥 즐겁구요. 제가 예전에 이 책의 보너스 챕터 이야기 페이퍼로 썼는데 기억나실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 책 사서 읽었을 때는 없었구요, 최근에 발간된 책에는 보너스 챕터가 들어가 있는데, 그건 애덤 버전에서 쓴 에피소드잖아요.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위의 문장과 어울린다고 생각해 한 번 적어 보겠습니다.

He doesn‘t want anything in return.
She doesn‘t need to fall for him, because he loves her enough for the both of them.

올해 저의 발견과도 같은 폴바셋 팥빙수, 맛있습니다^^

건수하 2025-08-11 23:14   좋아요 1 | URL
앗 제가 읽은 책에는 그 보너스 챕터가 없던데… 궁금해집니다. 한국어 번역본에도 그 보너스 챕터는 없겠죠? 전 보답이 없는 사랑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애덤은 그래서 오래 표현하지 않고도 잘 버틸 수 있었나봐요.

단발머리 2025-08-12 07:39   좋아요 1 | URL
건수하님, 굿모닝! 아, 건수하님과 이 책 토크 계속 하고 싶네요..... 자중하려 했으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오른쪽 분홍색 동그라미 속에 ‘Now with Bonus Chapter‘라고 쓰인 책에 들어 있더라구요. 저도 예전에 산 거라 보너스 챕터가 없습니다. 한국어 번역본도 제가 읽었을 때는 없었고요. 근데 지금쯤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이 책을 반복해서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오디오북이에요. 오더블의 그 성우, 특히 올리브를 맡은 여성분의 목소리와 그 톤이 저는 참 좋더라구요. 운전할 때랑, 수건 접을 때 틀어놓기도 하구요.
제가 요기 이 페이퍼,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6407979 에 자세히 적었는데요. 이 책의 오디오북을 사고 이북을 사고 킨들앱에서 플레이를 누르면, 두 가지가 연동되어서, ‘집중듣기‘ 방식으로 영어 텍스트를 들을 수 있더라구요.
오더블은 예전에 한 달 무료가 있었거든요. 혹 저처럼 애덤을 좋아하신다면 이런 방법으로 애덤을 가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건수하 2025-08-12 08:18   좋아요 1 | URL
전 애덤보다 올리브가 좋더라고요. 집중듣기… 리스닝에 무척 약하지만 올리브 목소리가 좋다니 시도해보고 싶네요 ^^

icaru 2025-08-28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톰 크루즈가 나오는 잭 리처 시리즈 영화들도 단발머리님 페이퍼에서 슬쩍 보고 골랐더랬는데 ㅋㅋ 저 단발머리님 발자국 찾기 하는 중

단발머리 2025-08-28 17:20   좋아요 0 | URL
저 여기 있어요 ㅋㅋㅋ발자국 찾지 마시고 ㅋㅋㅋㅋㅋ어디 가지 마세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