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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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탁에서 밥 먹고, 식탁에서 책 읽고, 식탁에서 알라딘하고, 식탁에서 유튜브 본다. 큰아이 밥을 차려두고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내용이다. '선의를 가지고 있더라도'가 여러 번 반복된다. 선의를 가진 상태에서의 권고, 충고, 제안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것은 금방 '괴롭힘'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그 핵심이다. 밥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요 며칠 귀가 시간이 너무 늦다고 가볍게 한 마디를 했더니, '가정내 괴롭힘' 아니냐고 묻는다. 엥? 바로 답을 못했더니, 이런 것도 '괴롭힘'이라고, 알아서 잘~ 들어올 테니 걱정 말라고, 먼저 주무시라고 한다. 전열을 가다듬고 나도 한 마디한다. 너도 엄마한테 '버섯돌이'라고 하고, '독버섯'이라고 하는 거, 그거 다 '가정내 괴롭힘'이야. 밥 먹던 아이가 벙쪄서 '버섯 모양' 머리를, 아니 버섯머리를 지긋이 쳐다본다.




무엇을 하라, 혹은 하지 말라의 '금지'와 '강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고, 어린이와 심리적으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의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자유와 쾌락, 즐거움을 위한 행동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자제하겠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유시민이 자유론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부분은 바로 여기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떤 사람의 행동 자유에 개입하는 것은 자기 보호가 목적일 때만 정당하다. 따라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경우가 아닌 한 문명사회의 구성원에게 본인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두 부당하다. 물리적이든 도덕적이든 그 사람 자신의 이익은 정당한 근거일 수 없다.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남들이 현명하고 옳은 일이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이익, 더 많은 행복, 남들이 볼 때 옳은 일은,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인가 강제하거나 불이익을 줄 합당한 이유는 아니다. 남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 분명한 행동이라야 정당하게 제지할 수 있다. 사회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은 타인과 관련된 행동뿐이다. 오직 본인 자신만 관련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그 사람의 몫이다. 자기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주권은 각자의 것이다. 「자유론」, 33~34쪽, (322쪽)





자기 보호 목적과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에 대한 규제 역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합당한 일이다. 제일 난해한 지점은, 본인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행사되는 지점에 있다.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남들이 현명하고 옳은 일이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둘 다 성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모든 책을 육아책으로 읽고 있는, 자꾸 그렇게 읽고 있는 내게,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이 말은 부모의 말로 들린다. 30년 정도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후회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최선의 코스, 시간 낭비하지 않을 최단의 코스를 지원한다.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이는 모두 '그/그녀'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사랑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보살핌과 지원. 그리고 세트처럼 함께 이루어지는 강요와 금지.

큰아이가 아직 돌이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초보 엄마는 아이의 발달 사항이 모두 책에 적힌 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고, 순간순간 자기도 모르게 '극성'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초보 아빠가 동창 모임에 나갔는데, 한 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데려왔더라고 했다. 그녀 역시 초보 엄마였고, 그 집 아들은 우리 집 큰애와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였다. 밥을 먹고, 커피숍에서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한참 움직일 때였던 아이는 활기차게 바닥을 기어다니고, 카펫이 어떤 물건인지 확인하며, 어른들에게 닿지 않는 1층 세계를 마음껏 활보했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영유아를 돌본 경험이 자신의 딸이 유일했던 초보 아빠는 바닥 생활을 즐기는 아이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주위 동창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나처럼 초보 엄마였으되, 나와는 다르게 아이를 키우던 그 엄마, 초보 아빠의 동창이 말했더란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는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면, 그냥 둬.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둬. 아무 말도 못 하는 아기지만, '안 돼!', '하지 마!' 그런 말들이 쌓이면, 지금은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7살 때 일 수도 있고, 사춘기일 때 일 수도 있고.

자유론의 핵심을 그분은 실천하고 계셨던 건데, 위생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던 얼치기 초보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해와 실천은 다르고, 이론과 실제는 천지차이이다. 아이들은 이제 다 컸고, 더 이상 육아 정보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실천하고 싶은 몇 가지 명제들이 있고, 그 명제들의 근거는 이 문장이다.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자.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 끝까지 들어주고 공감해 주자. 믿어주고, 믿고 있다고 말해주자.

그리고 진짜로 믿어주자.


믿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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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5-07-06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다려주기가 너무 어려워요.. 마지막 두 문단 정말 ㅜㅜ 반성하게 하네요

단발머리 2025-07-06 21:56   좋아요 2 | URL
4세에서 10세까지. 그리고 잠깐 착한(?) 어린이였다가 12세부터 14세까지.... 가 저는 제일 실천이 어려웠어요.
물론....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마지막 두 문단은 저의 다짐이오며.
유수님, 폭풍 같은 시기 잘 견뎌내시기를... 쉬는 시간, 그리고 휴식 시간 짬짬히 가지시면서 잘 견뎌내시기를.... 바래요.

유수 2025-07-06 21:59   좋아요 1 | URL
적어주신 바에 따르면 11세뿐인데요. 그 일년 유니콘의 해네요.

단발머리 2025-07-06 22:05   좋아요 1 | URL
그니깐요. 아, 그러네요. 진짜....
‘마음을 읽어주셨나요?‘의 오은영 바람을 넘어 저는 조선미 박사 훈육관도 좋아합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를 설득하지 말라고요. 하기 싫어도 해야할 일이 있어! 라고 말해주라 하더라구요. 저는 교회 다니고 있어서.... 교회에서는 자녀 훈육을 좀 강하게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를테면 매를 아까지 말라... 등등. 저는 성경적 훈육관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걸 가르쳐 주긴 했어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못 해도) 엄마(아빠) 말이면 일단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어! 이렇게요. 이건 12세 이전까지만 사용가능합니다. 머리가 커질수록 반항은 커지오며....

북프리쿠키 2025-07-06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젤 좋아하는 소설 <죄와벌>은 유시민님의 이 책을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개정판을 보니 반갑네요~^^

단발머리 2025-07-09 08:06   좋아요 1 | URL
<죄와 벌>을 제일 좋아하시는군요. 북프리쿠키님!ㅎㅎㅎ
전 유시민님의 이 책 읽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었습니다. 반가운 마음, 이해합니다^^

책읽는나무 2025-07-06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충고, 설득, 권유…그리고 믿음!
아이들이 작은 성인이 되었어도 육아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저는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애들이 정신 연령이 크게 자란 것 같지 않았단 것에 조금 충격이었거든요.ㅋㅋㅋ
그래서 지금 저희 집 아이들은 저의 모든 말들을 잔소리로 받아들이고 있어요…성인이 된 자녀들은 또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건지? 내가 보기엔 녀석들도 행동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이던데 말이죠.
그런데 충고와 설득 그리고 권유로 충분하단 문장이 성인이 된 자녀들의 육아법이라니…
정말 맞는 말 같군요.
휴…부모의 길은 끝이 없군요.
그나저나 동창 모임에 아기와 함께 참석했다는 것은 또 좀 놀랍습니다.
저는 못 보냈을 것 같습니다만.
또 어찌보면 그 자녀의 부모들도 대단해 보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그 자녀가 어떻게 성장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마 좀 대범하게 잘 컸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5-07-09 08:0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모두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거 같아 아무말 안 하려고 하는데 ㅋㅋㅋㅋㅋ 근데 그렇잖아요. 꼭 할말이 있습니다.
또 부모이긴 하지만 저 역시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필요한 거를 말했는데 건성으로 듣는다던지, 부탁한 거를 홀랑 잊어버린다던지.... 그런 일이 ㅋㅋㅋㅋㅋㅋㅋ저는 많습니다.
동창 모임에 아기 데려오신 분은 아이가 어린데 맡길 곳이 없어서 데려오신 것 같았어요. 아니면, 남편을 못 믿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차라리 내가 데리고 가겠다! 그러셨을수도요.

바람돌이 2025-07-0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글 읽으면서 다 키운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요.
단발님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지가 바로 저기예요. 호

단발머리 2025-07-09 08:10   좋아요 1 | URL
다 키운자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래요, 바람돌이님!
저도 고지가 바로 저 앞이라 생각하기는 합니다. 으쌰으쌰!!!

다락방 2025-07-08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지런한 펜통속의 형광펜, 저 맨 위의 것들이요, 부드러워서 저도 참 좋아합니다.
단발머리 님은 책과 함께 늘 간식을 드셔서 참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남들이 현명하고 옳은 일이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강요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 ‘

제가 살면서 깨달은게 바로 이것입니다. 그에게 더 이로운 일이라서, 그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서, 는 모두 ‘나‘의 생각이지요. 저는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면서 저한테 남자 사귀라는 친구도 있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굉장히 당황하고 기분 나빴던 기억이 있어요. 전 그 당시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남자 없어서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왜 하는건지.. 그건 자기 기준 아닌지.......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

단발머리 2025-07-09 08:14   좋아요 0 | URL
간식 알아봐주시는 안목에 감사와 칭찬을!!

자기 기준에 맞춰 그런 것도 있을테지만,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그런 것들을 ‘너를 위한다‘는 이유로 말하는 게 얼마나 ‘과한‘ 일인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자신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강요하는게 문제인것 같아요.
남자 없어서 행복하지 않을 거라 말하셨던 그 분, 그 남자 분이랑 행복하신지.... 항상 행복한 건 아닐텐데... 그럼 언제 행복하신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7-09 0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단발머리 님. 이번에 개봉한 쥬라기월드 4편에 ‘조나단 베일리‘가 주연인거 아시나요? ㅋㅋ 저는 봤거든요, 아버지 모시고 가서. 착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단발머리 2025-07-09 08:15   좋아요 0 | URL
세상에!! 저는 개봉 예정인줄로만 알았어요! 벌써 개봉했단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 아, 조나단 좋아했던 거 이제 다 과거인가요? 저도 얼른 가서 봐야겠어요. 다락방님은 아버지랑 보셨군요. 일상이 다 효도 생활이에요! 엄지척!

독서괭 2025-07-11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섯... 너무 귀엽고요 ㅋㅋ
일전에 어느 책에서, 충고하지 말고, 조언하지 말고, 평가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고(충조평판) 하는 걸 읽고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충고하거나 설득하거나 권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씀에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평가랑 판단은 안 하는 편이 좋겠지만, 충고랑 조언정도는..! 안 할 수가 있습니까..? ㅋㅋ (애들에게)

단발머리 2025-07-16 09:23   좋아요 1 | URL
버섯 귀엽다고 해주시는 스윗한 우리 독서괭님께 감사와 칭찬을!!!
충고랑 조언도 조심조심 하는게 좋은거 같아요. 특히 나이들수록 더요ㅋㅋㅋㅋㅋㅋㅋㅋ 안 할 수가 없습니다!!!!

icaru 2025-08-28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아-- 꼽씹어 읽게 되는 글이네요~~ 그나저나 앞부분 버섯 에피소드 진짜 ㅋㅋ 넘 유머러스하셔

단발머리 2025-08-28 17:28   좋아요 0 | URL
바로 이겁니다ㅋㅋㅋㅋ 우리 icaru님의 진실의 칭찬ㅋㅋㅋㅋ귀한 말씀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