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 갬빗의 엘리자베스 하먼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여덟 살 나이에 보육원에 맡겨진다. 우연한 기회에 경비 아저씨 샤이벌에게 체스를 배우기 시작해 체스 두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베스는 열 두살 때, 휘틀리 부인에게 입양되어 보육원을 떠나게 된다. 우연히 체스 대회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된 베스는 아직 친하지 않은 휘틀리 부인에게 참가비를 내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베스는 보육원의 샤이벌 아저씨에게 편지를 쓴다. 아저씨, 1등에게 100달러를, 2등에게 50달러를 주는 체스 대회가 열린대요. 참가비 5달러를 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요. 아저씨가 돈을 보내주시면, 제가 대회에 나가서 상금을 받아 10달러로 갚을게요. 며칠 후, 연필로 주소가 쓰인 봉투가 배달된다. 봉투 안에는 5달러가 들어 있다. 메모도 없이.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베스에게 체스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자신에게 비상한 재주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휘틀리 부인에게 자신의 재능을 증명할 수는 없다. 베스는 보육원의 샤이벌 아저씨에게 편지를 쓴다. 내게 체스를 가르쳐 준 사람. 내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 내게 두껍고 비싼 체스 교본을 사 준 사람.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베스의 마음, 베스가 의지하는 그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전해진다. 과장되지 않으면서 진솔하게.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한 달 전쯤에,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인터뷰를 들었다. (나는 민주당의 당원도 아니고 국민선거인단도 아니지만, 아무튼 이재명을 응원했다. 나는 이낙연의 품격보다 이재명의 개혁이 현재의 시대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 인터뷰는 너무 흥미로웠다. 이낙연 대표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부분에서, 이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을 언급했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젊은 선생님은 오자마자 시험을 보고, 깡촌의 아이 이낙연의 머리가 비상함을 알았다. 그 후로는 아이 이낙연에게 반 친구들과는 다른 학습 기준을 제시하고, 이낙연의 공부량이 부족할 경우 체벌도 마다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반복해서 말한다. 너는 광주로 가야 해. 광주의 서중에 가야 해. 그리 (공부)해서 광주에 갈 수 있겠느냐. 그리해서 (너 같은 놈이) 서중 가겠냐? 동네의 고만고만한 친구들처럼 고만고만한 삶을 예상한 깡촌의 아이 이낙연에게 선생님은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건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했고, 그래서 선생님은 박봉의 월급을 쪼개 매달 발행되는 수련장(참고서 플러스 문제집)을 구입해서는, 다른 아이들의 눈길을 피해, 밤에 1킬로를 걸어 아이 이낙연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선생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선생님.  

 


















『학교의 슬픔』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열등생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 못한다. 지독한 열등생이 느끼는 암흑과도 같은 절망을 우리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지독한 열등생이 평범한 어른이 되었을 경우에도, 우리는 지독한 열등생이었던 사람이 지은 을 읽게 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책은 대부분 똑똑했거나 혹은 똑똑한 사람들이 쓴 것이다. 전문 지식이 많은 사람, 정보가 풍부한 사람, 세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 마케팅에 능한 사람, 세상에 대한 혜안을 가진 사람, 특별한 감성을 가진 사람, 그 감성을 말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의 책을, 우리는 읽는다. 열등생이었던 사람의 글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책에는 열등생이 느끼는 절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열등생이었던) 작가가, 그런 고민과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돕는 경험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나는 이렇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선생님을 중4와 고3 사이에 세 분 더 만났다. 이 세 구원자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하겠지만, 한 분은 수학 자체였던 수학 선생님이고, 또 한 분은 역사 구현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놀라운 재능의 역사 선생님,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철학 선생님이다. 철학 선생님은 나에 대한 기억을 하나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기에 (편지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를 더더욱 놀라게 했으며, 이로 인해 그분이 더 크게 보였다. 그분의 인정에 기대지 않고 전적으로 그분의 비법 덕분에 나의 정신이 일깨워졌으니 말이다. 네 분의 선생님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구원했다. (118)

 


열등생이었던 그는 어떻게 선생님이 되었고, 작가가 되었고, 소설가가 되었나. 저자는 말한다. 천재적인 선생님, 선생님들이 나를 구원했다. 내게 맞는 학습법을 고안해, 내게 적합한 숙제를 내주어, 내게서 그 어둠을 몰아내 주었다. 나를 구원했다.

 

체스 마스터 베스에게 체스 교본은 필요하지 않다. 동아일보 기자, 5선의 국회의원, 전남지사, 국무총리 이낙연에게 6학년 문제집은 필요하지 않다. 작가인 다니엘 페낙은 더 이상 철자법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다르다. 12살의 베스에게는 5달러가, 6학년 아이 이낙연에게는 문제집이, 열등생 다니엘 페낙에게는 그에게 맞춤한 숙제가 필요했다. 되기 위해서, 무언가 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고, 가끔 그 도움은 한 사람에게서 온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주거나, 목숨을 담보하거나 하는 커다란 도움이 아니라, 아주 작은 도움, 어른의 입장에서는 사소하다고 할 만한 그런 작은 도움이 아이에게 힘이 되었다. 인생을 바꿔주고 그 아이가 뭔가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한 사람, 어떤 한 사람의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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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1-11 23: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퀸스 갬빗이 그런 내용이었나요??
영화를 볼까,말까... 포스터만 계속 보기만 해도 눈빛에 쪼그라들어 매번 포기했었네요.
그니까 그 눈빛은 천재 소녀의 강렬한 눈빛이었군요??
리뷰를 읽고 나니 아이들을 보는 시선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드네요.
경종을 울려 줍니다!!!^^

단발머리 2021-11-11 23:27   좋아요 4 | URL
저도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는 일단 천재 소녀입니다. 아니죠, 그냥 체스 천재입니다. 체스 영재요.
아이들을 보는 시선은 종종 점검해봐야 될거 같아요. 저는 그렇습니다 ㅎㅎㅎ

청아 2021-11-11 2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런 말이 있나봐요.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온 세상을 살리는 것과 같다고요. 저도 <학교의 슬픔>최근 사 두었는데 잘했네요. 이낙연의 ‘그 선생님 ‘얘기 울컥했습니다~♡

단발머리 2021-11-14 20:30   좋아요 2 | URL
<학교의 슬픔> 저도 아껴서 조금씩 읽고 있는데 너무 좋아요. 미미님이 읽으시면 좋은 리뷰 나올것 같아요.
기대하고 있을께요!!

그림 2021-11-12 07: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이낙연 어린이 선생님 이야기는 넘 감동적이네요..!

단발머리 2021-11-14 20:49   좋아요 3 | URL
그렇죠. 저도 그 이야기 듣는데 ‘지어낸 이야기‘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랍더라구요.
나중에 이낙연 전 대표가 국회의원이 되셨을 때, 저 선생님을 후원회장으로 모셨다고 해요. 실존인물이십니다^^

다락방 2021-11-12 08: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 너무 좋네요, 단발머리 님.
제가 늘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 글에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비단 그 어른 자신에게만이 아닌, 나보다 어리고 약한 존재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가 누군가를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할 순 없어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많은 약한 처지의 사람들이 좀 더 힘을 얻고 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단발머리 2021-11-14 20:34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런 맘이 많이 들어요. 근데 사실 이런 작은 친절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관심을 가졌던 건, 그 훌륭한 위인들이 아직 아이였을 때, 그런 도움이 얼마나 절실한가 하는 점이었어요. 어른에게는 그렇게 큰 돈 아닌데, 그런데도 그게 100배, 200배의 효과를 내게 되니까요.
참.... 여러모로 부끄러운 제 자신을 돌아보는 읽기였어요.

붕붕툐툐 2021-11-12 10:1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이콩~ 이런 대단한 샘들 이야기에 저를 떠올려 주시다니 너무 황송하네요~ 저는 그냥 좋은 영향력을 준다는 건 욕심인 거 같고 해로운 영향을 주지 말자 쪽인 어 같아요. 그래서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좋은 점은 잘 발현되도록 돕는 정도? 현재 필요를 채워주면 그걸로 되었다 싶어서 졸업생 찾아오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ㅎㅎㅎㅎ
열등생의 마음 너무 알고 싶어요~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앞에 좀밖에 못읽고 반납했어요~~ 다시 빌려 읽을래용! 단발머리님 감사해용!!😄

단발머리 2021-11-14 20:38   좋아요 2 | URL
진짜 툐툐님 생각났어요. 어떤 직업보다 선생님이 그런 역할을 하기에 좋은 직업군이라고 생각하기는 해요. 그리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겠다 막 결심하고 달려드는 것보다 툐툐님처럼 해로운 영향을 주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이들을 더 편하게 대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열등생의 마음 심도깊게 파헤쳐드립니다. 그 아이들 뇌 속의 암흑과 마음 속의 고통을 속 시원히 해부해 드립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mini74 2021-11-12 1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드라마로 먼저 봤어요. 단발머리님 글처럼 아저씨의 무심해보이는 모습 속 다정함이 좋았어요. *^^*

단발머리 2021-11-14 20:39   좋아요 2 | URL
미니님은 벌써 보셨군요!!! 전 드라마는 아직 보기 전인데, 사진으로만 봐도 주인공이 너무 매력적이네요.
샤이벌 아저씨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요^^

- 2021-11-12 2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샤이벌 아저씨 너무 좋죠. 위의 다정한 승리자 페이퍼와 연결지어지며 더 뭉클 쫀쫀. 퀸스갬빗이야 말로 숨어있는 무심한 다정한 존재들을 발견하는 이야기로구나 싶어지는 군요. 자 퀸스갬빗을 끝내신 후, 단발님의 인류애를 길이 보존하는 동시에 모든 생물의 다정함 마저 증폭(?) 시키기 위한 장치로 저와 함께 에단호크 감독의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감상하도록 하십시다. 유튜브 유료결제요망.

단발머리 2021-11-14 20:41   좋아요 3 | URL
샤이벌 아저씨가 베스에게 체스 가르쳐 줬는데 베스한테 지고 잠깐 삐졌을 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무말 없이 스스르 돌아오셔서는, 바로 체스 한 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단호크 감독의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감상하려고 해요. 유튜브 유료결제 한 번도 안 해보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감상해보려고 해요.

- 2021-11-14 21:41   좋아요 2 | URL
가족영화로 안성맞춤 🤗 단발님 ㅂㄱㅅㅍ요

단발머리 2021-11-14 21:44   좋아요 3 | URL
응… 찾아볼께요. 나 아까 ㅂㄱㅍㅇ로 읽었어요. 그래서… 에궁 간식 없어요? 할려고 했더니 ㅂㄱㅅㅍ요, 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11-14 21:46   좋아요 2 | URL
통일되는 모음은 오 입니다💕 가 ㅅ은 이 네요 ㅋ

단발머리 2021-11-14 21:47   좋아요 3 | URL
나 이거…. 못 읽고 있어요. 엥? 🙄

- 2021-11-14 21:48   좋아요 2 | URL
아이참 보고시포요 보고싶다궁 🙄

단발머리 2021-11-14 21:49   좋아요 3 | URL
쫌만 기둘려요. 시간아 얼른 훨훨 날아가보렴!!! 🤨🤨🤨

독서괭 2021-11-13 01: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역할, 든든한 어른의 역할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네요.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한명의 어른만 있어도 아이는 자기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텐데…

단발머리 2021-11-14 20:48   좋아요 3 | URL
저는 항상 부모 이외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 어른이요. 물론 사촌언니나 오빠, 이모, 고모, 외삼촌, 막내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될 수 있겠지요.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물질적인 면에서도요.

제가 예전에 <헬프>라는 영화를 봤는데, 영화 속에서 백인 엄마들은 맨날 예쁜 옷 입고 파티하고 모임하고 그러거든요. 애들하고 심정적 거리는 흑인 보모가 가까워요. 자기 아이를 맡기고, 내버려두고, 혹은 공동육아 상태로 놔두고 와서 백인 아이들을 돌보는데, 그 흑인 보모들이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니까. 애들도 알아요. 이 사람이 엄마는 아닌데, 나한테 엄마 같은 존재다. 그런 거를요.
갑자기 독서괭님 댓글 읽다가 혼자 시네마 천국 찍었네요. ㅎㅎㅎㅎㅎㅎ 편안한 밤 되세요^^
 



 














밀리의 서재 6일째다. 너무 좋다.

 


친구가 밀리의 서재 구독권을 줬다. 늦은 봄이었다. 너무 더워서 책장 넘기기 힘들 때, 재미있는 전자책 왕창 봐야겠다,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은 없었다. 나의 여름, 나의 휴가, 나의 휴식은 없었다. 올해는 없었다. 그래서, 구독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저께 필통 사이에 구독권이 빼꼼히 보여서, 이거는 기한이 없나? 하고 확인해 봤더니, 왜 없겠나. 12 31일까지다. 어머나, 친구가 2개월 구독권이라고 했는지, 3개월 구독권이라고 했는지 잊어버렸는데, 3개월이라면 이미 한 달이 없어지고 만 상태. 부랴부랴 회원가입을 하고 앱을 깔고 책 서핑에 나섰다. <나의 서재>도 꾸며 보았다





흐뭇한 광경을 만끽하며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는 크레마 사운드를 꺼내 피씨와 연결했다. 누워서 크레마로 책 읽는 나의 모습, 크흐흐. 하지만, 헤매고 돌고, 돌고 헤맨 후에 밤 11시 반에 얻은 결론은, 내 크레마 사운드로는 밀리의 서재를 볼 수 없다는 것. 괜찮다, 괜찮아.

 



급하게 선택한 책들이기는 하지만 나름 신중하게 고른 이 책 중에, 나는 (내가) 유시민의 책이나 베블런의 책이나 혹은 정지돈의 책을 읽을 줄 알았다. (제일 먼저 다운받은 책은 유시민의 책이고, 제일 먼저 열어본 건 정지돈의 책). 그러나, 사실인즉슨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잭 리처와 함께했으니. 그는 언제 어디서나 최고다. 온몸이 무기요, 몸을 휘두르면 살인 병기이며, 잘 먹고, 잘 자고, 무엇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다. 크고 빠르고 정확하며, 어떤 사람보다도 강하다. 그런 사람과 1 2일을 함께했다.

 

나쁜 사람일 것 같은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가, 다시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그저 그런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마다 재미있었고, 피해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가 살인 기계로 변신하는 과정은 놀랍고 끔찍했다.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부분도 보게 되어 조금 무섭기도 했다(겁 많은 사람).

 


여기저기 돌아보니, 100자 평과 비슷한 한 줄 리뷰기능이 있던데 장강명의 한줄 리뷰가 간간히 눈에 띄었다. 내가 아는 장강명일까 했는데, 내가 아는 (나쪽에서만 아는) 소설가 장강명이어서 반가웠다. 장강명 바로 밑에 한 줄 리뷰남길까 말까 생각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책은유한 계급론』이 되어야 하는데, 잭 리처를 만나지 않을까 싶다. 리처, 나의 리처. 나만의 잭 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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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7 18: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할수 있어요.. 밀리의 서재 크레마로 깔 수 있어요.... 가져와요... 깔아드릴게.... 저도 구형 크레마인데... 잘 설치해서 잘 읽구 있어여.... 할수 있어여... 우리는... 할 수 있어....

단발머리 2021-11-07 23:12   좋아요 3 | URL
깔............수............. 있는 거였어요? 후덜덜덜덜.....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죠. 가지고 나갈께요. 만세! 불러야 하는데 놀라서 말이 안 나오네요 ㅎㅎㅎ

mini74 2021-11-07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잭 리처의 동반자 단발머리님 ~ 글에서 행복이 느껴져서 읽는내내 저도 기분이 좋아요 ~~공쟝쟝님의 애타는 마음도 아주 잘!! 느껴집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1-11-07 23:16   좋아요 3 | URL
저는 그제도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잭 리처와 함께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악의 사슬>에서는 작은 마을에 숨겨진 범죄의 비밀(실종, 살인사건)에 휘말린 리처가 숨을 곳 없이 들판을 헤매고 있습니다. 적들의 눈에 띄지 않고 리처는 이 난관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다음 페이퍼에 계속됩니다)
쟝쟝님이 해준다고 했어요. 어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11-0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의 사슬 넘나 재미있지요? 저 진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서 읽었어요. 후훗. 잭 리처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단발머리 님 덕에 다시 만나야겠네요. 아니 알라딘 서재를 들어오지를 말아야지, 여기 들어오면 잭 리처도 빨리 봐야겠고 보부아르 전기 빨리 읽어야겠고 에밀 졸라 사둔거 읽어야 되고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겠네요. 단발머리 님 잭 리처랑 주말 보내시다니, 잭 리처 이 자식 정말 넘나 역마살 있는 것...

단발머리 2021-11-09 12:53   좋아요 0 | URL
악의 사슬 넘나 재미있어요. 이제 반 정도 넘었는데, 리처 코뼈가 옆으로 밀렸ㅠㅠㅠㅠㅠㅠㅠ 리처 만나 너무 좋은데요, 대신 다른 책이 손에 안 들어오네요. (이리가레 책은 오고 있거든요) 이래저래 저만 즐거운 시간입니다.
보부아르 전기, 저도 반 정도 남았는데 갑자기 기억나네요. 마저 읽어야하느니.... 하고 있어요. (먼 산)
 

















2의 성 읽다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 많았지만, 돌아보니 좋은 시간도 많았다. 다음에 또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도 망설임 없이, 가차없이 읽을 생각이다. 같이라면.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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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6 17: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름다워요!! 🤭

단발머리 2021-11-06 17:35   좋아요 4 | URL
저 잭 리처 리뷰 쓰고 있어요. (댓글이 너무 딱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잭 리처는 사랑입니다! 💕

막시무스 2021-11-06 1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토록 달달한 유혹이라니요!ㅠ.ㅠ...편의점 순방 한번 해야 할 것 같네요!ㅎ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단발머리 2021-11-07 23:17   좋아요 4 | URL
편의점 순방 잘 하셨는지요ㅎㅎㅎㅎ 저도 즐거운 주말이었습니다. 막시무스님 좋은 한 주 되세요!!

mini74 2021-11-06 1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무게만큼 몸무게 늘어나신거 아닌가요 ㅎㅎ 책도 예쁘고 간식은 더 예쁘고. 사진 잘 찍으시는 분들 부러워요.ㅎㅎ

단발머리 2021-11-07 23:18   좋아요 3 | URL
책 무게보다 몸무게가 더 늘어났습니다만 그래도 즐거웠네요. 책이 예쁜데 간식이 더 예쁜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11-06 2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간식들 주문이 가능하다면 다음주 월~금 까지 차례대로 시키고싶어요~♡♡

단발머리 2021-11-07 23:19   좋아요 3 | URL
딱 다섯개라 아주 딱이네요. 쿠키랑 스콘은 저희 동네 새로 생긴 디저트집 작품이구요.
정새우와 신당동 떡볶이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잠자냥 2021-11-06 21: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칼로리가 필요한 책이군요….;

단발머리 2021-11-07 23:20   좋아요 3 | URL
과자 먹으면서 읽을 책은 아니지요. 주로 간식 없이 읽었다는 점 강조하고 싶습니다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칼로리가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1-11-06 21: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호~~^^
몸과 정신을 살찌우는 제2의 성이라니~~ㅋㅋㅋ

단발머리 2021-11-07 23:21   좋아요 3 | URL
몸과 정신이 모두 살쪘습니다. 으흑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수이 2021-11-07 00: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맛난 것들과 함께 제2의 성을 읽으셨다니 그중에 저는 스콘이 제일 짱!

단발머리 2021-11-07 23:22   좋아요 3 | URL
저 스콘으로 말씀드리자면 ㅋㅋㅋㅋ 허름한 동네 구석에, 앉을 자리도 없는, 테이크 아웃 스콘 앤드 쿠키 전문점의 인기 상품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11-07 0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제2의 성 맞지요?^^
떡볶이 과자, 제가 둘째가 사올때마다 왜 그런걸 먹냐고 했던건데,,,,
비밀은 맛있다는 사실^^

단발머리 2021-11-07 23:23   좋아요 3 | URL
다섯 장에 모두 등장하니 제2의 성이 주인공 맞습니다.
저도 그 과자를 큰애를 통해 전도받고 그레이스님과 똑같은 코스로..... 이제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2021-11-07 18: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맛있는거 많이 드셨다... ㅋㅋㅋㅋㅋ >_<

단발머리 2021-11-07 23:24   좋아요 3 | URL
모두 맛있었습니다. 만세!!!

psyche 2021-11-14 1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새우 먹어봤습니다! 왜이렇게 반갑죠? ㅋㅋㅋㅋ
동생이 맥주 안주 하라고 사줬는데 진짜 안주로 딱 이더라고요. 저 사진 옆에 맥주가 빠져 아쉽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1-11-14 20:53   좋아요 1 | URL
프시케님!! 정새우는 사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딱 한 개 샀거든요. 저 혼자 다 먹으려고 숨겨놓았고 사진 찍고 또 숨겨 놓았습니다.
제게는 커피가 곧 맥주이며 ㅋㅋㅋㅋㅋㅋㅋ(뭐라고 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젯밤에는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성공회대 하종강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가 내 생각이 나서 연락하는 거라고 했다. 어머나, 하종강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친구라니. 너무 근사한 거 아닌가. 좋은 강의 듣는구나, 답했다. 친구는 다른 강의에서 헨리 조지가 나오면 또 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어머나,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를 들을 때 생각나는 친구라니,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 친구는 나를 많이, 계속 좋아하는 친구다. 15년 전인가.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친구 집에 갔다. (그 지역은 조문을 집에서 받는 분위기) 일행이 나까지 넷이었는데, 서울에서 큰딸 친구들이 왔다는 이야기에 어머님이 우리를 맞으시는데, 내 두 손을 꼭 잡으시며 네가 **이니?” 하고 물으시는 거다. 어머님의 따뜻한 손과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단번에 알았다. 친구가 나에 대해 어머님에게 어떻게 말했는지를. 기대와 기대와 또 기대감에 가득 찬 사랑의 눈빛.

 


내 친구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인데, 이를테면, 4학년 때 구내식당에서 1학년 때 들었던 수업 내용에 관해 물으면, 수업 내용과 예시는 물론이요, 그 앞뒤로 선생님의 시답잖은 농담까지 기억하는 친구다. 기억의 쌍두마차 중 한 명이다. 진보와 빈곤이라니, 안 봐도 비디오다. 대학교 4학년 때 『진보와 빈곤』을 읽은 거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얼마나 아는 척에, 깝치고 다녔을까. 비상한 기억의 소유자이자 착한 내 친구는 헨리 조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의 나를 긍정적으로기억해내고, 내게 말하는 거다. “그걸 지금에야 알아듣고 삽니다. ㅋㅋㅋㅋ, 비상하고 착한 친구여.


 

기억의 쌍두마차 중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다. 얼마 전에 카톡을 하다가(카톡 많이 하는 사람), 큰아이를 낳고 얼마 안 되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딸기를 사 왔다고 했는데, 친구는 딸기는 기억이 안 나고 아이 내복을 사 갔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친구 말이 맞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기억의 쌍두 마차 중 하나니까. 이 친구의 기억은 무조건 옳다. 그래서 얼른, ‘그래, 딸기랑 아기 옷을 사 왔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네가 복숭아를 너무 예쁘게 깎아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어그러는 거다. 복숭아라. 나는 과일을 잘 못 깎지만, 복숭아는 그중에서도 워스트다. 사과, , 참외, 수박, 멜론과는 결이 다르다. 특히 말랑이는 최고의 난이도다. 이번 추석에도 동서가 복숭아를 이쁘게 깎고 있길래 복숭아이렇게 깎는 거지?”하고 물었더니, 동서는 응응.”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러는 거다. 네가 복숭아를 너무 예쁘게 잘 깎아서. 20년 전의 내가? 진짜? 그래서, 그 친구는 기억의 쌍두마차 중 한 명인데도, 나는 용감하게 말했다. “설마?”

 














최근에 읽었던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를 이렇게 정의한다.  

 




란 내 기억의 총합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두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아는 나와 남들이 기억하는 나. 친구들의 기억 속에 나는진보와 빈곤』을 읽고 복숭아를 예쁘게 깎는 사람이지만, 실제의 나는 지난번 이사 때진보와 빈곤』을 버렸고 (후회막급), 아직도 복숭아를(다른 과일도) 볼품없는 모양으로 내놓는 사람이다. 어떤 게 진짜 나일까.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에 가까울까.  

 

기억을 다운받아 그것이 물질적인 형체를 갖지 않은 채 데이터 형식으로 우주를 유영한다면, 혹은 디지털 공간에서 영원히살아간다면, 그걸 나의 현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육체 속에 갇혀 있어야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여야만 라고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나일까. 어디서부터 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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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0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 친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다 같은 상황에 기억이 서로 다르게 앉아 있다는 사실에 서로 깜짝 놀라곤 하죠. 내가 기억의 총화라고 한다면 그 기억은 나의 기억이 아니라 타자의 기억일 가능성이 더 큰 거 같아요. 망각도 기억의 한 방식이죠. 어떤 일은 감쪽같이 망각하곤 없는 일이 되어 있는데 타인의 기억 속엔 살아 있으니 지울 수 없지요. 자신의 기억에 없다고 해서 없는 일이 아닐텐데 말이죠. 더구나 변조된 기억은 어떡하나요. 단발머리 님 페이퍼대로 진짜로 나는 무수하더라구요. 세상 사람 수만큼이나. 어떤 나는 맘에 들기도 하고 어떤 나는 한 대 때리고 싶고요 ㅎㅎ

단발머리 2021-11-06 17:5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말씀 너무 공감되고 동의합니다. 더 정확한건 타자의 기억 같아요. 전 이불킥을 자주 하는 사람이기는 한데, 타인의 기억 속에 나는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더라구요. 생각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더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타인의 기억 속의 나와 진짜 나를 비슷하게 맞춰가는게 좋은 것 같아요. 전, 타인의 기억 속의 저를 쪼금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요.
 
제2의 성 을유사상고전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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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음악, 독서도 하나같이 똑같은 역할을 한다. 일하지 않는 여자가 그런 것에 전념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자기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다. 미래를 열지 않는 행동은 내재의 공허 속으로 다시 떨어진다. 한가한 여자는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집어던지고, 피아노를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자수를 다시 집어 들고는 하품을 하고, 결국에는 전화 수화기를 든다. 그녀는 확실히 사교 생활에서 가장 쉽게 도움을 구한다. 외출하고 방문하고 손님 접대에 - 댈러웨이 부인처럼 -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녀는 모든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한다. 더 이상 자기 생활이 없으므로 타인의 존재에 기대어 살아간다. 교태 부리는 여자에서 수다스러운 여자가 된다. 그녀는 관찰하고 논평한다. (813)

 


이 부분을 읽고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은 이렇게 적었다. “아마츄어로서의 읽고 쓰기를 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언니가 일갈할 때 심장에 수류탄 넣어주시는 줄 알았다. 아주 그냥 제대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집어 던질뻔도.” 보부아르를 인생의 등불이라 칭하는 착한 성정의 이웃님이 전해오는 이 놀랍고도 불쾌하며 정당한 감정. 나도 비슷하게 느꼈다. 여성의 취미 생활에 대한 저평가. 가정에 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이해 부족. 엘리트주의. 아마추어에 대한 냉소. 하지만 보부아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에 대해선 이해한다. “대학에 가라. 학위를 따라. 직업을 가져라고 말했던 베티 프리단의 주장도 겹쳐 보인다. 봉사 활동마저 사교 활동의 연장으로서 이해되는 환경에서 직업’,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질 것을 강조한 이유를 이해한다. 다만, 그녀들이 돈 벌러 나갔을 때 그 집 아이들을 돌보았던 흑인 여성들, 3세계 여성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 등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의 요구는 팽크허스트Pankhurst 일가가 런던에 여성사회정치연맹 Woman Social and Political Union'을 창설한 1903년경에 특이한 국면을 맞았다. 이 연맹은 노동당에 가담하고, 과감하게 전투적인 활동을 펼쳤다. 여자들이 순수하게 여자의 자격으로 확실하게 노력하는 시도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것이 영국과 미국의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던 여성들’ 의 모험에 특별한 흥미를 더해 주었다. 그녀들은 15년 동안 여러 면에서 간디의 태도를 연상시키는 압박 정치를 주도했다. 폭력을 거부하면서 다소 교묘하게 그 대용품을 고안해 냈다. 그녀들은 자유당 집회 동안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는 글이 쓰인 깃발을 휘두르면서 앨버트 홀에 침입했다. 애스퀴스Herbert Henry Asquith(1852~1928)의 사무실에 밀고 들어가거나, 하이드파크나 트래펄가 광장에서 집회를 열거나,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거나 강연회를 개최했다. 시위 도중에는 소송 사태를 유발하기 위해 경찰을 모욕하거나 돌을 던지며 공격했다. 교도소에서는 단식 투쟁을 벌였다. 기금을 모으고 그녀들 주위로 수백만 명의 여자와 남자를 결집시켰다. (202)

 


참정권 투쟁의 역사는 전투적이다. 좋은 말로. 좋게좋게 말했을 때는, 아무도 여성의 말을 들어주지않았다. ‘과격한투쟁이 이어질 때야 비로소 상대방은 묻기 시작한다. ”?”, “왜 그러는 건데?”

 

답은 정치에 있다. 얼마 전에 의붓딸을 12년 동안 343회 성폭행하고 낙태까지 종용했던 의붓아버지에 대한 판결이 났다. 25. 고작 25년이라니. 9살의 나이부터 현재까지 지옥을 살았을 그 아이의 삶은 무엇인지, 그 삶에 대한 일말의 고려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021 11 2), 아이가 사정을 털어놓았던 사회복지사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집에 보내지 않자 면사무소를 찾아가 갖은 욕설과 폭언을 하고 현관문, 유리창을 부수고, 사회복지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의 욕설을 담은 문자메시지,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폭력적인 피의자에 대해 아이가 현재도 느끼고 있을 공포심에 대해 사법부는 뭐라 말하는가. 25년이라니.

 

더 강력한 처벌이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판사들은 소극적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한계 내에서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형량을 내린다. 그렇다면 법을 바꿔야 한다. 입법은 국회의 영역이지만, 푸른 꿈을 안고 국회에 입성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작다고 말한다. 성범죄에 대한 더 강력한 처벌을 규정하는 법을 발의하면, 같은 당의 의원 중 공동 발의할 의원을 모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그 당의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상대 당의 일부 의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결국은 정당이다. 여론 환기와 법 개정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국민적 관심 속에 법 제정을 추진할 곳은 정당뿐이다. 판결에 분통이 터진다고 마냥 기다릴 일이 아니다.

 



여자가 자신을 위해 자신에 의해 살게 될 때, 그때 여자는 완전히 한 인간이 될 것이다. (379)

 


자신을 객체로 보는 나 자신의 시선에서 벗어나 주체로 살아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페미니즘 책을 계속 읽어오고 있지만,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는 시간은 좀 달라서 마음이 복잡했다. 친구들과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대학교 4학년 때 친해진 친구 세 명은 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인 건 분명한데, 친구들은 세 명 모두 장학생. 공부할 마음도 공부할 실력도 안 되는 나인지라 그때는 고민하지도 않았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나니 그때의 결정이 아쉽고 후회가 되기도 했다.

 

더 공부하지 않은 혹은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이게 맞는 걸까 고민되는 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얻은 가르침은 대학원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함께 텍스트를 읽고 그 너머와 이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말하지 않은 혹은 말할 수 없는 행간을 이해하는 당신. 지혜로운 당신 그리고 또 멋진 당신이 여기에 있다.

 



내게 가르침을 주는 당신이 바로 내 스승이다.

내 친구 당신이, 내 스승이다.

나의 소중한 친구이며, 또한 나의 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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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5 11: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눈물이 핑 도네요. 혹시 나인가, 라고 생각하는 바로 당신이라니.

저도 과거의 제가 왜 공부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수시로, 자주 생각해요. 그 때 공부 열심히 했다면 내가 완전히 다른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에 대한 생각도 하고요. 지금 이런 후회와 마음가짐이라면 최종학력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단발님께 박사 친구 되어줄 수도 있었을텐데... 하아-

그렇지만 저 역시 단발님이 쓰신 이 글처럼 좋은 친구들을 스승으로 두고 있습니다. 같이 책 읽으면서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알게 되고 또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요. 어쩌면 제 인생에는 학창시절 공부 대신 좋은 벗들이 주어진건지도 모르겠어요. 주기적으로 대학원을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가지 않는 지금의 제가 되었지만, 우리 서로에게 벗이 되어주고 스승이 되어줍시다, 단발머리님.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단발머리님은 지금 최고로 멋져요. 그걸 잊지 말아요!

단발머리 2021-11-05 13:18   좋아요 3 | URL
더 공부했다고 뭐가 달라질건가 (제 주위의 숱한 고학력 여성들) 하는 생각과 더 공부했다면 달랐을거야, 하는 생각이 항상 막상막하입니다. 다락방님이 저의 박사 친구여도 너무 좋았겠지만(하이! 닥터 리!) 작가 친구여서 괜찮습니다.
박사 보다 작가 아니겠습니까!!!

고미숙 선생님이 서로에게 친구이며 스승인 사람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책에서). 생각보다 로맨스의 기간은 짧고 또 아.... 짧죠. 지금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나누고 힘을 주고 파이팅을 외치는 친구들이, 새로운 가르침을 주고,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친구들이 제게 스승입니다.

혹시 나인가,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바로 제 친구이고, 바로 저의 스승입니다.

- 2021-11-07 18:41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하는 공부가 제일 재밌고, 과거의 공부안한 저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페미니즘 공부가 재밌는 이유는 바로 과거의 제가 해댄 수없는 헛발질들 때문입니다. 공부가 재밌어진 이유가 과거에 공부를 안했다는 반성이기에 ㅋㅋㅋㅋ 만약에 공부를 했다면 정작 지금은 공부 안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ㅋㅋㅋ)
반칠십에 생긴 공부에 대한 욕심은 스승이며 친구인 그대들 덕분입니다. 사.....사라...사탕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멈칫했는데, 시대적 사유때문인걸로 이해하고 넘어갔어요^^
아마 지금이었으면 다른 말을 했을지도...
성취, 사회적 성공을 통해 주체로서의 삶을 인식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보부아르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성을 벗어나지 못했겠죠.
그것의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한계인듯요

스승에 관한 문장 동감입니다

단발머리 2021-11-05 12:42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성취와 사회적 성공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죠.
또 이후에 그런 측면만을 강조했을 때 여성에게 주어진 이중, 삼중의 노동이 있었음도 분명하구요.
한계를 넘어서고 또 현재에 맞게 고쳐나가야 한다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들과 알라딘 이웃님들이, 저의 스승입니다^^

2021-11-05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5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5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21-11-05 12: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신에 의해, 라는 말에 적극 동의 동감합니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1-11-05 12:50   좋아요 3 | URL
네 맞아요. 자신에 의해, 자신의 힘으로, 노력으로.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유부만두 2021-11-05 13: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 읽으면서 (네 읽고는 있습니다) 영화 ‘서프레제트‘를 챙겨 봤는데요, 배우들 좋은 연기와 이야기가 너무 매끄럽고 우아하게 슬퍼서 그 과격함이 순화된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시절 내가 그 곳에 있었더라면? 하는 질문에는 마음이 많이 복잡해지고요. 보부아르의 책은 (전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절 ‘공부‘하게 만드는 책이에요. 쫌만 기다려주세요. 거리의 은행알이 다 터지기 전에 제가 완독을 해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11-07 23:04   좋아요 0 | URL
보부아르 읽으면서 서프레제트 보기, 너무 좋은 계획이네요. 그 시절 그 곳에 있었다면, 용감하지 않았을 거 같아서.... 전 아직 그 영화를 못 보았는데, 그래도 봐야겠지요.
이것저것 챙겨서 보시면서, 보부아르 평전도 읽으시면서 부지런히 읽고 계시네요. 은행알이 천천히 다 터지기를요^^

책읽는나무 2021-11-05 14: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문...딱 저 인용문!!!!
저도 인용할 뻔했던 딱 저 인용문!!!
몇 달전부터 그림과 피아노 둘 중 하나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강렬한 의지가 불타 올라 미술 학원이랑 피아노 학원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거든요.차마 시작하고픈 용기는 안나.....미루고 있었죠.
헌데....저 인용문에 순간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책 덮었죠!!!
그림이나 자수등의 작품들을 그저 수공예품이라고 일갈하는데....하~~
아마츄어 여성작가들을 폄하 할때도 하~~
보부아르님도 선입견이나 고집이 상당하시겠다!!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했죠.
그럼 수채화 대신 아크릴화로~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으로~
음악 대신 체육???
독서 대신....대신....????
독서는 대신할 게 없네요??
그럼 다시 독서로 돌아오면 되겠죠ㅋㅋㅋ
마지막 문구는 눈물 흘릴 뻔 했어요.
단발머리님의 스승이 될 수 없어 아쉽다고 운 건 절대 아니에요.ㅋㅋㅋ
오늘도 많이 배워 갑니다.
가르침은 단발머리님이 주셨어요^^

단발머리 2021-11-07 23:08   좋아요 1 | URL
일단 저로서는.... 피아노 배우기랑 그림 배우기 모두 추천드리고 싶어요. 저는 취미가 직업만큼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열망까지 있으시다면 더 미루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 인용문 그대로 한 적도 있어서 말이에요, 저는요. 그래서 싫었습니다만.... 하....
설렁설렁이 아니라 프로의식을 갖을 것에 대한 충고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독서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일 쉽고 간단하고 상대적으로 돈도 덜 드는 최고의 놀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책나무님 저의 스승이에요. 책읽기도 그렇고, 아이들 키우는 것도 그렇고, 김치(특히 총각무) 담그시는 것도 그렇고요.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해요, 책나무님!!!

붕붕툐툐 2021-11-05 2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너무 멋지셔요~ 북플에서 이렇게 멋진 분들의 대화를 읽을 수 있다는게 넘 행복하네용~😍

단발머리 2021-11-07 23:09   좋아요 1 | URL
멋지다고 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제게 주신 멋짐 모두 모아 툐툐님께 반사!!!

라로 2021-11-06 13: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보부아르 시작했어요. 넘 뭘 몰라서 이렇게 뒤늦은 시작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일찍 시작하신 단발머리님과 같은 분들이 제 스승입니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이렇게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단발머리 2021-11-07 23:11   좋아요 1 | URL
보부아르 읽기 시작하셨군요. 라로님 바쁘신대도 독서에 진심인 모습 항상 보기 좋아요.
스승이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부족한 글인데도 읽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