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H마트가 나와 있듯 이 책의 주요한 한 가지 축은 음식이다. 미국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인 저자에게 음식은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한국을 추억하는 수단이면서 엄마에 대한 기억을 포함한다. 집밥이 힐링과 연결되면서, 엄마가 해주신, 혹은 할머니의 손맛이 살아있는 집밥에 대한 향수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적고 20년 넘는 주부 생활에도 한결같은 손맛을 유지하는 날라리 엄마로서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나의 손맛이 밴 음식으로 기억할 만한 것이 있을까. 아롱이는 시어머니의 떡국과 LA갈비를 좋아하고, 다롱이는 엄마의 우거지 무침과 배추전, 두부조림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해준 음식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글쎄... 예전에 이 책을 읽던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이걸 물어보았더란다. 다롱이는 재빨리 눈치를 살피고 '김치볶음밥'이라 했고, 아롱이는 솔직하게 스팸(스팸이 요리냐!!)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물어보지 않고 나 혼자만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란다. 소울푸드라면 따뜻하고 푸근하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한 그런 음식이어야 할 텐데. 그런 음식이 있던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억지로 짜내고 또 짜내어 보니 그래도 '미역국'이 제일 근접한듯하다. 아이들도 내가 만든 미역국을 잘 먹으니 소울푸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언저리에라도 얹힐 수 있을 것 같다.

미역국은 만들기 쉬운 음식 중 하나이다. 소고기는 물을 적게 넣고 한 번 삶은 후에 그 물을 버리고, 참기름과 다진 마늘(안 넣을 때도 있음) 넣어 달달 볶아 놓고. 찬물에 불린 미역과 함께 다시 한번 볶은 후, 물을 넉넉하게 넣고, 자연한알을 2알 넣고 신나게 끓인다. 구운 소금을 아주 조금 넣어주고, 단발머리표 미역국의 최대 비법인 연두를 1.5 T 넣으면 완성이다. 아이들에게도 자연한알과 연두의 비법은 이미 전수하였으니, 그 맛이 생각날 때 아이들은 엄마의 미역국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 테지만, 아이들은 햇반컵밥 미역국밥에 더 쉽게 손이 갈 수도 있겠다.




이번에 읽으면서 꽂힌 문단은 여기였다.

It was supposed to be him. We had never planned for this circumstance, where she died before he did. My mother and I had even discussed it, whether she'd move to Korea or remarry, whether we'd live together. But i had never spoken with my father about what we would do if she died first because it had seemd so out of the realm of possibility. He was the former addict who shared needles in New Hope at the height of the AIDS crisis, who smoked a pack a day since he was nine, who practically bathed in banned pesticides for years as an exterminator, who drank two bottles of wine every night and drove drunk and had high cholesterol. Not my mother, who could splits and still got carded at the liquor store. (151p)

챗지피티한테 도와달라고 했다.

원래는 그가 먼저여야 했다. 이런 상황은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다. 그녀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어머니와 나는 가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만약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다면, 어머니는 한국으로 이주할지, 다시 결혼할지, 아니면 우리 함께 살게 될지 같은 것들. 하지만 어머니가 먼저 떠날 경우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과거에 중독을 겪었고, 에이즈 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뉴호프에서 주사기를 함께 쓰던 사람이었다. 아홉 살 때부터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웠고, 해충 구제 일을 하며 수년 동안 금지된 살충제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매일 밤 와인 두 병을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하기도 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았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아직도 다리를 쭉 벌려 스트레칭을 할 수 있었고, 술을 사러 가면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젊어 보였다.(151쪽)

같은 장기의 암은 아니었지만, 저자의 이모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어머니의 암 병력은 가족력을 의심하게 한다. 건강 체질에 더해 건강 관리가 충분해도, 아무리 충분했어도 질병의 공격에 대항한 인간의 노력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지난주, 그리고 그 지난주에 가까운 지인들의 부친상이 있었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은 항상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인사를 나누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위로의 말을 전하고 돌아선다.

이 세상에 갑작스럽지 않은 죽음이 있을까. 아니, 어떤 죽음은 예상된 죽음일까. 80살이 넘었을 때의 죽음은 덜 안타까울까. 어린 나이의 죽음은 더 애달플까. 못다 한 이야기, 전하지 못한 말들이 맴돌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이별이, 이별만 그 앞에 있다.

저자는 먼저 이별할 사람이, 먼저 죽게 될 사람이 아빠일 거라고, 그녀의 엄마도 자신이 아닌 남편이 먼저 죽게 될 거라 예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모두에게 예정되어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도 죽음은 당도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문제, 유일하게 중요한 단 하나의 문제. 죽음의 문제가 그 앞에 당도한다.

이번에도 오디오북의 도움을 받았다.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영상이라, 혹 불법적(?) 루트를 통한 것일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야무지게 잘 이용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각오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다음 책을 찾으러 떠난다. 올리브 책은 진작에 사두었고, 우리 집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한데, 달력 종이에 가려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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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2-02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앗 저 부분 아까 퇴근길에 읽었어요.. ㅜㅜ

잠자냥 2026-02-04 09:57   좋아요 2 | URL
출근길에 다시 읽어.......

단발머리 2026-02-04 10:09   좋아요 2 | URL
퇴근길에 읽어서 눈물 쏙 난 독서괭님🥹 퇴근길에도 읽으라는 잠자냥님!🤪

독서괭 2026-02-04 10:15   좋아요 1 | URL
출근길에도 읽고 있어요.. ㅋㅋㅋ

페넬로페 2026-02-03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한알과 연두
기억하겠습니다.
쇠고기 미역국이 생각보다 맛내기 어려워 저는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여러 재료로 만든 육수를 넣고 거기다 해물을 넣어 시원한 맛으로 먹거든요.

이 책 전에 오디오북으로 잠깐 들었는데
책으로 읽으면 엄마 생각나 눈물 날 것 같아요. 미안하게도 엄마에게는 왜 항상 따끈한 음식이 따라오는지 모르겠어요.

단발머리 2026-02-04 21:41   좋아요 1 | URL
해물 넣어 시원한 맛~~ 저도 도전해보고 싶은데, 저희집 식구들은 제가 만든 맛만 알아서요. 조개 미역국 먹고 싶네요~~

저는 처음에는 그냥 읽다가 오디오북 켜놓고 같이 읽었거든요. 힘들게 따라 읽는 과정 중에도 엄마 이야기는 항상 눈물 나더라구요. 음식처럼 엄마라는 존재가 따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미안하고 또 감사하구요~~

수이 2026-02-03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먼저 떠나면 단발님이 상실감에 우울해하실 걸 떠올리니 벌써 눈앞에 먹먹하여 같은 날 같이 가요, 하고 싶은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같이 죽으러 가자, 하는 거 같아서 아닌 거 같아요. 아 재미없어 하면서도 꾸준히 읽으시네요 역시 성실한 단발님

단발머리 2026-02-04 21:43   좋아요 0 | URL
같이는 아니지만 먼저는 아니구요. 같이는 아니지만 나중도 아니어서.... 일단은 그 먼 일을 차치하고 오늘에 집중해야 할 거 같아요. 오늘도 미용실 다녀오느라 많이 못 읽어서 꿀꿀한데 수이님이 성실하다고 하셔서ㅋㅋㅋㅋ 저 오늘, 새로운 2026년 오늘부터 성실하게 살려고 합니다. 진짜에요, 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 실!

책읽는나무 2026-02-04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역국 맛나겠어요.^^
쇠고기 미역국은 쇠고기 좋은 걸 써야 맛이 나던데…고기 누린내가 느껴지면 숟가락 들기가 힘들더라구요. 근데 연두가 맛내기의 비법이었군요? 음..저도 기억하겠습니다.^^

저 인용문 기억납니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 같죠? ㅜ.ㅜ
가족의 죽음은 늘 마음을 젖게 만드는 것 같아요. 며칠 전 ‘다 이루어질지니‘ 로코 드라마에 빠져 한참 봤거든요. 거기에도 할머니의 죽음을 맞는 싸이코 패스역을 맡은 수지의 애도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면서도 안타까웠어요.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느낀다는 것도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문득 들더군요.
암튼 완독하신 것 같은데 저도 축하드립니다. 이번 달 책이 올리브 책인 걸 확인한 순간 건너띄고 스트라우트 책으로 바로 넘어가? 고민 살짜쿵 하고 있어요. 이러니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ㅋㅋㅋ

단발머리 2026-02-04 21:47   좋아요 1 | URL
저는 한우만 고집하지는 않고요, 국거리로 호주산도 미국산도 구입합니다. 한 마디로 원칙 없는 미역국 되시겠습니다 ㅋㅋㅋㅋ

네, 저도 그렇게 생각돼요. 우리 모두 죽음에 대해 알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그 일이 사건이 되는 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니깐요. 특히 가족일 때는 더 어려울 거 같아요.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그 죽음 밖에 서 있는 사람, 바로 ‘나‘일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더 힘들고 어려운 거 같아요.

완독 축하 감사합니다. 단어도 안 찾고, 외우지도 않고 ㅋㅋㅋㅋㅋㅋ 그냥 쭉쭉 읽었던터라 부끄럽지만, 책나무님 축하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다락방 2026-02-06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아직 미역국을 제가 끓여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저도 한 번 도전해볼까 싶습니다. 연두랑 코인육수. 잘 기억하겠습니다.
타미가 저희 엄마의 미역국을 어릴때 엄청 좋아했어요. ˝할머니는 나를 사랑해. 나한테 미역국 끓여주잖아.˝ 했습니다. 둘째조카는 외할머니의 돼지갈비찜을 좋아합니다. 조카들 온다고 하면 엄마는 돼지갈비찜을 하십니다. 하핫.

저도 단발머리 님이 인용하신 저 부분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말이지요. 우리는, 부모님의 죽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한쪽의 죽음에 대해 간혹 생각하게 되잖아요. 저희 삼남매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희 이야기 속에서도 ‘그가 먼저여야 했‘습니다. 그런 한편, ‘그런데 그녀가 죽는다면‘ 이라는 말을 꺼내면, 우리 모두, 아 생각하기도 싫어... 하는 것입니다. 그 상실감을 안고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게 말이 되나? 가능한가? 하고 말이지요.

얼마전에 친구의 아버지가 위암 통보를 받으셨어요. 2-3기 사이라고, 수술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친구 작은아버지도 암으로 수술 받으셨대요. 아마도 가족력인가보다, 저도 생각합니다. 가끔, 더 잘 살기 위한 노력들, 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은 어떤 식으로 유효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보자고 계속 시도해보아야 겠지요.

단발머리 2026-02-07 10:47   좋아요 0 | URL
미역국은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쉽고ㅎㅎ 연두와 자연한알의 도움을 받으면 비슷한 맛을 내기가 쉬워요. 근데 물론 ㅋㅋㅋㅋ한우로 만들면 더 맛있습니다. 저는 고기를 안 넣을 때도 있고, 닭가슴살을 삶았다가 넣을 때도 있어요. 돼지갈비찜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소갈비찜을 한 번(진지하게 1회) 해봤는데,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먹기는 다 먹었습니다. 사랑과 미역국이 연결되는 타미의 세계를 저는 참말로 좋아합니다!!

부모님들의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기는 하죠. 마음이 무너지는 쪽은 거의 엄마 쪽이라고 저는 들었어요. 근데, 저번주에 가까운 분의 아버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는데, 언니가 그러는 거예요. 항상 엄마하고만 친했다고. 아빠 전화기로 전화해서는, 식사하셨죠? 엄마 좀 바꿔주세요. 그랬다구요. 엄마하고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데, 아빠하고의 시간이 진짜 끝났다고. 아빠한테 잘하라고. 아쉬운 마음 남지 않게 잘하라고요. 저는 그 주에 아빠한테 별일 없이 전화를 두 번이나 걸었지만... 아빠는 받지 않으시고 ㅋㅋㅋㅋ카톡으로만 왜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강하게 오늘을 사는 게 중요한거 같아요. 일단 오늘부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