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두었어야 했는데. '읽고 싶어요'에 책을 넣을 때, 밑에 댓글로라도 적어 두었어야 했는데. 적어 두지 않았고, 그래서 기억나지 않으며. 고로, 어디에서,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 혹은 읽고 싶었는지 알지 못한 채, 상호대차 완료되었으니 책 가져가라는 지시에 따라 책을 받아온다. 책을 펼친다.
나는 저평가되는 여성의 노동에 관심이 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혹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던 일, 주로 여성이 수행했던 일들은 경제적으로는 0원의 가치를 갖는다. '가사 노동은 보수 없이 가정에서 수행되는 무급 노동이라서 일반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 포함되지 않는다.'(네이버, AI 브리핑) 대부분의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이 이에 포함된다.
이때 억압이 '공통적'인 까닭은 이 억압이 모든 기혼 여성 시기에 상관없이 여성의 80퍼센트에게 적용되기 때문이고, '특수한' 까닭은 가정 내 무급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여성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며, '핵심적'인 까닭은 여성들이 '밖'에서 일을 할 때조차, 이들이 속한 계급은 여성으로서 겪는 착취에 의해 조건화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1>, 63쪽)
내가 이해한 바는 여기까지였다. 그러니깐 크리스틴 델피의 지적에 공감하는 내가 이해한 바로는, 가사 노동은 무급 노동이며 이의 주된 수행자인 여성은 '돈 받지 않고' 일한다는 것. 기혼 여성이 사회적 계약 관계에 들어가는 경우, 상당량의 가사 노동을 외주화할 수 있지만, 그중 상당수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는 것. 전업맘의 '(전, 일하는 사람 아니에요) 놀고 있어요'와 워킹맘의 이중, 삼중 노동의 굴레가 교차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이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하버드대 법대 교수이고,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는 대학 졸업 후 맥킨지에서 의료 및 공교육 담당 컨설턴트로 일했다. 두 사람은 모녀 관계이다. 그래서, 저자들의 개인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엘리자베스인 경우가 있고, 아멜리아인 경우가 있다. 두 사람의 삶이 이 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
제일 충격적인 문장은 이렇다.
최악의 재정난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자녀가 있는 부모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자녀가 있다는 것은 이제 여성이 재정파탄을 맞을 것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고지표다. (16쪽)
이혼 직후 여성의 삶의 질이, 남성의 삶의 질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는 본 적이 있지만, 그건 여성의 지위가 결혼했던(그리고 이제 막 이혼한) 전 남편의 지위가 연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자녀'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자녀가 있는 여성은 가난의 늪에 빠지기 쉽다.
최악의 재정난에 처한, 경제적으로 파산한 사람들은 처음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무분별하게 사용했던 젊은이거나 혹은 자기 처지에 맞지 않는 명품을 구매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나이 들고 저축금이 줄어든 힘없는 노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유자녀 기혼 부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파산의 주요한 이유가 무리한 담보 대출을 통한 교외 주택 구입이라고 보고 있다. 예상 수입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대출을 통해 교외의 주택을 구입한 맞벌이 부부가 부부 중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수입이 급감했을 때,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파산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맞벌이 부부들은, 안정적인 수입 체계를 가지고 있던 부부들은 무리한 대출을 통해 교외에 주택을 구입하려 했을까. 그 중심에는 자녀가 있고, 그리고 학교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도 학군은 중요한 문제다. '강남'은 '대치동은'은 이제 서울의 일부라기보다는, 특정한 교육 수단의 실현이 가능한 교육 단지를 의미하는 데까지 이르렀는데, 미국에서도 '좋은 학군 내 주택'에 대한 수요가 예상을 초과할 정도였다. 1980년 모기지 대출업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소득에 비해 큰 모기지 대출이 확대되었고, 수입원이 두 명이 된 상황에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채무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운동은 여성의 사회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여성도 남성만큼 교육받았고, 직업을 갖는데 필요한 역량도 충분했다. 소득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 자유 역시 확고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아이를 더 안전하고 쾌적하며 교육의 질이 보장된 중산층 지역 학군 내 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열망 역시 공존하고 있었다. 아이를 더 좋은 학교에 보내고, 교외의 멋진 집을 사는 데에는 여성의 수입이 필요했다. 매년 더 많은 수의 전업주부들이 확고한 중산층 지역으로 이사하기 위해 일터로 나왔다.
한국과 비슷한 점이라면, 한국 역시 '아이들', 정확히는 아이들의 '사교육비'가 전업주부의 재취업에 가장 큰 동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육아, 보육, 교육에 전념하던 전업주부들이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난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때문에 재취업에 도전한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 오랫동안 전업주부였던 여성들이 얻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일자리는 단순, 단기 계약직으로 아르바이트의 형태를 띠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