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적 - 식민주의하의 자아 상실과 회복, 개정번역판
아시스 난디 지음, 이옥순.이정진 옮김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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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스 난디의 <친밀한 적>을 읽었다. 작고 얇은 책인데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읽기는 다 읽었지만 내용의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아 나중에 시간이 되면(시간을 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런 기특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대함을 담기에 나는 너무나 작고 연약한 한 마리의... 독자일 뿐이며... (고라니, 라고 쓰고 싶었는데, 고라니님 허락을 받아야 해서 쓰지 않음)

 


책 뒤쪽에 출간 25년을 맞이해 작성된 기고문이 있는데, 본인의 책을 이렇게 요약해 두었다. 그대로 옮겨본다.


 

<친밀한 적>은 지배자가 치러야 했던 몇몇 중요한 댓가에 대한 회계 정리를 한다. 그 댓가로는 남성성을 훼손하는 여성성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경직된 성별위계, 아동기의 상실과 오로지 성년의 준비 단계이자 교육대상으로 아동기를 재규정하는 것, 진보와 생산성을 절대화하는 세속적인 관념으로 인한 살아 있는 우주의 속화(desacralization), 급진적인 다양성과 미래에 대한 다원적 비전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협소하고 경직된 자아를 꼽을 수 있다. (231)

 

 

식민주의란 식민지의 획득과 유지를 지향하는 대외 정책. 경제적ㆍ정치적인 세력을 국외의 영토로 확장하고, 정치적 종속 관계를 통해 그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삼는 제국주의적 침략 정책을 이른다. <네이버 국어사전> 타자화의 주된 형식인 오리엔탈리즘의 작동은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의 결합을 용이하게 만드는데, 상대방에 대한 규정을 통해 자기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은 이분법의 자장 안에서만 가능하다. 아시스 난디는 이러한 쉬운 이분법에 반대한다.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낀, 잘 속아 넘어가는 대책 없는 식민주의의 희생자라는 인도인상()을 거부한다. (26쪽)

 

 

저자는 피식민 상태와 아동 간의 상동 관계를 다루면서, 식민주의가 원시성과 아동 사이에 새로운 유비를 확립(56)했다고 주장한다. 식민주의는 성인 남성인 유럽인들이 순진무구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있고 교정 가능한어린애다운(childlike) 인도인과 무지하나 배우려 하지 않고 야만적이며 교정 불가능한유치한(childish) 인도인을 진보의 이름으로 문명화시키겠다는 그들만의 약속이다.

 


성숙한 남성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식민지 수출이 아프리카에서는 비교적 용이했던 반면, 그 나름의 문명을 갖추고 있는 것이 확실한 중국과 인도에서는 작동이 쉽지 않았다. , 강한 민속적, 구비적, 농촌적 특성을 소유한 아프리카 고유의 문화를 쉽게 야만이라고 폄훼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중국과 인도의 4000년이 넘는 공적 삶의 전통, 잘 발달된 문필 전통, 종종 유럽 최고의 지성을 사로잡은 대안적인 철학 예술 및 과학 전통(59), 그리고 과거가 현재에도 유지된다는 인도의 시간관은 영국의 인도 지배를 더욱 곤경에 빠뜨렸던 것이다.

 

 


식민 지배 세력의 정치적 신화를 가장 창의적으로 구축한 이로 저자는 키플링을 꼽는다. 그와 정반대의 인물로는 조지 오웰을 다루는데, 키플링과 오웰, 두 사람의 삶의 여정이 이미 식민주의의 역사를 요약해 보여준다. 일본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종종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이 나라의 집권 세력 마음에 깊이 자리한 식민지 근대화론과의 비교가 필수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아시스 난디의 논의만을 다루기로 한다. 나는 이 책 전체 중에서 이 문단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웰은 피지배자의 예속화가 지배자의 예속화를 포함하며, 식민통치자들이 식민지 신민들을 통제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식민지 신민들 또한 식민통치자들을 통제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또한 그는 아마도 어느 정도는 무의식적으로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통제가 은밀하고 미묘하며 내면의 억압과 관련되어 있어 그만큼 더 저항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에 비하면 지배자의 통제는 그 억압적인 성격이 가시적인 데다 두 문화의 외면적인 관계를 통해 표출됐다. (94)

 

 

가해자 대 피해자의 논리는 명쾌하고 확실하다. 잔혹한 가해자와 무구한 피해자라는 인식은 평면적이고 일면적인 상황 인식을 보여주고, 그러한 설명에는 단 하나의 원인만 필요할 뿐이다. 오웰은 이를 거부한다. 식민통치자들이 식민지 신민들을 통제하는 것만큼 신민들 또한 식민통치자들을 통제한다는 것. 피지배자의 예속화가 지배자의 예속화를 포함한다는 것. 오웰은 이러한 상호 속박을 에세이 <코끼리 쏘기>에서 생생하게 묘사한다. 한편으로는 나는 최근에 읽은 푸코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 주기도 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권력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다만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권력은 그들을 거점으로 삼는데, 이것은 마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거점으로 삼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이 권력의 이러한 관계들은 사회의 심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지, 국가와 시민들 사이에 혹은 국가와 계급들의 경계 사이에 있는 관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감시와 처벌>, 66)

 


이 문단을 읽으면서 나는 적절한 예시를 찾고 싶었다. 이 문단이 실현된 예시. , 권력이 소유되거나 지배계급에 의해 획득된 특권으로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로서 작동하는 예, 권력이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을 가로질러 가는 예, 권력관계가 사회의 심층 속에 자리 잡은 예. 나는 이 문단을 한국의 정치 상황, 암울하고 답 없는 우리나라의 권력 상태에 대입해 보려 했다. 그러나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인도의 식민주의 상태에 대입해 보았을 때, 오웰의 통찰과 푸코의 해석은 공명한다. 피지배자의 예속화는 지배자의 예속화를 포함하고 있으며, 권력은 권력 없는 자를 탄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거점으로 삼아 작동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우주의 저번 주 베스트셀러는 <된장찌개>이다




찬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멸치 세 마리가 오들오들 떨며 숲길을 걷다가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을 발견한다. 멸치들은 곧장 온천으로 뛰어든다. 그 뒤를 따라 된장 판매에 나섰던 감자와 호박, 버섯, 대파두부가 차례로 온천에 입수한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천 속에 몸을 푹 담근 야채 친구들, 절로 노래가 나온다. “따끈따끈 된장 온천, 사르르 사르르 내 몸이 녹네!” 이 아름다운 합창에 다른 목소리가 얹힌다. “따끈따끈 된장찌개, 스르르 스르르 내 몸이 녹네!”

 






추위에 온몸을 달달 떨던 멸치와 야채들에게 된장 온천은 하나의 완벽한 세상이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완벽하게 만족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누군가의 몸을 데워줄 그 무엇, 된장찌개가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상호 속박의 진실은 어쩌면 여기, 된장찌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된장 온천의 행복한 야채들인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뜨뜻한 밥과 된장찌개 밥상을 차려주는 너구리 아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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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11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샌드위치 먹고 있는데...... 된장찌개 먹고 싶어지네요;

단발머리 2023-10-12 20:26   좋아요 0 | URL
된장찌개 먹었는데 샌드위치 먹고 싶어요....

독서괭 2023-10-11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이 너무나 귀여운 된장찌개 동화를 식민지배와 연결시키는 단발님의 솜씨??
커피가 맛있어 보입니다. 저는 당분간 아메만 먹기로 해서.. (가을이 되니 살이 찌네요) 라떼 먹고 싶네욤 ㅋㅋ

단발머리 2023-10-12 20:27   좋아요 0 | URL
저는 기본이 아이스라떼이고 끝까지 고수하다가 회오리 바람 불면 핫으로 마십니다.
아아는 비교적 최근에 달성했고요 ㅋㅋㅋㅋㅋㅋ 어린이 입맛이라 커피의 참맛을 모른다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10-11 1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된장 온천... ㅠㅠ 저 그림책 동심파괴인데요...

피지배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배자들의 책을 주로 읽고 있는 사람으로서
(남근 선망보다 이쪽이 시급해 보입니다)
이제 정말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스피박, 흑인 페미니즘..

<감시와 처벌>에 저런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네요. (안 읽었으니까 모르지...)
푸코도 읽어야겠..

단발머리 2023-10-14 14:57   좋아요 1 | URL
그죠, 된장 온천.... 전 이 부분이 육식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와도 관련 있다고 생각해요. 그니까 동화책에서 동물들은 기본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그 친근한 친구가 스테이크, 수육, 치킨으로 변신한다는 거죠. 거기에 대해서는 <육식의 성정치>랑 연결해서 써 보고 싶었지만.....만만만.....

스피박, 흑인 페미니즘 읽게 되시면... 제가 화이팅!!!
푸코도 읽게 되시면 .... 제가 화! 이! 팅!!

다락방 2023-10-11 14: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해 ㅜㅜ된장찌개 멸치 너무해 ㅜㅜ 토마토도 나중에 케첩된다고 노래하는 것도 너무한데 ㅜㅜㅜ
그렇지만 이것도 인간중심적 사고인지도 모르겠네요. 멸치로 태어나서 어쩌면 따뜻한 된장찌개 안에서 짭짤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소원일 수도 있을텐데요. 어떤 생명이든 죽음은 찾아오는 것이니..

단발머리 2023-10-14 19:58   좋아요 0 | URL
된장찌개 멸치씨가 특히 온천을 오래 즐기시는 것 같더라구요 ㅠㅠㅠ 맞아요, 케첩 노래도 그래요.
그 책에 보면 멸치, 감자, 호박 등등 야채 친구들이 그렇게나 행복해해요. 따뜻하다고, 이런 좋은데가 있다고 그러면서요. 그 때만이라도 행복하다면 그게 더 나은 건지, 전 잘 모르겠는데.... 이게 참 어려운 문제더라구요.
<된장찌개> 이렇게 어려운 책이었나요? @@

공쟝쟝 2023-10-11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의 예시 찾기… 저는 주로 제 안에 대입시킵니다. 아, 이게 다르네요.
푸코 전기 읽고 확신했고, 이번에 정희진의 공부 윤석열 정신분석 들으면서 더 심각하게 되는 부분. 최초의 규율장치로서의 가족제도, 가부장적 질서의 내면화가 개인의 인격 형성 및 정치권력, 식민지배까지도요. 긴밀히 연관되어 작동한다는 건데…
자.. 저항의 가능성을 찾아봅시다. 읽을게 많네요.. (터덜터덜..)

단발머리 2023-10-14 21:07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예시를 찾습니다. 예시를 찾으면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하니까요. 저는 자신 안에서 예시 찾기가 읽기를 더 깊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는 못하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체의 마지막은 가정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요. 하지만, 혈연이 주는 위안과 끈질김 보다 강한 무엇이 정말 가능할까.
다시 파이어 스톤을 읽어야 할 시간일까요^^

공쟝쟝 2023-10-14 21:02   좋아요 1 | URL
저는 이 해체(?)가 결국은 재조립하기 위함일거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두렵지 않아요. 만약 재조립이 되지않는다 하더라도 이 해체된 블럭들을 매만지는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아 이게 곰곰 뜯어보니 이런 모양이었구나! 하는 걸 일러주는 책들과 책친구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Thinking is my fighting!!

바람돌이 2023-10-11 2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친밀한 적은 바로 보관함에 넣습니다. 지금은 머리 너무 아프니까 올 겨울에 꼭 읽어야지 하면서요. 사실 제국주의 국가의 애들이 어떤 댓가를 치르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지만 식민지가 제국주의와 상호작용하며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갖게 되는 심적 정서적 유산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이 책은 좀 더 독특하고 구체적인 관점을 제시해 줄거 같네요. ^^
역시 서재를 열심히 들락거려야 좋은 책을 자꾸 만납니다. ^^ 된장온천은 잔혹동화 아닌가요? 케첩되는 토마토처럼요. ㅎㅎ 이 책을 보며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게 아니라(왜냐하면 오늘도 먹었으므로) 온천에 가고 싶습니다. 물론 된장온천은 빼고요. ^^

단발머리 2023-10-14 20: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는 식민주의 시민들이 그 식민주의 때문에 괴로워하고, 학대 당하고, 오히려 더 강한 식민주의의 주창자가 되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있어서요. 저는 이런 책은 처음이라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바람돌이님이 읽으신다면 또 다른 관점의 다른 이야기가 나오겠네요. 기대됩니다!!
저는 얼마나 잔혹한지... 마침 그 즈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요. 그 다음날 진짜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습니다.
온천 너무 좋죠!! 뜨끈하니 온 몸이 스르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을 옹호하다 -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테리 이글턴 지음, 강주헌 옮김 / 모멘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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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비극>을 결국 다 읽어내지 못하고,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처럼 포기한 후, <신을 옹호하다>를 읽었다.

 

 

<비극>에서는 자기 동일성에 대한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오이디푸스는 하나 이상의 존재이지만 이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모든 개인은 주체와 객체로 동시에 존재한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라도 필연적으로 자기동일성이 없기 때문이다. (<비극>, 56)

 


<오이디푸스 왕>은 생각보다 짧고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는데, 뻔한 텔레비전 드라마도 아니고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데도, ‘이 도시에 저주를 몰고 온 바로 그 사람이 누구냐?’는 오이디푸스의 물음이 쌓여갈수록 긴장은 고조된다. 이글턴의 방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근친상간이 아니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의 변동. 어머니이며 아내, 아들이며 형제, 딸이며 누이. 정체성, 자기동일성에 대한 탐구는 너무 흥미로운 주제니까 다음에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반납해서 책이 없다.

 

 



<신을 옹호하다>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기독교 신앙을 가진 테리 이글턴의 예일대 특강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유물론의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에서 종교의 위치, 역할 등을 고려할 때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신앙은 동시에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여기, 테리 이글턴이 해낸다.

      


내게 공명되었던 이글턴의 기독교 신앙은 현재 한국 기독교가 도달하지 못한 혹은 일부러 회피하고 있는 부분과 정확히 일치한다. 예수를 어떻게 보는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친구요 병자들을 고치는 자, 나그네를 환대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수를, 그런 예수를 보고 있는가. 그의 그러함을 알아채고 있는가.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그가 설파했던 구원이란 무엇인가.

 


진부하게도 구원이란 예배와 율법과 의식(儀式)의 문제가 아니며 어떤 도덕적 원칙을 준수하는 문제도, 짐승을 죽여 제물로 바치거나 남달리 고결하게 살아가는 문제도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구원은 굶주린 사람의 배를 채워주고, 이민자들을 환영하며, 아픈 이들을 찾아가 돌보고, 부자들의 횡포로부터 가난한 사람과 고아와 미망인을 보호하는 문제다. 놀랍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종교라는 특별한 기구를 통해 구원받는 게 아니라 서로 뒤섞여 살아가는 일상적 관계의 질을 통하여 구원받는다. 일상의 삶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기독교이지 프랑스 지식인이 아니다. (33)

 


나는 이글턴의 서술에 99.9% 동의한다. 한국 교회가, 그리고 현재의 기독교가 자신의 본분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데 나의 잘못이 1%, 아니 0.0000000000003%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나의 회개와 자책은 금요일 밤마다 이어진다. 현재의 기독교가, 특히 한국 교회가 예수의 친구의 친구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어쩌면 예수의 친구조차 거부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믿음과 과학에 대한 논증은 이미 알고 있는사실의 반복이다. 과학은 절대적일 수 없다.

 


과학이 특정한 사회사의 일부라는 사실을 추상적 사고에 빠진 합리주의자들이 너무나 쉽게 잊는 것처럼 말이다. 종교가 그랬듯이 과학도 많은 부분이 혁명적인 기원을 저버리고 초국적기업과 군산복합체의 말 잘 듣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과학이 인간의 해방에 기여한 역사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종교와 마찬가지로 과학도 스스로의 훌륭한 전통에 비추어 심판받아야 한다. (177)

 


문제는 과학은 그러한 심판대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이다. 과학에 대한 절대신앙. 과학이 가진 특권에 대한 조금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는 믿음’. 최근에 인문학을 읽고 쓰고 연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던 분이 과학 관련 책을 쓰셨다. 과학으로의 완벽한 귀의 또는 항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삶에는, 우리네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리의 삶이 그렇게 만들어졌듯 영원히 그리고 종국적으로 완벽하게 스러질 것이라 그는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 내가 이해하는 우주와는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이해한 것에 솔직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를 높이 평가한다. 애정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테리 이글턴은 무신론 과학자들의 대표자로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크리스토퍼 히킨스와 <만들어진 신>의 리차드 도킨스를 호명한다. 이글턴은 이 두 사람을 통칭해 디치킨스라 부르며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신학자들은 적어도 직업적으로는, 헨리 제임스처럼 절묘하게 복잡한 작가가 과연 진화라는 조잡하고 실수 많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다. 내가 알기로 과학과 신학 간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선물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 있다. 이는 세상을 엄밀하게 조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자기 꽃병을 아무리 자세히 뜯어보아도 그게 결혼 선물임을 알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디치킨스와 나 같은 급진주의자 간의 차이 역시 인간 조건의 궁극적인 시니피앙이 고문 받고 살해당한 정치범의 몸뚱이라는 말을 받아들이는지,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55)

 


이글턴은 과학과 신학을 비교 설명하면서 두 개의 학문이 같은 종류의 대상을 다루지 않는다고 설파한다. 치과 교정학과 문학 비평의 대상이 다르듯이 말이다. 이제 과학은 온 세계에 대한 프리패스권을 얻은 양, 주요한 사건의 최종결정권자가 되었다. 혹은 되어가고 있다. AI의 초고속 발전으로 인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변해갈지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 없이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세상 모든 학문의 주인으로 군림해 버린 과학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가. 그 비판의 중심에는 어떤 학문이 서야 하는가.

 



두 번째 챕터 <배신당한 혁명>에서는 제국주의와 미국의 대테러전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서구 열강 vs 아랍 세계, 기독교 vs 이슬람의 이분법은 문명과 야만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더욱 확고하게 한다. 이글턴의 주장은 비교적 간단하다. 자유주의적 계몽주의자들은 급진적 이슬람의 만행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해악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미국 언론에서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쌍둥이 빌딩이 공격받기 28년 전 바로 911일에 미국 정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시키고 그 자리에 추악한 꼭두각시 독재자를 앉혔으며, 이후 그 독재자가 학살한 사람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오랫동안 독재 정권을 지지했고, 그 독재자는 사담 후세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이슬람주의자들의 잔혹 행위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134)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축이 미국임은 확실하며,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 대테러 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에 동의하지만,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가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주제다. 제국주의의 선봉이었던 영국의 국민이며,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던 백인 남자에게서 듣는 제국주의 비판. 당연하다. 그의 특별함은, 그가 아일랜드계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점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각별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여기다. 창조주, 온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이 합리적인 설계에 따라 이 우주를 기획한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일 자체를 좋아하고 즐거워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19).

 


이를 좀더 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for the hell of it (별다른 이유 없이, 순전히 재미로, 혹은 어찌 되나 보려고)' "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창조된 세상은 선물이고 잉여물이며,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행위의 산물이다. 불가피해서가 아니라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든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신학에서 세상은 전혀 필연적인 게 아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애초에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감상적 충동을 이겨내지 못한 걸 처절하게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창조한 이유는 사랑이었지 필요가 아니었다. 하느님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천지창조는 최초의 '동기 없는 행위, 무상(無償)의 행위였다. (19)

 

 

 

이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에의 몰두와도 관련이 깊다. 나는 목적 없는 삶, 의미 없는 인생에 대해 회의적인데, 이글턴의 글을 읽으며 예전에 들었던 설교가 다시 생각났다. 우주의 시작과 인간의 창조를 다룬 창세기에서 인간의 창조 목적을 설명할 때 이렇게 세 가지를 꼽는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는가. 1. 예배받기 위해 2. 교제하기 위해 3. 사랑하기 위해. 인간이 신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 예배이고, 그것이 곧 인간과 하나님과의 소통, 교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랑의 행위이다. ,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 이다.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완벽한 조화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Holy Trinity, 성삼위일체. 완벽한 결합이 완성된 상태였으므로, 하나님에게는 또 다른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술가이자 탐미주의자(19)인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어냈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201010월에 나온 책인데 아직도 판매중이라니 기쁘고 감사하다. 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더 알고 싶어서, 더 많이 알게 되는 일이 즐겁고 뿌듯해서 얼른 구입해야겠다. 이런 똑똑한 친구는 가까이 두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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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돌아옵니다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3-11-02 11:21 
    댓글을 쓰다가 또 길어져서 페이퍼로 씁니다. 저는 이게 혹시 질병이 아닌가 싶습니다. 댓글 길게 쓰다 페이퍼 쓰면서 먼댓글로 연결하는 병 말입니다. 사회주의와 유물론, 무신론에 관한 부분을 같은 선상에서 연결해 설명하는 건 어려울 거 같고요. <신을 옹호하다>의 테리 이글턴의 주장을 중심으로 제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 이야기해 볼게요. 건수하님의 물음에 대한 간편한 대답이라면, 그렇습니다. 사회주의는 무신론과
 
 
독서괭 2023-09-29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에는 이유가 없… 나? 음.
그나저나 금요일밤마다 자책과 회개를..?? 금요일밤엔 애썼다 토닥토닥부터 해주셔야 하지 않나요?ㅜㅜ 아무튼 제가 잘 모르지만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단발님의 공부를 응원합니다!!

2023-09-29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3-09-29 12:15   좋아요 0 | URL
어맛!!! 달려갑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 푸코로 읽는 권력, 신자유주의, 통치성, 메르스 대안연구공동체 작은 책 - 인문학, 삶을 말하다
심세광 지음, 대안연구공동체 기획 / 길밖의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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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미셸 푸코에 있어서 역사. 담론. 문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심세광이다.


심세광은 푸코가 권력을 군주의 권력, 규율 권력, 생명관리권력으로 나누어 설명했다고 보았다. 군주의 권력은 금지와 허용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실행되는데, 한센병의 관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12) 규율 권력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의 삶에도 개입하는 권력(13)으로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쪽에 조명이 비침으로 개인들의 모습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15). 생명관리권력은 확률과 통계를 도입함으로써 인구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는데, 가축을 돌보는 목자의 기술에서 비롯된 생명관리권력은 선제적인 예방 조치들에 집중(백신 접종)하면서 통계를 중시하는 행정을 통해 구성되는 권력으로 보았다(18).



<감시와 처벌>, 문제의 그 문단을 다시 읽어보자.



즉,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 주기도 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권력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다만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권력은 그들을 거점으로 삼는데, 이것은 마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거점으로 삼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이 권력의 이러한 관계들은 사회의 심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지, 국가와 시민들 사이에 혹은 국가와 계급들의 경계 사이에 있는 관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감시와 처벌>, 66쪽)

 


권력을 힘의 총체로서 보지 말 것, 즉 그것을 관계망으로써 이해해 보라는 푸코의 외침을, 나는 이미 접수했다. 내 관심은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의 행위가 권력의 작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인데, 심세광은 이렇게 정리했다.



통치 행위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현명하게 통치할 것인가, 또 어떻게 '참을 수 없는 통치' '전면적으로 예속화하는 통치'를 거부하고 '다른 통치'를 요구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통치'에 대한 거부와 '다른 통치'의 요구 역시 타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바로 통치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과정을 선한 자' '악한 자'의 대결구도로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45)



내가 알던 푸코는 <성의 역사>의 푸코였고, <말과 사물>의 푸코였다. 나는 최근에서야 세련되고 댄디하고 여유만만한 교수 푸코가 아니라, 거리의 투사 푸코를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사진 속의 푸코.







참을 수 없는 통치를 거부하고 다른 통치의 요구를, 푸코는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했다. 이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대학을 나왔지만 이미 학력 인플레이션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방끈이 짧은 나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공부가 길어질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핵심은 놓치고 말은 길어진다.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그렇게 단순화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요? 라고 나는 묻는다. 대답을 들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답을 찾는 건 각자가 할 일이다. 답은 내가 찾아야만 한다. 이 일에 대한 답은.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 뒤 있었던 일련의 사태가 이를 잘 증거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비판으로서의 통치, 통치로서의 비판을 위해, 그리고 통치자들을 우둔함 속에 빠뜨리지 않기위해 시민들은 정부로 인한 불의와 불행을 정부 측에 분명히 알릴 의무가 있다. 이제 시민들은 심정적인 차원의 분노와 슬픔은 시민의 몫이고, 대책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는 진부한 역할분담 논리를 거부해야 한다. 정부와 통치자들이 독점하고 앉아 실정을 거듭하는 정치의 영역에 이젠 시민들이 비판하는 자의 자격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통치하고자 하는 자의 자격으로, 진실을 외치는 자의 자격으로 개입하고 참여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62)




참을 수 없는 통치에 대한 거부, 다른 통치의 요구야말로, 피지배자인 내가 권력 중심에 들어서는방법이자 권력이 나를 거점으로 삼는 방식이다. 그런 실천이야말로 통치 행위에 다름 아니다’. 불의한 권력에 대한 거부와 다른 통치의 요구.



나는 오송 지하차도 사고, 정부의 부주의로 인한 이런 가슴 아픈 인재가 윤석열 정부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1029일 이태원에서의 참사는 지금 정부가 윤석열 정부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다. 10. 29 참사는 물론이요, 오송 지하차도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못함은 물론이요, 사고 발생에 대한 설명도 그에 대한 적절한 조사 결과도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 애도의 시간마저 송두리째 빼앗긴 가족들의 한이 하늘에 사무친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권력과 맞설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지식을 직접 생산해 냈을 뿐만 아니라 몸소 거리에서 자신의 지식을 실천했던 푸코의 말이기에 믿어주고 싶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한 대통령과 수권 정당의 기만에 대해 그 폭압에 대해 무도함에 대해 뻔뻔함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외치고, 부끄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일들을 적법한절차에 따라 민의의 반영 없이 밀어붙이는권력에 대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소유하고 획득한 그 무엇으로서 권력을 향유하고 있건만, ‘같이 만들어 가겠다는 내 생각은 주제 넘는 일이 아닌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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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05 16: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태원 참사 때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그걸 놓친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 이후로 계속되는
무책임은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외면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첫 번째 의무조차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방관하고 또 당당한 정부 어찌해야될지...

단발머리 2023-09-08 17:49   좋아요 1 | URL
저도 미미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태원 참사 때 제대로된 진상 조사도 못 하고 애도도 못하고 지나갔던 일들이 이제 부매랑이 되어 돌아올 듯 합니다. 이 정부는 한계가 없어요........

독서괭 2023-09-05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단발님의 푸코공부는 계속된다!! 저는 읽어도 어렵지만요.
참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그 후의 과정에서는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가 드러나는 법이지요. 이태원 참사를 기억이나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9-08 17:50   좋아요 0 | URL
푸코 공부 얼른 끝내야 다른 책 읽을 수 있습니다! (불끈! 헉헉!)
행안부 장관 탄핵이 무효 되면서 더 당당해진거 같더라구요. 답이 있나요... 제가 보기엔 없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9-05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생각납니다.
˝내가 지금 가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뭐든 손 놓고 관망만 하는...ㅜㅜ

단발머리 2023-09-08 17:51   좋아요 1 | URL
그럴려면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혹 그렇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대답할 수 없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ㅠㅠㅠㅠ

공쟝쟝 2023-09-06 1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의 파레시아....... ❤️❤️ (단순히 말하면 파레시아는 진실 말하기이다. 푸코의 파레시아(parrhesia)는 “마음의 솔직함과 개방, 말의 개방, 표현의 개방, 말의 자유”라고 정의된다.-검색복붙-) 용감한 말들이 많아져야하는 데, 말을 잃게 만드는 참담한 상황들만 계속되네요. 그래도 이런 글 자주 많이, 써주세요~!

단발머리 2023-09-08 17:52   좋아요 0 | URL
많이 자주 쓸려고 하지만 그것은 엄청 어려운 일이며...... 그래도 금요일 저녁 좋네요. 잠깐 숨 좀 돌리고요.
주말에 푸코 마저 읽으려고 책 가져 왔는데.... 아, 나도 하루키 읽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1 : 주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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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인즉슨 이랬다. 크리스틴 델피의 책을 2권 사고, 최근에 2권을 더 샀다. 며칠 전, 외출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생길 것 같아, 델피의 책 3권을 챙겼다. 읽기가 집중이 안 되면 밑줄긋기를 해야지. 2권을 펼쳐 한 쪽을 읽고 알았다. , 2권을 안 읽었구나.  4권 사 놓고 1권 읽는 센스. 비싼 건 사실이지만 내용이 알차서 괜찮다. 시리즈가 나오는 대로 다 읽어볼 생각이다. 4권 사 놓고 2권 읽은 사람의 결심.  









그저 민족학 문헌 전체가 여성이나 남성에 의한 생산의 경제적 중요성이 특정 성별의 사회적 우위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민족학과 사회학 분야에 만연한 증거는 정반대의 관계를 증명한다. 지배 계급이 생산적 노동이 자신의 지배 아래 있는 계급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 P17

미슐레는 농부가 하인을 둘 여력이 없을 때 아내를 얻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여전히 진실이다. "미셸이 자기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하녀를 못 구했어. 미셸이 결혼만 한다면…………." - P18

노동의 무보수성이 노동의 성격에 의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여성들이 가정 밖에서 이 노동을 제공하면 급여를 받는다는 데서 증명된다. - P32

바로 대부분의 ‘가정’이 음식을 원재료 형태로 구입하기를 선호하는 까닭은 가사노동이 무료이고, 이 노동이 전적으로 여성에 의해서 제공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 P36

그러나 가정 바깥에서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얻어도 아내는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노동력의 다른 일부는 여전히 전유된 채였다. 아내가 ‘가족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동 양육과 가정 내 노동을 무료로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외부의 노동은 가정 내 노동을 면제하기는커녕, 가정 내 노동에 해로운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여성의 자유는 약간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이중 노동을 제공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 P42

남성이 겪는 가정 내 착취의 기반이 되는 미성년 혹은 막내의 지위가 일시적인 반면 여성의 경우 같은 지위가 평생 지속된다. 이에 더해 가정부 남성은 남성으로서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지만 여성은 여성으로서 즉 아내로서 착취당한다. 농업, 수공업, 상업에서는 가정내 구성원이라면 성별에 상관없이 무료 노동을 요구받는 반면, 무급 가사노동은 가장의 아내인 여성에게만 요구된다. - P47

따라서 여성의 삶의 수준은 프롤레타리아와 계급 생산과의 관계가 아닌 남편에 대한 예속 생산 관계에 달려 있다. 부르주아 여성의 결혼 관계가 끝나는 경우, 압도적인 수의 여성이 임금노동자로서 밥벌이를 하게 된다. 이로써 그들은-나이와 직업 교육의 부재라는 추가적인 불리를 경험하면서 - 마침내 원래 그들이 속한 계급이라 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로 거듭나게 된다. - P52

이때 억압이 ‘공통적‘인 까닭은 이 억압이 모든 기혼 여성 시기에 상관없이 여성의 80퍼센트)에게 적용되기 때문이고, ‘특수한‘ 까닭은 가정 내 무급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여성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며, ‘핵심적‘인 까닭은 여성들이 ‘밖‘에서 일을 할 때조차, 이들이 속한 계급은 여성으로서 겪는 착취에 의해 조건화되기 때문이다. - P63

권력의 쟁취는 여성해방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운동은 혁명을 위한 투쟁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P68

그리고 다른 집단-혁명을 위한 또 다른 집단, 운동 혹은 정당-과 즉각 정치적, 전술적동맹을 맺어야 한다. 이 동맹은 해당 집단을 운동의 목표에 명료하게 포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해당 집단은 가부장제 파괴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그리고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이 파괴를 끝까지 이뤄내고자 하는 혁명적 전투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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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21 0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의 집게핀과 필통 보면서 설레는 저, 정상인가요?

단발머리 2023-08-22 20:21   좋아요 0 | URL
집게핀과 필통 주인에게 전해줄게요. 은오님은 정상입니다!

다락방 2023-08-21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1,2 권 사놨어요. 곧 따라갈게요!! 불끈!!

단발머리 2023-08-22 20:22   좋아요 0 | URL
가벼워서 너무 좋아요. 그러나 잘 펼쳐지지가 않습니다. 참고해주세요^^

그레이스 2023-08-21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도 그렇지만 책 디자인이 넘 탐납니다.^^

단발머리 2023-08-22 20:22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이 책 디자인 너무 맘에 듭니다 ㅎㅎ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0 : 서문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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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불가능하니 밑줄긋기나 정리해두자.


당시 나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프랑스 페미니즘 운동(1968~1970년)의 시초였던 두 집단 중 하나인 ‘여성성, 남성성, 미래‘(FMA)‘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성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의 ‘남성 회원 중한 명의 주장에 매우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영화 「캐치22Catch-22」의 주인공처럼, 나는 이 문제를 유독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다. - P8

그 남자는 여성 억압이 프롤레타리아 억압과 같은 정도의 중요성을 띨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길, 여성들은 억압받기는 하지만 ‘착취당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 원형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대의 인식론이었다. 나는 이런 인식을 남성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여성들에게서도 맞닥뜨렸다. 개인적 의견, 정치적 입장, 당의 노선의 형태로. - P8

내가 ‘생산 양식‘ 혹은 ‘계급‘과 같은 개념을 사용한 데 대해, 때로 해당 개념들이 다른 상황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까닭으로비판을 받을 때가 있다. 이 개념들을 사용함으로써 - P42

소위 ‘성적인’ 지배, 즉 한 성의 다른 성에 대한 지배의 특수성이 부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석은 거죽을 벗기면서 진행된다. 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그 현상을 작은 조각으로 쪼개고 다시 모은다. 이 과정의 핵심이 뭘까? 바로 조각들이 연구 대상인 현상의 모든 예시와 일치한다는 점이다.(여기에서 현상은 한 집단의 다른 집단에 대한 지배일 것이고, 여성 지배는그 하나의 예가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재구성된 현상은 비교 가능해진다. 이해한다는 건 우선 비교한다는 것이다. 모든학문이 그러하고 우리, 당신과 내가 일상에서 한 사람을, 장소를, 상황을, 당장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묘사할 때그러하듯 말이다. - P43

‘젠더‘라는 단어가 발화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담론에서 싫든 좋든, 가장 일반적인 차원에서 가장 전복적인 차원ㅡ‘젠더‘를 사회 분열의 주요 쟁점으로 만드는ㅡ에 이르기까지 젠더에 대한 모든 함의를 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페미니즘애 적대적인 이들은 페미니즘의 영역으로 끌려 나온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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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8-17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3… 앞에 1-42가 있는 겁니까…?

단발머리 2023-08-17 16:59   좋아요 1 | URL
네 ㅋㅋㅋㅋ 1다음에 2, 그 다음에 3 ㅋㅋㅋㅋㅋㅋ다른 책이 안 읽혀서 밑줄정리 하고 있습니다.

건수하 2023-08-17 18:5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공개설정이 잘못된 것일까 했답니다 ^^

단발머리 2023-08-17 18:51   좋아요 1 | URL
앗ㅋㅋㅋㅋ 공개입니다. 2권 밑줄도 곧 올라갑니다. 밑줄 예고편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17 21:21   좋아요 1 | URL
아, 42까지도 공개되어 있나요? ㅎㅎ 나중에 pc로 찾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