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겨레신문에는 ‘새 고전 26선’이라는 부록이 있었다. (날짜는 ‘2014년 5월 15일 목요일‘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한겨레와 책읽는사회가 꼽은 이 시대 ‘한국인이 읽어야 할 고전 26선’이 소개되어 있고, 뒷면에는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안내가 있었다. 전면에 도정일 문학평론가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한국인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엄중하다,고 시작하는 이 글에서 도정일 교수는 수백의 인명을 실은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그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희생자들에 대해서 도대체 누구인가? 국가는 또 무엇인가? 국민의 인명 하나 구해내지 못한 국가가 어떻게 국가이고 나라인가? 하고 묻는다.

“얘들아, 이 사회를, 우리를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아직도 팽목항을 맴도는, 안산의 합동분향소와 전국을 노랗게 물들인 리본들이 외치는 절규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준엄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하여, ‘고전 선정’과 ‘고전 읽기’는 실패를 성찰하고, 실패의 재연을 막아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다시 말해 현재의 실패에 대한 성찰과 모색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도는 절대로 한가한 것이 아니다. 기본은 번쩍거리지 않고 화려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기본을 내팽개치는 순간 사회는 실패를 예약한다. .... 생각이 없고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회는 거기서부터 이미 재난을 내장한 위험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죽고 어른들은 병들고 사회적 삶의 고통은 늘어난다. 생각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할 때 거기 요구되는 중요한 시민적 프로그램의 하나가 고전 선정과 고전 읽기다.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절망. 무심하게 이루어지는 일상에 대한 환멸. 그리고 너무나도 맑고 화창한 봄볕.

이 모든 것들이 무력함을 더하고, 더 무겁게 하지만, 그냥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고개 숙이고 있을 수 없다.

먹어야 하고, 힘을 내야 하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

말하고, 기억하고, 읽고, 써야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커다란 실패가 다시는 이 땅에서 재연되지 않을 것이고, 아직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집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모든 희생자 가족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일일 테다.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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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14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단발머리님.
말하고, 기억하고, 읽고, 쓰기로 해요. 그럽시다.

단발머리 2014-05-14 11:40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그런 일들을 말이예요.
그런 일들을, 아침마다 신문에서 보는 일들은 너무 화가 나구요.
다 말하려고 하면 정말, 입이 아플 정도지만....

그래도, 말하고, 기억하고, 읽고 쓸게요.
다락방님~~~ 고마워요. *^^*

순오기 2014-05-1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용서를 빌 자격도 없어요.ㅠ
기억하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꿔나가는 노력이라도 해야 용서를 말할 자격이라도 생길테니까...

단발머리 2014-05-16 17:56   좋아요 0 | URL
네... 많은 유가족들이 '잊혀지는 게' 제일 두렵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직 국민적 관심이 있을 때 그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있어야할텐데요.
우리는...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기에도 미안해요.....

2014-05-17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7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모르는 아이는 노래를 부르며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숲속을 걸어요 산새들이 속삭이는 길..."

 

이 세상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겠지만,

이렇게 키운 아이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닦이고. 이렇게 키운 아이들이다.

천금 같은 아이들. 아직도 꿈꿀 날이 많은 아이들이다.

 

어른인 내가,

다리 뻗고 잠자고 먹고 마시는게 너무 미안하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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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4-1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치원 현장학습이 전면 중지 되었는데 아이는 비가 와서 그런 줄 알고 다음엔 비가 안오면 좋겠다고 합니다. 얼버무릴까하다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어요...지하철 옆옆 자리에 정신없이 떠드는 치마짧은 여중생들도 그저 애틋하기만 하더라구요..

단발머리 2014-04-21 08:36   좋아요 0 | URL
아.... 저희 아들은 이번주 수요일 소풍인데, 안 갔으면 좋겠어요. 안전도 걱정되지만, 노래부르면서 김밥 준비할 기분이 아니지요. 학교로 총총총 걸어가는 키 작은 아이들이 저기 보이네요.

단원고 아이들이 생각나 정말 슬픈 아침입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뿐이예요.
 

1. 3월만 되면 다 될 줄 알았다.

아이들은 개학하고, 신랑은 출근하고, 나는 룰루랄라. 우아하고, 여유로운 오전을 기대했건만, 올해 3월은 너무 바빴다.

학부모총회를 가야했고, 노란 조끼를 입고 녹색 어머니 활동을 해야 했다. 아롱이 작년 같은반 엄마들을 만나 브러치를 함께 했고, 딸롱이 덕분에 임원 엄마들과 만나 상견례를 해야 했다. 아이들 간식을 사러 이마트에 가야했고, 간식을 넣어주러 왔다 갔다 했다. 교회에서도 고정으로 맡은 일이 하나 더 생겨,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어제는 아이들 참관수업이 있어 학교에 갔다 왔고, 다음 주에는 상담이다.

2. 3월부터는 책도 많이 읽고, 페이퍼도...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다. 나는 모르는 사람, 아니 처음 본 사람하고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잘 나누는 사람이다. 원래부터 말하기를 심히, 매우, 많이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불문 나이불문 장르불문이다.

그런 내가, 사실은 집에 혼자 있는 걸 즐긴다는 건, 나도 좀 놀라는 부분이다. 일주일 내내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혼자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애니팡 게임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이들이 개학하는 3월을 그렇게도 고대했건만, 4월에도 학교 행사가 많고, 엄마들을 만나 의논 아닌 의논해야 할 일이 많고, 그래서 외출할 일이 많다. 조금 짜증이 나려다가, ‘이것도 한 때겠지.’하는 생각에 즐겁게 지내려한다. 그런데, 읽다 만 내 책들은 어쩔까나. 내 손길을 기다리는 저 간절한 눈빛들.

3. 간절한 눈빛의 책들

 

이렇게 매력적인 제목에, 놀랍도록 얇은 두께를 자랑하는 이 아름다운 책이, 이렇게 무심한 투로 쓰여졌다면, 미리 말을 해 주던가. 반 정도 읽기는 했는데, 현재는 내 책상에서 아웃당한 상태다. 

 

 

 

 

 

엄청 재미나게, 엄청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기는 했는데, 아직도 3분의 1 정도 남았다. 책은 재미있으나, 두꺼워서 아직 끝내지 못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진작에 시작했는데, 아직도 반 정도에서 정체 상태다. 들고 다니면서 읽으면 금방 읽을텐데, 책을 많이 안 읽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나도 책을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라, 전에 들고 다니면서 읽었던 [풀베개]가 책 모서리가 구겨져 겉장이 낡아진걸 보고 너무 슬퍼서, 이 책은 집에 고이 모셔 놓고 있다. 모셔만 놓고...

 

 

 

 

 

 

 

 

도서관에서 5권을 빌려 읽다가 책을 집어 던졌는데, 1권은 의외로 쉽고 재미있다. 내 영어실력이 늘어서는 확실히 아니고, 최근에 영화를 다시 한 번 본 게 크게 도움이 되었나보다. 아쉬운 건 2권도 구매해놓았는데, 알고 보니 개정판이 나왔다는 거다. 1, 2권을 구매할 때 미리 알았더라면 개정판으로 구매했을텐데, 조금 아쉽다. 누구를 원망하랴. 컴퓨터 화면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내 자신을 원망할 뿐이다.

 

 

 

 

 

 

시집은 영원한 로망이다.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닌다. 언제라도 꺼내서 읽을 수 있게.

 

 

책이 워낙 작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짬짬히 읽고 있는데, 강신주 말처럼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어렵다, 내 수준에.

 

 

 

 

[빨간책방]에서 한참 인기몰이를 할 때, 알라딘에서도 50% 할인을 해서 고민고민했지만, 웬지 내용이 무서울것 같아 구매를 안 했다. 실제로 책을 보니, 아... 너무 두껍고, 너무 무겁고, 그리고 여백이 없고, 글씨가 많다. (책 읽기 싫어하는 초딩들이, 골라주는 책을 마다할 때 하는 얘기랑 어쩐지 비슷하다) 내용 자체가 재미있는 건 사실이다. [빨간책방]에서 김중혁 작가가 “내가 왜 그렇게 이 책을 밀었지? 내 책보다 위에 있네.“ 하는 말이 실감나기는 하다. 그래도 나는 김중혁 작가 책이 더 좋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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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오래는 다락방님이 읽고 페이퍼 써주기를 이러저러하게 압력을 넣어 봤으나...
꿈쩍 않으시던데.. ㅠ..ㅠ
단발머리님의 페이퍼(리뷰) 기대됩니다*^^*

단발머리 2014-04-10 14:25   좋아요 0 | URL
아핫! 아무개님~~
다락방님이 꿈쩍을 안하셨군요~~ㅎㅎㅎㅎ
워낙 재미있는 책이라 저도 재미있게는 읽고 있는데, 다락방님처럼 재미있게는 못 쓸거 같아요.(*3)
림보 단계 낮추듯이 단계를 후욱~~ 낮춰주시면, 그 범위안에서 제가 한 번, 맛깔나게 리뷰 한 번 써볼께요.
언제일지 장담은 못 하지만요 ^^

icaru 2014-04-1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저래~ 또 엄청 공감하고 가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님 페이퍼 읽다보면,, 입가에 뭘 흘리게 되요.. 다행히도 음식물이나 체액(?) 종류가 아니라, 메롱을 부르는 미소네요. ㅋㅋ

저도 비슷하고도 다른 이유로 4월이 훅훅 가고 있어요...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공룡 비슷한 알 키우고 먹이고, 변종 만들어내는 핸드폰 게임질이어요... ㅠ,ㅠ)
한심하면서도, 제가 질리게질리게 하다가, 손을 놔야,,, 비로소 헤어나는 스타일이라... 어디 해보는데 까지 해보자 하는데,,
이거 끝이라는 게 없는 참 무한한 세계인듯요.

참,, 속죄는 저도 읽었는데 전, 김중혁보다 이언 메큐언의 속죄가 더 재밌어요. 아직은;;;

비로그인 2015-05-31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빌린책을 집어던진걸 참 자랑이라고 떠벌려놨네 ㅉㅉ 이 나라 김치년들 노답
 

 

 

 

 

 

1. 벙커에서 강신주를 처음 본 날

엄마야! 깜짝 놀랐다. 동영상에서도 실제 나이보다는 어려보이는 외모라 생각했는데, 실제는 더했다. 자신있는 말투에 넘치는 활력까지. 뻥을 조금 더하면, 30대 후반으로까지 보일 정도였다. 참고로 나는 그 날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2. 3M이 잠든 어제 밤

[망각과 자유]를 들고, 하염없이 책을 쓰다듬다가 드디어, 마침내, 결국에 머리말을 읽기 시작하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접한 일반 독자에게는 작은 책으로 보일 테지만, 동시에 읽다보면 만만치 않은 책으로 다가올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 밀도가 아주 센 책이니까요. 글을 다시 다듬으면서 애잔하지만 동시에 정겨운 마음이 자주 들었습니다. 장자로 박사 학위를 방금 마쳤던 패기만만한 젊은 학자의 모습, 과거 제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11쪽)

앞부분을 읽어나가면서 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장자의 ‘타자’라는 개념, ‘망각’이라는 개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팔릴 책을 쓰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돈 주고 사 볼 책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름 있는 저자를 찾아가 이러 저러한 책을 쓰자~ 할테다. 그런 일들이 모두 무의미하다거나, 불필요한 것은 아닐 테지만, 가끔은 저자 자신이 정작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가볍게, 너무나 쉽게 이해될 수도 있을테다.

나는 강신주의 책 대부분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이전과는 조금 더 다른 느낌이다. 그의 말처럼, ‘방금 박사학위를 마친 젊은 학자 강신주’의 모습이 설핏 보이는 것 같다.

여러 자리의 사진에서 보면 강신주는 ‘등산바지’ 차림인 경우가 많다. 워낙 산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등산복이 편안하다는 얘기를 자주하고는 했다.

이 책의 느낌은 이렇다.

맨날, 허구헌 날, 항상 ‘등산바지를 입는 강신주’만 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장을 차려입은 강신주’를 만나게 된 거다. 더 각이 잡히고, 더 정숙한(?) 느낌이다. 더 진중하고, 더 클래식한 느낌이다.

3. 일부러 찾은 건 아닌데

아침에 트위터를 확인하다 이런 영상을 보게 됐다.

강신주는, 강신주와 김어준은 멋지게 양복을 차려 입었다.

김어준 강신주 지인들만 초대해 1년 가약

 

 

 

 

 

 

 

 

직장에 매인 몸은 아니지만, 가정에 매인 몸이기에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일단 마음으로는 토크 콘서트에 가고 싶다.

나는 김어준이 보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다.

나는 강신주가 보고 싶어서 거기에 가는 게 아니다.

나는 강신주를 놀리는, 강신주를 놀려먹는 김어준이 보고 싶어서, 거기에 가고 싶다.

제발, 가능해라. 가정 형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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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0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능한 형편이길 같이 기도해드립니다. ㅠㅠ

단발머리 2014-04-03 10:4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다락방님.
다락방님의 기도가 꼭 효과가 있어, 즐거운 시간이 가능하기를...
특별히, 우리 가정이가 도와줘야할텐데요*^^*

순오기 2014-04-04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단발머리님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꼭 가정형편이 허락되어 1년가약에 동참하시기를~~~ ^^

단발머리 2014-04-04 11:07   좋아요 0 | URL
아하.... 순오기님,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저도 정장으로 쫘악 빼입고 갈수 있는데요^^
 

 

 

 

 

 

 

1.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사실, 하루키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해서 그의 작품을 모조리 읽은 것도 아닌데, 별처럼 빛나는 작가들 중에서도 하루키의 인터뷰가 제일 궁금했다고 하면, 지리적 근접성이 아니라, 심리적 근접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라성 같은 작가들 중에서도 웬지 모르게 하루키와 가깝다고 느끼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몇 살 때 작가가 되셨나요? 작가가 되었을 때 놀라셨나요?

무라카미 제가 스물아홉살 때 작가가 되었지요. 물론 놀랐어요. 하지만 곧 익숙해지더군요. (115쪽)

사실, 이런 류의 인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공부 열심히 안 하는데 전교 1등이라거나, 피부과 안 다니는데도 타고난 피부미인이라거나, 아니면 작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스물 아홉에 갑자기 쓰기 시작해 전 세계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거나.

하지만, 이런 문장이 있어 다시 하루키가 좋아진다.

무라카미 저는 지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만하지도 않아요. 저는 제 책을 읽는 독자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입니다. 재즈 클럽을 운영하면서 칵테일도 만들고 샌드위치도 만들었지요. 작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요. 그건 일종의 하늘이 준 재능이랍니다. 그래서 아주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14쪽)

하늘이 준 재능이므로, 자신은 겸손해야 된다는 하루키의 말. 이러한 깨달음 자체가 이미 하늘이 준 재능 아닌가 싶다.

지금도 제 글쓰기의 이상은 챈들러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권에 집어넣는 거예요. 그게 제 목표랍니다. (120쪽)

내가 아는 챈들러는 [프렌즈]의 챈들러 뿐이라, 알라딘에서 챈들러를 찾아보았고, 이이는 레이먼드 챈들러인 듯 하다. 훌륭한 작품이 많으나, 읽어본 작품은 아직, 없다.

우리는 마음속에 제정신인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함께 있어요. 이 두 부분을 타협해가면서 사는 거지요. 이게 제 신념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특히 제 마음의 제정신이 아닌 부분을 잘 볼 수 있어요.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군요. 오히려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127쪽)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마음 속 깊은 곳,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말하게 하는 것,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그런 것이 문학이 아닌가 싶다. 제정신인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의 타협이 얼마나 절묘한가, 두 부분이 얼마나 조화로운가,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얼마나 유연하게 뻗어가느냐가 결국은 위대한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 준다. 옆집, 줄기차게 짖어대는 미친X소리여도 안 될테고, 5학년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뻔한 이야기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다.

2. 움베르트 에코

성장소설은 대개 어느 정도 감정적이고 성적인 교육도 포함합니다. 당신의 소설 전체에서 성적인 장면이 묘사된 것은 딱 두 군데뿐입니다. 하나는 『장미의 이름』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바우돌리노』에서입니다.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에코 성에 대해서 쓰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42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류의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어마어마하게 똑똑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지만, 이런 방식, 이런 톤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는 하다.

요즘 제일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에코 밤에 소설을 읽는 거예요. 가톨릭 배교자로서 제 머릿속에는 아직도 낮에 소설을 읽는 것은 지나치게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낮은 주로 에세이나 어려운 작업을 위한 시간이랍니다. (45쪽) 

예전에 ‘양파’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양파의 효능 및 효과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양파만 먹으면 성인병 대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양파는 물에 삶거나, 불에 볶아도 영양소 대부분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반가웠던 건, 그 때는 ‘양파가 아주 저렴했다’는 것이다. 몸에 좋고, 조리하기도 쉽고, 구하기도 쉬운데 가격까지 싸다. 거의 ‘신의 선물’ 수준이다. 몸에 좋고, 조리하기 쉽고, 구하기 쉽고, 가격이 저렴한 ‘양파’라니.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서’를 폭풍흡입할 때였다. 최신의 교육이론으로 무장한 갖가지 알록달록 육아서들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느라 분주했던 때, 여러 권의 육아서를 간파한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결론은 ‘책읽기’다.

물론, 나는 “그래, 책 많이 읽어야돼. 그래야~~“라고 말하는 엄마들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라고 알 뿐입니다. 그 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141쪽)

책을 읽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즐거움’을 배제한 독서를 나는 생각할 수 없다. 가끔은 어려운 책도 읽어야하고, 답답한 현실을 고발하는 책들 또한 읽어야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어야하고, 작심삼일의 흐트러진 마음을 붙잡아줄 책들 또한 가끔은 필요하다. 하지만,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한 책읽기를 포기한다면, 책읽기가 수많은 의무 중의 하나로 변질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주장하는, 엄마들이 말하는 ‘독서 교육’에서 가장빨리, 가장 멀리 도망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책읽기의 즐거움은 그렇다치고.

육아서 독파의 결과가 ‘책읽기’라는 결론은 꽤나 흥미로웠다. 책읽기는 아이의 정서발달에도 최고의 효과를 내고,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강력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어휘량을 늘이는 데도 최적의 방법이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엄마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일정부분 ‘제 몫’이다. 지금은, 엄마인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 곁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에코는 말한다. 요즘은 가장 큰 즐거움은 ‘밤에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말이다. 에코와 나는 알고 있는 게 다르고(하늘땅 별땅), 가지고 있는 게 다르고(너무 다르고), 사회적 영향력면에서는 비교할 필요조차 없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석학, 5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저명한 에코에게 근자의 가장 큰 즐거움인 ’밤에 소설을 읽는 것‘은, 한국의 평범한 전업주부인 나에게도 가능한 일이라는 거다.

많은 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훈련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밤에 소설’을 읽는 거다. 좋아하는 소설,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을 그렇게 읽는 거다.

근래에 나는 너무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즐거운 밤을 선사해 주신 김중혁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살포시 전한다. 작가님, 땡큐~

 

 

 

 

 

3. 오르한 파묵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글을 쓰십니까?

파묵 남은 생이 짧아지면서 그런 질문을 더 자주 스스로에게 하게 돼요. (중략) 세월이 너무 빨리 바뀌니 오늘날의 책은 100년 후에는 아마 잊힐 겁니다. 극소수만 읽힐 거예요. 200년 후에는 요즘 쓰인 책 중 다섯 권 정도만 살아남겠지요. 내가 그 다섯 권 중에 들어갈 책을 쓰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하지만 그 점이 글쓰기의 의미인가? 200년 후에 읽힐지에 대해서 내가 걱정해야 하는가? 삶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 책이 미래에 읽힐 거라는 위안이 필요한가? 이런 생각을 늘 하면서 계속 글을 써나가지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답니다. 제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이 이 삶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유일한 위안이에요. (97쪽)

말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의 책 『검은 책』은 재미있었지만, 조금 어려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놈의 대출기간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 했다. 오르한 파묵, 작가의 이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보니, 그 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검은 책』이라.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는가. 파묵은 자신의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이, 자신에게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맞다. 글쓰기는 외로운 일이 아닐테고, 어쩌면 그렇게 많이 힘든 일도 아닐 것이다. 외로운 글쓰기란, 힘든 글쓰기란 내가 하는 지금의 이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고 하는 글쓰기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고서 계속되는 글쓰기. 그런 글쓰기가 외로운 글쓰기, 힘든 글쓰기 일테다.

4. 레이먼드 카버

카버 ... 삶이 제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좌절감에 직면해야 했어요. 예를 들면,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쓸 시간도 장소도 없다는 것 등이지요. 밖에 나가 차에 앉아서 무릎 위에 공책을 놓고 글을 쓰려고 애썼죠. 이때는 제 아이들이 사춘기일 때였어요. 이십 대 말이나 삼십 대 초였을 때였죠.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언제나 한 발만 내딛으면 파산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323쪽)

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아우라, 소설가라는 이름이 내뿜는 광채와는 상관 없이, 글을 쓰고, 지우고, 소설을 완성하고, 아니, 소설을 쓸 수 없어 단편이나 시를 써가면서 삶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소설과 같다. 모든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수 없고,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아이를 달래가며 써내려간 소설이 모두 [해리포터]가 될 수 없듯이, 지난한 삶의 결국이 행복이 아닐수도 있고, 내가 가진 하얀색 도화지에 파스텔 분홍만 칠하겠다고 고집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게 삶이고, 그런게 인생일테다.

당신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의 작품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카버 소설이나 희곡, 시집 한 권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자신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시대는 - 그런 시대가 설혹 있었다 해도 -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 자신에 관한 한 예술의 역할은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348쪽)

추천사 이야기를 해야겠다. 추천사를 쓸려면 이 정도는 써주세요. 추천사를 쓸려면 요렇게 써주세요.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소설가란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이야기다. 소설 쓰기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 결국 그는 매일 소설을 쓰게 될 텐데, 그러자면 건강과 체력은 필수적이다. ...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해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그들에게 재능은 이미 오래전에, 한 권의 책으로 소진돼버렸으니까. 재능은 데뷔할 때만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 (7쪽)

그 위대한 이름들을 처음 볼 뿐 아니라, 그들의 위대한 작품 역시 처음 보는 이름이 수두룩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다시 읽기 전에 파리 리뷰 인터뷰 2가 나오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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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2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아직 사지도 않았네요. ㅎㅎ
그나저나 에코의 센스 쩌네요. 직접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니! 아...나도 이렇게 센스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챈들러가 만들어낸 캐릭터인 '필립 말로'는 진짜진짜 러블리 합니다, 단발머리님. 대박이에요!!

단발머리 2014-03-25 15:59   좋아요 0 | URL
센스 쩌는 에코를 저는,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러블리 '필립 말로'를 곧 좋아할 예정인데요. 그렇다고 치면, 저는 무척이나 바빠질 것 같네요.
문제는 '필립 말로'가 챈들러의 무슨 작품에서 나오는지 몰라서요. 다락방님 방에 가서 찾아볼 예정입니다.
그럼 전 이만 바빠서~~ 휘리릭~

다락방 2014-03-25 16:46   좋아요 0 | URL
챈들러의 모든 작품에 필립 말로가 나옵니다, 단발머리님.
현재 국내에 번역된 챈들러 작품은 필립 말로 시리즈에요.
기나긴 이별, 빅슬립, 하이 윈도우, 안녕 내사랑, 호수의 여인, 리틀 시스터
모두 다요.
<안녕, 내사랑>으로 시작하시는 건 어떨까요. 움화화핫
저도 조만간 다시 읽을라고요.

단발머리 2014-03-25 17:50   좋아요 0 | URL
접수 완전 완료되었구요.
권해주시는대로 <안녕, 내사랑>에서 시작합니다.
주루룩 읽어가진 못하겠지만, 러블리 '필립 말로'니까. 움하하핫~~ 기대됩니다.
지도 편달 매우 감사합니다^^

icaru 2014-04-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면전에 두고,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진정 멋드러지게 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ㅎ
저도 최근 이 책을 잡았었어요... 쿄호~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는 같은 부분에 밑줄 긋기 하셨세여~
ㅋ 하늘이 준 재능이라고 인정하는 부분,, 특히 ㅎ

단발머리 2014-04-02 07:20   좋아요 0 | URL
icaru님 덕분에 저 멋드러진 사람 됐어요~ 브이!!
그래서 사람들이 하루키 좋아하나봐요. 그렇게 성공하고 돈 많고ㅋㅋ 그러는 데도, 달리기 하고 수영하고, 열심히 소설 쓰고. 하늘이 준 재능이라 진짜로 인정하는 사람만 그럴 수 있는 거 같아요~~

날씨가 너무 좋네요. 화창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