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랑한 은둔자 / 유령 퇴장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19쪽)
도서관에서 빌린 『명랑한 은둔자』를 3쪽 읽고 바로 책을 주문했다. 내 책으로 읽어야겠다 싶어서, 줄을 치고 싶어서. 늦은 밤에 주문했는데 오고 있다고 한다.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 혹은 피하고 싶은 필립 로스의 작품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유령 퇴장』이고, 제일 좋아하는 문단은 바로 여기다. 설명할 수 없는 바로 그 이유로 이 문단을 읽고 또 읽는다. 내가 원하는 삶인가 생각하면서 읽는다. 읽고 또 읽고, 책을 펴게 되면 일부러 찾아 한 번씩 더 읽는다.
나는 만찬회 같은 데도 참석하지 않고 영화 구경도 가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휴대전화나 VCR나 DVD플레이어나 컴퓨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계속 타자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월드와이드웹이 뭔지도 모른다. 선거 같은 것도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대개 밤늦게까지 글을 쓰며 보낸다. 독서도 하는데, 주로 학생 때 처음 접했던 책들을 읽는다. (『유령 퇴장』, 13쪽)
나는 대학을 집에서 다녔고, 직장도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곳이어서 굳이 독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집이 편해서 떠날 생각을 안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결혼 직전에 집을 잠깐 나온 적이 있는데, 어린 사촌 동생들과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이모가 무섭다고 하셔서 이모 댁에서 일 년 정도 같이 살았다. 이모가 차려 주시는 아침밥을 먹고 출근해서, 저녁에 돌아오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서 멀리 떠난 느낌이 없었다. 결혼하니 두 식구였고, 곧 세 식구, 연이어 네 식구가 되었다. 혼자인 적이 없었고, 혼자일 수 없었다. 그런 내가, 고독보다 고립에 가까운 삶을 사는 필립 로스의 주인공에게서 찾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혼자인 삶에 대해 모른다. 집을 나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고,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지만, 그건 혼자 살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안다. 나는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캐럴라인 냅의 고독에 대한 예찬을 읽어나갈 때, 내가 원하던 것이 바로 그것임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고독의 쌍둥이인 고립이 얼마나 고독과 닮았는지 확인한다. 책을 더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
2. 나는 고백한다 / 언어의 탄생
알라딘 서재는 놀라운 곳이어서, 알라딘 이웃 1이 이 책 아마 당신이 좋아할 거야, 라고 말하면, 그 책을 소개받은 알라딘 이웃 2가 어머, 딱 내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어떻게 알았어요? 이런 간증이 흘러넘친다. 알라딘 추천 마법사보다 100배 정교한 지인 추천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 믿고 읽는 알라딘. 믿고 따라 읽는 알라딘 고수의 추천작. 『나는 고백한다』의 경우 폴스타프님과 잠자냥님의 협동 작전으로 읽게 되었다. 뭐라고 더할 말이 없어서, 대단하다는 말만 남긴다. 시점의 변화와 장소의 변경과 서술과 대화의 움직임이 이 책처럼 유려한 책을 본 적이 없다. 가히 신세계다. 역시나 알라딘 고수들의 픽이라면 더 물을 필요도 없다는 걸 확인했다. 1권을 읽은 후에 아껴두었던 잠자냥님과 폴스타프님의 리뷰를 읽었다. 이렇게 깊은 사유와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구나. 『젠더 트러블』을 읽었을 때의 비슷한 경험(feat. 공쟝쟝님)이 떠오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의 진실.
한편 당시 나는 이미 독일어와 영어로 된 복잡한 글들을 읽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들 내 능력이 놀랍다고 말했다. 저런,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확실히 나는 언어를 쉽게 배우는 편이었다. 프랑스어는 식은 죽 먹기였고, 이탈리아어는 비록 억양이 틀리기는 해도 읽을 수 있고 제2의 모국어와 다름없이 구사했다. 카탈루냐어와 카스티야어는 물론 『갈리아 전기』 수준의 라틴어도 막힘이 없었다. 러시아어나 아람어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와 꿈도 꾸지 말라고 말했다. 이미 아는 언어만으로도 충분해. 인생에서 다른 것들도 해야지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언어만 배울 거니. (225쪽)
외국어 공부를 강제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다언어 능력자인 화자에게 이제 외국어 공부를 그만하라는 어머니의 꾸중. 마침 옆에는 외국어 달인인 알라딘 이웃 3이 예전에 읽었던 빌 브라이슨의 책이 있어서 살짝 펼쳐만 본다. 영어에 대한 미움을 지울 시간인가.
3. 젠더 트러블 / 소설의 정치사
읽고 싶은 책 『소설의 정치사』를 읽으면 읽고 있는 책 『젠더 트러블』을 마칠 수 없을 것 같아, 8월의 도서 시작이 자꾸 밀리고 있다. 8월도 벌써 한 주가 다 지나갔다고 한다.
4.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 한 권 읽은 사람이라는 농담이 회자되는 요즘, 윤짜장의 1일 1망언이 지속되는 요즘, 지젝의 책을 딱 한 권 읽은 나는, 지젝의 신간을 읽어보고 싶어 미리보기를 펼친다. 이 책도 저번 책 『팬데믹 패닉』처럼 쉬운 책이구나 싶은 마음에, 지젝의 책을 2권 읽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하는데, 대출 중이다. 기다리라.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결국에는 적응하게 될 것이다. 어제 아침에는 확진자가 머물던 자리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20여 분 동안 머물던 사람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아, 마스크를 쓴 채로.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저번 주일에는 교회 오빠들의 영상통화가 있었다. 한 달 동안 한국에서 머물다가 다음 주에 아프리카 N국으로 돌아가는 선교사님이자 교회 오빠도 함께했다. M오빠가 그 나라는 입국 후에 자가격리가 있냐고 물었다. 선교사님은 검사비가 우리나라 돈으로 5만 원인데 일반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중간 간부급 공무원 한 달 월급의 50%)이라 검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자가격리라는 개념도 없고 관리하고 감시하는 사람들도 없어서 실제 그 나라의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는데, 하루에 확진자가 1-2명 나오는 정도라고 했다. 비행기가 경유하는 E국의 공항에서는 공항 직원들이 마스크라도 쓰고 일을 하는데 그곳은 그것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커피숍이 폐쇄되고, 역학조사에 따라 확진자, 확진자의 밀접접촉자, 밀접접촉자의 접촉자 등으로 겹겹이 관리하고, 선별 검사와 자가 격리, 관찰과 집중 치료가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와는 엄청난 차이다. 조심해서 들어가라, 조심해서. 걱정과 염려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심각한 코로나 상황은 집 앞 커피숍의 확진자 동선처럼 위험한 일일 것이나 당장 내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먼 곳의 위협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멀기만 할까.
작년인가 우리나라에서도 채소 재배 농장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는 타국의 노동자들. 그들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과 생각보다 훨씬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안전에 대한 강박, 안전함에 대한 집착이 더 강고해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마거릿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3부작이 떠오른다. 높이 쌓아 올린 장벽, 우리만 사는 안전한 세상,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오고 갈 수 있는 폐쇄적인 사회. 마거릿 애트우드 작품 속의 장벽이 실재하기도 한다. 미국만 그러겠는가. 유럽도, 중국도,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안전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암울할 것이 분명한 우리의 미래. 라캉식 독법으로 헤겔을 읽는 일에 특화된 철학자가 작물 수확에 대해 고민하면서 얻게 된 해답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읽어보고 판단하자. 일단, 지금은 고독의 시간. 캐럴라인 냅에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