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 근대의 빛과 그림자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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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 이야기 2권이다. 이번엔 부제가 근대의 빛과 그림자다. 1600년대에서 1700년대 초반까지 활약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중에 여성이 등장한다. 1권에서 잔 다르크가 제일 먼저 등장했듯이 2권에서도 카트린 드 메디시스라는 여성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앙리 2세의 부인이 되는 메디치 가문의 여인. 그러나 왕비가 되었다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남편과 자식들 세 명이 왕이 되지만, 카트린이 살았던 시대는 기독교가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던 때였다.

 

특히 구교가 신교도들을 학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시절, 그 시절에 평화를 갈구했던 여인이 바로 카트린이라고 한다. 그러나 종교 갈등이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일. 나중에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반포하여 신교들의 예배 자유를 허용할 때까지, 종교의 갈등은 계속된다. 물론 그 이후에도 해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카트린을 통해서는 국제적인 결혼을 통한 각국의 정치적 책략과 그리고 종교 개혁으로 인해 벌어진 정치적 혼란까지 만날 수 있다.

 

이런 종교 갈등이 심화된 것이 네덜란드 독립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페인의 지배 하에 있던 네덜란드가 가톨릭만을 강요하는 스페인에 저항하여 일어난 전쟁들. 그 전쟁의 한복판에서 지도자로 급부상하는 빌렘 오라녀 공.

 

지금 네덜란드가 오렌지 색을 그들의 색깔로 정하고 있는데, 빌렘 오라녀 공의 오라녀가 영어로는 오렌지라는 것. 그들의 집안이 나중에 네덜란드 왕족이 되는데, 그 기틀이 바로 빌렘에게 있다는 것. 비록 그는 네덜란드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가톨릭 신자에게 암살을 당했지만 네덜란드 독립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라는 것.

 

이래서 유럽에서 또 하나의 나라가 등장한다. 그동안은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던 네덜란드가 이런 과정을 통해 유럽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는 종교 갈등이 심해지는 것과 더불어 과학이 발전하면서 종교와 충돌하게 된다. 속속 과학적 발견들이 이뤄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종교로 설명되던 것들이 과학과 맞지 않게 되는 것. 이 충돌의 정점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다.

 

물론 그는 개인 신념으로서 종교와 학문으로서 과학을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적 인간이었지만, 학문에서는 과학적 합리성을 지니려 했던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가뜩이나 약화되고 있는 교황 권력, 가톨릭이 과학으로 종교의 교리를 논박하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유명한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이다. 힘으로 진리를 누르려 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중에 가톨릭에서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은 잘못되었다고 인정했다고 하니... 근대에 접어들면서 지금의 사고체계로 나아가는데 초석을 다진 인물이 갈릴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이 발전하면 사람들이 더욱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을 할 것 같은데, 근대에 들어서서도 그렇지 못한 광기를 발현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녀사냥이다.

 

주경철은 근대에 들어서' 다양한 갈등이 폭력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 기제로서 마녀 개념이 장기간에 걸쳐 준비되었고, 그것이 특정 지역의 특정 국면에 다라 유연하게 작동했다(162쪽)'고 한다.

 

결국 갈등을 분출하는 한 방법으로 마녀 사냥이 일어났다는 것인데, 이 마녀 사냥이 현대에 들어서 유대인 학살이나 각종 홀로코스트로 나타나고 있으니, 우리가 역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의문이 든다.

 

종교로 인한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인류를 구원한다는 종교가 오히려 인류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형국이니. 무엇이 종교인지...

 

이제 유럽이 어느 정도 재편되기 시작하는 때로 넘어간다. 그 때를 살았던 인물들을 다루는데, 프랑스의 루이 14세, 합스부르크 가문의 레오폴트 1세와 카를로스 2세가 언급된다.

 

레올폴트 1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맞서 합스부르크 왕국을 지켜낸 황제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힘이 약해짐을 유럽이 깨닫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여기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에 나오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바로 그의 부인이라는 것.

 

합스부르크 왕가는 근친혼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었다는 사실. 왜 우리가 근친혼을 거부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럼에도 자신들의 왕가를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해야했던 당시의 왕족들의 비참함을 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근친혼의 대가를 온몸으로 치러야 했던 왕이 바로 카를로스 2세라는 것.

 

아니 마르카리타 공주만 해도 근친혼의 비극을 겪는다. 정략결혼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를 낳는 기계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21세에 죽음에 이르는 요절.

 

정치적 격랑 속에서 여성들의 삶이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녹록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왕들을 통해 근대에 들어 유럽은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인류의 역사에서 평화의 기간이 오히려 예외라는 것이 실감나는 장면이었다.

 

전쟁, 전쟁... 따지고 보면 다들 같은 집안 사람들인데... 참, 지독하게도 싸운다. 자기들이 싸움이 힘없는 백성들의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이들이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권력욕이든, 영토 정복욕이든 아무튼 권력자의 욕구가 강하면 다른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이들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근대의 빛과 그림자에서 특이하게 예술가를 다루고 있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사람으로 예술가가 등장하기는 힘든데, 그럼에도 베르니니라는 예술가를 다루고 있는 것은, 그가 지금의 베드로 성당, 베드로 광장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를 잇는, 근대에 들어서 교황의 권위를 드러내는 건축을 한 사람,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으니, 유럽 역사에서 그를 다뤄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 사람은 둘이다. 존 로와 존 블런트. 프랑스와 영국에서 주식투자를 실시했던, 버블 경제를 일으킨 사람들.

 

어쩌면 돈을 좇는 불나방들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람은 제로섬 게임인 주식투자를 모두가 플러스가 되는 게임이라고 속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경제체제에서 주식이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은행이 적은 자본을 가지고도 몇십 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굴릴 수 있는 것을 제일 먼저 시행한 사람들.

 

그러나 이들로 인해 파산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돈이라는 불을 보고 뛰어든 수많은 사람들, 불나방이 불에 타죽어버리듯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

 

그런 경제를 시도한 사람.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갖는 위치, 힘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근대에 접어들어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나 사건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3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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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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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 가장 무난한 대답은 둘 다이다일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다시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사람이 영웅일테니, 시대와 영웅의 관계를 어느 일방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인물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권은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잔 다르크로 시작하는데 잔 다르크가 어떻게 근대의 별을 본 사람이 되지? 오히려 잔 다르크는 중세 신앙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사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니는데...

 

잔 다르크 마지막 부분에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15세기에 프랑스 변경 지역의 작음 마을에 살았던 어린 소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 무대에 느닷없이 등장하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백년전쟁을 거치며 오늘날의 프랑스, 오늘날의 영국이 만들어져갔다.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정치와 종교가 함께 작동했다. 잔 다르크라는 소녀로 인해 이 격동의 역사에 신비가 더해졌다.' (51쪽)

 

열세에 몰려 있던 프랑스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소녀. 어쩌면 이 소녀는 프랑스인들에게 희망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을 신이 보호하고 있다는. 그렇기에 잔 다르크는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지만, 그로 인해 국민국가가 형성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니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

 

잔 다르크 외에 그 시대를 살았던 여러 인물이 나온다. 잔 다르크와 관련있는 프랑스 쪽 사람들로 부르고뉴 공작들이 나오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카를 5세, 헨리 8세... 그리고 콜럼버스, 코르테스와 밀란체

 

조금 다른 인물로 중세를 대표하는, 그러나 전형적인 르네상스인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지막으로 근대를 열어젖히는 루터가 나온다.

 

이렇게 이들을 통해 우리는 중세를 거쳐 근대에 접어들게 된다. 부르고뉴 공작들, 카를 5세, 헨리 8세가 유럽을 활동 무대로 삼았다면, 콜럼버스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 있고, 코르테스에 이르러 활동 무대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장이 된다.

 

여기에 말린체라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코르테스에 협조해 아스테카 제국이 멸망하는데 공헌을 한 여인. 그와 코르테스 사이에 난 아이를 사람들은 메스티소의 시조라고 한다는데... 이 책에는 스페인 사람인 게레로라는 사람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이 나온다.

 

엄밀한 역사적 사례로는 메스티소의 시조는 코르테스와 말린체의 자식인 마르틴이 아니고 게로로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게레로는 원주민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간 사람이라고 하니...

 

중남미의 슬픈 역사를 이 책에서 말린체라는 여인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8명(말린체를 포함하면 9명... 부르고뉴 공작들은 여러 명이 나오니 10명 이상)을 통해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펴보게 한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들은 유럽의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고,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 어쩌면 이렇게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때인지도...

 

그렇다면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누가 이들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또 바람직한 방향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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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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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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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탄생 - 모방이론을 통해 보는 사랑의 심리학
장-미셸 우구를리앙 지음, 김진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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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거창하게 심리학에 관한 전문적인 책으로 보아도 좋지만, 심리학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에 관한 책으로 보아도 좋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왜 그 사랑을 지속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결국 헤어지게 될까? 그것의 원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문제가 이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문제는 모방에 있다. 즉 상대방의 욕구를 모방하기 때문에 그 욕구들이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이가 좋을 때는 상승작용을 내는 모방 욕구들이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안 좋은 쪽으로 강화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그를 경쟁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쟁자로 여기는 순간 모방이론은 상대를 꺾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경쟁을 보면 그 사랑이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시소게임과 같다고 한다.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갈 수밖에 없는.

 

그러나 사람의 사랑이 어디 시소와 같은가? 좋을 때는 같이 올라가고 안 좋을 때는 거의 같이 내려가지 않는가. 이러니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경쟁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튼튼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경쟁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미세한 불평등이 끼어드는 순간, 다름 아닌 평등이 반복되는 폭력과 긴장과 비교의 원인이 된다. 나는 일종의 선택된 위계질서라 할 수 있을, 두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차이와 균형 잡힌 불평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시소 게임을 시작하면 관계가 빗나가기 시작한다. ... 둘 중 하나는 상대의 욕망을 위해 자기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사랑을 살리려면 경쟁을 희생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욕망의 대상을 포기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332-333쪽)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두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욕망의 희생은 또다른 불평등을 낳고, 상대의 욕망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행위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랑은 자신의 전존재를 내건 행위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을 때는 상대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뢰가 바탕을 이루지 않을 때 모방 욕구가 작동하고, 경쟁이 끼어들 틈이 생긴다.

 

그래서 상대를 내 욕망에 굴복시키려는 행위가 시작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신뢰, 내 욕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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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뒷모습
정찬주 지음, 정윤경 그림, 유동영 사진 / 반딧불이(한결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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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무소유를 말씀하시던 스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다니. 2010년에 열반에 드셨으니, 참으로 세월은 무상하다.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정 스님의 뒷모습... 누가 그랬던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은 뒷모습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신이 떠난 자리에 여운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자신이 떠난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사람.

 

재가제자로서 스님으로부터 무염(無染)이라는 이름을 받은 정찬주가 펴낸 법정 스님에 관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던져주고 있다. 자신의 산방에 머물다 간 사람들 중에 화장실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간 사람. 이 사람이 나중에 찾아오면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말.

 

아마도 법정 스님에게 해당하는 말이겠다. 평생 자신이 쓴 글인 무소유처럼 살다 간 분이니 말이다.  김영한 여사가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단 하나 감사 한 사람만을 두겠다는 조건으로 법정 스님에게 기부하려고 했던 때의 이야기. (고승의 조건. 96-99쪽)

 

그 조건마저도 다른 고승들이 많다는 이유로 고사하셨다는. 김영한 여사가 여러 고승들을 찾아다니다 결국은 다시 감사를 두겠다는 단 하나의 조건도 없애고 무조건 법정 스님에게 맡아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무소유를 철저하게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길상사에 구내서점을 운영해 궁한 절 사림을 개선하자는 대중의 건의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하니 (90쪽) 스님의 대쪽같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런저런 법정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냥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님은 이렇게 떠나서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좋은 절은 친절이고, 가지 말아야 할 절은 불친절입니다 (51쪽)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아니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인가. 친절은 곧 상대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맞추는 일이다. 상대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친절은 정말로 좋은 절이다. 우리가 가야 할, 가고 싶어하는 절이다. 그런데 이 친절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나에게 있다. 모든 것은 바로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절을 친절로 만들든, 불친절로 만들든 그것은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친절한 삶, 내 삶에 충실한 삶이고, 남에게 충실한 삶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삶은 곧 부처의 삶이다. 이렇게 사는 삶 속에 바로 절이 있다. 절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절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 좋은 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해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바로 친절하게 살아가는 자세, 그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법정 스님이 저자인 정찬주에게 무염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지 않았겠는가. 어디에 있든 물들지 않으면 된다. 내 마음에 절을 두고 있으면 되니...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친절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것이 바로 잘 사는 삶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절한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레 뒷모습도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친절한 사람일테고, 처음에는 친절을 가장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체하던 것이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굳어질 수도 있으니...

 

습관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듯이 친절한 행위들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다 보면 앞과 뒤가 하나가 되고, 뒷모습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렇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몸을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 추운 겨울 오슬오슬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는 화롯불 같은 책.

 

법정이라는 숲을 거닐다 온 느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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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08: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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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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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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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과거를 현재에 끌어와 미래를 생각하게 되어서 좋았다. 유물, 문화재, 작품 등등... 그냥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히 사라져 가게 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꼭 인류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라짐이 운명이라지만 그 사라짐을 잠시 멈추게 하거나 또는 조금 느리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느림이나 멈춤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현재에 잡아두려 한다. 왜 과거를 현재에 잡아두려 할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현재가 미래에는 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현재도 과거처럼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 그러므로 과거를 현재에 붙잡아두려는 일을 통해 지금도 미래에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져야 하지만, 그 사라짐이 동시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복원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복원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복원은 현재에 시간의 흐름을 덧씌우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현재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원이다.

 

이런 복원을 하는 남자, 김겸이 쓴 책이 바로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다. 그가 만났던 많은 과거의 물건들, 그 물건들을 현재에 남겨놓는 과정이 담긴 책이다.

 

여기에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내용도 있어서 우리 현대사의 치열했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게다가 남대문으로 불리는 숭례문, 화재로 전소되었을 때 그것을 복원하는 과정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는데, 외국에서 복원을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나라 복원이 얼마나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 더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복원하는(? 복원이라는 말이 적절한 어휘가 아니라 청소라고 해야 한다고) 장면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기가 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동 특성을 생각하지도 않고 무지막지하게 청소를 해버리는 동상 복원이라니... 문화재에 대한 생각, 또 복원에 대한 생각이 이다지도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복원을 하면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복원 사실을 감추려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글에서는, 문화재를 우리들 삶의 일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모습이 연상되어 씁쓸하기도 했고.

 

작품이나 문화재가 복원되는 것은 그것에 시간의 흐름이, 삶이, 역사가 함께 들어있게 하는 것이라는 것, 모든 것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지만, 그 사라짐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복원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음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글쓴이 김겸이 생각하는 복원은 이렇다. 이게 진정한 복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닌...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보존이나 복원은 작품이 제작된 당시의 젊음을 되돌려주는 행위가 아니라 정성스럽게 잘 관리된 세월의 흔적을 함께 가져가는 행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40쪽)

 

이런 복원 전문가의 일은 육체적으로도 고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지식면에서 또 예술적 감수성이나 기술, 재주면에서도 뛰어나야 하겠지만 거대한 예술품을 복원하는 일은 많은 장비들과 해야하기 때문에 몸을 혹사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겸 역시 복원 작업을 마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하니, 육체적으로도 고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작품에 쓰인 재료들에 대한 지식,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대한 지식, 화학에 대한 지식 등 여러 가지 지식들이 동반하지 않는 복원은 문제가 있다고 하니...

 

인류 문화의 축적, 그것들을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끌어오는 일, 그것이 복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참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복원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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