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치핀 -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세스 고딘 지음, 윤영삼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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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경전이 많다. 경전이 한 권이라면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싸울 일이 없겠지. 하지만 그 많은 경전들을 관통하는 내용이 다 다를까? 몇몇은 다르기도 하다. 유일신,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경전처럼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신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 경전이 설파하고 있는 인간들이 실천해야 하는 내용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그러니 어떤 경전을 읽고 그 경전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면 세상은 자비와 사랑과 평화가 넘치게 될 것이다. 상대를 비방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내 일처럼 돕고, 자신을 항상 뒤돌아보고 개선하려고 하며, 나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린치핀]이란 이 책도 마찬가지다. 경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경전에 비유하기가 너무 거창하다면 교과서에 비유하면 된다. 물론 이 책에서는 학교를 비판한다. 학교에서는 린치핀이 아닌 톱니바퀴를 양산한다고 하니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톱니바퀴가 되는 길밖에 없다. 이는 곧 실패를 의미한다. -431쪽)


교과서란 말은 틀에 박힌이란 의미로 많이 쓰이니, 틀을 벗어나자고 주장하는 이 책의 취지와는 맞지 않으니 빼자. 경전이 맞다. 경전은 순응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전은 단순히 순응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순응이 아니라 경전대로 살아간다면 세상을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기독교만 보아도 그렇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는 경전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 아니었다. 불교는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계급으로 나뉘어진 사회를 비판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 교리는 바로 혁명적이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교 역시 마찬가지다. 공자의 사상이 순응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맹자를 보라. 왕을 쫓아낼 수 있는 근거를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사람답게 사는 방법,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들이 경전이다.


이런 점에서 경전은 우리 삶에 많은 도움을 준다. 왜 [린치핀]이란 책을 이야기하면서 경전을 들먹였냐고? 그것은 이 책이 바로 경전과 같은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읽으면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 린치핀이 되고, 이 사회에서 우리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린치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특히나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대체불가능한 린치핀이 되어야 한다고...


린치핀은 <다음 백과사전>에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린치핀은 마차나 수레의 바퀴를 고정시키기 위해 축에 꽂는 핀으로서 안보 ・ 외교적으로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핵심 국가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미국은 린치핀이란 용어를 미국 ・ 일본 간 동맹 관계에서 주로 쓰다가 오바마 행정부인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으로 한미동맹 관계를 린치핀이라고 표현했다. (출전 : 린치핀 - Daum 백과)


영어 사전을 보면 linchpin : 1. 바퀴를 굴대에 고정시키는 핀 2. 중핵을 이루는 중요인물 3. 급소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린치핀은 중요한,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현대사회에서 대체불가능한 인물이 바로 린치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린치핀이 될 수 있는가?


많은 방법이 - 이 책에서는 방법이라기 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구체적인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으니 - 있지만, 그 방법은 경전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즉, 실천은 개인의 몫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 경전에 쓰여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한 린치핀이 되는 방법을 읽고 머리 속에 간직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 이 책은 경전이다.


하지만 경전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문구들이 있기 마련이니,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린치핀이 되기 위한 자세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물론 학교에서는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고, 저자는 학교의 교육은 톱니바퀴를 양산하지 절대로 린치핀을 길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긴 경전을 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으니까...


린치핀이 가진 일곱 가지 능력이라는 장을 기억하면 된다. 적어도 이런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면 되니까...


1. 조직 구성원들이 접촉할 수 있는 고유한 통로를 만든다.

2. 고유한 창의성을 발휘한다.

3. 매우 복잡한 상황이나 조직을 관리한다.

4. 고객들을 이끈다.

5. 직원들에게 영감을 준다.

6. 자신의 분야에 깊은 지식을 제공한다.

7. 독특한 재능을 지닌다.  (417-418쪽)


이런 말들을 뭉뚱그릴 수 있는 말이 '관계, 예술, 선물'이라는 말들이다. 이 세 단어는 이 책에 많이 나온다. 


관계는 중요하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진심을 다한 만남, 이런 만남은 선물이다.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좋아서 준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좋은 것, 그것이 선물이다. 이런 선물을 주는 자세,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그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 즉 관계에서 예술은 선물로 나타나게 된다.


[린치핀]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나는 린치핀인가, 톱니바퀴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동들은 린치핀에서 멀어진 행동들이 아니었나. 내 삶도 린치핀이 아닌 톱니바퀴에 불과하지 않았나, 언제든 대체가능한 존재가 나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말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하니, 그것이 린치핀이 되는 가장 기본이라고 하니, 어쩌면 이 책은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경전이 아무리 좋은 소리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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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1-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천하는 움직임이 되는 오늘이 되도록 !!! 다짐해 봅니다.

kinye91 2024-01-09 10:52   좋아요 0 | URL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매일 매일의 진화생물학 - 진화는 어떻게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만들었는가
롭 브룩스 지음, 최재천.한창석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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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물론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물학계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윈에 관한 책들이 다시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하고, 다윈의 학설을 계승한 학자들도 많은데... 이 책의 저자 또한 다윈의 학설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만의 용어로 심오한 논의를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냥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일들과 진화론을 연결짓고 있다.


진화론을 경제학과 연결한다든지, 로큰롤이라고 하는 음악과 연결짓는다든지 이렇게 진화론이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우리들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진화론을 설명하는 책 답게 우리 몸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몸뿐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몸도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왜 이성을 지닌 인간이 비만이 될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훑어간다. 수렵채집을 하던 시기부터 농경을 하게 된 시기까지... 각종 합성식품을 만들어내는 현대까지.


먹을 것이 귀했던 인류는 저장하는 몸으로 진화를 했고, 그런 진화의 결과 소비량보다 많은 지방을 흡수하게 된 지금은 자연스레 비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비만이 진화의 결과라는 것인데, 단지 진화의 결과라고 생물학에만 책임이 있다고 하지 않고, 경제와 문화를 융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진화는 (특히 자연선택은) 경제학의 원리와 같을지도 모른다. 최소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얻는 것. 그것이 진화로 우리 몸에 굳어졌다면 최소비용으로 너무도 많은 효용을 내는 음식들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또 그렇게 필요한 영양소(맛)를 섭취하도록 진화해 온 몸이 어찌 비만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비만을 이야기하면서 다음은 인구로 넘어간다. 여기서 인구라고 이야기했지만 일명 성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섹스'에 관한 내용이다. 하긴 인구와 섹스가 연결이 안 될 수가 없지.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라는 말이 있듯이 섹스 없이 인구도 없다. 물론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지금은 섹스 없이도 인구를 늘릴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섹스 없이는 인구를 늘릴 수는 없다.


그러니 섹스는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지 진화와만 관련이 있지 않고 경제와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런 점을 여러 장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일부다처제'를 생각해 보자.


'일부다처제'라고 하면 모든 남성들이 찬성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부다처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선 많은 여성에게 경제적인 윤택함을 부여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 다음에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도 많은 권력을 지니면 더 많은 혜택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소수가 많은 여성과 결혼을 하면 결혼을 하지 못하는 남성이 남는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 그냥 나는 어쩔 수 없어 하고 말까? 아니다. 자포자기한 사람들, 어떤 행동을 해도 손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래가 없기에, 그들은 사회불안 요소가 된다. 사회학적으로도 그렇다. 이는 단순한 진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종자가 자신의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서 다른 약한 종들을 억압하면 약한 종들은 도태되지만, 도태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혼란이 일어난다.


특히 인간들처럼 70억명이 되는 개체수를 지닌 집단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자연스레 '일부다처제'가 '일부일처제'로 변화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 또 성적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은 순차적인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순차적인 일부다처제는 결혼-이혼-결혼-이혼-결혼 등의 과정을 거쳐 두 명 이상의 배우자로부터 자손을 낳는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 사회에서 우성이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다른 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기회가 없다.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무모한 행동도 한다. 사회불안이 야기된다. 우성유전자들도 혼란에 휩쓸리면 자신들의 유전자를 남기기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하다. 일부일처제가 다수의 문화로 정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로큰롤(락 앤 롤)도 마찬가지다. 가장 성적인 음악이 로큰롤이라고 한다. 이들 스타들은 바로 성적으로 우수하다고 뽐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락스타에 열광하는 것은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화려하고 멋진 수컷... 우수하다고 진화를 통해서 선택되었지 않은가. 락스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동물을 보라. 화려한 수컷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전파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천적들에게 잡힐 확률이 높다. 그런데도 암컷들의 선택을 받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 또한 높다. 락스타들의 이른 죽음을 이렇게 동물 수컷들의 화려함과 연결을 짓는다. 


화려함 뒤에 있는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처럼 이 책은 진화론과 비만, 인구, 음악을 연결짓고 있다.


학술적인 논의를 한다기보다는 우리가 늘 접하고 있는 부분을 진화론과 연결지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진화론에 대해서 반감을 지니지 않게 된다. 또한 진화론이 생물학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학, 역사학, 문화인류학, 그리고 예술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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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2023-12-20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락스타에 열광하는 것이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이 정말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음악에도 진화론이 엮일 줄은 몰랐는데요..!!!! 제가 락스타를 사랑하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나봅니다..😻

kinye91 2023-12-20 14:20   좋아요 0 | URL
저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이 책을 읽어보니 진화론과 락음악이 어느 정도 관계가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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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생물이 아니다. 그러나 생물처럼 존재한다. 아니 책은 생물이다. 살아 있다. 책을 죽은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또한 책을 죽이려는 사회 역시 생명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책은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생명력을 유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이 책은 책의 역사이자 책에게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책에 대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알렉산더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세계를 정복할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력으로.


하지만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사람은 없다.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세계를 정복할 수가 있다. 책에게는 한계가 없다. 시간의 한계도 공간의 한계도 언어의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알렉산더는 세계 정복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세계화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헬레니즘이라는 이름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도 알렉산더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책에 관한 알렉산더의 기여다. 그는 전쟁 중에도 '일리아스'를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고 한다. 자신을 아킬레우스에 비유하면서.


단지 알렉산더가 책을 읽었다는 것에서 그의 공헌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책에 대한 그의 공헌은 그가 죽은 뒤에 나왔다. 바로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책들, 다양한 언어로 쓰였던 책들을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지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사를 하고 번역을 한다.


책을 통해 세계가 교류하기 시작한다. 국제화, 세계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도 있다. 책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도서관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자신들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듯이. 하지만 도서관을 파괴해도 모든 책을 파괴할 순 없다. 또 책을 읽지 말란다고, 책을 불태우라고 해도 몇몇은 책을 구출한다. 그리고 그 책들은 후대로 전해진다.


즉,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책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왔다. 저자는 '멸종위기 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역사를 통해서 책은 멸종위기에 처한 적이 많았다.


저자가 들고 있는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나라 [훈민정음]을 생각해 보면 된다. [훈민정음] 책이 발견되지 전에 한글 창제에 관해서 얼마나 많은 억설들이 있었던가. 분명 창제한 사람과 창제한 시기 그리고 출판을 했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산군 때 한글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글로 꾸준히 창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야말로 멸종위기 책이 바로 [훈민정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으로는 단 두 권만이 살아남았다. 그나마 한 권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단 한 권만이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책의 모험이다. [훈민정음] 책은 바닥을 까는 재료로, 화장실의 휴지로, 벽지로 쓰이면서 사라져 갔을 것이다. 눈 밝은 누군가가 발견하고 보관하기까지는.


왕조실록을 무려 4곳에 보관하던 조선 사람들이 [훈민정음]을 이렇게 도외시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는 [훈민정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책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 살아남았다. 어떤 책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남았고, 어떤 책은 간신히 살아남아서 훨씬 뒤에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 이러한 책의 역사, 책의 모험을 만나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많은 책들과 작가들이 종횡무진으로 나타난다. 책에 관한 수많은 지식들이 날줄과 씨줄로 엮여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책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을 이루고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하는 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우리에게 시들지 않는 선례를 물려주었다. 인간의 평등, 지도자 선택의 가능성, 아이들에게 노동보다 교육이 낫다는 직감, 병자와 약자와 노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등, 이 모든 발명은 고대의 발견, 즉 불확실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고전을 통해 가능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507쪽)


그렇다. 지금은 e-북이라고 해서 디지털을 이용한 책들도 나오고 있지만, 책의 형태가 어떠했든 책은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무생물이 아니라 생물로 우리 곁에 책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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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1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지식은 날로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kinye91 2023-12-02 12:18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책으로인해 인류의 지식이 보존되고 계승되며 더욱 확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의 악마 - 어두운 인간 본성에 관한 도발적인 탐구
줄리아 쇼 지음, 김성훈 옮김 / 현암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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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저지르는 특정한 사람이 있지 않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악마라고, 우리 모두는 이런 악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악을 실현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악을 실천할까? 그 사람들은 특별한가? 아니라고 한다. 나치를 예로 들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이히만을 말하고 있다. 그는 특별하게 나쁜 사람인가? 어떤 악함을 지니고 있는가?


아니다. 그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 그러나 그러한 평범함이 악으로 발현될 때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가 행한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그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점을 적용하면 악은 평범하다. 마찬가지로 선도 평범하다. 누구는 악하고, 누구는 선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가 지니고 있는 유전적 형질이라든지, 또는 생각만으로 악하다 선하다 할 수 없다고 한다.


악하다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나와 있는데, 이 사례들을 보면 개인에게 악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악이 실행되게 하는 수도 있으니, 이런 방관자들도 간접적으로 악을 보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오히려 명확하다. 사람을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하지 말라.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과도 대화를 해라. 자주 만나다 보면 보지 못했던 점을 보게 된다. 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된다.


또한 사람과 그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그 환경을 살피고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집단 속에 자신을 집어넣고 벗어나려고 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집단 속 개인임을 명심해야 하고, 집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절대 악은 없다. 우리 모두는 악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게 조심할 뿐이다. 악을 실현한 사람들도 그들이 처한 환경을 살펴야 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래 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환경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악에 대해 모든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명심하자.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1. 사람을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게으른 일이다. 

2. 모든 뇌는 조금 사디스트적이다.  

3. 우리는 모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4. 우리의 소름 끼침 감지기는 기능을 보장할 수 없다.  

5. 기술이 위험을 증폭시킬 수 있다.  

6. 성적 일탈은 꽤 흔하다. 

7. 괴물 같은 자들도 다 인간이다.  

8. 돈을 쫓다 보면 해악을 잊어버린다.  

9. 문화가 잔혹한 행동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10. 우리는 입에 담기도 싫은 불쾌한 것들에 대해 말을 해야 한다.


이 정도를 명심하고 사람을 판단하자. 사람을 만나자. 그리고 이야기를 하자. 또한 사회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자. 사회를 바꿔야 한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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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드디어 다윈 6
최재천 지음,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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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사도'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도란 거룩한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제일 먼저 나와 있지만, 대부분은 예수의 제자들을 의미할 때 쓴다. 또한 그런 의미를 확장하여 스승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기도 하고.


그렇다면 사도들은 스승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다. 또한 스승을 뛰어넘지 않는다.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그를 남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사도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한계에 갇힌 존재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윈의 학설을 더욱 발전시킨 12사람을 인터뷰한 결과를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사도들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들이 다윈의 학설을 지지하고, 다윈의 학설을 우리들에게 널리 알린 공로를 들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니 참 좋은 말이긴 한데...


대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다윈의 위대함이다. 그의 위대함이 지금 그들을 낳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다윈의 위대함과 더불어 다윈의 잘못도 다루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다윈의 잘못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화론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다윈이었다. 다윈은 진화론의 창시자로서 역할을 했을 뿐, 지금 과학계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다윈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학설은 계속 진화한다. 그렇다면 그의 학설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발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윈은 이런 학설에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대담집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다윈의 학설은 단순하다는 점에 있음을 알았다. 그들이 계속 강조하는 것은 다윈의 주장은 단순하다는 것이다. 이 단순함이 생물들의 진화를 설명하는데 유용하다는 것.


그렇다. 이론이 단순할수록 이해하기 쉽다. 또한 그 단순함으로 인해서 다양한 분야로 벋어나갈 수 있다.  


다들 다윈의 이론은 아래에서 위로, 단순함으로 생물학을 설명하고 있다고 하던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코페르니쿠스가 생각났다.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 오죽하면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도 했겠는가.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역할. 


천문학이, 과학이 더 발전했다고 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이 사라지지 않듯이, 다윈의 업적도 사라지지 않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 이론으로는 천체의 운행을 단순하고 깔끔하게 설명하기 힘들다는 데서 천동설의 문제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래서 지동설로 바꾸었더니 천체의 운행이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이 되더라는, 그런 구절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다윈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단순 명료.


여기서 출발하면 된다. 또한 과학자로서 다윈은 증거를 확보하기까지 자신의 이론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 사회의 분위기가 엄중해서 안전을 고려해서 발표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간을 가진 것이 진화론을 발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


이런 태도가 바로 과학자가 지녀야 할 자세 아니던가. 그렇게 이 책을 통해서 다윈의 진화론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과학자의 태도에 대해서, 왜 사람들이 다윈, 다윈 하는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속칭 다윈의 사도라고 칭하는 사람들 역시 다윈의 절대성 속에 무조건 자신들을 밀어넣지 않고 있음을... 다윈의 사도들은 다윈의 이론에서 출발해 더 진전된 과학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사도란 말에 대해서 지금도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이 책에 나온 사도들처럼 무조건적이지는 않음을... 이것이 바로 과학이고 과학자들의 태도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널리 이름을 날린 최재천이라는 학자가 다윈의 사도들이라고 만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이름만 여기에 적는다.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우리나라에 이 사람들 책이 많이 번역되어 있다고 하니, 생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니면 다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 책 뒤에 실린 부록을 참고하면 좋겠다.


자 , 열두 사도들이 누구인지.. 그들은 단순히 다윈 추종자라고 해서는 안 되고, 다윈의 학설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킨 사람들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부부. 일심동체라고 한 사람으로 여기서 다룬다), 헬레나 크로닌, 스티븐 핑커,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피터 크레인, 마쓰자와 데쓰로, 스티브 존스, 매트 리들리와 마이클 셔머, 제임스 왓슨, 재닛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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