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조던 B. 피터슨 외 지음, 조은경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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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게 아니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올바름을 추구하고 있으나
그 추구하는 가치의 가중치가 조금 다를뿐이므로
서로 소통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가야 함에도
서로를 악마화 하는게 일상이라 합의에 이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을 개척한 문화의 뿌리인 청교도 보수정치인
들은 도덕적 가치로써 국가에 대한 충성심, 전통적 권위, 기독교적 고결함, 자유, 평등,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정치의 올바름을 주장하는 진보의 경우 위의
가치 中 소수인종(非白),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한 배려와 평등이라는 가치에 더 큰 거치를 두는
것에서 차이가 있을 뿐임에도 좌우간 양립하기 어려운 갈등이 만들어 지고 있다.
한국과 달리 총기소유, 낙태, 동성결혼의 허용여부
는 진영간 양보하기 어려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념의 범주화 문제는 같은편의 문제는 무조건
수용하고 상대진영의 행동은 선의조차 악마화 한다는 것이 점점 커다란 문제가 되고있다.

집단의 정체성의 경우, 힘없는 소수 약자들이 단체
행동을 통하여 의지나 의견을 전달 할 수 있지만
단지 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 불법적, 초법적 행위
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합리해 보이는 제도조차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
이므로 좀더 진보 시키기 위해서는 장점만이 아닌
부작용이 무엇인지를 좀더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상대 진영에 치명타를 날릴 수만 있다면 국가의
피해 조차도 상관없으며, 온갖 특권을 누리고도
모자라 나랏돈을 지 마음대로 쓰고, 유권자 표몰
이를 위한 포플리즘과 프로파간다를 일삼는 정치꾼들이야 말로 지역, 젠더에 세대 갈등마저 양산해 내는 이념갈등 유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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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평가하고 재단할 권리가 나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나보다 그들이 바라보는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며칠 동안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론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나는 정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정직한 인간이었다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높게 평가하는 데 대해 두려워했을 
것이고, 나를 비웃는 조롱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비판에 분노하고, 입에 발린 칭찬인 줄 
알면서도 교만했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외로워하는 나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정직해져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
에게 정직해져야 합니다. 현재 나는 본래의 내가 
가진 능력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평가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P204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행만이 사랑입니다. 
사람 간의 사귐이 착취나, 고용 등의 불평등한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

또한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무관심 해져서도 안됩니다. 그들이 나를 알고, 
내가 그들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서로의 
행복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만남은 진실한 만남이 아닙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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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1송]
“나”와 “너”가 서로 독립된 존재라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온갖 종류의 현상적 모양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는 현상적 차이는 바로 “너”와 “나”라고 하는 주객 이원적인 생각과 앎에 의해서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
[유식 2송]
주객의 분리로 출현하는 앎은 다르게 성숙하는 ⓐ이숙식, 생각하고 계획하는 ⓑ識, 대상과 영역을 식별하는 ⓒ識, 이 세종류이다. 첫번째 이숙식은 저장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다
ⓐ 이숙식 :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다른 결과로 성숙됨. ⓑ 자아의식 ⓒ 제 6식과 5감각식 ⓓ 저장식에는 과거의 모든 경험과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의미
[유식3송]
저장식은 모든 경험의 종자와 신체, 그리고 자연계를 인식대상으로 삼고 발생하는데 그 인식작용이 너무나 미세하고 무한해서 저장식이 대상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능력, 위치한 자리, 분별능력을 감지하기가 어렵다. 저장식은 항상 접촉, 주의, 느낌, 개념화 (생각), 의지작용과 연합되어 있다.
저장식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성이다.
[유식4송]
저장식은 깨달음을 방해하는 번뇌와 어리석음에 오염되어 있지 않고 선 • 불선이 아닌 중성이다.저장식은 폭포수처럼 끊임없이 생멸유전하고 아라한의 지위에 가서야 생멸유전을 멈춘다.
[유식5송]
두번째 앎의 변화는 마나스라고 불리는 자아의식이다. 자아의식은 저장식에 의존해서 발생하고 작용한다. 자아의식은 저장식을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자아라고 착각한다. 자아의식의 특징은 생각하고 계산하는 인지작용이다.
[유식6송]
자아의식은 항상 네가지 번뇌를 수반한다. 자아에 대한 무지, 믿음, 우월감, 집착적 사랑, 자아의식 또는 정신적 접촉, 주의, 느낌, 개념화, 의지의 작용과 연합되어 있다
[유식7송]
자아의식은 개인이 태어나고 집착하는 영역에 따라서 오염 되거나 오염되지 않는 범주에 속한다.자아의식은 자아에 대한 그릇된 믿음과 탐진치 삼독을 제거한 성자와 나와 현상에 집착하는 일체의 심상이 사라진 적정의 상태, 세간을 초월한 도의 길에서는 작용하지 않는다.
[유식8송]
세번째 차원의 앎의 변형은 여섯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눈, 귀, 코, 혀, 몸의 오감각식과 의식이다.
[유식9송]
의식과 오감각식은 보편, 특수, 불선, 중성적인 정신요인과 연합되어 있다. 불선한 정신요인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 아만 등의 근본 번뇌와 이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게으름, 불신 등의 2차적 번뇌가 있다.이들은 모두 쾌, 불쾌, 중성의 세 종류의 느낌과 연합되어 있다.
[유식10송]
보편적인 정신요인에 해당하는 것은 접촉, 주의, 느낌, 개념화, 의지이고 특수한 정신요인은 욕구, 승해, 기억, 집중, 지혜이며, 이들은 인식대상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유식11송]
선한 정신작용에는 믿음, 양심, 부끄러움과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는 세가지 선한 뿌리와 정진, 가볍고 평온함, 게으르지 않은 마음, 평등심, 해롭지 않음이다.
[유식12송]
근본번뇌의 정신작용은 탐냄, 성냄, 어리석음, 거만, 의심, 악한 견해이다. 이차적인 번뇌는 분노, 원한, 위장, 고뇌, 질추, 인색
[유식13]
속임, 아첨, 해로움, 방자함, 비양심, 부끄러움이 없음, 들뜸, 무기력,불신, 게으름
[유식14송]
부주의, 잘못된 기억, 산란함, 부정확한 기억이다. 뉘우침, 수면, 찾아 구하는 것과 심사숙고 하는 네가지 요소는 각각 오염 되거나 오염되지 않는 두 종류가 가능하다.
[유식15송]
여섯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 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우리의 과거경험이 영향을 미친다. 또 입력되는 정보의 성격에 따라서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모두 작용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파도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바닷물과 바람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식16송]
여섯번째 의식은 항상 일어난다. 생각이 없는 세계(無想天)에 태어나거나 무심의 두 선정과 잠자거나 기절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일어난다.
[유식17송]
다양한 앎은 지각하는 주체와 지각하는 대상이라고 하는 이원화 작업을 통해서 인식이 가능하다.그런데 현상이 실제로 우리의 앎처럼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단지 마음의 표상일 뿐이다.
[유식18송]저장식이 이래 저래 변형되면서, 업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주체와 대상이라고 하는 분별이 생겨난다.
[유식19송]
과거 모든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업의 종자가 주객 이원적인 습관적 에너지와 함께 작용하면서 다양한 행위로 전개되고 드러나면 이전의 저장식은 멸하게 된다. 그러나 드러난 행위를 통해서 촉진되고 주체와 대상으로 분별하는 습관적 에너지를 통해서 또 다른 저장식을 생겨나게 한다.
[유식20송]
이리저리 조직하고 계획하고 도식화하는 사고의 작용이 갖가지 종류의 신념, 관념, 개념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모두 자기의 감정과 욕망의 집착에서 생견난 것이다. 욕망과 집착이 요모조모로 계산하고 따져서 만들어낸 관념이나 개념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식21송]
상대의존적 성품을 주객으로 분별하는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완전하게 이루어진 성품은 상대의존적 성품 안에 내재된 계산하고 집착하는 성품이 영원히 사라졌을 때 일어난다
[유식22송]
그러므로 완전하고 진실된 본질은 상대를 의지하는 상대성과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무상, 무아, 고, 공의 성질과 같아서, 궁극적인 실체의 본질이 지각되지 않으면, 타자에 의존하는 상대성 또한 지각되지 않는다.
[유식23송]
세 종류의 자성에 근거해서 세 종류의 무자성이 성립된다. 부처님이 이와 같은 세가지 속성을 가르치신 궁극적 이유는 다른데 있다. 즉 일체 현상이 본질적으로 고유하고 유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유식24송]
첫째 마음으로 계산하고 집착해서 만들어진 것은 그 모양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형태의 실체가 없다. 둘째, 상호의존적 성질에는 상대적인 조건에 의해서 발생되고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 자체가 스스로 발생하고 스스로 존재하는 힘이 없다. 셋째, 진정한 실체는 분별계산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인식의 주체와 대상 자체가 없어진 상태이다.
[유식25송]
일체현상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본질은 정말 그대로의 모습, 실상이다. 실상은 항상 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무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것이 “오직 알 뿐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유식26송]
나와 너의 분별은 단순한 마음의 표상이고 이미지라는 사실, 즉 유식의 본질을 깨닫고 그 깨달음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나와 너, 나와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식27송]
자기 앞에 뭔가를 대상으로 취하면서, 그것을 단순한 표상이고 이미지라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뭔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로 마음의 심상을 깨달아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유식28송]
어느 땐가 인식의 대상을 지각하지 못하게 되면 모든 것이 마음의 심상과 표상이라는 유식의 깨달음에 머물게 된다. 왜냐하면 파악된 인식대상이 없으면 그것을 파악하는 인식의 주체 또한 없기 때문에 주객의 분별이 사라진다.
[유식29송]
아는 마음이 없고 아는 대상이 없어서 요모조모 따져서 알아지는 지식 또한 없을 때가 실로 초세간적인 지해이다. 이는 주객의 분별을 제거함으로써 의식의 대전환을 성취한다.
[유식30송]
이와 같은 마음의 자유와 깨달음이 순수한 실제 세계이며, 생각으로 이해될 수 없고, 선이고, 불변이고, 안락이고, 고요함이며, 깨달은 몸이다. 이를 일러 위대한 성인의 건실한 몸이라고 부른다.






유식, 오직 알 뿐이라는 유식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다르게 이해하고 경험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다투거나 갈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많은 부분은 
알고 보면, 상대가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 때문에 상처받고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 P242

[심리적인 파도]
만일 마음의 파도가 일어났을 때,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멈추어야 합니다.
몸, 말과 생각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멈추어야 할까요? 우선 호흡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의를 배꼽 아래 단전에 
집중하고, 숨 쉬는 것을 알아차리고, 
들숨과 날숨을 지켜 봅니다.

그다음은 가슴에 손을 얹고 묻습니다.
이순간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의 문, 성장의 문,
깨달음의 문인지....

* 바닦이 아주 미끄럽거나 크게 흔들릴 때는
무릅을 굽히고 몸을 낮춰야 쓰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겠죠^^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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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處作主 立處皆眞




길을 잃고 헤매이는 인생에게 불교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 타인보다 나를 더 의지해 왔는가?
중도에 서려고 노력해 왔는가?
- 시점을 바꿔 마음의 변화를 
받아 들이려고 노력해 왔는가?
-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가?

불교는 
인생에 특별한 수단도 정해진 길도 
없다고 가르쳐 줍니다.
당신 앞에 길은 없다.
걸어가는 그곳이 곧 길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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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 - 윤구병이 곱씹은 불교
윤구병 지음 / 호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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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쓰고, 정작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독불장군이라 읽는 듯 하다.
세상 모두가 如如하여 다르지 않으므로
모두가 존귀하니 分別心을 갖지 말라는
의미(恕)가 아닐런지....

中道는 中立이 아니라 左右를 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되,
물론 저자의 편향된 표현이 몹시도 거슬리는
것 또한 나도 마찬가지로 편향된 것이리라

누구나가 가지는 개인적 신념이나 가치관은
어쩔 수 없이 자기 편향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청자는 화이부동 할 수 있는 태도를,
화자는 특히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면
극단적인 표현은 지양 할 필요가 있다.

뒷담화와 지적질이 하화중생이 아니거늘....
편향이 비록 玉의 티만큼이나 미미 하더라도
그 폐해는 玉보다도 크다.
하고자 하는 좋은 말을 뒤덮고도 남음이 있으니
善意라는 本質은 묻히고 잡소리 같은 殘象만이
남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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