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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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몸을 경시하는 시대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몸을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수준까지 이르지 않았나 한다.

 

내부에서 외부에서 신체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 우리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우치다 타츠루의 책 제목이 흥미를 끈 것은 바로 '소통하는 신체'라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말로가 아니라 신체로 소통을 한다는 것, 말로는 가까이 오라고 하지만 몸으로는 밀어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또 자신의 몸이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그 신호를 읽지 못하고 위험한 곳으로 계속 나아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그만큼 신체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신체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수준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소통하는 신체에서 가장 멀어진 곳이 바로 학교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형국,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처한 상황 아니던가. 말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교육현장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말로는 번드르하게 그렇게 표출하지만 몸은 서로를 밀어내고 있기에,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는 소통이 되지 않는 관계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타츠루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 선수를 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수를 친다는 것은 따라올 마음을 품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는데...

 

학생에게 선수를 치는 것, 한 발 앞서 있는 것, 학생들로 하여금 "이 사람은 대체 뭘 말하고 있는 거지" 뭘 하려는 거야?"하고 의문을 품게 해서 뒤를 좇아오도록 만드는 것, 교사의 역할은 단지 그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교사가 하는 일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6쪽)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서 이런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교사는 한 발 앞서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친절하게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지금 우리나라 교사인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하는 교사는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답을 알려주지 않는 교사이기에 온갖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학생은 고사하고 학부모부터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러니 교사는 아주 친절하게 모든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학교의 학원화. 아니 학교든 학원이든 정답 알려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는 한참 되었다. 이렇게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니, 학생들은 몸을 움직여서는 안된다. 몸을 구속하게 된다.

 

다른 활동을 모두 차단당한 상태에서 주어진 정답을 찾는 활동만을 하는 학생들. 그들은 결국 자신의 몸을 괴롭힐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타투 열풍(이미 우리 사회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학교에까지 문신을 한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이나 또는 자해 활동들이 늘어난 것이 바로 그 이유다.

 

타츠루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자신의 신체를 지배하여 그것에 고통을 주는 사람은 다르게 말하면 그 외에는 지배하고 고통을 가할 수 있는 것을 소유하지 못한, 그야말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소녀들을 거기까지(성매매를 의미한다) 몰아붙인 것에 대해서는 학교나 가정, 사회 전체의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자기 신체를 마음대로 손상시킬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나의 신체'는 성매매 따위는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71쪽)

 

  제가 문신이나 피어싱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고통을 참는 경험을 자기 몸에 강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무방비 상태의 가난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아무리 난폭하게 취급해도 괜찮은 자원'이 자기 신체인 것입니다. 감각만 차단해버리면 자신의 신체는 아무리 상처를 입거나 혹사당해도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79-80쪽) 

 

우리나라 학생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이 상황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바로 우리나라 학생들 이야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자신의 신체를 학대해서 감각을 차단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줘야 하는가.

 

최근에 놀이에 대해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신체를 살리는 길이고, 그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라는, 교육이 제대로 방향을 잡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신체에 관심을 갖고 관점을 확장하면 죽음으로까지 나아간다. 죽음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현재를 살아가게 되는 것, 죽은자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경지... 책은 이렇게 자신의 몸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죽은 자들까지 나아간다.

 

소통하는 신체가 눈 앞에 존재하는 물질적 존재인 신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신체를 죽음으로까지 확장하고, 그것을 통해서 소통하는 신체를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교육, 그것이 필요할 텐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신체 감각을 유지하는, 신체와 말이 따로 놀지 않는 그런 교육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죽은 신체 속에 온갖 잡다한 지식만을 집어넣어, 결국 몸과 마음이, 신체와 뇌가 따로 노는, 자신의 몸을 위험에 쉽게 빠뜨리는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보고 고민해 봐야 할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소통하는 신체'라는 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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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과학이 만나다 2 - 이인식의 세계 신화 과학 여행
이인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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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1권과 마찬가지로 16가지의 신화가 소개되고 있다. 대부분 신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것들인데... 선을 긋고 한쪽 끝에 신화가 있다면, 다른 한쪽 끝에는 과학이 있을 가라고 그만큼 신화와 과학의 거리는 멀고 방향은 정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신화와 과학이 비록 거리가 멀고 양끝에 있지만, 서로 마주 보고 상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벨탑 신화 같은 경우를 보면, 하늘을 향해 끝없이 오르려 하는 인간들의 모습, 그런 인간이 단결하는 모습에 위협을 느낀 신이 인간의 언어를 각자 다르게 했다는 것.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인간은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오르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 하여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산에도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던가. 단지 발자국이 아니라 사는 곳도 점점 높게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우리나라에서도 63빌딩이 가장 높은 건물인 때가 있었는데... 이제 63층은 그저 그런 높이에 불과한 때가 되었으니.

 

주거지로 높아지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바벨탑을 우리 시대에도 건설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하늘을 향한 욕망과 좌절을 드러낸 신화가 바벨탑 신화라면 지금 우리는 그 신화를 현실에서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지금은 서로 언어가 다른 것일 뿐.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안 되어 바벨탑 건설이 중단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인류는 다양한 언어의 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언어의 다양성으로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인간이 다양한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문화의 총체라는 것. 그래서 언어의 다양성이 파괴되는 것은 생물의 다양성이 파괴되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것이 지금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바벨탑 신화는? 언어가 달라지게 했다는 것은? 답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아마 이 신화는 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가 다른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데... 하나의 언어를 인류가 지녔을 때 지니는 위력이 다른 면에서는 인류의 파멸을 맞이하는 지름길임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각 나라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 멸망 이야기가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인간들이 자신들의 힘을 믿고 오만불손해지는 것. 겸손을 잃은 인간들. 그런 인간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신. 바벨탑 신화 역시 인간의 오만을 이야기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이 단결했을 때는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점에 오르면 내려갈 수밖에 없듯이, 인간들이 최정점에 서는 순간, 인간의 멸망은 시작될테니... 그 정점에 오르는 시간을 한참 뒤로 미루게 하는 조치... 언어를 다르게 하는 것.

 

이 책에서는 이런 설명이 나오고 있다.

 

한편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 사람들이 단일 언어 사용자보다 정신적으로 더 유연하고 창조적이라는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  창조주가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뒤섞어 놓고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만든 것은 인류 문명의 발달 측면에서 볼 때 저주보다는 오히려 축복을 받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지. (181쪽-182쪽) 

 

그러니까 바벨탑 신화는 세계 각지에서 다르게 발달해가는 인류 문명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일 수 있는 것이고, 언어가 달라진 것은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방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신화를 통해 현재 과학의 발전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설을 현대를 살아가는 과학자들이 받아들여 주장하는 창조 과학까지 있다고 하니... 신화를 마냥 허구적인 이야기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마지막은 종말론에 관한 것이다. 신화에는 인류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많고 근대에 들어서면서도 지구 종말론이 많이 나왔는데... 바로 전에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면서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작과 끝이 서로 연결됨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든, 아무 것도 아닌 무(無)였든 생겨난 무엇은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그 소멸이 끝이 아니라는 것. 신화와 과학도 시작과 끝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는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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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과학이 만나다 1 - 이인식의 세계 신화 과학 여행
이인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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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과학을 생각하지 마라. 신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신화는 과학과는 거리가 먼, 상상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신화에서처럼 달에 항아가 살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이 달의 뒷면에 착륙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우주선 이름이 '창어' 아니던가. 창어는 우리 말로 하면 항아(姮娥 또는 상아嫦娥라고도 함)이고 달에 살고 있다는 여신 이름이니 신화가 과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신화에서 동기를 얻어 많은 일들을 추진하니 말이다. 가령 신화에서 태초에는 혼돈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며, 거인족이 등장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 초기에는 지금보다 큰 인류가 존재했다는 과학적 사실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냥 거인족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늘날 인류는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조상들에 비해 키가 가장 작은 셈이다'고 이 책에 나와 있다- 44쪽)

 

이렇게 이 책에서는 신화와 과학을 연관짓고 있다. 아니 인류 역사에서 신화는 과학 발전의 지렛대로 작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화에서 과거 사람들은 미라(미이라)를 만들었지만, 지금 인간들은 냉동인간을 만들어 후세에 살리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신화가 신화에만 머물지 않고 과학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권에서는 16개의 신화와 과학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서양과 동양 신화에서 나타나는 비슷한 점과 지금 과학으로 우리가 이룬 발전이 서술되고 있다.

 

신화가 과학으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음을, 또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델포이 신전에 관한 이야기가 한 예가 될 수 있다.

 

신탁은 애매모호해야 한다. 그래야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신탁을 전하는 사제가 맨정신에 말을 한다면 신탁의 애매모호함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전하는 퓌티아(피티아)는 무아의 경지에서 신탁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최근 과학의 발전으로 사제들이 땅 속에서 나오는 기체에 의해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혔다고 한다. 과학이 신화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약간 다르게 동성애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신화에서 동성애가 죄악시되지 않고 있다. 성경에 이르러서야 동성애는 죄악이 되는데... 의학계에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는 판정을 했고, 동성애든 이성애든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추세라고 하니, 신화 속에 나오는 모습이 현재에 다시 인정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계절의 바뀜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들 이야기 아닌가. 페르세포네의 납치. 그로 인한 데메테르의 슬픔. 이 신화를 보아도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싶은 욕구를 관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다양한 신화를 다루고 있는데, 과학과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어서 어쩌면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신화를 상상의 세계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신화와 과학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책은 그것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권에서도 다양한 신화와 과학의 관계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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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판
서중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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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줄 목적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역사교과서 논쟁과 같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한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쥔 자들은 역사를 늘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하려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역사만을 기술하고, 불리한 역사는 삭제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어디 그런가? 그들에게 역사는 진실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그러니 역사를 왜곡하려는 집단에 맞서 제대로 된 역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닐 수밖에 없고 그러한 역사책을 써야 할 의무를 실천하려고 한다.

 

서중석도 마찬가지다. 역사교과서 논쟁, 특히 건국절 논쟁을 보면서 그는 제대로 된 한국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학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역사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그림과 사진을 들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시각자료를 제시하고, 그 시각자료가 보여주고 있는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으로 1945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 현대사를 기술하고 있다.

 

'건국절'이라는 말... 1948년 8월 15일은 건국한 날이 아니고 정부수립을 선포한 날인데... 건국절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정리하면 나라가 세워진 것이니, 그 전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나라가 없으니 친일 행위에 대해서 무엇이라 비판할 수 없는 것이고, 건국절로 용어가 정리가 되면 친일파 처단이라는 요구는 자연스레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 수립이라고 하면 말이 달라진다. 나라는 존재하는데 그 나라를 이끌 정부가 그날 수립되었다는 말이니, 친일이라는 행위는 나라에 반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니 친일파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왜 이리 건국절이라는 말에, 보수라는 집단이 매달릴까? 이 책에 나오는 도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현대사는 첫단추를 잘못 낀 것이다. 그러니 그 다음 단추들도 제자리를 찾기가 힘들지.

 

첫단추를 다시 끼지 않는 한 바르게 잡기가 힘들다... 책(45쪽)에 나온 도표를 보자.

 

무시무시하다. 질서를 담당한다는, 민중의 지팡이 소리를 들어야 할 경찰이 친일 행위자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아니, 과반이 아니라 절대 다수다. 그것도 권력을 쥐고 있는 자리에서도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니 친일파 처단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한다. 빌붙는 무엇 하든 그들은 권력을 놓을 수가 없다.

 

경찰이 이러한데, 정치, 경제, 문화 면에서도 잘못 낀 첫단추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 현대사에 대해서 구체적인 자료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1960년대까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2000년대는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2000년대는 당대라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일종의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첫단추를 잘못 끼웠지만 지속적으로 단추를 제대로 끼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

 

민중들은 그냥 있지만 않았다는 것. 수많은 민중항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화 운동에 이어 촛불 시위로 우리나라를 제 자리에 오게 하려 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이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고, 아직도 예전의 권력을 잊지 못하고 있는 집단들이 얼마나 퇴행적인가를 알 수도 있게 된다. 거의 500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두고두고 읽으면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그림이 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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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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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의 작은 제목은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이다. 해적으로 시작해, 나폴레옹으로 끝난다.

 

역사라는 파도를 잘 타서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 있는 반면, 역사라는 파도에 역행에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들도 있다.

 

근대에 들어서 해상 무역이 발달하면서 해적들이 생겨났다. 해적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배를 나포하거나 약탈하지만 그들 역시 해군에 의해 소탕이 된다. 이들이 이렇게 활개칠 수 있었던 것은 세계가 무역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해적들도 그런 부류라고 보면 된다. 이는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고.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소말리아 해안에는 해적이 출몰하고 있는 등 해적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니 세상은 여전히 살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해적이 근대에 들어서 존재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해적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살기 힘들면 먹고 살기 위해서 노략질을 하는 존재들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왜구라고 하는 해적들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결국 해적들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집단은 그것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강력한 권력의 출현을 바라기도 한다. 러시아에서 이 바람을 충족시키는 왕이 바로 표트르 대제라고 한다. 그는 아주 강력한 권력을 중심으로 러시아를 대제국으로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올려놓은 대제국 러시아가 모든 사람의 행복을 실현시켰을까? 그렇지는 않다. 농노들, 농민들, 그리고 지식인들에게는 고난의 시대가 다가오게 되니, 전제군주가 발전시킨 나라가 과연 바람직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기득권을 다른 기득권으로 대체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 것.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때 러시아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세 인물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읽을 수가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 다음 혁명을 이끌었지만 자신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혁명의 단물을 독점한 나폴레옹.

 

앙시앙 레짐을 대표하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면, 이 파도를 타고 프랑스를 공화국으로 만들려 했던 로베스피에르는 혁명가가 꼭 좋은 정치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피로 얼룩진 공화국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바람이 결국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닌가. 왕정-공화정-왕정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역사 속에서 유럽 역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전쟁, 전쟁, 죽음, 죽음... 수많은 죽음과 파괴가 자행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근대는 전쟁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영토 확장과 영토 확정이 이루어지는 시기. 민족이라는 개념이 싹터, 민족국가가 탄생하는 시기니, 온갖 전쟁이 지속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과는 좀 달리 유럽인이라고 하기에는 낯선 볼리바르가 이번 권에 있다. 출생으로 따지면 그는 유럽인이겠지만, 남미에서 나고 자랐기에 유럽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이 좀 어색한데...

 

그가 남미의 독립을 이끌었고, 이것이 유럽에도 영향을 주었기에 충분히 다룰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가 꿈꾼 통합된 남미는 지금도 건설되지 못했지만... 볼리바르에 대한 글을 읽으며 혁명의 성공이 정치의 성공으로 가는 것은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이상하게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들이 독재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어려움을 겪고 일을 성공시킨 다음 그것을 지속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 아니면 안돼라는 마음을 지니게 하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었던 차베스도 이 길을 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 사람에 의한 통치는 그가 정치의 무대에서 사라졌을 때 지속되지 않는다. 볼리바르도 차베스도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와 산업 쪽에서 근대의 정점이니 당연히 산업혁명을 이끈 사람들을 다루어야 한다. 증기기관에 대한 이야기, 방적기에 대한 이야기. 와트와 아크라이트. 이제 세상은 기계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그들은 이 기계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쪽에서는 모차르트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모차르트를 하이든의 세계에 머물며 베토벤의 세계를 지향한 사람이라고 한다.

 

궁정 음악가에서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이제 예술가들은 하인의 위치에서 예술가의 자리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으로 모차르트를 평가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유럽의 역사를 살펴보게 하고 있다. 친숙한 인물을 통하면 역사를 가까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기도 한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역사라는 흐름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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