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파고들기가 인상적인 리더쉽 원칙, 채용을 엄격하게 관리해서 하는바 레이저 프로세스, 협업이 필요 없는 싱글 스레드 리더쉽,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 6-페이지, 기사부터 써서 고객으로부터 시작하는 워킹 백워드, 성과가 아닌 통제 가능한 인풋을 관리하는 성과 지표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아마존이 정상의 자리에 있고 앞으로도 더 쇄신하리라는 것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6-페이지이다.

아마존의 초창기 임원 회의는 서로 다른 많은 주제로 정신이 없었다. 성마른 임원들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보고 당연히 뒤에 나올 법한 내용에 대해 무차별 질문을 과시욕처럼 해대면, 발표자는 혼비백산해서 '곧 뒤에 나옵니다'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어 슬라이드의 순서가 뒤죽박죽되고, 그즈음이면 이미 회의의 주요 안건과 주제와는 한참을 벗어나 달나라의 암석 이야기를 하고 있게 되었다. 제프는 고민이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회의할 수 없었다. 많은 임원이 참석한다는 말은 그 임원들의 어마어마한 시간당 인건비가 모두 낭비되고 있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회사의 주요 안건이 제대로 적기에 논의되어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참담하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회의는 많이 볼 수 있다. 발표자가 발표 스킬이 부족하면 10분의 1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다음 주 또는 다음 달 회의 때 다시 발표하면, 모두 망각의 샘을 마신 후라서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도대체 이번에는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저번 회의 때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라는 금기 문장을 쓰는 순간 '회사 주요 결정 사항을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라는 말과 함께 회의 내내 가루가 되도록 갈리는 것을 나도 많이 봤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겪는 파워포인트의 '회귀'는 정말 억울할 것이다. 사수의 피드백을 받아 고치고, 프로젝트 리더의 피드백을 또 받아 고치고, 파트장, 팀장, 그룹장 등의 피드백을 한 번 받을 때마다 쟁기로 온 땅을 갈듯이 바꾸고 나면, 결국 손에 쥐는 것은 최초 자기가 작성한 원본에 가까워진다. 그나마 그렇게 되면 운이 좋을 것이다. 중간 관리자의 피드백을 받아 반영해서 임원 앞에서 발표했는데, 무차별 공격을 받고 피드백 받은 방향이 자신이 초기에 작성한 방향이면 정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어 그날은 모든 상사를 안주 삼아 질겅질겅 씹어야 할 것이다.

제프는 직원들이 자신들을 안주 삼아 씹지 않게 하기 위해, 파워포인트를 버렸다.

이동 중 비행기에서 회의에 대해 고민하다 예일대학교 교수이자 정보 시각화 분야의 전문가인 에드워드 터프터가쓴 '파워포인트의 인지적 스타일'을 읽고 토론하게 되었다.


“분석이 인과관계적이고, 변수가 많으며, 상호 비교적이고, 근거를 파고들면서, 상세할수록 글머리기호로 된 목록은 더욱더 해롭다" p166

그 논문을 읽고 바로 전사에 공지해서 '파워포인트 사용금지' 령을 내렸다. 함축된 목록은 인과 관계를 오해할 수 있고, 화려한 파워포인트로 맥락이 흐려지고, 발표자에 따라 내용 전달 정도가 천차만별인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모든 회의 안건에 대해서 A4 6페이지 분량의 에세이를 쓰게 했고, 그것을 회의 시작 때 모두에게 나누어 주어 장당 3분을 할애해서 20분 동안 읽고 피드백을 쓰게 했다. 발표는 없다. 이미 읽었으니깐. 그리고 돌아가며 피드백을 가지고 발표자와 그리고 서로 서로가 토론한다. 끝.
초기에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내용을 더 쓰고 싶어 폰트를 작게 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지만, 결국 아마존에 안착 시켜 지금도 이처럼 회의를 한다.
회의가 시작하고, 모두 조용히 아주 조용히 집중해서 발표자가 쓴 글을 읽는 이 광경은 굉장히 기이하고 매력적일 것이다.
아주 놀라운 것은, 파워포인트로 회의할 때는 발표자와 청중의 대립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6-페이지 때는 서로 피드백을 주며 함께 논의하는 협력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랍다. 생각해보면, 일방적으로 듣다 보면 자기도 뽐내고 싶고, 뭔가 트집을 잡고 싶은 마음이 비판적 듣기라는 허울로 생기고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기 일쑤인데, 6-페이지를 읽고 나면 정성스럽게 피드백을 주면서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피드백이라는 말 그대로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서로가 이끌고 나가는 것 같다.
또한, 파워포인트를 미리 회의에 읽고 오라고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업무 시간을 쪼개서 읽어야 함과 각자의 상황에 따라 시간을 낼 수도 내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분을 모두 읽는다. 1시간 회의 중에 30%가 넘는 시간을 쓰지만, 회의가 산으로 가지 않게 하고 모두가 내용을 인지하게 하는 이 방법은 아주 회의 진행에 있어 효율적이고, 주요 안건을 효과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것 같다.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 욕을 좀 먹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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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09 00: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전에 스콧님이 리뷰하셨을 때도 인상 깊었었는데, 이렇게 읽으니 또 다르게 좋네요. 초딩님 말씀하신 조용히 에세이 읽는 시간 너무 매혹적일 거 같아요. 그 후 토론도 매우 진지할 거 같고요~ 저도 꼭 적용해 보고 싶네요!!

초딩 2021-05-09 22:09   좋아요 1 | URL
^^ 네 저도 그런 시간을 진지하게 가져보고 싶어요 ㅎㅎ ^^
좋은 저녁 되세요!

scott 2021-05-09 0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왠지 좝스 스타일이실것 같아요 아이패드퐁기기로 무장하시고 오더블북 들으시면서 영어 필사 하시는 ^ㅅ^

초딩 2021-05-09 22:10   좋아요 2 | URL
우앗! ㅎㅎㅎㅎ 일단 저에게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ㅜㅜ 감사합니다! :-)

지유 2021-05-09 0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파워포인트에 의지하는 스타일이라 뜨끔하네요. ㅎㅎ

초딩 2021-05-09 22:11   좋아요 2 | URL
앗 ㅎㅎㅎ 근데 모든회사 모든 곳이 다 파워포인트이니 ^^
아무튼 아마존은 참 독특하고 또 그래서 매력적이기도하네요.
지유님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1-05-09 08: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인상적이에요~!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 하다 보면 내용이 요약적이고 비쥬얼이 부각되다보니 마지막에는 남는게 별로 없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초딩님의 시도를 응원합니다 ^^

초딩 2021-05-09 22:12   좋아요 2 | URL
^^ 앗 감사합니다.
일단 몇분에게 말해봤더니 조금 뜨아하던데 그래도 파워포인트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이들 공감하시더라구요.
ㅜㅜ 문제는 에세이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긴한데 ㅎㅎ ^^
응원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5-09 08: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고서 쓰느라 밤새고, 파워 포인트 만드는라 밤새고, 발표준비하느라 밤새고...ㅠ

초딩 2021-05-09 22:13   좋아요 3 | URL
정말 임원 리뷰 받고 고치고 또 고치고 윤회하는게 정말 ㅜㅜ 힘들었었어요
그렇게 밤새고 또 술 마시며 밤새고 ㅎㅎㅎ ^^
좋은 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