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평점 :
그는 좀 화가 난 모양이다. 식물들의 사생활, 생의 이면, 욕조가 놓인 방, 사랑의 생애 등 그의 작품에 있는 현란한 글 속에서도 촌철살인 같은 치명적인 문장들을 입에서 얕고 짧은 탄성을 자아내는 스토리로 나를 휘감는 구루와 같은 마법사 같은 이승우의 느낌은 아니었다.
무는 동물이 아니고 물 수 있는 동물인 개의 두려움과 그 실체가 나인 웅덩이인 나의 구출에 관한 단상으로 책은 시작한다. 세상에는 나와 대상이 관계하는데, 대상의 실체라고 생각한 것은 표면적인 것뿐이었고,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과 대상을 향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를 향한 것일 뿐이었다.
무서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p8
사람이 사람에 대해 하는 모든 말은 결국 자기에 대한 것이다. p9
나에게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알려준 사람이 나이다. p12
그는 꼬투리를 잡듯이 문장을 쓴 사람이 억울할 만큼 하나의 형용사, 변두리의 문장, 급하게 맞춘 조사를 집요하게 물고 본질을 위협한다. 그 문장을 쓴 사람이 그 어떤 위인이든 간에 전방위로 날 선 해석을 꽂는다. 거론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잣대로 대하는 것을 보니 그는 많이 억울한 것 같다.
소설가는 알고 있는 것을 쓰는가. 아니다. 알기를 원하는 것을 쓴다. p17
'~ 체하기'와 '혼잣말'의 서글픔을 이야기하고 수도 없이 그려내고 있는 '자화상'을 그리고 화가의 다른 모든 작품도 결국 자화상이라는 처절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발 있는 자는 걸어라'로 지각이 있는 사람은 이제 좀 들어보라고 한다. 이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나보다.
잠시, 아무리 써도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기에 물에 흐트러지듯 글을 쓰는 것을 이야기하고는 -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는 - 손을 잡는다. 생명의 끝에서 손을 뻗은 이, 그리고 잡은 이의 절박하고 긴박하고 또 고요함의 손 잡기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쓰는 것의 산고의 고통, 독자 이런 것들을 토마스 만, 버지니아 울프, 로맹 가리, 카프카, 이청춘 등의 작품과 작품들을 거론하며 쏟아낸다. 그리고 말한다.
"세계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어쩌면 저 말이 저 불평이 저 억울함이 저 화남이 저 분노가 말하고 싶었나 보다.
앞뒤 없이 등 떠밀며 세계화하라고 하는 것, 제대로 번역도 하지 못하는데, 그리고 소설이 상품화되어가는 것. 이것에 그는 노했던 것 같다.
합정 교보문고에서 손에 들었을 때, 감촉이 너무 좋았는데, 그의 가시가 너무 예리하고 날에서 있어서 이렇게 표지를 보들보들하게 만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