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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로 읽는 세계사 - 25가지 과일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역사
윤덕노 지음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평점 :
우리에게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이지만, 수박을 훔친 이들에겐 단호했다. 세종이 고기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내시 한문직이 수박을 훔치자 곤장 100대와 유배령을 내렸는데, 그 당시 수박 1통의 가격은 쌀 다섯 말로 금덩어리 수준의 가치였지만 꽤나 가혹한 형벌이다. 수박은 외래 과일로 우리나라에서는 13세기 홍다구가 개성에 심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초기 수박은 쌉쌀했으며 하얗거나 노란색이었다고 한다. 주로 이뇨제나 열사병의 약품으로 쓰였다고 한다. 사막에선 물통대신 군대에선 수통 대신 키운 식물이니 쓸모가 많다. 이런 수박은 아주 귀해서 주로 불사에 공양으로 올리거나 고위층을 접대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미국에선 흑인노예들이 수박을 굉장히 좋아했고, 수박농사로 돈을 번 해방노예들이 많았기에, 수박은 흑인의 과일이라는 둥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철이면 수박과 함께 유난히 인기있는 참외, 일본에서도 참외가 인기였지만 멜론이 들어오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참외는 예전부터 가난한 농부들의 여름식량이 되기도 한 고마운 과일이라고 한다. 조선 의장대 깃발에는 참외깃발도 있다고 한다.
15세기 파인애플은 지금으로 치면 약 천만원 정도의 가격이라, 파티 장식용으로 대여되기도 했고, 왕권을 상징하면서 파인애플을 키우기 위한 온실이 유행하기도 했다.
프랑스 군인 프레지어는 칠레에서 칠레 야생딸기를 관찰하는 척하면서 군사정보를 넘긴 스파이였는데, 칠레야생딸기 관찰을 너무 잘해서 책으로 출판,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씨앗을 심고 키웠다고 한다. 이 칠레 야생딸기가 훗날 영국인 필립밀러가 버지니아에서 가져온 야생딸기와 만나 지금 딸기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신선이 먹었거나 혹은 먹으면 신선이 될 수 도 있다는 배나 복숭아, 유령대가리란 뜻의 코코넛(괌에서 코코넛을 먹는 원주민 모습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 그 당시 유럽일부에선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잡아먹는 귀신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 귀신 이름이 쿠카이며, 그 이름을 본따 마젤란의 선원들이 지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마젤란이 살해당했으니 부정적인 이름을 붙인 것 )
별이 땅에 떨어져 열매 맺었다는 인디언들의 만병통치약, 블루베리.
보석을 닮은 작은 복숭아란 뜻의 앵두는 조상에 바치는 첫 과일로, 장원급제한 선비에게 열어주는 잔치 또한 앵도연이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성은 오얏 리, 왜 자두일까에 대해선 노자가 자두나무에서 태어났기에 그렇다는 설, 은나라 이징이 왕의 폭정을 피해 달아나 자두로 허기를 채워 감사한 마음에, 혹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모습을 한자로 형상화 한 것일뿐이란 설이 있다.
베스킨 라빈스의 인기 품목인 체리 주빌레, 주빌레는 주로 50주년 혹은 100주년 등 특별한 기념일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셰프 어귀스트 에스코피에가 빅토리아 여왕의 주빌레를 축하하며 헌정한 레시피로, 버터와 설탕을 녹인 후 오렌지 껍질과 즙으로 향을 내고, 브랜디를 부은 후 체리를 넣어 졸여서 만든 소스를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끼얹으면 끝! 이라지만 그냥 사먹는 걸로.
노예들에게 값싼 식량으로 보급하기 위해 대량으로 재배된 바나나, 바나나에 얽힌 독재정권과 슬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하게 담겨있다.
의약품 수입으로 큰 돈을 번 메디치가, 특히 아랍에서 쓴 오렌지를 가져와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쓴 맛이 나는 이 오렌지는 주로 향료, 향신료, 약재로 쓰였다고.
괴혈병을 막으려 레몬이 엄청 수입되면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오렌지 농가는 엄청난 부를 얻게 되었고, 도둑들을 스스로 막기위해 관리인 제도를 두었는데, 훗날 이 관리인들이 보호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면서 마피아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유난히 좋아하는 망고는 그들에게 축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파키스탄에서 중국을 방문할 때 망고를 가져갔고, 이 망고를 모택동이 사상 선전대원들에게 선물하자 모두들 그 은혜에 눈물을 흘렸고, 곧 망고는 모택동 우상화에 쓰였다고. 중국의 각 단체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보내지고, 망고가 모자라자 망고모형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위에 소개한 것보다 물론 더 풍부한 내용과 더 많은 과일들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과일들은 원산지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배에 실려 먼 길을 떠났다. 어떤 과일들은 환대받았고, 어떤 과일들은 오랫동안 독초라는 둥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과거의 과일들은 좀 더 단단해지고 좀 더 달콤하고 좀 더 예쁜 모양으로 교배되어 식탁에 오른다. 방금 까먹은 귤이 과거에는 가시가 가득했단 걸, 그리고 당나라의 신품종 중 하나로 알려진 밀감의 후손인 제주 온주밀감 품종임을, 8세기 귤이 귀했던 일본에서 일왕이 총애하는 궁녀 가문에 “귤”을 성씨(타치바나)로 하사 했다는 걸 이 책이 아니었음 어떻게 알았겠는가.
과일들엔 과일의 역사도 담겨있지만, 개개인에게도 과일에 얽힌 역사들이 있다. 노르스름하고 좀 퍼석하지만 달았던 스타킹이란 품종의 사과를 참 좋아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갔던 큰언니가 가슴에 안고 돌아온 파인애플이 넘 신기해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던 코 좀 흘리던 시절(실제로 맛은 없어서 엄마가 술을 담근 기억이 난다), 소풍때만 특별히 사주셨던 바나나 한 개, 그 한 개를 안 먹고 아껴서 갖고 왔더니 소풍가방에서 곤죽이 되어 대성통곡하는데 그 옆에서 얄밉게 자기 몫을 먹던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던 막내 언니.
며칠 전엔 귤을 사러 갔다가 영롱하게 빛나는 애플망고를 봤다. 우와 하다가 거진 책이 세 권인 가격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인도에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 망고나무 아래라고 하는데, 이 가격 들으면 부처님도 놀라지 않을까. (보리란 깨달음, 보리수는 특정나무라기 보다 깨달음을 얻은 나무란 뜻이라고 한다. 서남아시아에선 망고나무 혹은 반얀 트리 로 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