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 나보코프.
나보코프 작가님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ㅎㅎ이 문장에 낚여서 읽은 책이다.
정말 별 내용없다.
무더운 열대의 바나나 농장이다. 책을 읽는 아내, 가끔 찾아오는 무더위에 적응 못하는 아내와 열병을 앓는 아이를 둔 프랑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아내를 지켜보는 주인공이 아내와 프랑크의 불륜을 의심하는 내용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의심은 점점 커지고 확신이 선다. 비디오테이프를 계속 되감듯, 그 순간들을 되돌리고 되돌리며 곱씹는다. 작은 티끌조차도 무언가 의미심장한 것이 되고 미친 듯이 관찰하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들을 찾으려 한다.
질투하는 남편은, 의심하는 남편은 그 사건의 시간 속에 갇혀 나올 수 없다. 아내의 부정에 대한 흔적을 지우면, 일어난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려질까. 정말 부정이란걸 한 걸까.
실체도 없는 사건들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집요하게 곱씹는 남자의 지리멸렬한 관찰력의 묘사가 이어진다.
계속 반복되는 듯한 장면들과 미묘한 차이들, 뭐지? 이 소설은.....새롭긴 하구나.
남편이 사로잡힌 그 사건과 그 공간과 그 시간과 그 반복되는 웅얼거림이 만든 감옥 속에 나도 갇히는 것 같다.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 고무지우개로 지우려 해도, 긁어내도 이미 부정으로 낙인찍은 자국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사물을 주관적으로 윤색하여 말하는 것이 문학의 특권인 줄로 알았다. 가령 ‘분노하는 태양‘ 또는 ‘즐거운 느릅나무‘ 같이, 문학은 이런 표현들로 문학적 가치가높아지는 줄로 알았다. 그리하여 문학은 그 고질적 ‘문학성‘ 때문에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로브그리예를 비롯한 일련의 누보로망 작가들은이런 주관적 표현을 일체 배제하려 했으니, 이는 문학사를통해 의미 있는 각성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보로망이라는 것은 사실 소설 문학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철저한 반성에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소설에서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썼던 기법 하나하나를 철저히 돌이켜보면서, 그것들이 안고 있는 잘못을 극복하려고 하는 데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추구하는것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아주 명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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