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악마는 녹색옷을 입는다
어릴 적, 내가 생각하는 악마는 주로 두려움과 괴물의 상징이었다.
그러다가 일본 만화를 해적판으로 본 적이 있는데(그 당시에는 일본과 문화교류가 금지되어 있어서 이런 해적판 만화가 한국작가의 이름을 달고 많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쯤 문화교류가 풀렸던 걸로 기억난다..아 그 때 인기 완전 많았던 소년대와 소녀대.....에서 따온게 소녀시대 쯤 아니었을까...)
그 만화에서 악마는 굉장히 낭만적이고, 사악한데 우울하면서 아주 잘생긴 꽃미남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떤 책이었더라, 거기서는 항상 인간에게 당하고 마는 악마. 그리고 바보이반에서 그 불쌍한 악마.....이런 악마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후엔 다양한 의미로 상징된다. 자신의 내면의 악, 사회의 모순들...
악마하면 빼놓을수 없는 영화가 있다. 본격 흡연권장영화! 바로 키아누 리부스가 더 없이 멋지게 담배를 피는 <콘스탄틴>에선 인간형상의 혼혈악마와 혼혈 천사가 존재한다.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여전히 소비되는 악마라는 존재, 현대에 맞게 다양하게 변형되긴 하지만 꾸준히 인기가 있는건, 지금도 각자의 마음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며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악마의 역사를 그림 등으로 훑어보는 책이다.
라벤나의 누오보 성당에서 그림으로는 최초로 악마를 표현했다고 한다.
성모의 오른쪽엔 붉은 천사가 암양과 함께, 왼쪽엔 녹색계열의 옷을 입은 악마가 염소와 함께 서 있다.
녹색은 이슬람을 상징하며, 쉽게 빛에 바래기에 불안정을 나타내, 악마의 색으로 쓰였다고 한다.
예전 악마는 녹색이나 푸른계역의 옷으로 표현했다고 한다.(그 후 울트라 마린 등 광물에서 푸른 계열을 뽑아내면서 빛에도 강하고 가격도 올라가면서 성모의 색으로 변모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한번쯤은 녹색어머니 활동을 해야 했다.
녹색조끼와 깃발을 들고 아침 등굣길에 교통지도를 하는 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슈렉엄마라고 놀리곤 했는데, 중세인들 눈엔 악마숭배 집단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기독교 초기에는 악마를 그리스의 판에서 따왔다고 한다. 음흉하고 속을 알 수 없는 판은 주로 염소 등으로 표현되기에 그대로 차용된 것이다.
주로 겁을 줌으로서 신도를 확보하려 한 것, 그러다 타락천사 이미지등이 겹치면서 날개가 솟아나더니 어느 순간엔 인간 내면의 고독이나 근대사회의 불안 등을 표현하는 외로운 악마 즉 낭만적인 악마 이미지로 변모하기도 했다. 불안과 공포를 통해 신도를 늘리기보단, 성인과 가르침을 통해 신도를 늘리려는 기독교의 변화이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기엔 악마들도 근육질의 인간 형상으로, 혹은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괴물로 등장했다.
17세기엔 낭만적인 악마들이 나타났다.
우울한 반항아, 타락천사 이미지의 루시퍼(루카페르~ 단테의 신곡에선 3개의 얼굴, 6개의 날개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신곡에선 배신자의 머리를 씹어먹는다)가 인기를 끌었다.특히 박쥐는 포유류임에도 날수 있는 혼종느낌에다, 날개에 털이 없어 불임이나 탈모 혹은 실명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악마의 화신으로 표현되었다.(현대에 배트맨 영웅과는 다른 모습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악마 666>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속 악마는 당나귀 귀를 가지고 있다. 악마를 미노스로 표현한 것인데, 자신의 그림을 목욕탕이나 선술집에 어울린다고 말한 체세나 추기경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이 또한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미로앞에 서 있는 심판관이 미노스이기에, 미노스가 악마로 표현되기도 한 것이다.
악마는 다중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표현되면서, 그런 성격을 다형, 다색으로 표현하고 가장 음습한 부분에 얼굴을 그려 넣음으로써, 주로 엉덩이나 하체 부분에 얼굴이 표현되었다.
악은 인간안에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인간의 평범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악마도 등장했다.
존 밀턴의 실낙원의 영향을 받으며, 낭만적인 악마들도 등장한다.
가고일(성당 등 높은 건물에 달린 빗물받이다. 비가 오면 물이 가고일의 입 등에 난 구멍으로
쪼로록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가글거린다고 해서 가고일이라 이름 붙여졌다.)은 주로 키메라 괴물, 악마의 형상인데 빗물받이 역할뿐 아니라, 온갖 부정한 것을 막는 부적 역할도 했다고 한다.
원래 악마의 색은 검은색과 어둠이다. 신은 빛이기에 악마에겐 빛이 부재한다.
테드창의 소설 중에서 지옥은 그저 신의 부재일뿐이라는 내용이 있다. 신이 없는 곳, 빛이 없는 곳에 악마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악마는 독일의 상징주의 화가 프란츠 폰 수튜크의 <루시퍼>다.
근육질의 인간모습, 미동조차 없는 조용한 분위기 속 눈빛만이 살아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곡성> 속 악마가 떠올랐다. 그 눈빛...너무나 닮아 있다.
19세기 말 근대적 인간이 가지는 고통과 우울의 다양한 변형을 루시퍼를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신에게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타락천사가 되어 버린 루시퍼는 좌절과 실패의 상징으로, 인간의 고통과 불안을 공유한다.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악마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마가 빠져서 조금 아쉬웠다.
이주헌 작가의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미술>에서 알게된 미하엘 브루벨의 <앉아있는 악마> 이다.
아름다운 배경 속에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악마가 앉아 있다. 인간을 사랑했지만, 그녀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버렸다. 악마는 그녀를 쫓아갈 수도 데려올 수도 없다. 사랑했던 여인과 그 여인의 영혼마저 빼앗긴체 망연자실하는 악마는, 악마임에도 연민을 가져온다.
브루벨의 악마에게 주어진 형벌은 외로움과 고독이며, 작가 자신의 불우했던 삶과도 연결된다 (브루벨은 가난했고, 자식을 먼저 보냈으며, 시력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니키 드 생팔의 악마, 그녀는 어릴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구금되어야 했다. 그녀에게 악마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다. 죽음의 문앞에서 그녀를 살린 것은 창작의욕이었고, 그녀의 악마에선 온갖 빛들이 뿜어내며 변신과 재생을 말한다.
악마는 그저 악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인간 내면의 유혹이기도 하며, 불안과 우울이기도 하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악마, 나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내 안에 악마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