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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 젊은 인문학자 27인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정민.김동준 외 지음 / 태학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그림을 통해 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정신을 보다
흔히들, 현재의 자신을 올바로 보려면 과거를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는 사람이나 한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역시 한국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정신과 감성은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리라.
국학 또는 한국학이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학이라는 용어는 8·15광복 후에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6·25전쟁 이후 학계의 활발한 연구 활동과 더불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때 국학이라고도 했으나 이 용어가 주는 보수적 또는 국수주의적인 느낌이 있어 한국학으로 일반화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학이란 한국에 관한 언어,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한국 고유의 것을 연구, 계발(啓發)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이 책은 이 책의 대표저자 정민 선생님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국학에 대한 사회적 요청에 의해 보다 강화된 연구의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한다. 한류열풍에 올바른 대응하기 위한 외부적 요구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의는 우리 것에 대한 학문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고 세계화의 과제에 답하기 위한 것이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한국학의 연구에 있어 학제 간 연구, 분과 학문 간의 소통이 어느 시기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은 1977년 가을 ‘문헌과해석’ 창간호 발간 이후 학자들이 각자 자신이 매진해온 학문분야의 장벽과 경계를 헐어 마음을 모아오고 있는 모임의 그동안 연구 성과를 모아 발표한 책이다. 한국학이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인 문학, 역사, 철학을 비롯하여 미술, 음악, 연극, 복식, 군사 분야의 젊은 인문학자 27인이 저마다 자신이 주목하는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대한 차분하고 온기 넘치는 해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제1부 그림에서 그리움을 읽다, 제2부 그림의 속살과 내면 풍경, 제3부 무대와 그림이 만날 때, 제4부 그림, 인간과 역사를 논하다 등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림이 있다. 선조들이 남긴 그림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눈으로 확인 가능한 자료에 근거하여 선조들이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들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27명의 저자들이 주목했던 그림들로는 표암 강세황이나 박제가, 정조임금, 겸제 정선, 고려불화, 김홍도, 신윤복, 정약용 등의 개인적인 그림들 뿐 아니라 왕실의 공식행사에 있었던 모습을 그린 화성능해도병이나 주교도 등도 포함되어 있으며 때론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시대를 유추해석하며 사진 속 배경으로 사용된 병풍의 출처까지 찾아내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밝혀내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가운데 특히, 관심이 가는 이야기들로는 박제가와 나빙의 예술을 통한 교류다. 조선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실로 막강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시기 그에 대한 조선 사대부들의 마음은 유별난 모습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그 시기에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거문고가 나빙에 의해 박제가에게 전해지고 그 거문고가 대를 이어 전해져 온 이야기다. 또 다른 흥밋거리는 다상 정약용의 매조도에 얽힌 이야기, 정조 임금의 귤 순잔,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공길이를 다룬 장악원 관련 이야기 등 저자마다 독특한 주제가 돋보이는 책이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내가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라는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다름 아닌 ‘정민’과 ‘안대회’라는 관심 갖는 인문학자 두 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였다. 이 두 인문학자의 글은 매번 접할 때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더불어 이 책에서 만나는 다른 인문학자들 역시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이 펼쳐내는 글 솜씨 역시 대단하다. 한국 인문학 분야에서 새로운 학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펼쳐낼 새로운 학문의 세계가 기대되는 바가 아주 크다.
다양한 전공자, 그들이 그림을 통해 소통과 공감을 이뤄 만들어낸 작품으로 오늘의 한국학을 풍부한 실제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 책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