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몽혼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8
조두진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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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남은 여인의 마음
한때, 시인의 눈으로 본 세상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지만 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세상을 담아낸다. 시인만이 아니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예술을 하는 사람의 가슴으로 담기는 세상은 분명 나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몽혼(夢魂)의 저자 조두진은 ‘시인’에 대한 규정을 시 쓰는 사람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일상과 별 관계없어 보이는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 무지개 혹은 이상을 좇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의 범주에 포한될 것이다.’라며 세상을 따스한 가슴으로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시인의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시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몽혼은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대부 남성 중심의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시인으로 살아갔던 사람의 행적을 추적하고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던 여성 시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조선시대에 여성 시인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몇몇이 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매창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현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기록에 남지 않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 중 한 사람이 이옥봉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이옥봉은 현감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이다.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기생으로써의 삶에 필요한 음악이나, 춤, 악기를 배우기보다는 책을 읽고 시 짓는 공부에 흥미를 보인다. 어린 나이 양반과 결혼하지만 1년도 못되어 남편이 죽고 본가로 돌아와 지낸다. 어버지의 벗들 시화 모임에 나가 시 짓는 솜씨를 발휘하며 평생 잊지 못한 운명의 남자 조기원을 만난다. 둘은 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지만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조기원으로 인해 이옥봉은 불우한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인의 삶과 여인의 삶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조기원에게 당당하게 자신은 둘 다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 선언하며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가혹한 처지에 처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지인 시를 온몸에 감은 모습의 사체로 강물에 떠내려 온다.

‘네 재능이 너의 무덤이로구나.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구나. 내가 세월을 보지 않고 너의 재능만 보았구나.’

몽혼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임진왜란을 겪는 조선 선조시대다. 여성의 지위가 용납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양반의 여식에게는 더 없는 편견이 팽배했던 사회였기에 문화 예술적 소양이 있었던 대부분의 여성은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선다님 아시는지요?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비 개인 뒤에 뜨는 무지개가 아닙니다. 윤기 나는 입들이 늘어놓는 백가지 약속이야 어찌되든 무관합니다. 내 손을 꼬옥 잡아주던 감촉, 그 손을 타고 전해지던 온기, 나는 그날 밤 마주 잡았던 손의 온기로 지금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대의 한계에 갇혀 사랑하는 여인을 억압해야 했던 남자와 님을 향한 사랑과 시문의 매혹,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었던 여인의 삶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관심사인 ‘시가 일상의 발목을 잡고 일상이 시의 목을 옥죄는 충돌의 과정을, 시인과 일상인의 삶이 빚어내는 서글픈 비애’를 섬세하며 애달프게 그려내고 있다. 이옥봉의 삶은 우리가 익히 아는 허난설헌의 삶과도 닮아있다. 시문에 대한 제주가 그 시대를 살았던 남성들보다 뛰어났지만 사회에서 그리고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한 기구한 운명이 그것이다. 그들은 가슴 절절한 시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사람이다.

작가는 시인에 대한 규정을 내리며 일상과 시의 불화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일상의 현실적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상의 실현은 늘 벽과 부딪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존재해 왔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불협화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뛰어난 문학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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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5-2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찾던 책이네요....이름없이 살다간 사람들의 글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