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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야 한다
말 그대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뜻을 새겨 한 줄의 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 말에 지극한 공감을 느낀다.
요사이 오주석이라는 한사람에게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워낙 관심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마음이 전해지기에 그간 발간된 저자의 책을 모조리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간된 책들 어느 하나도 허투루 느껴지는 것은 없다. 우리 것을 공부하고 배우며 즐기는 사람으로 김홍도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의 삶과 예술 정신을 닮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그 사람이 남긴 글로나마 그를 그리워 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 생각된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발간된 순서와는 상관없이 저자가 발간한 책 들 중 마지막으로 접하게 된 책이다. 한 폭의 그림을 통해 그가 발견한 것은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그림 소재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느낀 사람의 따스한 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을 찾아내고 그가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꽃이다. 사상의 뿌리, 정치제도의 줄기, 경제 사회의 건강한 수액이 가지 끝까지 고루 펼쳐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화라는 귀한 꽃은 핀다. 지금 한국 문화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실을 살펴보면 주체성의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아픈 마음으로 보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문화를 만들어 온 우리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거친 들판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한국의 미’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다. 한국의 미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 옛 그림을 선별하고 그림 읽기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시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전국을 찾아다니며 강의를 통해 일반인과 만나왔던 저자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중심 주제를 세 가지로 구분하고 마치 현장에서 강연을 듣는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 오주석은 옛 그림을 대할 때 우선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을 말한다. 그것은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림을 보라는 것’을 지적하며 열린 마음으로 가슴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자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
이런 기본사항을 견지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으로는 김홍도의 ‘군선도’를 시작으로 백자항아리, 단원의 풍속도, 기로세련계도, 불화, 주상관매도, 마상청앵도, 송하맹호도, 황묘롱접도, 모계영자도 등을 세심하게 읽어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그림의 소재뿐아니라 그림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중심이다. 나아가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초상화’라고 한다. 초상화를 그리고 남긴 조선의 선비들의 오롯한 정신세계를 통해 우리가 찾는 한국의 미의 정신을 밝히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예쁜 모습보다 진실한 모습, 참된 모습’을 중시했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다.
또한, 저자의 단원 김홍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점을 확인한다. 이 책 곳곳에서 만나는 김홍도의 그림뿐 아니라 부록으로 김홍도 그림에 대한 그간 말해왔던 작품을 따로 묻어 그림과 그림에 대한 감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사회에 흐르던 성리학의 기본 이념이 어떻게 사람을 위하고 그것이 사람의 정신을 통해 삶이 투영된 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말해주고 있다. 사대부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주도하며 창조해온 시대의 문화는 그 저변에 동양사상의 한 축을 구성하는 천지인의 사상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음도 밝혀주고 있다.
현재는 과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 마치 하늘에서 불쑥 떨어진 사람들처럼 과거를 기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희망의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다시 법고창신의 정신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옛 그림을 읽어주는 것을 통해 바로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고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자 오주석의 책을 권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