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나누는 지적 유희가 아닌가 한다. 글 속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의미 말고도 행간에 숨겨진 저자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독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는 분야나 독자와 머리싸움을 벌리는 분야가 단연 선두에 서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분야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문학이라는 분야가 될 것이다. 오래전 영화 한편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유상옥 감독의 1999년 작품으로 김태우, 신은경, 이민우 등의 배우가 출연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建築無限六面角體─秘密)’이다. 이 영화의 제작의 직접적인 배경은 이상(李箱)의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이다. 이상이라는 시인의 삶과 육면각체 속에 담긴 수학적 지식 그리고 이를 추적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사건 등으로 긴장감이 팽배했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목되었던 것은 ‘육면각체’라는 도형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식을 기반으로 지적 흥미를 유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선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천 년의 침묵’ 역시 이와 비슷한 주제와 이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우리나라 소설에서 잘 볼 수 없는 도형이라는 수학적 테마를 소재로 하여 그려진 작품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공식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 피타고라스에 의해 규명되어졌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출발은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라는 이야기를 접하며 "피타고라스 정리는 정말 피타고라스의 정리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둘러싼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치밀한 내용전개가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푹 빠지게 만든다. 작품의 무대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크로톤이다. 크로톤의 실력자로 등장한 현자 피타고라스의 학파에서 수학하던 제자 디오도로스의 시체가 바다에 떠오른다. 그의 동생 카르모스는 형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학파에 입문하고 형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였던 히파소스를 만나 형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현자 피타고라스는 학문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권력을 잡아 이를 자신의 학파의 힘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신의 위상에 도전하는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한다. 형이 남긴 단서를 통해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모순이 있으며 이는 이미 천 년 전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과 이를 현자 피타고라스가 도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파소스는 디오도로스가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풀리지 않은 의문에 도전 ‘무리수’라는 알려지지 않은 수의 영역을 밝혀내고 이를 무기로 현자 피타고라스에 도전하게 된다. 한편, 피타고라스의 위세가 자신의 권력을 앞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귀족회의 의장 킬론은 현자 피타고라스학파를 몰락시키기 위해 시민단체와 밀약하고 음모를 진행하게 된다. 학문과 권력 상호간의 충돌, 인간의 권력 지향적인 본능, 불륜이나 동성애를 통한 육체적 욕망에 대한 갈망, 탐욕 등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관계,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잘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은 물음에 대한 묘사와 피타고라스 정리, 무한수 등의 독특한 소재를 절묘하게 조합한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인간유형의 극단은 지적욕구와 이를 이용한 세속적 욕망에 대한 갈망 등 인간의 욕망이 비극적인 결말은 불러오게 된다. "진실을 밝힌 자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따져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도가 실현된 것일까? 2,5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그것과 별 차이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