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로 피어
-손남숙, 목수책방

"55편의 우리 나무 이야기는 특정 장소에 뿌리 내리고 사는 나무의 몸에 오랜 시간 천천히 새겨진, 누군가의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나무에 몸과 마음을 기대어 살아 온 우리의 이야기이자 곧 나의 이야기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창녕 우포늪의 이야기를 통해 소식을 접하게된 손남숙 시인의 나무에세이이다. 우포늪에서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분이다.

관심 있는 나무이야기라서 선듯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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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가래꽃'
학처럼 생긴 모습으로 하얀 날개를 펼치고 고개를 내밀어 비상을 꿈꾼다. 구름 너머 어딘가 있을 떠나온 곳을 그리워 하는 것일까.


눈둑을 걷다가 만나는 식물이다. 주목하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식물들이다. 올 여름부터 대문을 나서면 만나는 논둑을 자주 걸었다. 벗풀, 물달개비, 사마귀풀을 비롯하여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수염가래꽃'은 논두렁과 논바닥이 만나는 경계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수분이 많은 조건에서 잘 살고, 일시적이나마 건조해져도 잘 견디는 편이다.


꽃은 6~9월에 피며, 흰색 또는 붉은빛이 도는 흰색으로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린다. 꽃잎은 깊게 갈라져서 5장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2장이다. 윗입술의 꽃잎은 좌우로 갈라져 180도 방향으로 배치하고, 아래 입술의 꽃잎은 3갈래로 갈라져 아래로 펼쳐진다.


수염가래꽃이라는 이름은 '수염'과 '가래', '꽃'의 합성어다. 수염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놀이할 때 코 밑에 달고 노는 수염 같아서 붙여졌고, 가래는 농기구 가래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꽃이 갈라진 것 때문에 갈래라는 말이 변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꽃모양으로 보면 영락없이 숫잔대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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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산 기슭만 보아도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머뭇머뭇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꽃이 피어날 몸짓을 감지한 까닭이다. 꽃벗들의 꽃소식 들려오기도 전에 몸은 이미 꽃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남쪽으로 난 창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듯, 여름 끝자락에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만 내려앉을 때가 되면 꽃몽우리 맺혀 부풀어 오를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제나 필까 저제나 필까 꽃소식 기다리다 고개가 다 틀어질지경에 이른다. 다 꽃을 마음에 둔 이들이 꽃과 눈맞춤하기 위해 이 꽃몸살은 통과의례다.

이때 쯤이면 아무도 찾지않을 산기슭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꽃 수를 놓고서도 스스로를 비춰볼 물그림자를 찾지 못해 하염없어 해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볼 고귀한 꽃이 눈 앞에 어른거리만 한다.

"나는 알겠노라. 푸른 것은 그것이 버드나무인 줄 알겠고, 노란 것은 그것이 산수유꽃·구라화인 줄 알겠고, 흰 것은 그것이 매화꽃·배꽃·오얏꽃·능금꽃·벚꽃·귀룽화·복사꽃 중 벽도화碧桃花인 줄 알겠다. 붉은 것은 그것이 진달래꽃·철쭉꽃·홍백합꽃·홍도화紅桃花인 줄 알겠고, 희고도 붉거나 붉고도 흰 것은 그것이 살구꽃·앵두꽃·복사꽃·사과꽃인 줄 알겠으며, 자줏빛은 그것이 오직 정향화丁香花인 줄 알겠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장 밖으로 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풀 속에 숨은 꽃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의 글 '화설花說'의 일부를 옮겨왔다. 꽃을 가슴에 품고 꽃몸살을 앓아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 대상에게 몰입해본 이의 마음자리에 꽃이 피었다.

올해는 높은 산에서 유독 일찍 봐서린 꽃이라 이 꽃에 대한 기다림이 덜할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까이 두고 살피는 꽃의 더딘 움직임이 간절함을 더하기만 한다.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물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자꾸 먼 산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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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다 染'
생명있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고유의 색을 가진다. 그 색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상대와 교감의 증거로 스며들어 물들고 또 물들이기도 한다.

물들이고 또는 물든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성에 틈을 허용하고 상대방의 색이 나에게 스며드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하여, 스며드는 색으로 자신을 탈바꿈하든가 서로의 색이 스며들어 전혀 새로운 색으로 질적변환을 맞이하기도 한다.

꽃이 열매맺어 영글어가는 과정이 바로 이와 같다. 붉고,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영글수록 짙어지는 색은 자신이 받아들인 햇볕과 바람, 물기에 의지한 결과다. 

벽을 헐고 담을 낮추는 수고로움을 견뎌 두 마음이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밝고 따스하며 붉고 뜨거운 기운으로 서로의 가슴을 채워가는 것, 그대와 나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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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속내를 밝히면 이런 색일까? 다 붉지도 못하는 애달픔이 아닐까도 싶다. 무엇하나 혼자 저절로 이뤄지는 것 없음을 알기에 자연이 담고 있는 그 오묘함에 다시금 놀란다.


잔디의 뿌리의 도움으로 꽃피고 열매 맺는 타래난초처럼 억새의 뿌리의 도움으로 꽃을 피운다. 연분홍 속살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 빙그레 웃는다.


'야고'는 억새에 의해 반그늘이 진 곳의 풀숲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기생식물이다. 꽃은 8∼9월에 연한 홍자색으로 원줄기 위에 한 개의 꽃이 옆을 향한다.


제주도 한라산 남쪽의 억새밭에서 나는데 서울 난지도에 최근 야고가 피었다. 이는 억새를 제주도에서 가지고 온 후 거기에 씨앗이 남아 있어 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 야고는 광주광역시 무각사가 있는 공원 산책로의 인공틀 안에 이식된 억새에서 만났다.


담뱃대더부살이·사탕수수겨우살이라고도 한다. 꽃이 피었을 때 꽃대와 꽃 모양이 담뱃대처럼 생겨 담뱃대더부살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야고는 한자로 野菰라 쓰는데, 들에서 자라는 줄풀이라는 의미이다. '더부살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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