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시린 차가움으로 가슴을 움츠리지만 싫지는 않다. 매운 겨울이 있어야 꽃 피는 봄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두고 "1년 처럼 긴 하루을 얻어 그것에 몰입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 몰입하는 과정이 주는 깊고 넓은 위로를 안다.

오늘을 살게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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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덩굴'
한겨울 산 속으로 길을 나선다. 속내를 보이는 숲에는 남은 아쉬움으로 숲을 찾는 이들을 반기는 녀석들이 있다. 잎에 숨어 때를 기다렸던 열매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꼬옥 다문 열매가 주황색의 보석처럼 알알이 맺혔다. 볕을 받아 한껏 빛나는 것이 지나온 수고로움을 보상을 받는 것처럼 환하고 따스하다. 혼자서는 서지 못하고 이웃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사람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늦은 봄에 피며 황록색으로 피는 꽃보다 열매에 주목한다. 콩만한 크기의 노란 열매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부터 껍질이 셋으로 활짝 갈라지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주황색의 씨앗이 화사하게 얼굴을 내민다.

평상시에는 사람들에게 별로 주목 받지 못하지만, 열매가 익는 늦가을이 되면서부터 눈길을 끈다. 봄에 나오는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하며 열매를 짜서 기름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진실', '명랑'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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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삼등文有三等

文字有三等. 上焉藏鋒不露, 讀之自有滋味. 中焉步驟馳騁, 飛沙走石. 下焉用意庸庸, 專事造語.

글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상등은 예봉을 감춰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읽고 나면 절로 맛이 있는 글이다. 중등은 마음껏 내달려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튀는 글이다. 하등은 담긴 뜻이 용렬해서 온통 말을 쥐어짜내기만 일삼는 글이다.

덤덤하게 말했는데 뒷맛이 남는다. 고수의 솜씨다. 온갖 재주와 기량을 뽐내며 내디디니 모래가 날리고 돌멩이가 튄다. 잠깐 사람 눈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별 내용도 없이 미사여구를 동원해 겉꾸미기에 바쁜 글은 억지 글이다. 자기만 감동하고 독자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글에 힘이 붙는다. 절제를 알 때 여운이 깃든다. 여기에 나만의 빛깔을 입혀야 글이 산다.

*정민 교수의 책 '석복惜福' 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송나라 때 장자(1153~1221) 가 엮은 '사학규범仕學規範' 중 작문에 관한 글을 인용하고 있다.

글의 힘의 있고 없음은 우선 글쓴이에게 달렸다. 책을 읽다보면 쉽게 읽히면서도 글이 갖는 무게로 인해 저절로 감탄하는 글을 만나는 경우는 대단한 행운이다. 그만큼 좋은 글을 만나기 어렵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글 역시도 읽는 이의 준비 정도에 의해 전달되는 무게는 달라진다. 이 둘의 조화로운 만남을 위해 주로 읽는 처지에 있는 나 부터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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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1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민 교수님의 책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미처 몰라 지나쳤던 도서 <석복>을 찜합니다.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날은 찬비를 맞았시니 얼어잘까 하노라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평양기생 한우寒雨를 보고 첫눈에 반한 속내를 드러낸다. 벼슬이나 권력에 연연하지않고 패기 넘치는 호남아답게 거침이 없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자리

원앙 침 비취금을 어데두고 얼어자리

오날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한우寒雨 역시 한술 더뜬다. 재색을 겸비하고 시문에 능하고 거문고와 가야금에도 뛰어나며 노래까지 절창인 기녀답게 은근하지만 속되지 않다.

주는 이나 받는 이가 마음이 맞았으니 여기에 무엇을 더하랴.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멋이 아닐런지. 비로소 손끝이 시리고 코끝이 찡한 겨울다운 날씨다. 겨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려는 하늘의 배려가 아닐까.

김용우의 '어이얼어자리'를 듣는다.

https://youtu.be/edrQUe1Dh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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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마음 길

마음에도 길이 있어

아득하게 멀거나 좁을 대로 좁아져

숨 가쁜 모양이다.

갈 수 없는 곳과, 가고는 오지 않는 곳으로

그 길 끊어진 자리에 절벽 있어

가다가 뛰어내리고 싶을 때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도 문이 있어

열리거나 닫히거나 더러는 비틀릴 때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도 항아리 있어

그 안에 누군가를 담아두고

오래오래 익혀 먹고 싶은 모양이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가

달그락달그락 설거지 하고 있는 저녁

일어서지 못한 몸이 따라 문밖을 나서는데

마음에도 길이 있어 나뉘는 모양이다.

*김재진 시인의 시 '마음 길'이다. 넓기는 하늘을 품기에도 넉넉하고 좁기는 바늘 꽂을 틈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던데 늘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양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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