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관련 책을 찾다가 작가를 알게 되었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서재에도 신간 소개가 올라왔다. 다른 많은 작품들과 동영상들을 검색했다. 작가가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 ‘*퀴즈를 통해 그의 경력을 본 감상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과학에, 글쓰기에 진심이다. 카이스트 조기졸업 공학박사 경력을 소유한 그가 SF소설을 쓰면서 무명작가가 되었다. 전망 없어 보이는 그는 절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책 중 글쓰기에 관한 책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등은 그런 경험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슬며시 소설을 안 쓰고 살아보려고 했던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이 이 소설이다. 뭐든 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이 소설, 이미영 사장과 김양식 이사라는 사람이 우주를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돈 되는 일을 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10년 동안 썼던 연재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우주 은하시대 동업자 미영과 양식이 하는 사업은 은하계 대행사라고 해야 할까? 인간의 개입으로 지적 능력을 소유하게 된 청우와 같은 생명체가 있고, 어떤 것을 보존할 것인가와 관련된 우주의 지적 생명체 보호법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있다. 테라포밍 로봇을 이용해서 우주의 행성에 씨앗을 뿌려 식물을 자라게 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부동산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소유욕은 그 드넓은 우주에서도 끝을 모른다. 현재 인간의 삶의 틀로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으나, 그 상상에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문제가 개입되어 있으므로 부인할 수 없다.

 

변호사 마금희는 우주의 지적 생명체 보호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다듬어서 보존의 범위를 좁히려 하고, 청우 노앵설 보호협회장은 마금희와 법정다툼을 한다. 우리의 동물보호법의 모방이다. 이렇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분쟁과 사회적인 이슈를 우주시대의 미영과 양식이 의뢰받은 사건들로 재창조해서 서사를 만들어 간다.

 

우주개척 시대에 우수한 세포 수정란을 저장 보존 처리해서 행성에 보내고 적합한 환경의 행성에 도착하게 되면 태아로 키우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나, 온 우주에 퍼뜨린 후손들 사이에 열리는 우주미인대회에서 수상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하는 일들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현재 사람들의 욕망을 들여다보건대 그럴 듯하기도 하다. 은하의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우주갑부의 존재도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고독을 보여준다. 우주로 도망친 강아지 로봇을 잡으러 다니는 모습은 유기견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들에는 작가의 유머가 스며 있는데 방송에서 본 모습으로 미루어 그의 유머 코드를 짐작하게 했다.

어 이건 너무 심하네요. 심하네, 심하네!”

……

그 말 들으니까 일본 시마네 현에 가서 우동 먹고 싶네(78p)

 

아재 개그에 헛웃음이 난다.

 

안녕하세요! 저는 로봇 변호사 KW820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로봇 변호사의 목소리가 맛집 소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아니, 이게 정말 전부 19천 원?” 같은 내레이션을 하는 성우 목소리였다. 양식이 약간 당황하는데, 미영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91p)

 

미래 우주를 꿈꾸고 상상하는 공학자의 SF소설에서 21세기 한국을 사는 아저씨의 문화와 언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웃긴 이중성에 묘하게 빨려 들어가서 당황스러웠다.

 

작가는 두 사람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세웠던 목적은 아직까지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은하와 은하를 여행하는 원리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어설픈 설명이나 어렵고 디테일한 묘사가 있는 것보다는 이들의 활약에 집중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드넓은 우주에서 허황된 짓을 하고 다니며 귀한 삶을 낭비하는 사람을 찾기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로 시작하는 마지막 수록 작품은 우주공간을 이동해 다니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주인공의 허황된 짓과 삶의 낭비에 주목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돌아다는 범위가 지구, 대한민국, 한 도시인 듯 느껴진다. 언제쯤 인류가 그렇게 우주를 누비게 될까?

 

그의 작품을 더 볼 생각이다. 방송에서 봤던 작가의 아재 같은 말솜씨며, 이과 출신다운 시각들, 한국의 전통 괴물을 찾아 연구하는 태도에서 본 열정과 순수함 때문에 끌리는 듯하다. 작품들 제목들도 재미있다. 얼핏 살펴본 바로는 소설 쪽 보다는 과학 관련 책들이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휴가갈땐 주기율표』.고래 233마리 두권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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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30 17: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과학하고 앉아있네에선 마치 스타워즈의 시작 장면같은 그의 넓디넓은 잡학을 들으실수 있습니다 ㅎㅎ 묘한데 빠져드는 개그코드지요 *^^*

그레이스 2022-04-30 17:51   좋아요 4 | URL
맞아요
처음에는 뭐지 이거? 하다가 빠져들어요 ㅋ
과학하고 앉아있네도 재미있을듯요

새파랑 2022-04-30 18: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빵 책 쓴 작가님의 다른 작품이군요 ㅋ ㅁㅇㅇㅅ 는 미영 과 양식 이겠네요~ 전 뭘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그레이스 2022-04-30 18:33   좋아요 4 | URL
예~
맞아요^^

얄라알라 2022-04-30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하네, 시마네 ㅋㅋ
저는 일본 지명을 잘 몰라서, 처음에 개그인 줄도 모를 뻔^^

요새 북플의 핫 뉴페이스가 되신 곽재식 작가님, 그레이스 님의 페이퍼가 또 힘을 실어 드렸네요~

그레이스 2022-04-30 21:12   좋아요 3 | URL
일년쯤 전에 유퀴즈 나온 영상 찾아왔는데 굉장히 재밌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 분 책소개 밑에는 직접 인터뷰한 영상이 있네요^^
핫 뉴 페이스 맞는듯요

singri 2022-04-30 23: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고싶자나요 궁금하자나요 했던 그 작가님이로군요 ㅋ 재밌겠습니다

그레이스 2022-05-01 09:55   좋아요 2 | URL
예~
맞아요
그분! ㅋㅋ
보셨군요^^
재미있습니다~

희선 2022-05-01 0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이 말 맞는 듯합니다 지구가 아닌 사람이 문제죠 사람이 지구를 망치니... 우주를 다니는 이야기도 지금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군요 지금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2-05-01 10:01   좋아요 3 | URL
제목을 참 잘 지은것 같아요
환경 주제 책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이예요. 한 책 읽기 선정 위원회에 추천해야 해서요^^
이런 책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어요.
곧 읽어야 해요

scott 2022-05-01 1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휴가갈때 주기율표
찜🙌

그레이스 2022-05-01 13:03   좋아요 2 | URL
제가 잠시 봤는데, 재미있어요^^

페크pek0501 2022-05-02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SF소설에 관심이 갑니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때문인지...

그레이스 2022-05-02 13:13   좋아요 3 | URL
저도 그 책 읽어야 하는데...
꾸준한 작가들 덕에 이런 소설들이 가까와졌어요^^

하나의책장 2022-05-03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과 글쓰기에 진심이신 분인 것 같아 더 보고 싶어지는걸요^^!

그레이스 2022-05-04 08:20   좋아요 0 | URL
예~
직장얘기 할때는 영혼 1도 없다가, 과학에는 흥분하는 모습이 넘 재미있었어요 ㅋㅋ
궁금하잖아요? 안 궁금해요? 궁금하잖아요?
이 말이 맴돌죠...!
 
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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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글을 읽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과 육체에 남긴 상흔은 생각과 언어로 나타난다. 작가가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쓴 자전적 이야기나, 창조한 인물들에 투사한 생각과 언어는 나의 결과 맞지 않았다. 작가가 지나온 세월도 그렇지만 타고난 기질 때문에 그가 쓰는 언어와 마음에서 퍼내는 솔직한 감정들이 불편했다.

 

이 단편집 역시 그런 지점들이 많았다. 다수의 작품에서 보았던 유년기, 전쟁의 기억, 상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부정적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있어 마치 가시덤불 사이를 긁히며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다른 여러 작품에서 읽었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부재를 느낄 수조차 없었지만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이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래서 식구들이 불쌍해할 것 같아서 보지 않았던 최초의 자의식에 대한 기억은 작가의 성품을 엿보게 해준다.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두 번의 상실, 특별히 아들을 잃은 후, 그녀를 힘들게 했던 감정은 수치심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형벌을 받는가라는 질문이 만들어낸 감정이었다. 그 수치심은 자연스럽게 분노로 바뀌었다. 그녀는 부재하는 집에서 헛되게 울릴 전화벨 소리, 쌓여 있는 우편물 생각을 하면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고소한 생각이 드는 것 정도가 즐거움”(36p)인 여행을 떠나고 그 후로도 무감한 상태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이탈리아 여행 중 몸살을 앓으며 버스 안에서 파바로티의 노래를 듣다가 격정에 휩싸인다. 인턴이던 아들의 첫 번째 비행기 여행이 생명유지 장치를 단 임종직전의 환자를 제주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임무였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목 놓아 울고 싶은 감정의 폭발과, 고열로 앓았다. 돌아 온 그녀는 설렘과 볼일도 없는 여행은 다신 안 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상실 후 인간이 받아들이는 단계는 비슷할 듯하다. 나도 그런 상황라면 같은 감정에 휩싸일 것 같다. 카프리섬을 향하는 버스에서 행복감일지 슬픔일지 정체 모를 황홀경과 함께 찾아온 누르기 힘든 감정은 내 안에도 파토스를 만들어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무엇에 의해 촉발될지 모르지만, 마음의 둑이 무너지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비상한 상태를 맞게 되는 순간이 있다.

 


수록된 단편 중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빨갱이 바이러스. 친정 부모님께 물려받은 고향집에 가끔 내려오는 주인공 가 폭우 때문에 길이 막힌 날,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세 여자를 만나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 세 여자들을 소아마비’ ‘’ ‘보살님이라고 마음속으로 이름을 붙이는데서 나는 불쾌감을 느꼈다. 소설이지만 주인공 '나'의 오만함이 미웠다. 그녀들을 자신의 집에 묵게 하고 식사를 대접한다. ‘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아마비하고 부르는 장면에서 경악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호칭에 아무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여자의 태도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은 소아마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장애를 입게 된 사연과 이 곳에 오게 된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여자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자신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으라는 재촉을 뿌리친 는 생각한다.

 “당신들은 왜 나에게 그런 무섭고 천박한 비밀을 털어놓은 거죠? 날 언제 봤다고, 날더러 어쩌라고?”(80p)

사실 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다. 어릴 적 인민군이었던 삼촌을 아버지가 삽으로 치는 광경을 보았고, 그 삼촌을 삽으로 마당에 묻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친정집을 물려받으면서 그 비밀까지 떠안았다. 그래서 집을 헐고 새집을 짓지도 못한다. 혹시 유골이 나올까봐. 삼촌이 그날 밤 죽지 않고 북쪽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더 큰데도 어린 나이에 받은 충격은 그 사건을 깊이 묻어두었다. 어른들에게 물어 볼만도 한데, 단단하게 양회를 바른 마당처럼 그녀도 입도 막아버렸다. 마당과 그녀의 입은 둘 다 폭력을 삼켰다.”(90p)

 

어떤 비밀과 상처는 낯선 이를 만나 떠들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의 것은 꺼낼 수 없는 곳에 있다. “어떤 상처하고 만나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내 몸이 나는 대책 없이 불쌍하다.”(91p) 고 한 마지막 문장은 작가가 가진 정서의 주조(主調)일까? 누군가의 단단한 마음 안에는 오래된 백골과 같은 숨겨져 있는 무시무시한 상처가 있을 테다. 무서운 시절과 아픈 역사가 바르고 다져놓은 시멘트 안에!

 

왜 나는 박완서의 작품을 편하게 보지 못할까를 다시 생각한다. 가끔 읽다가 덮고 싶을 정도로 작가가 표현하는 증오, 분노, 오만, 비루함, 천박함이 공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게 문학이야? 하고 날이 선다. 고백하자면 그 추한 감정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냄비에 눌러 붙어 있는 찌든 때를 수세미로 벗겨내는 것 같다


여러 개의 단편에는 후배 작가들의 편지 글이나 소감이 붙여있다.

책장을 열면, 당신의 인물들이 기우뚱한 욕망을 안고 내 쪽으로 절름거리며 다가온다. 나는 이들을 잘 알아본다. 허영이 혀영을 알아보듯, 타락이 타락을 알아채듯 제법 간단히. 어떤 악은 하도 반가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알은체할 뻔하기도 한다.”(257p)

김애란 작가가 덧붙인 글을 읽다가, 나야말로 반가워 큰 소리로 알은체할 뻔했다. 책장을 덮지 않고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

 

요즘, 독서를 하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분열된 자아를 종종 보게 된다. 박완서의 소설 속 인물들이 깊은 아픔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성품은 살아서 불쑥불쑥 드러나는 것에 눈물이 날 정도로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에게서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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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3-10 18: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 리뷰 너무 좋아요! 무엇이 발췌문이고 무엇이 그레이스님의 글인지 헷갈릴 정도로 온통 마음을 뒤흔드네요.🥲

그레이스 2022-03-10 18:37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mini74 2022-03-10 20: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냄비에 찌든 때를 수세미로 벗겨내는 거 같다는, 절름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에게서 나를 본다는 그레이스님 글들 너무 와닿아요. 박완서 글을 읽으며 묘한 감정이 그 속에서 나를 봤기 때문인가봐요. 그레이스님 글 👍 두고 두고 읽고 싶습니다 ~

그레이스 2022-03-10 20:04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오늘은 무지하게 감상적이 되네요^^

2022-03-10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1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03-11 0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군가한테 말하고 버려도 괜찮을 비밀이 있는가 하면 말하지 못할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곳에 있다 해도 저마다 느끼는 것도 다르고... 이건 병원에서 느꼈던 거기도 한데... 동병상련이라 해도 조금 다르기도 하죠


희선

그레이스 2022-03-11 05:16   좋아요 3 | URL
병원!^^
맞아요
거기서도 같은 병실 사람들끼리 온갖 얘기하죠^^
퇴원하면 다신 안보니까^^

2022-03-11 0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1 0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3-12 0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서는 80-90년대의 서울 중산층이라는 것도 있지만, 과거 전쟁을 겪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사람이 쓸 수 있을 내용도 있었고, 그 기억이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벌써 10년이 더 지났지만, 한번도 뵙지 못해서인지, 늘 장년기의 흑백사진이 익숙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3-12 07:40   좋아요 3 | URL
그렇죠?!
서니데이님도 즐거온 주말 보내세요~^^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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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의 대상이 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름이 원래 영초였는데 영로로 바뀌게 된 이야기까지. 집에 꽂혀있던 영초언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몰입되었으나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부채의식 같은 감정이 삐죽삐죽 살아나서 불편하고 괴롭기 때문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76학번 서명숙은 제주도 출신이다. 4·3을 겪은 변방의 섬에서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이듬해에 서울의 대학에 합격했다. 학교 신문사에 입사한 당시 휴교령이 내려지고 학교 안에는 그들을 감시하는 사복경찰들이 상주하는 상황이었다. 기사는 검열을 거쳐 수정되고, 대체를 반복하며 스스로 자기검열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보관 건물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던 낯익은 중년 남자의 정체를. 그 남자는 중앙정보부에서 업무 협조차 신문사로 파견 나온 요원이었다. 그 말고도 자주 눈에 띄었던 또다른 중년 남자는 우리 대학 관할인 성북경찰서 정보과 형사였다. 일개 대학신문사 주변이 이럴진대 방송사나 신문사의 검열은 오죽할까 싶었다. 우리에게 전달되는 뉴스들은 과연 얼마나 진실된 것일까?”

(44p)


첫 여성편집국장을 꿈꾸던 그녀는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경험하면서 대학 내의 기득권이자 귀족 집단으로 스스로 타협하고 안주하는 건 아닌지 자문하며야학과 편집국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던 시점에 천영초라는 선배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본 회퍼의 옥중서신과 시몬 베유의 평전 불꽃의 여자와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받는다. 서명숙은 야학에 투신한다. 영초선배와 함께 살면서 그녀의 따뜻함과 역사의식과 정의감에 젖어갔다. 여자들의 모임이 형성되고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되짚기도 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2의 성을 읽으면서 한국의 여성이 맞닥뜨린 현실을 통탄하기도 하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으면서 유신체제를 깨뜨리지 못하는 자신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58p)

 

그들 모두 투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경찰간부의 딸, 의사의 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딸, 고단한 삶을 사는 반공주의자 어머니의 딸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모른척 외면하고 살고 싶은 캠퍼스의 사랑을 꿈꾸던 학생들이었다. 그때를 돌이키며 저자는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이 딸에게 말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그래, 바보 같았던 거지……

(73p)

그 시절의 그들이 그랬다. 아니,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유인물을 팔이 아프도록 인쇄해서 교정에서 뿌리며 독재타도를 외치던 그들은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나고 다시 잡혀가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풀려나와 들려주는 고문이야기는 너무 두렵기만 하다. 영초가 체포되고, 교생실습을 위해 제주에 내려와 있던 서명숙은 서울의 안가로 끌려가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 1년의 수감생활을 한다. 유신이 막을 내리고 잠깐의 서울의 봄은 끝이 나고, 광주에서의 비극적인 뉴스를 접하는 영초는 다시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찍어내고 도피와 체포, 수감 생활을 거듭한다.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불행한 삶을 살던 영초는 기자로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서명숙과는 달리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캐나다 이민을 가지만, 행복은 잠깐이고 육체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운동권 출신 소수 인사들의 뒤에 가려진 천영초, 그녀의 남편 정문화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불행한 역사를 끌어안고 함께 불행한 삶을 살았다. 모진 고문을 받고 출소 후에 서명숙이 회복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겪은 아픔 역시 그들의 가족들의 겪었을 고통을 말해주고 있다.

 

감옥 간 것보다 돌아온 뒤가 더 힘들었저. 감옥은 겅해도 언젠간 나오겠지 하는 희망이라도 있어신디, 정작 돌아와보난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부난. 창도 어멍한티 큰소리는 쳤지만 네가 장차 사람 구실 제대로 헐 건가 걱정했주.” (228p)

 

풀각시 같던 영초언니에게 하는 헌사로 글을 마무리 하며 고대에 글 잘 쓰는 4대 문장가 중의 하나라고 자화자찬하며 웃던 얼굴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선택했고 갔던 그 길에 대한 긍지마저 앗아가지 않기를. 그저 잠시라도 행복했던 시간들만 남기를.

 

드라마와 관련된 논쟁들을 읽으며, 강경하게 방영중단을 외치는 쪽도, 그들을 비난하는 쪽도 아픈 역사를 품은 우리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논쟁이 있는 것 자체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지닌 역사의식, 세계관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그저 소설일 뿐이야, 영화일 뿐이야, 드라마일 뿐이야 라고 한다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읽을 것이고, 볼 것이기 때문에 의식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작가가 책임질 일이다.

 

제주에 가면 서명숙이 만들었다는 올레 길을 걷고 싶다. 그녀가 고향에 내려가 치유를 경험한 자연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그 시절 내게 가장 큰 위안을 가져다준 건 고생했다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말없는 자연이었다. 지금은 올레 7코스로 유명한 외돌개 주변의 솔숲은 가장 사랑했던 공간, 오래 머물던 곳이었다.”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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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20 20:4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모진 고문끝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셨죠 남편분이. 동참하진 못했지만 그 시대룰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 가집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0:45   좋아요 5 | URL

맞아요!

얄라알라 2021-12-20 23:03   좋아요 2 | URL
저는 그레이스님께서 올려주신 리뷰 읽고 바로 ‘서명숙 이사장‘ 검색했습니다. 예전부터 이분의 기사는 접할 기회가 많았고 읽었지만 이런 역사는 알지도 상상도 못했네요,

감사한 마음 가지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3:08   좋아요 2 | URL
저도 집에 있었어도 안 읽고 있다 우연히 듣고 몇시간만에 읽었어요
서명숙님도 당시 모든 분들도 고초가 대단했다는 생각입니다.
그 위에 현재의 시간이 있구요

scott 2021-12-20 20: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그 올레길 걸어 봤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1-12-20 20:54   좋아요 5 | URL
그러게요
저도...!

미미 2021-12-20 21: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제 kbs에서 오래된 영상을 잠시 봤는데요 전두환씨가 방송국에가서 담배피우며 이야기하고 국장?은 옆에서 쭈그리가되어 굽신굽신하더라구요. 말없는 자연이 위안이 되었다는 말에 올레길이 슬프게 떠오릅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1:35   좋아요 4 | URL
저도 올레길을 서명숙씨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고 새롭게 다가왔어요. 슬프기도 했구요
많은 사람들의 치유의 길이 되는데는 누군가의 경험이 있기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새파랑 2021-12-20 22: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ㅠㅠ 올레길의 명칭 유례도 저런 사연이 있군요. 드라마 관련 논쟁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네요.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봐야 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2:52   좋아요 5 | URL
미리 시놉시스가 나왔는데 안기부 미화와 운동권 폄훼 내용이 있다고 하네요

희선 2021-12-22 0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이야기 조금 봤는데, 그 드라마인지... 그 글 대충 보기만 했군요 역사왜곡이 있다는 말이 있다는 말과 꼭 그렇지 않다는 말도 있었어요 자신만 잘 살기 어려운 시대였다니, 지금은 정치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그런 시대가 됐네요 예전에 싸운 사람이 있어서 지금 같은 세상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2-22 06:3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드라마 역사왜곡 논쟁을 보며, 여전히 건드리면 성이 나는 상처를 확인했습니다

han22598 2021-12-29 0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마..유시민이 추천해서.. 저 이거..몇 년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 70-80년의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제대로 평가 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드라마로 나왔나 보네요..

그레이스 2021-12-29 07:19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이 드라마로 나온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했던 학생들중 간첩이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나봐요
그 주인공 이름이 영초였다가 영로로 바뀌었다고...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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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얼굴과 목, 피부 여기저기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 그걸 본 할머니는 부엌칼을 들고 뒤뜰로 향하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안 먹어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숨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종종걸음 치고, 그런 나를 아랑곳 않고 할머니는 한 움큼 베어온 미나리를 물에 씻고 절구에 찧어 즙을 내리면서, “이리와, 어서 마셔하셨다. 나는 입을 막고 도리질을 치지만, 결국엔 코앞에까지 들이 밀어진 사발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내 두드러기는 가라앉고 식중독 증상은 사라지곤 했다. 식물의 해독작용을 체험한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식물은 독이 되기도 하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이 작용은 식물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함이다. 소설 속 모스바나와 더스트 해독제를 만드는 온실의 식물들의 변이는 그들이 멸종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인류가 멸종위기를 맞았던 더스트 시대가 있었다. 나노 입자 연구실에서 자가 증식하는 먼지들이 유출되고 더스트라 이름이 붙여졌다. 오염된 사람들은 죽었고, 나오미와 같은 내성종은 끌려가서 혹독한 실험을 당했다. 도시들은 돔을 만들고, 그렇지 못한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다. 실험실을 탈출한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가 도착한 프림 빌리지’, 해독제를 만들고 식물 연구에 몰두하는 사이보그 레이첼의 온실이 있는 곳이다. 온실에서 개량된 모스바나는 더스트 폭풍으로부터 프림 빌리지 사람들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강한 번식력은 농작물을 마르게 했다. 침입자들의 공격을 받고, 그들은 씨앗과 해독제 제조법을 지니고 모두 흩어졌다. 문명재건 60, 강원도 숲에서 빠른 속도로 숲을 잠식해나가는 독성을 지닌 덩굴식물의 정체를 쫓던 아영은 더스트 시대가 종식된 것은 지구곳곳에서 자라난 이 모스바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온실이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는 프림 빌리지 사람들의 믿음과는 달리, 레이첼의 연구는 식물을 위한 것이었다. 해독제와 식물들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이들의 의견에 지수는 반대한다. ‘돔 시티안의 사람들은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과학의 성과는 강자의 것이고, 그 분배에 있어 자본주의 논리가 인도주의를 앞선다. 최근 강대국들이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는 현상을 보아도 그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얽혀있는 화초들을 솎아내고, 가지를 잘라내고, 그것들을 버리면서, 문득 식물을 대해온 인간의 역사를 생각했다. 인간은 정돈된 수형, 크고 맛있는 열매, 다양한 색상의 꽃을 얻기 위해 가지치기, 화학처리, 종자개량 등의 시도를 해왔다.

 

레이첼이 지적했듯이,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는”(365p) 우리의 시선은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하고, 식물들의 경쟁과 분투를 놓치고있다. 피오나 스태퍼드의 길고 긴 나무의 삶은 인간의 먹을거리가 되고, 약이 되고, 신화와 상징이 되고, 문학과 예술이 되었던 나무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보다 오래된 식물은 피라미드 맨 아래에 위치한 하위생물이 아니라, 없으면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지구상의 생명체들이다.

 

아영이 다시 찾은 프림 빌리지 터에는 모스바나 덩굴만 남아있다. 이미 천이를 한 숲에 모스바나 군락지를 조성하겠다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계획은 머릿속에 경고등을 켰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인간의 목적만을 위해 숲을 조성하는 그들의 제국을 침범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 여러 매체를 통해 전문가들은 팬데믹의 시작을 경고하며 그 원인은 에코데믹에 있다고 진단했다. ()간을 넘어 인간과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온 재앙이라는 것이다. 종식에 대한 기대는 또 다른 변종바이러스라는 악재를 만났다. 바이러스가 변종을 거듭하며 약화될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인류는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만이었다는 교훈을 받았다. 바이러스 역시 모스바나처럼 번성하다가 소멸한 듯 보이지만, 일정 환경을 만나면 다시 독성을 띄며 증식하기 때문이다. 이미 생태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는 상황에서, 다른 생물과 공존하는 방법을 질문하게 된다.

 

식물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주기도 하고, 우리를 모두 망쳐버릴 무언가를 만들기도”(224p)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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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17 19: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 이책 별.🖐 ^^

그레이스 2021-10-17 19:32   좋아요 5 | URL
^^scott님 ♡🖐

mini74 2021-10-17 19: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식물도 그렇고 시대나 상황이 만들어낸 영웅, 살아남은 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책 참 좋지요 *^^*

그레이스 2021-10-17 19:52   좋아요 4 | URL
어느것에 초점을 맞추고 쓸까 고민하게 되는 책이예요.^^
좋았습니다

새파랑 2021-10-17 2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왠지 코로나 시대에 맞는 책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에코데믹이라니 앞으로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겠어요~!!

그레이스 2021-10-17 20:32   좋아요 4 | URL
지금 시대적 상황에도 맞춰져 있다는 💡

막시무스 2021-10-17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코데믹이라는 좋은 단어를 배웠네요!ㅎ 첫문단은 소설의 그레이스님 실제가 아니라 소설내용인거죠?ㅎ

그레이스 2021-10-18 00:21   좋아요 2 | URL
제 이야기^^
어릴적 기억이예요 ㅎㅎ
자주 두드러기가 났거든요

막시무스 2021-10-18 10:45   좋아요 2 | URL
어릴적 추억이 따스하고 좋으네요! 할머니 정성이 최고!ㅎ

프레이야 2021-10-19 17: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코데믹. 공감되는 말입니다. 좋은 리뷰 감사해요 ^^

그레이스 2021-10-19 17:1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jenny 2021-10-23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있는책인데
아껴두었다가 책 다 읽고 정독해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0-23 10:45   좋아요 1 | URL
저도 가끔 그럴때 있어요^^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읽고 싶은 📚 ~♡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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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의 친척들은 모두 앞에 자를 붙여 칭한다. 외조모, 외외증조모, ……. 4대를 거슬러 올라간 여자들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 이 자는 탈락한다. 좋았다. 유전자가 대물림 되듯 당연하게 생각되던 삶의 태도, 말하지 않고 견디던 여성들의 삶이 만들어놓은 토양은 여전히 우리에게 같은 열매를 요구한다. 매서운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울음을 받아주었던 소매는 서사를 기록하는 페이지가 되고, 대물림에서 벗어나는 치유가 된다.

 

지연은 10살 무렵의 기억이 있는 희령의 천문대 연구원으로 지원해서 직장을 옮긴다. 엄마랑 할머니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로 찾아온 적이 없는 곳이다. 집을 구해 이사한 후,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엄마(미선)와 할머니(영옥), 증조모(삼천)의 이야기를 듣는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이다. 일제 강점기였고, 증조모는 위안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천주교 순교자 집안의 자녀인 증조부는 사람은 빈부귀천이 없음을 믿었고 실천한다. 처음 본 증조모에 대한 연민과 끌림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부모의 반대를 거역하고, 증조모와 결혼을 하고 삼천을 떠난다. 증조모는 병상에 있는 자신의 엄마를 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34p) 두 사람은 개성에 자리를 잡고, 증조모는 삼천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백정의 딸이라는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 더구나 남편을 가족들과 의절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웃들과 성당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는다. 증조부는 가족과의 단절과 친지들의 외면과 비난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의 마음속에 노여움과 억울함이 생겨났고, 그로 인한 죄책감을 울화를 가슴에 품게 된다. 그녀는 침묵 속에서 체념을 배우고, 남편의 의중을 살피는 삶을 살게 된다. 그 체념은 고조모가 가르쳐 준 사는 법이다. 그녀들에게 기대는 사치뿐 아니라 위험한 무엇이었다.

 

이것이 대물림된 체념의 역사다. 백정과 여성이라는 신분 중에 어떤 것이 고조모나 증조모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까? 1887년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가 되었던 박서양을 떠올려 보면 드물기는 하지만 신분제가 폐지된 이 시기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는 천민 남성들에게는 기회가 있긴 했었다. 여성인 삼천은 양민인 남편과 결혼했어도 백정의 딸이라는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기독교적인 신념도 그들의 공동체를 설득하지 못했다. 남편에게로 귀속되는 결혼제도를 받아들여 도피와 안전을 도모했던 그녀는 오히려 침묵 속에 갇힌다. 거부했던 엄마의 삶의 태도를 몸에 새기고 있다.

 

그 체념은 영옥에게 이어진다. 그녀에게는 백정의 핏줄이라는 꼬리표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서,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받는 무심함이 덧붙여진다.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이 결핍되었던 영옥은 그의 결정과 명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혼인 줄 알면서도 남선과 결혼시키고, 아버지는 오히려 남편을 붙잡아놓지 못한 딸의 무능을 비난한다. 영옥과 남선 사이에 낳은 딸 미선은 남선과 전처의 호적에 올려지고, 영옥은 홀로 미선을 키운다.

 

미선 역시 벗어나지 못한다. 남편의 횡포에도 침묵하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불행을 참는 여성이다. 큰 딸의 죽음에 대해 평생 죄의식을 지닌 엄마다. 유방암이 다시 재발해서 병원에 입원했어도 문병조차 하지 않는 남편의 무심함을 견딘다. 딸에게도 이혼하지 말고 참고 살 것을 종용한다.

 

엄마는 남자와 사는 삶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도리어 엄마야말로 남자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 같았다. 때리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만 되어도 족하다니, 인간 존재에 대한 그런 체념이 또 어디 있을까.”(17p)

 

이혼 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지연에게 미선은 딸의 이혼 때문에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18p) 한다. 모든 문제는 마음먹기 마련이라고 약 없이 이겨보라고 한다. 캐럴라인 냅이 인용했듯 자신의 열망과 야망과 좌절감을 억누르고 있는 어머니가 자녀의 기쁨과 실패에 감정이입하며 공감할 수 없다”(134p 욕구들). 어쩌면 그녀들은 자녀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안정적으로 평안하게 살길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냐고 질문할 것이다.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이 굴복하고 있는 체념이라는 삶의 태도는 정말 안정과 평안을 주는가? 하고 묻게 된다.

 

한편 4대에 걸친 여자들의 감옥같은 삶에 한 줄기 빛은 바로 사람이었다. 개성에서 모두가 외면할 때 새비는 삼천을 위해주었고, 죽음과 같은 출산을 겪을 때 손을 잡아주었다. 이름이 아닌 떠나온 고향의 이름으로 불리던 두 여자는 일제강점기와 히로시마 원폭, 6.26 전쟁을 겪으며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한다. 헤어짐의 고통을 겪고 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밤이 새도록 서로의 슬픔과 원통함을 끌어 안아주었다. 삼천에게 새비는 자신을 귀애해주고, 애지중지한”(116p) 유일한 사람이었다. 영옥과 희자는 3년 터울로 태어나 어머니들의 우정을 이어받지만 성장 후 그들의 처지가 달라짐에 따라 소원해진다. 영옥은 자신과는 다른 길을 가는 희자에 대해 느꼈던 질투를 기억하며,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후회를 갖고 있다. 그녀가 기억하는 새비 아저씨, 명숙 할머니, 희자에 대한 회환은 김소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보여졌던 헤어진 사람들에 대한 감정- 헤아리지 못했던 타인의 슬픔, 오해, 착각, 꺼내지 못했던 말들, 질투와 같은 못난 감정들에 대한 후회-을 소환한다. 전작에서와 달리 삼천과 새비,, 영옥과 희자의 해후는 서로의 아픔을 공감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다름 때문일 것이다. 미선은 명희가 숨통이 되고, 지영에게는 지우라는 친구가 가끔씩 찾아온다. 자신의 아픔을 알고 있고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지연은 할머니의 설화(說話)에서 치유를 경험한다. 어머니에게 대물림된 체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자신에게 지워진 억압의 근원을 찾아낸다. 그녀가 희령을 떠나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이혼녀임을 당당히 밝힌 것이 상처로 돌아오는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지만 떠날 수 있는 자유함과 새로운 곳으로 향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할머니에게 들을 수 있는 역사는 4대까지이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역사- 동서양을 불문하고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거부할 때 공동체는 그녀를 비난하고 고립시키고 학대해 온 역사-를 알고 있다. 맘모스가 출몰하는 시대, 세상의 모든 딸들의 주인공이 여성에게 요구되는 태도를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려 할 때, 공동체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홀로 아이를 낳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그 굴레는 원시적이고 강력하다. 아이를 낳는 몸에 새겨진 왜곡된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이제는 한사람이 한사람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넘어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서사를 말하고 있다. 그 것은 텍스트가 되고 역사가 된다. 아프리카인들의 노예 해방사를 기록함으로 인종갈등에 대한 옳은 시각을 만들어 가듯이, 지속적으로 말하고 귀 기울임으로 만들어진 여성의 역사는 강요된 침묵과 견딤의 시간들을 증언하고, 덧입혀진 의미를 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 아닌 자신 안에 갇힌 상처받은 여자와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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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4 17: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

그레이스 2021-09-04 17:58   좋아요 5 | URL
😍🖐👍

scott 2021-09-04 20:38   좋아요 3 | URL
[, 지속적으로 말하고 귀 기울임]
이 문장 공감! 합니다
끊임없이 공론화 시켜야 합니다
참고만 사는게 미덕인 세상이 아뉨 ^ㅅ^

그레이스 2021-09-04 20:43   좋아요 3 | URL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페크pek0501 2021-09-04 18: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뿌듯한 독서하셨네요. ^^

그레이스 2021-09-04 18:21   좋아요 6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9-04 20: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3등~!! 역시 답은 사람인것 같아요. 사람 때문에 받은 아픔은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 치유한다~!! 이 책 완전 👍

그레이스 2021-09-04 20:34   좋아요 4 | URL
맞아요~♡

붕붕툐툐 2021-09-04 2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얘기합니다. 그레이스님~ㅋㅋㅋㅋㅋㅋㅋ
이 책 리뷰 많이 봤는데, 그레이스님 리뷰에는 몰랐던 내용도 실려 있네요~ 더 기대가 됩니다~😉

그레이스 2021-09-04 22:41   좋아요 4 | URL
감사한 말씀이네요!
툐툐님 말씀에 진심 감사합니다☺

han22598 2021-09-05 1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최은영 작가님 완전 팬이라서...이 책 리뷰를 제가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보지 않으려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ㅎㅎ 많은 분들이 읽고 쓰는 걸 보니, 역시나 좋은 글을 내놓으셨구나 하는 확인정도만 하고 지나치고 있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9-05 15:10   좋아요 2 | URL
예 리뷰 올려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mini74 2021-09-05 2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매 ㅠㅠ 서로의 울음, 아이의 울음 다 받아주던 엄마 할매의 소매가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ㅠㅠ 요즘 아이들은 친 외 라는 말대신 동네이름을 붙여 할머니를 부르더라고요. 땡땡동할머니 이런 식. 저 어릴때 할머니가 내가 진짜 친이고 외할머니는 가짜라고 그래서 울었거든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1-09-05 21:19   좋아요 2 | URL
외자 붙이는거
조금 억울해요.
그쵸?!
그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
땡땡동 할머니...♡

서니데이 2021-09-06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이 알라딘 서재에서 자주 보이네요.
최은영 작가의 책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1-09-06 22:4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도 굿밤요!

희선 2021-09-07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고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겠습니다 백정딸은 여전히 백정딸로 보고 백정아들은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군요 70~80년대도 생각납니다 누나나 여동생은 돈 벌고 오빠나 남동생은 공부하던 거... 이제는 그렇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차별은 있군요 갈수록 나아지면 좋겠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09-07 06:3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희선님.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지나갈 수 없는 것도 있어요. 그쵸.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바라만 볼수 없는...
반드시 말하고 고쳐야 하는...!